소설리스트

왕의 표본-263화 (263/369)

263화

<이거 주워가세요. (세 번째 메인 파트)>

“행님, 그래서 이긴 병신이에여 진 병신이에여?”

“당연히 이긴 병신이지.”

“히익. 결국엔 병신인 거네여?”

“그래도 이긴 병신이니까 진 병신보다는 낫지 않겠냐.”

“결국 욕 듣는 건 마찬가지지만여.”

쏟아지는 겨울 눈. 펑펑 내린 눈은 어느 덧 주변을 눈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민국과 서라는 두 사람이 사는 지역의 중간 지점 동네에서 만담을 까고 있었다. 이번에 솔로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방송을 위해 단합 방송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단합 방송엔 은별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이 그 양반은 꼬셔봤지만 끝까지 거절하더군.”

“슴가는 레어하잖아여? 근데 그분 슴가는 유니크니까 거절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여?”

어찌 됐든 간에 이 단합 방송의 주요 인물은 민국과 서라, 두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먼저 이 단합 방송 이벤트를 개최하기로 한 주체자들이었으니까 말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이니 만큼 크리스마스 전날 진행할 예정이었고, 정작 크리스마스에는 방송을 쉴 예정이었다.(……)

“온니찡은 솔로들이 불쌍하지도 않나여? 어떻게 솔로들이 추위에 파들파들 떨며 눈물을 적실 크리스마스에 연인과 데이트 할 생각을 하는 거지여!”

“훗. 불쌍하게 생각하지. 고로 난 지금 널 불쌍하게 보고 있다.”

“부, 부들부들.”

“그리고 난 연인이 한 명이 아니야. 무려 두 명이지. 크리스마스 날 나와 함께 할 사람은 무려 두 명이다!”

“패, 패도잼.”

“움하하하하하. 나는야 자랑스러운 개새끼.”

세상에 이런 개새끼가 있을 수 있을소냐. 커피숍에서 신명나게 만담을 즐기던 두 사람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말한다.

“그런데 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뭐하고 지낼 거냐.”

“엄마찡에게 왜 지는 애인이 안 생기는 거지유? 하면서 눈물을 훌쩍일 건데여?”

“크읏, 안타까운 녀석. 정 뭐하면 내가 키잡해줄 테니 나에게로 와라.”

“그럴 수는 없지여. 두 명 하렘도 부러운 마당인데 세 명이 되게 용납할 수는 없세여!”

“미친놈이? 네가 무슨 전지적 시점 독자냐?”

“만일 우리의 상황을 지켜보는 독자가 있다면 온니찡이 하렘이 되는 걸 용납하지 못할 거예여. 특히 로리로리한 로리까지 손에 넣은 온니짱이라면 더욱더여.”

뭔가 일리가 있는 말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미연시 세계에서 쓸데없이 가장 공략하기 어려운 녀석.”

“헤헤, 난이도는 SSS랭크가 좋지 않을까여?”

귀여운 미소를 지으면서 넌지시 던지는 서라의 물음에 민국은 피식 웃음만 지었다. 그래도 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동생을 만날 수 있겠는가. 비록 방송이라는 황당한 매체에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함께 하는 동안 후회는 없었다. 그건 서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준비도 끝났겠다 슬슬 집에 가야겠구만.”

“으앙 벌써 가시게여?”

“훗. 왜. 오늘 밤까지 진한 춤을 나누고 싶나?”

그 물음에 서라가 두 검지 손가락을 비비면서 부끄러운 연기를 시작한다.

“지, 진한 춤이랄까… 격렬한 춤이랄까… 기왕이면 불타오르는 게 좋을 거 같긴 해여! 온니찡 빨리 불타주세여!”

“이럴 수가. 자살 드립을 저런 식으로 노골적이지 않게 할 수도 있다니.”

서로 키득키득 웃는 두 사람. 확실히 개그 코드가 둘이 비슷한 게 같은 핏줄에서 태어난 건 아닌 가 의문을 품을 정도였다.

“어쨌든 이제 가자. 밤늦게까지 남자랑 같이 있으면 부모님 걱정하신다.”

서라도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의자에서 일어난 서라를 뒤로하고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하는 민국이었다.

