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큭큭."
"……."
"네가 말로만 듣던 사천왕의 브로스톨스, 카르노메카누인가? 직접 보는 건 처음이로군. 의외로 강렬한 대기운 파이너베스온토스를 섭립하고 있구나 크큭…."
"……."
"하지만 그것으로는 나의 천왕파괴인건술을 막을 수는 없을 터…. 각오는 되었느냐? 악마의 우물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너의 손에 구원을 내밀 나의 힘을 말이다."
서민국의 여동생, 그러니까 이름이… 서해영이란다. 이름은 의외로 성숙한 이름이었으나 하는 짓은 초등학생…. 아니, 요즘 초등학생들도 꺼려하는 굉장한 중2병 환자였다. 그리고 그 중2병 환자 서해영의 실제 나이는 중학교 2학년으로… 중2병에 가장 걸맞는 나이였다.
"합! 합!"
기공포를 쏘듯이 손바닥을 내밀면서 허공에 헛손질을 하는 소녀였다. 그런 소녀의 앙증맞지만 다소 진지한 모습에 은별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싶었다. 무엇보다 소녀가 현재 표적으로 노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민국의 여자 친구…. 서해영은 은별을 향해서 거침없는 허공 손짓을 하였다.
"합! 합! 기공포하인참!"
"그만해 인석아."
쿵!
"아얏."
따끔하게 정수리를 때려주는 민국. 그러자 언제 허공에 강렬한 손짓을 하며 포스를 보였냐는 것처럼, 정수리를 부여 잡고 울상을 짓는다. '으이잉'하면서 밉다는 표정으로 민국을 올려다보는 소녀. 이렇게 보면 중학교 2학년의 소녀답게 굉장히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민국은 친남매이니 만큼 딱히 사랑스러운 구석은 못 느끼는 모양이었다.
담담하게 소녀를 내려다보면서 말하는 민국이었다.
"부모님에게 연락도 못 받았는데 허락은 받고 찾아온 거야?"
"……."
"너 설마 또 부모님이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하찮은 인간이라느니… 그런 식으로 폐륜아 드립치면서 나온 건 아니냐?"
부모님에게 하찮은 인간…. 제3자가 보면 누가 보아도 폐륜적 드립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2병에 걸린 소녀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보일 리 전무했다. 고로….
"큭큭…. 하찮은 인간 주제에 나에게 질문을 하다니… 매우 가소롭구나."
"……"
"이 롤리콘터롤스의 칼을 이용해서 네놈의 목을 베고 전장의 승리자가 되어 포효를 외치겠다!"
쿵!
"으양!"
"말이 많다 동생이여. 질문에는 네, 아니오로 대답하는 거다. 알겠냐?"
또다시 맞은 정수리를 부여 잡고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였다. 울상을 짓는 게 어지간히 귀여웠다. 맞은편에서 민국과 소녀, 서해영의 모습을 관람하던 예나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 안녕? 반가워요 해영아….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보는 건 어릴 때보고 처음이네요…?"
"……."
소꿉시절부터 민국과 친구였던 예나는 해영이를 곧잘 알고 있었다. 다만 너무 어릴 때 보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성장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지사… 예나보다 더 어렸던 기억을 해영이가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해영은 민국의 바짓자락을 붙잡으면서 몸을 숨기고는 고개만 내밀어서 예나를 쳐다보았다.
어색하게 웃음 짓던 예나가 웃는 표정 그대로 흔들던 손을 멈추었다.
"차였네."
"……."
"완전히 차였어."
"가만히 있어요 당신…."
팔짱을 끼고 옆에서 관람하던 은별의 한 마디였다. 지지 않고 예나도 한 마디했으나 은별은 가벼운 코웃음과 함께 해영이를 돌아보았다.
'서민국의 동생이라고?'
확실히… 서민국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특히 저 소녀처럼 맑은 눈동자라던가 커다란 눈망울이라던가. 분위기가 소녀틱한 것만을 제외하면 민국과 뺴도박도 못할 만큼 닮았기 때문에 은별은 묘한 동질감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이윽고 은별이 짐짓 웃음 지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안녕? 이름이 해영이라고 했지? 반가워, 나는 서민국 여자친구 강은별이라고 해. 잘 부탁해 해영아."
"……"
"응? 해영아? 언니에게 인사해줘 인사~."
"……."
