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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260화 (260/369)

260화

<스승이시여… 부디 밟아주시옵소서!>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우리 강력한 사이어인 강은…."

"닥쳐."

"강은별은 슈퍼 파워 사이어인! 중2병의 화신이자 여신! 그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는 없다! 우하하하하!"

"……."

"으윽! 은별아! 위험해… 지금 내 팔이… 내 팔이 가장 강한 악당에게 찢기기 시작했어! 너의 울트라 슈퍼 파워 뿅으로 날 구해줘 은별아!"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결국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은별이었다. 이윽고 자기 방 책상에서 일어난 은별이 후다닥 민국에게로 달려가 두 팔로 머리를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급작스러운 구타에 민국이 '우와앗'하면서 소리쳤다.

"대지의 강력한 파워가 나의 머리를 강타하려고 한다! 얼른 하나뿐인 탈출구로 피해야겠어!"

"…꺼져버려어어어어!"

원형 통로로 기어들어가는 민국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버리는 은별이었다. 민국은 '아이쿠!'하면서 엉금엉금 통로 안으로 기어들어가 자기 집 거실로 돌아왔다.

"다시는 오지마! 찾아오지도 마! 이 말미 해삼 멍개 같은 놈아!"

울상을 지으면서 소리친 은별이 액자로 원형 통로를 가려버렸다. 맞은 엉덩이를 손으로 슥슥 문지르던 민국은 거실로 완전히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동생이랑 재밌게 놀아줬다는 거 같던데."

해영이가 어머니를 데려간 뒤, 어머니에게 연락이 온 민국이었다. 그때 민국은 어머니와 연락을 해서 예나는 없고… 처음 보는 여자애가 한 명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당연지사 그녀는 은별이었고, 그녀 혼자서 해영이를 돌보고 있었음에 어떻게 되었을까 꽤나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해영이랑 잘 놀아주던데 애는 괜찮은 거 같더구나. 조금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허허. 그러십니까?'

의외로 은별은 좋게 평가를 받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해영이는 항상 어디에서든 붕 뜨는 존재였고, 친구도 한 명도 없어서 늘 혼자 다니기 일쑤였으니까.

'그래. 근데 너 예나랑은 어떻게 됐니?

'아, 예나요?'

'그래. 왜 소식이 없어. 여자친구 사귀면 소식 들려주기로 했잖아.'

어머니의 말에 민국은 머리만 긁적이면서 둘러댔다.

'아직은 없어요. 나중에 사귀게 되면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연락을 끊은 민국. 사실 이쯤되면 슬슬 민국도 자신의 여자 친구를 소개할 법도 했다. 하지만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에게 현재 여자 친구라고 할 사람이 한 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은별이 내 진짜 여자 친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은별만 소개시켰다간 예나가….'

민국은 이미 흑화 소주건으로 예나의 본심을 완전히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그동안 쌓여 있던 엄청난 서운함을 격분과 얀데레스러움으로 표현했었다.

어찌 그 날의 공포를 잊을 수 있겠소냐…. 민국은 그만큼 예나가 서운해했던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함부로 여자 친구를 부모님에게 소개시켜주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흠, 그냥 나답게 두 명을 전부 데려가버려?"

어차피 나쁜 새끼가 되었겠다, 떨어질 바닥도 없는데 바닥 청소나 하자고 생각하고 두 명을 부모님에게 데려가면 어떻게 될까! 아마 평소 중2병 수석환자인 해영이조차도 민국을 짐승으로 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머니도 의외로 민국과는 다르게 보수적인 면이 강했기 때문에 두 명을 데려갔다간 직싸게 맞을 지도….

"아버지는 어쩜 골프채로 후드려 팰 지도 모르겠구만."

말은 이렇게 태연하게 해도, 속으로 소개를 시켜줄 것만 상상하면 벌벌 떨리는 민국이었다. 이윽고 거실에서 어제의 일을 잠시 회상하던 민국이 가볍게 점퍼를 입고 현관을 나가기 시작했다. 편의점에 가서 커피 한 잔 사오려는 계획이었다.

"아따, 추워 죽겠구만."

뜨뜻뜨뜻한 커피 한 잔 입에 머금고 키보드나 두드리면서 방송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민국. 한창 길을 거닐던 어느 찰나였다.

"오우 쉣!"

"?"