돈은 청소년인 서라도 또래 애들에 비하면 꽤 버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스폰서부터 뉴튜버까지 비롯해 수입이 가장 많은 건 민국이었다. 그리고 나이도 민국이 서라보다 훨씬 있는 편이었고 말이다. 나오라고 한 것도 자신이었으니 이 정도 쏴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엔 내가 쏘지여 온니찡.”

“그래. 다음에 요구르트나 하나 사줘라.”

“파들파들! 요구르트 100개 사드림!”

그리하여 민국과 서라는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쉬면 되는 것이었다. 우우우웅….

‘뭐시라냐.’

서라와 헤어지고 나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던 민국이었다. 급작스레 울리는 휴대폰에 발신자를 확인한 민국이 놀랐다.

“호오, 이놈이 웬일로 나에게 연락을 했지.”

발신자는 김민철. 비제이 닉네임 쿠왁으로 활동 중인 녀석. 민국의 유일한 비제이 친구이자 동성으로서 함께 단합 방송을 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강철남은 친구가 아니니 제외. 민국은 곧장 전화를 받아 보였다.

“여보세요. 네가 이 이른 시간에 웬일로 전화를 다하냐.”

“야.”

“왜.”

“놀자.”

“뭐하고.”

“술 마시고.”

민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쩐지 목소리가 음울한 게 별로 기분이 좋은 모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국은 딱 봐도 뻔할 뻔자였다.

분명히 서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 자신의 정체성 때문이겠지…. 민국은 그래도 그 질기던 김민철이 슬슬 마음을 접어가는 것 같자 내심 안도했다. 그리고 친구긴 친구니까 위로의 말을 해주는 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민국은 대답했다.

“그래, 어디서 볼까.”

“이잉?”

길을 걷던 서라였다. 문득 자신의 주머니가 허전하단 걸 느낀 서라가 뜨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후다닥 방금 전 민국과 함께 했던 커피숍으로 질주하는 강서라. 얼마지 않아 그녀가 커피숍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있던 테이블을 치우는 점원이 보였다.

서라가 저벅저벅 다가가자 점원이 ‘아’하고 무언가를 건넨다.

“이거 손님꺼 맞으시죠? 놓고 가셨더라구요.”

“감사합니당….”

다행히 여자 직원이 친절했던 탓에 서라는 잃어버릴 뻔한 물건을 무사히 챙길 수 있었다. 이윽고 휴대폰을 챙겨 밖으로 나온 서라는 민국이 향한 길을 돌아보았다가 집으로 향하려고 했다.

“의잉?”

그러나 그때 또 이상한 게 눈에 밟혔다. 그건 바로 민국이 아까 전에 추위를 피하기 위해 착용하고 왔던 털장갑이었다. 사람들에게 질겅질겅 밟힐세라 후다닥 그 털장갑을 주운 서라가 자문했다.

“헐, 왜 이걸 떨어뜨리고 가신 거짐여?”

아무래도 주머니 속에 털장갑을 넣다가 그만 실수해버린 모양이었다. 누구나 그런 인간적인 실수는 해보기 때문에 크게 따질 거리는 안 되었다. 서라는 ‘으음 어떡할까여.’하면서 입술을 지렁이처럼 오므렸다 폈다했다.

“오키!”

얼마지 않아 마음의 확신이 섰는지 민국이 사라진 발자취를 돌아보는 서라였다. 어차피 아직 지하철에 타기 위해서는 더 많이 걸어야 할 때였다. 그럼 빨리 가서 털장갑을 챙겨주는 게 서라에게도 편할 일!

“온니찡 내가 감니다여!”

쥐고 있는 털장갑을 ‘안녕~’하고 인사하듯 흔들면서 서라는 달려가기 시작했다.

“기가 막힌 우연이구만. 너 여기는 왜 놀러왔냐.”

“그냥… 아는 친구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있었지.”

“술? 언제부터 마셨는데.”

“오후 세 시.”

“이 새끼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만.”

지금은 참고로 오후 여섯 시. 그리 늦은 시각은 아니었지만 겨울이라서 밤이 빨리 찾아왔다. 그런 까닭에 서라를 일찍 보낸 것도 있었다.

민국은 술을 마시고 딸꾹거리는 김민철을 보면서 한 편으론 안심했다. 왜냐하면 이 녀석이 이 동네에 있었다는 건 언제라도 자신과 서라가 같이 있는 걸 마주칠 수 있었단 의미였다. 진심으로 쓸데없는 위기를 피해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후우, 민국아.”

“왜 불러.”

