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262화 (262/369)

262화

"훗, 맞은 것치곤 좋은 이득이었어."

"……."

"아니 아무 말도 아닙니다 유이 씨."

이젠 유이의 데미지에 적응한 민국이었다. 언젠간 진정한 마조히스트로 2차 전직을 할 지도 모르는 실정. 이윽고 민국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물었다.

"아무튼 뭐 그렇게 싸움 잘하기가 어렵답니까. 애초에 그 방식이 진짜로 가르쳐주는 방식 맞아요?"

"……."

그 질문에는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유이는 그냥 몸이 흘러가는데로 움직였던 것이니까. 천재인 사람들에겐 이런 단점이 있는 것이었다.

"흠, 체력 소모도 심하고 엄청 지치는데 우리 식사나 합시다."

"……."

"엣흠! 식사는 제가 준비해드리지요. 스승님을 위한 만찬 정도는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럴 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좋아하면서 거절할 필요 없습니다. 유이 씨 마음 다 아니까요."

좋아한 적 없는데…. 유이의 제지를 거절하고 민국은 곧장 부엌으로 당도했다. 그리고 실례한다면서 천천히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사스가 최유이."

"……."

"뭡니까 이 텅텅빈 냉장고는."

할 말이 없는 유이였다. 애초에 유이는 냉장고는 장식으로 달아둘 뿐, 실질적으로 요리를 하면서 지내지는 않았으니까 말이었다.

"설마 음식 요리 같은 거 못하십니까?"

"……."

음식 요리를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유이는 음식을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애초에 돈도 많이 벌고 있는 상태였고 그냥 주문 배달을 해서 먹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평소에 주문 배달만 해서 삼시 세 끼를 다 드시고 계신 겁니까?"

"……."

"사스가 유이 씨. 그래서 마음이 그렇게 포만감 넘치게 성장했던 거군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최유이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민국은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잠시 기다리고 계시지요. 제가 슈퍼에서 달걀을 사와서 요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러셔도…."

"어허, 스승님. 제자가 스승님에게 명색에 보답 좀 하고 싶다는데 자꾸 이러실 겁니까?"

실로 누가 보든 간에 얄미워 보일 듯한 민국이었다. 하지만 민국이 이렇게 최유이에게 식사를 대접하려는 이유는 나름대로 있었다. 우선 첫 째가 격투기를 반드시 가르쳐줘야 하는 뇌물을 만들기 위함이었고… 둘 째가 늘 혼자 있는 유이가 걱정되어서였다.

'사람 좀 만나고 다니십시오. 볼 때마다 느낌 안 좋아 죽겠네.'

사실 바캉스 사건 이전까지 민국은 유이에게 별로 이렇다 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캉스 사고 이후 유이를 구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에 휩싸였던 민국이었고, 그 책임감이 지금껏 유이와 접촉하는 까닭이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강철남 사건 이후 한층 사람과 멀리하려는 게 민국의 눈에도 보였으니까.

"……."

"그럼 기다리고 있으십쇼. 문 닫고 잠수타면 미워할고양!"

"……."

졸지에 애교까지 부리는 민국의 모습에 유이는 내색은 안 했지만 못 볼 걸 못 드한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현관문으로 나가는 민국을 뒤로하고 홀로 남은 유이는 방금 전 민국이 전등을 켰던 부엌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부엌 불 스위치를 천천히 끈 다음에 유이는 조용히 테이블의 의자를 당겨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

어둠 속에서 유이는 가만히 있었다.

*  *

"여기서 이렇게 발길질을 하라는 겁니까?"

"그렇게 한 다음에…."

"아뵤!"

"……."

"사스가 최유이. 훈련의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거 같군요."

강해지기 위해서 매일매일 유이의 집에 방문하게 된 민국. 주로 방송을 끝낸 오후 때에 잠시 시간을 내서 유이의 집에 방문했고, 민국은 넓은 유이 집의 거실에서 유이에게 트레이닝을 받게 되었다. 아예 작정을 한 듯 운동복까지 마련해서 입고 쇼를 하는 모습이었는데… 확실히 유이는 본능적으로 민국이 운동에 소질이 없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지르는 주먹부터 발까지 얼마나 허술하던지….

"왠지 이렇게 유이 씨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느끼는 게 있는데, 이 세상에 평행 세계가 있다면 댁이랑 같이 운동을 하는 또 다른 서민국이 있을 거 같지 않습니까?"

"……."

"그 인간은 왠지 당신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출중하게 운동을 할 것 같군요. 훗, 어리석은 녀석. 그쪽 세계 유이는 가슴도 별로 안 클 텐데 말이지."

