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254화 (254/369)

254화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오오~.”

지금 이곳은 광야의 빰빠래. 모두들 미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노래방이었다. 노래방…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대학생부터 성인까지, 온갖 사람들이 와서 가지각색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 자신을 어필하는 그곳! 민국도 한 때 노래방에 줄기차게 다닌 적이 있었다.

특히 중학생 때 친구들에게 이끌려 갔던 적이 있었는데, 스트레스 풀기에 안성맞춤이라서 자주 다녔었다.

‘하지만 이제 노래는 방송에서만 하다 보니까 노래방이란 장소는 까맣게 잊어버렸지.’

노래방이란 민국에게 이제 옛 추억의 장난감일 뿐이다. 하지만 그 추억도 때때로는 회상하기 위해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고로 이번에는! 민국의 혼자만의 노래방 쇼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엇흠.”

민국은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혼자서 노래방으로 내려갔다. 문을 활짝 열자 어느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슈.”

“여기 자리 있어요?”

“있지. 몇 명이유?”

보통 노래방은 혼자 오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다들 노래를 선보이면서 즐기기 위함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게 마냥 좋다고 해도… 혼자 오는 걸 창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잦았으니까. 하지만 민국은 누구보다 극도의 뻔뻔함과 대담함을 가지고 있어서 딱히 부끄럽거나 그러지 않았다.

“혼자입니다.”

“그렇군. 잘 생겼네 총각.”

“감사합니다.”

성인이니 만큼 8천원을 건네주었다. 그래도 다른 노래방에 비하면 비교적 싼 편인 것 같았다. 중고등학생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애들 나쁜 짓 못하게 유리문으로 되어 있네.’

이따금씩 질 나쁜 남녀 애들이 노래방을 음란 시설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마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사전 방지 대안책일 것이었다. 민국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호오, 넓은 방 주셨네.’

딱 봐도 혼자 사용하기 아까울 만큼 넓은 방이었다. 마이크를 키고 한 번 입에 대보는 민국.

“아아.”

울림이 아주 기가 막히다. 에코가 죽이는 게 노래 부르면 간지 날 법하다.

‘하지만 에코가 좋다고 해서 노래가 간지나는 것도 아니지.’

기본적으로 노래 실력이 좋아야 에코도 사용할 맛이 나는 것이다. 노래 실력 구린 사람이 마이크를 든들 어떻게 사람들을 감동시키겠는가? 그런 사람은 가수가 될 자격이 없다!

‘나는 가수다!’

민국은 혼자만의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을 찍어보기로 작심했다.

‘목표하는 점수는 80점. 80점만 넘으면 나는 잘 생긴 거고 아니면 못 생긴 거다.’

그리고 곧장 노래방 입력 기계를 들고 노래들을 찾기 시작했다.

“흐음, 생각해보니 마땅히 부를 노래가 없구만.”

문제가 있었다. 늘 방송에서 방송 도구를 이용해 노래를 불러온 민국이었기 때문에 막상 노래방에 오니 부르고 싶은 노래가 없었다.

애초에 민국의 집은 방음시설도 되어 있어서 노래를 신명나게 불러도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 풀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고로 이렇게 되면 노래방에 온 의미가 사실상 없는 게 되는 것이었다.

“허나, 의미 없는 것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

진정한 상남자는 이런 위기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메리트가 있는 민국은 포기하지 않고 노래방 번호들이 적힌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노래들을 뒤적여보던 도중 민국의 눈이 일본 노래 쪽으로 향했다.

“훗, 내 첫 번째 노래는 이것이다!”

어차피 혼자서 부르는 노래방.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없겠다, 민국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혼자만의 즐김을 위해 이 노래를 선택했다.

“미쿠미쿠! 하게 해줄게! 으하하하! 미쿠미쿠 빔! 으하하하!”

차마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오글거림이 시공간을 빙빙 돈다. 그러나 민국은 포기하지 않고 1절부터 2절까지 막무가내로 부르기 시작했다. 삑사리와 더불어 심심찮은 악스러운 고음이 난무했으나 그의 목은 여전히 이 순간을 위해 열창하였다.

“헉헉! 점수는!”

이윽고 노래가 끝난 뒤였다. 열창을 하느라 순식간에 땀으로 범벅이 된 민국. 벽면의 선풍기를 잡고 틀어 보인 다음에 노래가 끝난 화면창을 보았다. 이윽고 점수가 나오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잘했어요오!}

“훗.”

80점! 악바라지 고음조차 노래방 기계는 후한 평가를 하고 있었다. 이로써 민국은 방금 전 나 자신에게 걸었던 내기에서도 승리한 셈이었다.

“역시 난 잘 생겼군. 좋아, 그러면 다음 내기는….”

이번 내기는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검지와 엄지를 딱 부딪치면서 소리치는 민국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하렘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내기다! 점수는 90점!”

하렘이란 것이 한국에서 이루기 비현실적인 일임으로서, 올려야 하는 점수 역시 어렵게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내 인생은 엄청난 고난과 역경에 휘말리기 시작했어요~ 그 이유를 몰랐을 땐 이런 외로움은 왜 나한테만 이렇게 밀려오는 걸까 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이번엔 한국 노래를 부르는 민국이었다. 꽤나 우스꽝스러운 가사로 웃긴 노래 중 하나에 속했다.

“내 몸엔 암내가 나요! 내 주위엔 사람이 없죠! 지하철을 타서도 손잡이를 잡을 수 없어 워어어어어어어!”