“난 왜… 왜 그러는 걸까. 왜 대체 그러는 걸까. 크으.”

붉게 물든 얼굴로 딸꾹거리면서 김민철은 바닥을 보고 있었다. 민국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녀석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강서라… 김민철 딴에선 나름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진심이라 한들 민국은 도와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서라가 김민철에게 일말의 호감도 없을뿐더러… 김민철 같이 완전 눈치 없는 타입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니까.

‘미안하다 민철아. 하지만 어쩌겠냐.’

민국에게 부축 받던 민철. 하지만 얼마지 않아 슬슬 술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는지 정신이 돌아오는 얼굴로 하늘을 보는 모습이었다.

“크아, 하늘이 밝구나.”

“어둡다 인마. 너무 취한 거 같은데 그냥 가서 자는 게 어떠냐.”

“아니지 아니지. 지금 슬슬 빠지기 시작했어. 가서 마시러 가자.”

어지간히 취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 동안 짝사랑한 것도 근성이니 민국은 인정해주기로 했다. 이윽고 김민철을 데리고 이동하기 위해 준비하며 민국이 말했다.

“그래 좋다. 오늘은 그럼 내가 위로의 술 한 잔 쏴주기로 하지. 토할 때까지 마셔라.”

“크으.”

가볍게 웃으면서 김민철이 민국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민국은 그런 김민철의 행동에 피식 미소 지으면서 똑같이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두르었다. 그리고 근처 술집으로 향하기 위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에구구! 대체 어디가신 거람.”

한참을 뛰던 서라였다. 아무리 길을 둘러보아도 민국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번화가라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찾기 버거웠다.

‘그냥 포기할까여.’

결국 나중에 갖다 주기로 하고 휴대폰 메시지를 남기는 게 옳은 일일까 생각이 들었다. 실은 털장갑을 계기로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맘이 있던 서라였지만 말이다.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포기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온니찡?”

저기 어디선가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명이 반쯤 고개를 돌려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얼굴이 상당히 낯이 익었다. 서라는 그 얼굴을 자세히 보다가 이내 민국이란 걸 알게 되었다.

“뭐임여? 집 가는 거 아니었음? 저 남자는 누구시징.”

의문을 갖던 서라였다. 하지만 곧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놓고 다른 친구와 만담을 나누는 모습에 부들부들 떠는 그녀.

“의잉! 집에 간다고 한 건 훼이크였던 건가여! 로리랑 더 놀아주지 않을망정!”

서라는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털장갑을 손에 끼고 후다닥 민국이 있는 쪽으로 정면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소리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민국 온니쨩! 항문 조심해여! 항문에 똥침 같은 게 날아갈 지도 몰라여!”

뒤에서 크게 소리치면서 후다닥 달려가는 강서라. 술에 취한 김민철과 가볍게 만담을 나누고 있던 민국이었다. 돌연 들려온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뭐냐.’하고 뒤를 돌아보던 민국. 이내….

“헐! 네가 왜 여기 있냐!”

“온니짱이야 말로 집에 간다고 해놓고 뻥친 거 보셈! 수능 날 아니지만 엿 드셨으면 좋겠음여!”

민국의 바로 앞에 당도한 서라가 그리 소리친다. 허나 민국은 서라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 알 수가 없는 표정이었다. 이내 서라가 털장갑을 벗고 민국에게 건넨다.

“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가져왔는데 너무하시네염! 수능 날 아니지만 또 엿 드셨으면 좋겠음!”

“야…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

“에베베베베!”

모처럼 만났는데 집에 가겠다고 해놓고는 다른 친구와 놀고 있는 게 목도되었으니, 서라 입장에선 기분이 마냥 좋을 리가 없다. 이윽고 서라가 메롱 혀를 내밀고 듣지 않겠다는 듯 두 귀를 양손으로 틀어막는다.

민국은 이 상황을 모르는 서라와 술에 취한 채 등을 보이는 김민철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몹시 당황했다. 이윽고 민국이 서라에게 소리친다.

“야! 일단 빨리 너 돌아가!”

“부, 부들부들!”

“빨리 가 임마! 급하다니까!”

“끙! 알겠음여! 수능 날 아니지만 또 엿드세여!”

그리고 몸을 돌리려던 서라였다. 하지만 몸을 돌리려던 찰나에 김민철도 ‘누구랑 얘기하고 있냐….’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서라와 김민철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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