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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257화 (257/369)

257화

“흩날리시는 건가여! 눈보라여!”

후우우우웅! 작디작은 눈 알갱이들이 흩날리는 겨울철. 서라는 털로 된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서 손장갑을 휘두르면서 그리 소리쳤다. 그녀 역시 민국과 마찬가지로 혼자 놀기의 진수를 선보이는 독보적인 인물.

“온니짱에게 연락하고 가야지여.”

손 장갑을 끼지 않은 상태로 휴대폰을 만지니까 무척 춥다. ‘후덜덜’거리며 집으로 다시 돌아가 연락부터 하는 서라였다. 우우우웅. 연락을 거는 서라였고, 얼마지 않아 민국이 받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 일이냐 서라야.”

“아잉, 온니찡. 고작 지를 서라라고 부르는 게 다인가여? 어떻게 알콩달콩 쌍쌍바 같은 우리 사이에 그런 호칭을 사용할 수가 있져? 혼또니 실망도 들고 눈물도 주륵주륵 들고 흐흑 흐흑….”

“훗. 어리석구나 영롱한 아이여. 넌 어디까지나 나의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어. 나의 무수한 여자들 중에 그저 내 인생에 한 바퀴 지나가는 쓸모없던 여자인 셈이지.”

“히익! 무지 도도한 척하시네여. 도도함 먹으시다가 사례 걸리길 간절히 빌게여.”

“누구야?”

“어엇? 이 목소리는?”

민국과 통화를 하던 서라는 돌연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물음을 던졌다. 은별이었다. 이윽고 은별이 민국이 받고 있는 전화에 귀를 부착하자 서라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오, 온니찡…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져? 은별 언니찡보다 지가 좋다니여!”

“…….”

“아무리 온니찡이랑 나님이… 언니찡이 모르는 특별하고 각별한 행위를 했다고 해도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예여! 흐윽, 운명은 기어코 3각 관계를 만들어내는 건가여? 은별 언니찡을 호라 모 젠젠처럼 만들 생각이신가여?”

호라 모 젠젠 : 주인공과 친한 사이고 호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인연이 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

“서민국 너 기어코!”

“야 강서라 이 녀석…! 오해입니다 은별 마님!”

오해를 한 은별 때문에 쩔쩔 매는 서민국. 서라의 장난에 한참을 소란스럽던 둘이었다. 이윽고 오해가 풀리고, 민국이 물었다.

“너 내가 예견하는 바인데 약 다 떨어져서 연락한 걸 거다.”

“헐. 어떻게 아셨음? 소오름.”

“와, 찍었는데 진짜로 맞췄네. 수능 볼 때 이런 식으로 잘 찍었으면 더 좋은 학교 들어갔을 텐데.”

"행님. 찍어서 들어간 곳이 지금 대학교라곤 생각 안하세여?"

강력한 비수 한 방이었다.

"어쨌든 오늘 올 생각이냐? 약 주는거야 문제는 아닌데 지금 집안이 너무 소란스러워서."

"의잉…. 서, 설마 나님이 행님 집에 가는 게 불편해서 그런 식으로 못 오게 하려고 거짓말을 치시는 건가염? 흐흑… 이제 행님이랑 지의 온정은 떨어진 셈인가여!"

"뭔 개소리야 자식아. 너 같이 쭉빵한 로리를 안 오게 할 남자가 어딨어. 오는 즉시 덮쳐버리지."

"어멋! 역시 그런가여?"

"뭐 오는 거야 문제는 아닌데 상당히 소란스럽다는 것만 염두해둬라."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어차피 집에 가면 알게 될 것이었다. 서라는 굳이 추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키오킹. 지금 갈게염."

"그려."

그렇게 통화를 뚝 끊고 서라는 다시 집에서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손장갑을 끼고 추운 겨울철의 바람을 대비해서 모자까지 움푹 쓴다. 완벽 착용! 이윽고 집을 나가는 서라였다.

*

"서라도 온대?"

"엉."

"…더 소란스러워지겠네."

팔짱을 끼면서 중얼거리는 은별이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다시금 해영이와 예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자신에겐 아예 관심도 주지 않는 민국의 여동생, 서해영. 그런 그녀가 유독 예나의 말은 곧잘 따르면서 미소 짓고 있다. 예나는 친 여동생이 있기 때문인지 서해영을 대하는 법을 곧잘 아는 모양이었다.

"기운 내 은별아. 너에겐 내가 있잖아. 날 동생이라 생각하고 키우면 되지."

"…넌 아들 같아서 엄마 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할 거 같은데."

민국의 격려 아닌 격려에 그리 대답하는 은별. 확실히… 은별은 외동이었다. 그래서 동생도 없었고 위에 언니도 없었다. 오로지 혼자로서 누군가에게 의지를 해온 적이 없는 은별로서는, 어떻게 아이들을 다뤄야 하는지 잘 몰랐다.

