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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261화 (261/369)

261화

"아니 이 가슴 대마왕아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으면 어떡해!"

"……."

"죄송합니다. 이건 제 2의 인격이 튀어 나와서 헛소리를 지껄인 겁니다. 제2의 인격이 다시 튀어나왔을 때 그때 때리세요. 지금 저는 제1인격이기 때문에 때리면 불법입니다. 법적으로 고소할 겁니다."

이리저리 항변을 늘어놓는 민국이었다. 다시 전화를 받게 된 유이는 민국의 말에 그저 침묵하면서 있었다.

"그리고 제가 유이 씨보고 음란하고 마초적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던 말도 유이 씨가 너무 음란한 여자라서 이상한 상상을 하셨나 본데, 제가 진짜 했던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유이가 태클을 걸기 전에 재빨리 말을 잇는 민국이었다.

"제가 원하는 건 강함입니다!"

"강함…?"

처음으로 운을 띄우는 유이였다. 민국은 거칠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통화했다.

"강함! 유이 씨에게는 그 강함이 있지요! 순결하고도… 처녀스럽고도, 하지만 한 편으론 엄청난 음란한 강함 말입니다!"

"……."

"제가 원하는 건 그 강함입니다 으흐흐흐흐. 어떠십니까 유이 씨. 저에게 그 강함을 선사해주시지 않겠습니까?"

"……."

말은 들었으나 여전히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이해 못했다는 증거로 조용히 음성을 내뱉는 유이였다.

"무슨 말인지……."

"허 참! 맞짱 뜨는 법 좀 배우자고요 맞짱 뜨는 법!"

에둘러서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자(?) 결국 노골적으로 털어놓는 민국이었다. 하지만 유이 딴에선 느닷없이 자신에게 맞짱 뜨는 법을 배우겠다는 그가 이해될 리 없었다. 이윽고 뜸을 들이던 유이가 천천히 물었다.

"맞짱 같은 건 모르는데…."

"뭐? 맞짱을 몰라요?"

"……."

"예전에 그 여름에 바캉스 갔던 날 기억하십니까? 그때 어디 불량한 엑스트라 세 명이 나타나서 서라랑 은별, 예나에게 건들건들거렸던 거 기억 안 나십니까?"

"기억은…."

"거봐요! 기억하잖아요! 그때 당신의 가슴에게도 건들건들거렸던 어떤 놈도 있었지요! 그때 당신이 어떻게 했습니까? 제가 한 두 놈 상대하느라 열뻗치고 있을 때 당신은 건들거리는 한 놈의 복부에 에네르기파를 콰앙! 슈퍼어택도 콰앙! 그렇게 정의로운 힘을 보여드리지 않았습니까?"

"에네르기 슈퍼어택은…."

"그 다음에 제가 상대하던 나머지 녀석들도 당신이 쾅! 후루룩 쾅! 하면서 컵라면에 밥 말아먹듯 아주 손쉽게 상대하지 않았습니까? 하나같이 바다로 멀리 나가 떨어져버렸고요! 어떻게 그게 강함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겸손한 척하는 겁니까? 겸손함의 트렌드가 언제 지났는데 아직도 겸손한 척을 해요 이 가슴 대마왕아!"

"……."

"죄송합니다. 또 저도 모르게 제2인격이 나타났군요. 후훗, 이런 이런. 위험한 녀석."

스스로에게 위험한 녀석이라면서 웃는 장면은 실로 황당한 것이었다. 그 황당함을 머금고 가만히 전화기를 붙들고 있던 유이가 물었다.

"방송하고 연락해도 될까요…."

"방송 끝나면 연락 안 받을 심보인 거 제가 모를 거라 생각합니까?"

"……."

"일단 한다고 해주시면 연락 끊겠습니다! 해주십쇼! …아아아아앙 해줘여어어어 아아아아앙!"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애교를 부리는 서민국. 평소 감정을 내색하지 않는 유이조차 일순간 오금이 싸악 저릴 정도였다. 이윽고 민국이 애처럼 '아아아앙'거리자 유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격투기장 같은 곳으로 가서 하는 게…."

"거긴 별롭니다! 그쪽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유이 씨보다 약해요! 유이 씨도 진정 아시지 않을 거 아닙니까?!"

그 말에는 유이도 할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유이는 사실 돈을 벌자마자 처음으로 가게 된 곳이 격투기장이었다.

여자 혼자이니 만큼 어떤 상황에서든 버티려는 마음에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격투기를 배웠으나… 무려 3개월만에 초심자부터 고수 단계까지 끝내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자신을 가르치던 선생까지 순식간에 제압하고 말았다.