"쉣더 뻐큐 맨! 컴온 맨! 컴온!"

"어? 슈밤 뭐야?"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 울림통이 있는 그 사나운 음성에 민국은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이목구비의 남자가 매우 흉포한 얼굴을 짓고 민국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민국은 아리송한 얼굴로 그 사람을 쳐다보다가 얼마지 않아….

'…씨발!'

민국은 깨달았다. 그날의 일을…. 비록 그땐 절망감과 자괴감에 똘똘 뭉쳐서 그만 흉포한 행위를 저질렀던 민국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실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정신을 차렸다고 해서… 지난 날의 사건이 깜빡 잊혀질 리 없다.

"왜 네가 여기 있냐!"

"뻐큐 맨! 컴온 맨!"

"으아아아아!"

목욕탕에서 봤던 그때 그 엄청난 흑인! 우락부락한 근육에 커다란 보물자리를 가지고 있던 그 흑인이 민국을 알아보고는 사납게 달려오고 있었다. 민국은 잡혔다간 죽을 것을 본능적으로 가늠했기 때문에 쏜살같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른 대낮부터 쌩쇼를 시작하는 민국이었다.

"컴컴! 컴온 매니아! 컴맨!"

"닥쳐! 나 인종차별 남자다! 니거니거니거니거!"

"오우? 쉣더 퍼큐 맨!"

"조까! 니거니거니거니거!"

서로 욕배틀을 뜨면서 달리는 두 사람. 민국은 쫓기고 있었고, 흑인은 쫓는 처지였다. 워낙 몸이 좋은 흑인이었기 때문에 전속력으로 달리면 민국을 잡을 수도 있을 터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날씨는 겨울철…. 얼어버린 바닥 때문에 서로 최대한의 속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유 다이 맨!"

"뭐? 날 죽이겠다고? 이게 팍 씨… 카악 퉷!"

"오우 쉣!"

있는 힘껏 가레를 끌어모아서 침을 뱉는 민국! 강렬한 침뱉기에 흑인이 맞으면 엿된다는 얼굴로 아연실색하며 물러난다. 하지만 침을 뱉는 때를 제외하곤 다시금 속력을 발휘해서 쫓아오는 모습. 민국은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까지 질주해 사거리 앞에 당도했다. 때 마침 신호등의 불이 껌뻑껌뻑하면서 꺼질 준비를 하는 태세였다.

'달려야 한다! 잡히면 죽는다!'

마지막 퍼스트를 가하는 민국이었고, 얼어붙은 횡단보도를 최대한 속력을 내서 달리는 민국이었다. 뒤쫓던 흑인도 머지 않아 쫓아가려고 했지만, 후우우우우웅!

"퍽 맨!"

"푸헤헤헤헤! 꼴 좋다 자식아!"

결국엔 맞은편에서 멈춰 서게 되는 흑인. 횡단보도의 불은 어느 틈에 빨간색이 되어 있었고, 차도에는 무수한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흑인을 놀리던 민국은 그대로 사람들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진짜로 죽을 뻔했다.'

하지만 태연했던 척했던 것과는 다르게, 화난 흑인은 실로 무서웠던 지라 오금이 지릴 뻔했다. 번화가 근처에 숨어서 휴식을 하던 민국은 중얼거렸다.

"젠장, 그냥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빌까."

허나 그런다 한들 맞을 게 자명했다. 안 맞고 사과하자니 민국이 싸움을 또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싸움 실력이 정말 출중하면 날아오는 주먹을 손으로 가볍게 막은 다음에 '훗, 겨우 그 정도냐?'하면서 멋지게 사과를 할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내가 싸움을 지지리게 못하긴 한다는 거지."

그렇다. 민국은 싸움을 못했다. 물론 실질적인 길거리 싸움은 잘하는 편이었다.

어떤 무기든 간에 곧잘 다루는 편이었고, 특히 남들이 보기에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무기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패닉에 빠지게 만들 자신도 있었다. 다만 주위에 쥘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맨손 싸움이라던가… 그런 건 항상 자신이 불리했다.

'흐음, 강철남 건 때도 그렇고 말이야. 아무래도 싸움 실력 좀 키워야겠는걸.'

나중에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어떤 위험한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심지어 민국은 지켜야 할 여자가 한 명이 아니라 무려 두 명! 그렇다면 자신의 싸움 스팩을 키우는 것도 나름 현명한 일이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고로 결심을 하게 되는 민국이었다.