눈웃음을 지으면서 해맑게 손을 흔드는 은별이었지만 이번에도 해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민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숨어서 그저 빤히 은별을 쳐다볼 따름이었다. 예나가 이를 보고 한 마디 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차였…."
"닥쳐."
"차였…."
"닥쳐."
"……."
미리 대비를 해두었던 은별 때문에 그 한 마디도 묵살당했지만 말이다. 이윽고 해영이의 고개가 다시 예나에게로 돌아갔다. 예나는 기다렸다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해영아. 정말 저 기억 안 나요? 어릴 때 많이 놀아주고 그랬었는데…."
"……"
"혹시 그건 기억 안 나요…? 어릴 때 민국이 가족이랑 제 쪽 가족이랑 같이 놀이공원 놀러가서 해영이 너에게 아이스크림 사주었던 거…."
'너무 어려서 기억하기 어려우려나요…?'하면서 어색하게 눈웃음 짓는 예나. 하지만 민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던 해영이의 눈동자가 머지 않아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하고 탄성을 지으면서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민국의 붙잡고 있던 바짓가랑이에서 벗어나 후다닥 예나에게로 달려가는 해영이였다. 기다리고 있던 예나에게 포옹을 하는 해영이. 이 모습에 은별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
"그래요 그래요~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
마치 어머니처럼 따뜻한 그녀의 품과 다정함에 해영은 눈을 감으면서 그 체온을 만끽했다. 은별은 예나와 사이 좋은 그 모습에 할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훗."
"……."
"이겼네요."
이윽고 해영이를 감싸주던 예나가 눈을 뜨면서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가 상당한 비웃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던 은별이 '으으!'하면서 지지 않으려고 다시 손뼉을 두 번 치더니 해영이의 관심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해영아~ 나 민국이 여자 친구야~ …처음 뵙지? 하지만 내가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누구보다 마음씨 착하고 괜찮으니까 내 품에도 한 번 안겨줘~ 응? 으응~ 부탁해애~."
평소 민국에게 보이지 않던 가슴떨기 애교까지 선보이는 은별. 그 모습에 관람하던 민국이 '오오'하면서 좋아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해영이는 예나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이번엔 예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면서 은별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볼 따름이었다. 결국엔 고개를 내리 숙이면서 좌절하는 은별. 예나는 간만에 이겼다는 생각에 콧대가 높이 세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때의 정은 무시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 그건 인정."
이윽고 은별에게 다가오는 민국이었다.
"은별아, 그 가슴털기 한 번 더 보여줘. 왠지 내가 안기고 싶은 맘이 드는데?"
"…너는 저리 썩 안 꺼져?"
"으아아."
달려드는 민국의 가슴팍을 힘껏 밀치는 은별. 민국이 나가떨어지듯 물러나자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해영이였다. 투다닥 넘어지듯 물러난 민국에게로 달려간 해영이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면서 은별을 올려다본다.
은별은 순식간에 적개심을 드리운 해영이의 눈동자에 '으? 으응?'하면서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해영이 은별에게 손을 뻗으면서 소리친다.
"사개의 마왕이 평화를 무찌르고 나타나 신선한 신전에 감옥을 드리우려고 하는구나! 내 여기서 선전포고하여 정의의 사자 알케로베스의 상징에게 마음을 드리오니 저 악마의 탈을 쓴 마왕 케로베로인더스의 판타지 홍의 심장을 무너뜨리리라!"
"……."
"각오는 되었느냐! 간다! 바이시너소롤레전드 롤플레잉…."
쿵!
"으앙!"
"그만 좀 해 인석아!"
"으아앙!"
"해, 해영아!"
울기 시작하는 해영이를 보고 후다닥 달려오는 예나. 자신의 품에 별 탈 없이 껴안기는 해영이의 등을 보다듬는 예나였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은별은 입을 벌리고 가만히 서 있었다.
'어쩌다가….'
중2병 멘트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그건 은별에게 별로 달갑지 않은 인상을 받은 게 자명했다. 그리고 멘트도 은근 오그라들면서도 공격적이었고 말이다. …졸지에 여자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이미지 상을 받게 된 은별이었다.
"아이고, 어머니. 어쩌다가 이 녀석이 제 집에 찾아왔답니까."
"……."
"예예. 오늘은 아무래도 어려울 거 같으니까 사정부터 듣고 내일 보내던가 할게요. 예, 예압. 예스맘. 굿밤."