그 정도로 유이는 무엇 하나 타고난 점이 없지 않은… 초천재에 가까운 여성이었다.

"……."

비록 그런 여성도 신은 공평하다는 것처럼, 도덕성과 인간성을 부족하게 만들었으나 말이었다.

"아아아아앙 해줭! 해줭! 해줘이이이잉!"

"일단… 일단 연락을 끊으면…."

"이거 통화 끊기 전에 말씀해주십쇼! 해주는 겁니다? 예? 해주는 거예요!"

"……."

민국의 완고함은 때때로 유이를 난감하게 만든다. 평소 반대 의견 표출을 곧잘 못하는 그녀로서는 민국이 실로 부러울 때도 있었다. 이윽고 유이는 왜 이렇게 늦게 돌아오냐는 채팅방의 원성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알겠어요…."

"오오! 됐군! 됐어!"

"……."

"좋습니다! 일단 연락 끊지요! 유이 씨 방송 언제 끝납니까? 끝나는데로 제가 곧장 당신 집으로 가겠습니다."

"오늘은…."

"에이, 이 사람아! 아무 스케줄도 없는 거 다 알아! 내가 당신 가슴을 한 번 만져봤는데 그걸 모를 것 같아?"

"……."

정답. 오늘은 아무런 스케줄도 없는 날이었다. 그러니까 여유롭게 방송을 하는 것이겠지…. 이윽고 할 말이 없는 유이를 뒤로하고 민국은 용건이 끝난 듯 소리쳤다.

"훗! 그럼 이따가 봅시다 최유이 씨!"

"……."

"아니 최유이 스승님!"

졸지에 스승님 소리까지 듣게 된 유이. 그리고 통화는 끊겼다. …통화가 끊긴 휴대전화를 말없이 내려다보던 유이는 천천히 모니터로 고개를 들었다. 일단… 일단 방송을 끝내는 게 우선이었기에 곧장 키보드와 마우스에 두 손을 옮기는 유이였다.

*  *

"엇흠, 이 따끈따끈하고 썰렁한 집에 오긴 참 오랜만이군요."

"……."

이윽고 방송이 끝난 뒤였다. 마치 방송이 끝날 시간에 맞췄다는 듯 민국은 곧장 지하철을 타고 유이의 집에 방문했다. 유이는 곧장 집 불을 끄고 잠수를 타려고 했지만, 이미 그 수도 전부 읽었다는 듯 민국은 떳떳하게 현관문에 입장했다.

"엇흠, 유이 씨. 아무리 저와 단 둘이 있는 게 부끄러워도 그렇게 피하실 거 없습니다. 음하하하하."

"……."

"하하하하하 콜록 콜록! 컥컥! 사례 들렸… 콜록 콜록!"

과장된 폭소란 목에 무리를 가져오는 법이다. 목을 잡고 기침을 토해내던 민국. 이윽고 유이를 보면서 말했다.

"자, 이제 저에게 비법을 전수해주십시오 스승님."

"……."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도? 마나? 아니면 무공?"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민국이었다. 유이는 일단 약속은 한 것이었으니까, 이제 와서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뭡니까? 저에게 당장 그 강함을 전수해주십시오!"

"……."

사실 유이도 알려주고 싶어도 별로 알려줄 게 없었다. 애초에 격투기란 걸 배울 때도 단 시간에 마스터한 유이였고,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행동으로 먼저 이해했던 그녀였다.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은 이해하기 쉬워도 상대방에게 설명을 해주기가 번거로워지는 경향이 짙었다.

"……."

그리고 그 결과 유이는 눈을 빛내는 민국에게 강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역시 이럴 땐 자신의 최대 단점인 말로 설명을 해주는 것보단, 자신의 최대 장점인 행동으로 설명해주는 게 낫단 생각이 들었다. 척.

"앵?"

이윽고 태권도 같은 자세를 잡는 유이였다. 그런 유이를 보고 순간 의혹의 눈길을 보이는 민국.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때릴 유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민국은 조금 주춤했으나 가만히 그녀의 행동을 기다렸다. 잠시 후… 파아아아악!

"!"

팍! 팍! 파아아악! 파아아아아악! 공기를 찢는 소리조차 우렁차고 질기다. 옆에서 유이의 멋진 발차기와 동작들을 구경하는 민국은 감탄하는 눈매로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팍! 팍! 계속해서 이어지는 유이의 연계기!

"오오오오오오오옷!"

민국은 졸지에 감탄을 참지 못하고 짝짝 손뼉까지 치기 시작했다. 이거 이거, 엄청나다! 민국은 저도 모르게 유이의 공격에 대해 소감을 표명했다.