"……."

어찌 됐든 간에… 민국은 운동에 소질이 없었다. 고로 유이는 가르쳐주긴 하되 별로 결과는 좋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유이 씨는 그렇게 혼자 있는 게 좋으십니까? 만나는 사람도 없고 늘 집안에만 있는 거 보니 하는 질문입니다."

선천적으로 사람이랑 함께 있으면 힘 빠지는 타입이 있단 얘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유이는 그런 타입이라 쳐도 너무 정도가 심했다. 애초에 아는 사람이란 게 없는 것 같았다.

"저는…."

유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가 좋아서…."

"혼자가 좋다구요? 허허, 외로움 페티쉬를 가진 여성이군요."

"……."

"외로운 자신을 보면서 하앜하앜, 나는 너무 외로워! 윽! 외로움에 가버렷! 이런 여성이라는 뜻이군요. 잘 알겠습니… 아니 아니, 방금 살기의 기척을 느꼈어. 농담이니까 발차기는 자제 해주십시오 진짜 마조히스트 됩니다!"

근데 왠지 이와 관련된 질문을 이전에도 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유이랑 어디 식당에서 단 둘이 일대일로 대화하면서 말이다. 몇 개월 전 기억이니 섬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이윽고 민국이 물었다.

"그런데 유이 씨. 혹시 필살기 같은 거 없습니까?"

"필살…."

"예. 필살기 같은 거요. 적을 무지를 때 한 방의 일격이라던가 피니쉬 같은 거 말입니다."

만화영화를 너무 많이 본 민국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격투기를 하는 선수들이나 싸움꾼들도 자기만의 특기나 재주는 있었다. 필시 민국도 자신에게 원하는 그런 스킬이 하나쯤 있을 터였다. 유이는 잠시 곰곰히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이 자주 사용했던 기술을 떠올렸다.

"옆 발차기…."

"오오, 출렁임이 엄청나군."

"……."

가볍게 허공에 옆 발차기 시범을 보이자 민국은 출렁이는 것에 환장하는 얼굴이었다. 이윽고 뜸을 들이던 유이가 말했다.

"옆 발차기가 제 특기…."

"흐음. 옆 발차기라. 그럼 제 특기로는 뭐가 좋을 것 같습니까? 저에게 맞는 피니쉬 스킬 말입니다."

유이에게 배운 주먹 내지르기를 엉성하게 선보이며 민국이 물었다. 유이는 그런 민국을 한참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사실… 어떻게 보든 간에 잘 구사할 스킬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명치 찌르기…."

"오올! 명치 찌르기라니! 명치 급소 아닙니까? 그곳을 찌르는 일격이라니. 나는 명치 찌르는데 큰 재주가 있는 놈이었던 건가!"

"……."

"사스가 유이 씨. 후후, 고맙습니다. 한 번 실전을 붙어서 제 스킬의 결과물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전…?'이라는 단어에서 좀 의문이 들었으나 유이는 추궁할 여력도 없었다. 이윽고 오늘 역시 유이에게 격투기(?)를 배운 민국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럼 5일간 가르쳐준대로 실습을 해보고 오겠습니다. 하하하하! 기다려라 슈퍼 흑인!"

"……."

그리고 민국은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유이에게 교습을 받는 요 5일간 민국은 목욕탕 흑인과 세 번을 조우했다. 필시… 그 흑인은 복수심이 강해 민국을 찾아 이 동네를 이곳저곳 뒤적이는 것이 자명했다. 참으로 할 짓 없는 흑인이라 볼 수 있었다.

'허나 사내 대장부가 싸움을 걸어오면 피할 수는 없지.'

단 기간, 고작 5일이었지만 민국은 은둔 고수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남자 세 명도 졸지에 파탄을 내버리는 유이의 가르침이라면 민국은 금방 성장했을 게 불보듯 뻔했다. 이윽고 민국은 기다렸다는 듯 추운 점퍼를 입고 집밖을 나왔다. 그리고 동네 근처를 얼씬거리기 시작했다.

"오! 마더 퍼커!"

"훗, 왔군."

그리고 기어이 민국을 찾고 있던 흑인과 조우하고 말았다. 할 짓 없는 두 남정네의 만남. 민국은 점퍼 속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고 뒤를 돌아보았다. 민국을 손가락으로 삿대질한 흑인은 매우 사나운 얼굴을 짓고 있었다.

"아유 크레이지? 아유 도망자?"