'허허, 대단하구만.'

은별이 그렇게 자괴감에 빠져 있는 동안 민국은 예나와 해영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확실히 예나가 사람 다루는 재주가 좋아서 어린 애들이 곧잘 따르곤 했는데, 중2병 말기에 속하는 해영이조차도 오랜 만남이 없었음에도 익숙하게 따르는 모습이었다.

"나의 불꽃 브레스는 하늘과 대지를 갈라놓는 신선한 파워를 연상케 하지. 브레스의 강함과 숙련됨은 수많은 인류의 공포와 오염에 휩싸이게 만들어 천지와 오토로메션을 오스트하게 만들었다."

"와아~ 대단하네요 해영 양."

"그리고 또! 신은 아스트랄로 쿠피노로의 검을 만들어 이 세상을 창조했으며 시공간의 창조에 깊은 고뇌와 숙명을 전달하였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들어낸 사면체, 황혼의 토르토스다!"

"정말 대단해요 해영 양."

눈웃음을 짓고 박수를 쳐주는 예나. 옆에서 지켜보는 제3자 입장에서는 시공간이 오그라들 정도로 엄청난 항마력을 자랑했으나, 예나는 끄떡도 없는 모양이었다. 새삼 예나는 정말 아내로 맞이해도 좋을 여자라고 생각할 무렵, 민국은 돌연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희 언니에게 너무 부담감을 안고 있으신 것 같아요.'

'예나 동생 예슬이 나이가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아니었나? 와, 뭐시냐 그럼. 어떻게 정신연령이 내 동생보다 훨씬 뛰어나냐.'

정신연령도 설마 유전인가! 허나 그런 논리대로 가면 왠지 자기 부모님에게 폐드립을 하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고민한 민국이었다. 어찌 됐든 분명한 건… 예나 동생 예슬이는 높은 정신연령을 자랑했고 반면 해영이는 아직 중2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사회 생활 잘하려면 빨리 정신 차려야 할 텐데.'

속으로 깊게 해영이를 걱정하는 민국이었다. 아무래도 친 여동생이다 보니까, 더 다른 애들보다 야박하고 쌀쌀 맞게 구는 구석도 있었다. 혹여나 중2의 세계에 빠져서 현실 감각도 구분하지 못하고 평생을 저러고 살진 않을까. 그것만큼 괴롭고 힘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말이었다.

이럴 때만큼은 어른스런 생각에 빠져드는 민국이었다.

똑똑똑.

"이호성 치킨 배달왔습네다. 엇흠, 빨리 문 좀 열여줍셔."

'드디어 도착했군.'

민국은 예나의 지원군이라 생각되는 또 다른 인재가 도착했음에 현관문을 돌아보았다. 해영이랑 놀고 있던 예나도, 멀리서 다가가기는 힘들어 지켜보기만 하던 은별도 시선을 돌린다.

유리문으로 여성의 실루엣이 보이자 해영이가 조금은 경계하는 눈빛을 드리운다. 이윽고 '엇흠 엇흠!'하면서 헛기침을 하는 서라의 목소리에 민국이 현관문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었다.

"들어와라. 이 세계를 구재할 또 다른 군주여."

"어닛, 기어코 나님의 정체를 들키고 말았군여. 후후훙… 닝겐 주제에 대단합니다여!"

열어젖힌 현관문 너머로 익숙한 실루엣, 강서라가 등장했다. 워낙 추운 겨울철 때문인지 옷을 꽁꽁 싸맨 모습이었지만 하얀 피부의 얼굴만은 유독 눈에 띄었다. 이윽고 '춥당깨여!'하면서 후다닥 현관문으로 들어온 서라가 강렬한 액션가면 포즈를 취한다.

"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엔 어디서든 나타난당! 액션 서라 등장!"

그 누구도 감히 엄두를 못 낼 포즈조차 그녀는 선뜻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영이와 유독 다른 점이 있다면, 서라는 그걸 분위기를 정화하기 위함으로 사용해먹는다는 것이고, 해영이는 진심이라는 것이었다.

"나님이 이 날을 위해 깊게 숙련을 해온 더파이팅 복싱을 보여드리지여! 원 튜! 원 튜 스트레이트 빵!"

"……."

그녀의 과도한 등장은 어디서든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증거로….

"……."

"응? 해영 양 왜 그래요?"

"……."

막 예나의 품에 안겨서 현관문의 서라를 지켜보던 해영이었다. 서라의 과도한 액션이 은근 눈에 띄었는지 해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저벅저벅 서라의 곁으로 다가가서 그녀와 대치한다. 서라는 처음 보는 인물이 느닷없이 민국의 방에 있음과 더불어 자신에게로 다가오자 '읭?' 의아한 얼굴을 지었다.