"저 하나 하나 바람을 타듯 부드러운 동작! 하지만 한 편으론 바람을 뭉개는 듯한 강력한 속도! 바람이 아파서 응애응애 울어도 믿을 만큼 빠르고 신속한 행동! 그리고 이어지는 연계는 단순한 쇼가 아니라 실전에서 사용이 가능할 듯한 느낌!"

"……."

"이것이 말로만 듣던 챔피언인가!"

민국은 스스로 자각은 못했으나 역시 자기 동생인 해영이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가족은 가족이었으니까. 이윽고 박수를 치며 구경하길 좋아하던 민국이 질문했다.

"유이 씨. 대체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아니, 애초에 그 정도는 바라지 않고 그냥 일반적인 주먹만 잘 다루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주먹…."

연계를 끝내고 민국을 보고 있던 유이였다. 유이는 곧장 복싱 자세를 취한 다음에 빠르게 허공에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슉슉!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빠른 속도!

"오오! 저 시공간을 초월할 듯한 속도 보소! 맞으면 분질러지겠는데?"

"……."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위력도 엄청나다. 본래 위력이란 건 속도와 무게가 더해져서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심지어 동작도 유연했으니… 보는 입장에선 꿀꺽 침을 삼키면서 맞으면 죽는단 생각을 자연스레 인식시켜줄 수밖에 없었다.

"사스가 최유이."

"……."

"그래서, 저에게 뭘 가르쳐주실 겁니까?"

이제 유이의 동작도 다 보았겠다 민국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스승에게 기술을 전수받는 제자로서 스승의 확실한 지도를 원했다. 하지만 유이는 그 질문에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게 그녀 딴에선 가르쳐준 거였으니까.

"이걸…."

"앵?"

"이걸 따라하시면…."

"……."

잠시 뜸을 들이던 민국이었다.

"헐! 지금 그걸 따라하란 말입니까?"

"……."

고개를 끄덕이는 유이.

"이럴 수가, 격투기라는 게 원래 이런 식으로 훈련을 받는 거였단 말인가?"

"……."

"정말 어마무지하군! 운동 선수들이 존경스러울 지경이야!"

사실 격투기도 기본 운동 같은 게 있었지만… 유이는 그런 것도 전부 순식간에 패스한 타입이라서, 아무래도 거기서 큰 문제가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합! 합! 이렇게 말입니까?"

"거긴 이렇게…."

"오호, 여기선 이렇게? 합! 합!"

마치 태권도에서 기합 소리를 내듯 소리를 외치면서 민국은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유이는 민국의 동작에서 뭔가 탐탁치 못한 구석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자신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오오."

"또 이렇게 하시면…."

"오오오오오."

민국은 유이가 하는 동작을 보면서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한 편으론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휙휙! 거침없이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엄청난 포만감…. 그 출렁임은 마치 남성을 바다에 빠뜨리려는 어마무지한 유혹의 존재로….

"대단해. 역시 대단합니다 유이 씨. 흐흠!"

"……."

유이는 동작을 보일 때마다 이따금씩 느껴지는 음란함에 조금 기분이 이상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윽고 동작을 마친 유이가 다시 민국에게 동작을 요청한다.

"한 번 해보시면…."

"이렇게 말입니까? 호욧! 호욧! 이렇게?"

"거기서는…."

"아하~ 이렇게 말이군요? 호옷! 호옷!"

"그곳은 이렇게…."

어느 틈엔가 스승으로서 지도를 하기 시작하는 유이. 그녀도 나름대로 고집은 있던 터라… 한 번 빠져들면 강하게 빠져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민국을 지도하던 찰나였다. 민국이 그만 과대한 욕심에 빠져 주먹을 크게 휘두르다가 중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엇? 어엇? 어어어어억!"

"……."

지도에 집중하느라 민국이 자신에게로 넘어지는 것을 보고도 대처를 못한 유이.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쿠당탕탕!

"으어어어. 내 다리야."

"……."

하지만 다리를 바닥에 잘못 찧여서 아픈 것과는 별개로, 상체는 행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민국의 한 쪽 손이 유이의 넘어진 가슴에 닿아 있었으니까. 말캉 말캉.

"아니, 이것은?"

"……."

"훗… 잠시만요 유이 씨. 저는 아마 몇 초가 지나면 피범벅이가 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전에 이 얘기는 한 가지 꼭 하고 싶군요."

"……."

"정말 좋은 가슴이었다!!!!!!!!"

투다다다다다다닥! 하늘을 나는 민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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