역시 서해영은 가족에게 말도 없이 민국의 집에 찾아왔던 모양이다. 용케 혼자서 이 멀리까지 찾아왔음에 한 편으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이윽고 통화를 마친 민국을 쳐다보던 은별이 전화통화에 대해 감히 소감을 표했다.
"…너 부모님이랑 그런 식으로 통화하는구나."
"훗, 나란 녀석. 예의 바른 녀석."
과연 그게 예의가 바른 것일까는 둘째치고… 은별은 예나와 해영이를 보았다. 해영이는 은별과는 다르게 예나는 유독 잘 따르는 모양새였다.
아무래도 오랜 시절을 어느 정도 보내온 두 사람으로써는 당연한 결과일까. 왠지 누가 봐도 참패인 것 같은 결말에 은별은 고개를 내리 숙였다. 민국이 은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위로를 던진다.
"너무 그렇게 좌절하지마. 저 녀석 가슴이 너무 작으면 안 좋아하는 거 뿐이야."
"…맞고 싶지? 내가 네 여동생 있어서 참는다…."
어찌 됐든 이제 어떻게 된 사정인지 알아내는 게 우선인 모양 같았다. 예나의 말을 곧잘 따르고 있는 해영이에게로 진지한 얼굴을 지으며 다가가는 민국이었다.
"서해영."
"……."
즐겁게 미소 짓던 소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흐트러진다. 굳어버린 서해영의 얼굴을 보며 민국은 어른으로서의 완강함을 비추듯 추궁했다.
"너 왜 부모님에게 말도 없이 여기까지 왔어?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려고? 네가 지금 얼마나 위험천만한 짓을 했는지 알아?"
"……."
민국의 핍박에 해영은 차마 대응할 자신이 없는지 곧장 예나의 몸 뒤로 숨는다.
"저 녀석이!"
"민국아…."
예나는 그런 해영이가 자신을 의지하려 함에 민국이를 올려다보면서 설득했다.
"해영이도 뭔가 고민되는 게 있어서 찾아온 걸 거야…. 나중에 내가 얘기 들어볼 테니까 지금은 해영이 놀게 해주자."
"어, 예, 예나야."
막 해영이를 혼내려던 민국은 예나의 그런 설득에 차마 대응할 수가 없어졌다. 애초에 자기보다 현명하면 현명하고 선택도 곧잘 하던 그녀였다. 남을 설득해서 이야기를 하게 하는 재능도 민국보단 훨씬 나았다. 그런 모든 점을 감안해도 민국은 차마 예나의 말에 할 말은 없었다.
"으음… 어여쁜 예나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별 수가 없지요."
"고마워 민국아."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하는 예나의 모습에 '헤헤, 뭘.'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민국. 옆에서 지켜보던 은별은 차마 때릴 수는 없으니 발등을 그냥 한 번 찍어줄 따름이었다. '으악'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민국. 이윽고 예나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인식했는지 예나의 뒤에 숨어 있던 소녀, 서해영이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예나가 '으응?'하면서 뒤돌아보며 미소 짓는다.
"해영이 왜 그래요? 저에게 무슨 하고 싶은 말 있어요?"
"……."
이윽고 해영이가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한다.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꺼낸 해영이가 그것을 예나에게 건넨다. 예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사탕이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해영이. 이윽고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예나의 얼굴 근처에 손을 갖다대면서 소녀가 소리친다.
"가혹한 신의 양이여. 어찌하여 이 속세에 머물러 괴로운 기억에 헤매이는가. 아르벤티지의 소르엔카티스트는 당신에게 칠흑의 검을 맞이하니! 카르신테오스!"
"……?"
"……."
"……."
"큭큭, 이제 당신은 축복의 무한 페시브. 카리오토스솔리지에 걸렸다. 그것은 무한함의 축복! 무한함의 상징! 항상 미소가 꽃피우는 나날에 눈물은 없을 것이다."
소녀의 기가 막힌 외침이었다. 실로 시공간을 오그라뜨리는 중2병이었고, 민국은 옛 자기 흑역사가 떠오르는지 '으아 슈밤'하면서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른스러운 예나는 그런 중2병 소녀를 보면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뭔지는 몰라도 좋은 거죠?"
"……."
고개를 끄덕이는 서해영. 더 깊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예나였다.
"고마워요 해영 양."
"……."
이번에도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서해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