"닥쳐라 인간. 인종차별자인 내게 그런 도발은 통하지 않는다."

옛적 중2병을 새삼스럽게 각성시키며 민국은 선언했다. 흑인은 민국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분위기로 말미암아 욕으로 추정했는지 '오~ 마이 갓~.'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유 다이 맨. 유 다이 컴온 맨!"

"훗…. 격투기를 배운 나로선 일반인과 싸우는 건 중범죄지만."

흑인에게 척하고 몸을 돌리는 민국이었다.

"이 중범죄도 때때로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있지. 그 상황이 지금 바로 이 상황이다."

"유 다이 맨!"

"와라! 아이 라이크 케이케이케이!"

"왓더 퍽!"

민국의 도발에 흑인이 열이 뻗친 표정으로 후다닥 달려들기 시작했다. 흑인 역시도 민국을 밟기 위해 어지간히 준비를 했던 모양. 민국은 달려오는 흑인을 향해 두 팔을 뻗은 채로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이대로 도망친다면… 평생 동안 자기 자신은 도망치면서 살아갈 것이다! 인종차별자로서… 그런 건 어림도 없다!

'유이 씨가 말하길, 나의 비장의 스킬은 명치 찌르기라고 했다.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고 연습할 때도 배운 적이 없지만 그래도 나의 숨겨진 재능 스킬이 그것이라면 시도해보는 게 당연할 터!'

"훗!"

민국은 빠르게 달려오는 흑인의 속력에 코웃음을 치면서 주먹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이내….

"받아라, 나의 비기… 금강창파!"

떠오르는 게 없어서 대충 세보이는 스킬 이름을 내뱉고는 민국은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달려온 흑인의 명치에 정확히 주먹이 닿는다! 그래도 배운 게 있어 가지고 명중률은 조금 높아진 민국이었다.

'맞았다!'

자신을 믿었단 사실에 이루어진 결과! 그 축복의 결과에 민국은 희열을 느꼈다. 이젠 흑인이 '크아아아악 두고 보자'하면서 명치를 감싸고 도주하는 게 민국이 원하는 바램.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퍼억!

"꽥!"

"유 다이 맨! 유 다이 맨!"

"야 씨발! 왜 안 쓰러져!"

얼굴을 한 대 맞은 민국이 붉어진 표정으로 소리친다. 그러나 흑인도 한 대 맞아서 그런지 열이 잔뜩 오른 표정으로 민국에게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마구잡이 주먹을 피하기 위해 양손을 뻗어서 흑인을 밀쳐내던 민국도 곧 빡쳐서 주먹을 막무가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야 이 북한 간나 새끼야!"

"유 빠덜 퍼커! 유 빠덜 맨!"

"조까! 아임 유얼 파덜! 아임 유얼 스타워즈 파덜!"

서로 정면전을 붙는 두 사람. 피튀기는 혈투! 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는 둘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크윽!'하면서 한 쪽 눈을 찔끔 감으면서 아파왔다. 확실히 흑인이라 그런가 유연성도 뛰어나고 근육의 질감도 좋았다. 그로 인한 데미지에 아파하던 민국은 결국 최후의 비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씨발 이거나 쳐먹어라!"

퍽!

"어쭈? 막아?!"

흑인의 가랑이 사이로 무릎을 날렸으나 그것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흑인. 피식 웃는 흑인의 모습에 열받은 민국이 대놓고 흑인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서 그것을 이빨로 깨물기 시작했다.

"옷? 오오오오옷! 오노!!!! 오노오오오오오!"

"아이 라이크 케이케이케이! 유 대물 데드!"

"오노! 쉣더맨! 컴온 맨!"

고추를 물어뜯는 민국의 행위에 흑인이 경기를 하면서 투닥투닥 때려간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재들 뭐해."

막 민국의 집에 들려 어디에 나갔나 동네를 둘러보던 은별이었다. 끝내주는 혈투를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은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대로 싸움은 싸움이었으나, 두 사람은 어지간히 싸움을 못했다. 어지간히 주먹 싸움에 소질이 없는 모양이었다.

고로 민국과 흑인은 나름대로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엔 소꿉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모른 척하자.'

"아이 라이크 케이케이케이! 아임 인종차별자! 유 흑인 다이! 컴온!"

"오우! 쉣더 퍽! 유 마덜 인종차별자 러브!"

차마 말리기도 창피한 듯한 광경이라 은별은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두 사람 간의 사나이 같은 싸움은 길거리의 한 시민이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나서야 끝나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이제 다음 파트부터 메인 스토리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