'어차피 남는 게 방학 시간! 격투기나 배워보자!'

그렇게 충동적인 결심을 하게 된 민국. 이윽고 집으로 돌아가 방송을 하기에 앞서 근처에 있는 격투기 장이 있나 알아보았다.

'흐음, 싼 곳이 있긴 한데 평이 별로군.'

'여자들이 주로 다이어트 하러 가는 곳? 호오, 인기 얻기에는 좋겠는데.'

이런저런 격투기 장을 확인하면서 민국은 자신에게 맞을 듯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동시에 격투기 장을 운영 중인 선수들이 실제로 경기했던 경기들도 보았다. 그러나 뭔가… 민국의 마초적인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흠,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진심으로 이상한데.'

뭔가 묘한 느낌을 받는 민국이었다. 그렇다…. 분명 이 영상 속의 격투기 선수들도 엄청나게 훈련을 받고 엄청난 성과를 이뤄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작 하나 하나가 민국의 심금을 찡끗 울리지 못했다.

'설마!'

얼마지 않아 민국은 그 비어있는 듯한 감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깨달았다.

'너무 강한 강자를 보았기 때문에! 성에 안 차는 것인가!'

그렇다! 민국은 이미 짐작을 못하고 있을 뿐…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자신해도 될 정도의 은둔 고수를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 은둔 고수는 무려 체육을 전문으로 한 남자의 몸뚱이를 몇 백미터 멀리까지 날려버렸던 전적이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

'최유이!'

민국은 곧장 최유이에게 전화 통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루. 하지만 연거푸 신호가 가도 전화를 받지 않는 최유이였다.

"또 의도적으로 안 받는 건가 이 가슴 큰 인간."

혹시나 싶어서 파뿌리TV에 접속하자 때 마침 방송 중인 최유이가 보였다. 민국은 현대왕으로 변모하여 곧장 최유이의 스카이 라이프에 통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루.

"후후, 못 받고는 못 배길 거다 암퇘지여. 내가 통화를 거는 것을 본 순간 너는 살이 바들바들 떨려서 '어맛 현대왕이 전화했어! 부끄러워!'하면서 좋아할 걸 알고 있거든!"

현재 최유이, 강강의 방송을 도방하고 있는 현대왕은 스카이 라이프에 통화를 건 자신의 모습이 화면에 드리우자 통화를 받길 기다렸다.

"받아라 받아라."

"……."

하지만 그 화면을 말없이 쳐다보던 강강이었다. 얼마지 않아 통화 거절 버튼으로 마우스를 옮기더니 꾹 누르는 강강이었다.

"헐! 이 양심 없는 여자 보소!"

"그럼 계속 방송…."

굉장히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강강에게 다시 통화를 거는 현대왕이었다. 뚜루루루루루!

"……."

이젠 아예 스카이 라이프를 종료해버린다. 현대왕, 민국은 왠지 오기가 들었다.

"후후후후후, 그 도도함을 무너뜨리는 게 남자의 야성이지!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이젠 휴대폰으로 막무가내로 전화를 거는 민국이었다. 받을 때까지 한다! 무려 열 번 이상 통화를 거는 민국이었고, 그의 끈덕짐에 결국 방송을 하던 강강은.

"잠시만…."

하고 방송을 잠시 멈추는 모습이었다. 당연지사 강강이 왜 갑자기 방송을 멈췄는지 모르는 시청자들은 [??]하면서 의문을 가질 따름이었다. 이윽고 오기 있는 민국의 시도 끝에 유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

"여보? 지금 여보라고 했습니까? 이 여편네가 지금 남편이 통화를 계속 시도하는데 끝까지 안 받아?!"

"방송 중…."

"행! 그림판에서 그림 그리고 있는 거 다 봤거든요! 저보다 그림판이 더 났다는 겁니까?"

"……."

"이럴 수가! 부정 좀 하십쇼!"

어찌 됐든 간에….

"무슨 일로…."

"헛흠, 강간님.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연락을 드렸습니다."

"강…이 아니라."

"예, 강강님. 제 부탁은요."

민국은 직설적으로 부탁했다.

"저를 남자로 만들어주십시오."

"……."

"아주 음란하고 초 음란하고 야성미 넘치게 말입니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유이는 곧장 통화를 끊었다.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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