"누구셈여?"

"내 동생."

"으잉?"

민국의 말에 그를 돌아보면서 놀라는 서라. 그에게 하나뿐인 여동생이 있다는 건 소문을 통해 익히 들어오긴 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조우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서라였다.

막 서라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다 말고 '아, 안녕하셈여….'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려던 때였다. 휙! 대치한 해영이 옆으로 팔을 펼쳐들면서 소리쳤다.

"신의 푸른 숲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하늘에 나타난 자객이여. 어찌해서 감히 이 숲에 발을 들여놓고 악마의 성수를 흩뿌리는가."

"……."

"어둠의 군주가 하늘을 잿빛으로 물들이고 인류를 위협하는 속세의 철회인 건 이미 알고 있던 터…. 네놈의 기척을 느꼈으나 모른 채하고 감추려 했으나 그 힘은 철회할 수 없는 막대함을 자랑하는구나."

당연히 서라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고개가 민국에게로 돌아가자 민국은 '훗'하면서 미소만 지을 따름이었다. 이윽고 해영이 또 다른 손을 옆으로 펼치면서 강인하게 소리친다. 아까 전보다 더욱더 강하게!

"신의 성스러움을 담아서 이곳에 약기의 기운을 담을 터이니, 무원활인홀 스페셜의 파이크에 젖어버려라!"

"어… 음… 엣흠…."

처음 보는 민국의 여동생의 과도한 리액션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 헛기침 리액션만 선보이던 서라였다. 돌연 민국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표정으로 마음 속에 소리치는 서라였다.

'우째야 하져 형님?!'

'쟤 상당한 중2병이거든? 네가 맘에 들어서 이러는 거니까 그냥 좀 맞춰줘라.'

약병 하나 받으러 왔다가 졸지에 중2병 행세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라도 까놓고 보면 중2병에는 익숙했다. 진심은 아니었지만 비제이 컨셉으로 약간 중2병 행세도 하고 있었으니까.

"…후후후훙."

이윽고 해영에게 맞춰서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쓴 웃음을 짓는 서라였다.

"어리석군여… 닝겐 주제에…."

"……."

"오스트렐로 피테쿠스는 말했습네다. 어머니는 하늘천따지라고!"

그리 소리치면서 손가락을 높이 들어 해영을 가리키는 강서라.

"악마의 기운이 하늘을 뒤덮은 이 순간! 인류는 우리 끄트머리에 서 있는 겁네다! 감히 닝겐 따위가 인류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여!"

해영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지지 않겠다는 듯 대답한다.

"인류는 성스러운 보석과도 같을 터…. 그것을 감옥에 드리워 인류를 구제하지 못하도록 막는 배리어는 이 현실에 현존할 가치가 없다…."

"후후후훙… 그건 모르는 법이지여. 이 인류는 웹하드에 이미 지배 당하고 있으니까여!"

서라의 깊은 센스에 해영은 잔뜩 몰두한 얼굴이었다. 이윽고 해영이 허리를 조금 숙이고 달려들 자세를 취한다. 서라도 지지 않고 오라는 듯이 두 손을 펼쳐들면서 허공에 주물럭주물럭거린다. 이윽고 두 사람이 촉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 인류를 파멸시킬 듯한 엄청난 은둔 고수들의 배틀이 시작되었다.

"드래곤 버스터!"

"얍얍! 드래곤 버스터 반사하깅!"

드래곤 버스터를 날리는 해영을 향해 드래곤 버스터 반사하기를 쓰는 강서라. 그렇게 두 사람이 중2병 대결을 펼치기 시작한 찰나, 민국은 해영을 서라에게 맡겼다 감안하고 예나에게로 다가갔다. 예나는 그래도 해영이랑 맞춰주느라 조금 피곤했던 모습이었다.

"괜찮아 예나야?"

"응… 민국아."

내뻗는 민국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는 예나. 민국이 눈웃음 지으면서 말한다.

"갑작스러웠을 텐데 그래도 놀아줘서 고마워."

"아니야… 그래도 재미 있었어…."

수줍어하는 예나를 보면서 웃음 짓는 민국. 그런 두 사람의 사이와 더불어, 중2병스러운 배틀을 펼치는 해영이와 서라의 싸움을 팔짱을 끼고 그냥 주시만 하는 은별이었다.

============================ 작품 후기 ============================

후훗...

휴재 공지는 사실 훼이크였지...

사실은 훼이크를 날려서 기대를 저버린 다음에 글을 올려서 독자들의 기대를 올리기 위한 나의 밀당 작전이었다!

크하하하하하하!

추천 내놔!

필요 없어!

드리겠습니다!

크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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