겨드랑이에서 나는 지독한 암내에 슬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그 처절한 가사에 걸맞게 민국도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유리문 너머로 ‘누가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거야?’하면서 지나가는 몇몇 학생들. 하지만 민국은 어차피 자기 등만 보이겠다 처절하게 절규했다.

“우에에에에에! 암내애애애! 암내워어어어! 암내 구린내애애애!”

절정에 다달았고 마침내 노래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척! 폼나게 마이크를 옆으로 세우면서 노래를 끝내는 민국! 내린 고개를 들어 보이면서 점수를 확인한다. 띠리리리리릭!

“…….”

{축하해요! 잘 불렀어요오~}

“흐음.”

팔짱을 끼는 민국은 불만족스런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1점 차이로 90점이 되지 못한 것이었다. 89점이라니….

“신은 나에게 1점을 주지 않았군. 그 1점만큼 더 노력을 하란 말인가? 훗….”

하렘이 안 된다기 보다는, 하렘을 하기 위해서는 더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민국이었다. 긍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제멋대로 생각하는 거라 추리해도 충분했다. 이윽고 심심찮게 발라드 노래도 부르면서 현재 상황을 즐기는 민국이었다.

“키득 키득.”

“저 사람 뭐해. 되게 웃기네.”

유리문 너머로 민국의 절규를 듣고 있던 커플이었다. 남녀 고등학생 두 명이었는데, 항상 노래방을 다니면서 못 부르는 사람들의 노래를 이러쿵 저러쿵 평가하는 나쁜 학생들이었다.

“오늘은 저 사람 좀 놀려볼까?”

“그럴까? 히히.”

괘씸한 행동을 준비하는 두 학생이었다. 이윽고 두 학생이 카운터의 아주머니에게 말한다.

“아주머니. 저 사람 옆방 가능한가요?”

“옆방? 비어 있긴 한데.”

“네. 그럼 그 방 주세요.”

“히히.”

얍삽한 생각을 하면서 옆방으로 향하는 두 학생이었다. 이윽고 비어 있는 옆방에 도착한 두 학생. 민국의 비명을 지르듯 노래하는 소리에 킥킥 웃던 학생 두 명이 마이크를 든다.

“저 사람 지금 임재법 노래 부르는 거 맞지?”

“그런 거 같아. 우리가 불러서 스스로 비교하게 하면서 망신주자.”

임재법의 고헤를 부르고 있던 서민국. 그런 민국을 따라 고헤를 입력한 두 사람이 간주를 점프하고 곧장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찌합~ 응?”

2절을 노래하던 민국은 옆방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순간 의아해했다.

‘이거 지금 내가 부르는 노래 아닌가.’

옆방에 없던 사람이 들어온 모양인데, 아무래도 민국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감명 깊어서 자기도 따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어찌합니까아아~.”

‘호, 잘 부르네.’

옆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민국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한 번쯤은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민국도 다시 간주에 맞춰서 열심히 열창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노래가 끝이 나고… 민국은 또 다른 노래를 입력했다. 이번엔 김쾅수의 사랑했으나였다.

“사랑했으나아아아아아아!!!!!”

“사랑했으나아아아아!!!!!”

‘어머나 씨밤?’

이번에도 똑같은 노래다. 민국은 왠지 자기 직감이 말하길,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게 단순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다른 노래를 할 때도 옆방에서 똑같이 노래를 따라하고 있었다.

“결혼까지 생각했어! 같은 집! 같은 방에서! 같이 자고나면 실컷 그거하려 했어!”

“결혼까지 생각했어! 같은 집! 같은 방에서! 같이 자고나면 실컷 그거하려 했어!”

휘송의 결혼까지 생각하다 말았어.

“아임미싱유우우우~ 아이엠미싱유우우!!!”

“아임미싱유우우우~ 아이엠미싱유우우!!!”

플라이투더스가이의 미띵유.

“살다그아아아 살다그아아아 살다그아아.”

“살다그아아아 살다그아아아 살다그아아.”

SC워너비의 살다그아아.

“아이마이드리이이이이이이이임!”

“아이마이드리이이이이이이이임!”

어이유의 나쁜 날.

‘허, 이것 봐라.’

어떤 노래를 부르든 무조건 따라서 부른다. 하지만 그게 마냥 좋을 리 없었다. 마치 나는 이렇게 부르는데 넌 그 정도밖에 못 부르냐는 식으로 들릴 수밖에. 직접 당하면 결코 기분이 좋지 못한 관계로, 민국은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훗. 어디 그럼 이 노래는 한 번 따라해 보시지.’

옆방에서 낄낄 웃는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들려온다. 민국은 웃음을 지으면서 이 노래를 예약했다. 간주부터 아주 폼이 난다. 어디 한 번… 따라해볼 테면 따라해봐라. 그리고! 민망해해라!

“…섹스! 섹스! 섹스 온더비치! 섹스! 섹스! 섹스 온더비치!”

“…….”

“어예에~ 섹스! 섹스! 섹스 온더비치! 섹스! 섹스! 섹스온더비치!”

“…….”

“아이엠어보트! 아이엠어보트! 아이엠어보트! 오예! 내 보트에 좆 있어!”

“…….”

“아임세이세에엑스으으으! 나 오늘 섹스했다 만세!”

노래방에 방이라는 게 있다고 해도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는 곳이었고, 방음이 설치되었다 해도 크게 부르면 결국 새어나오기 마련이었다. 옆방에 들리라는 듯이 노골적으로 소리를 지르자, 옆방에선 한참동안 간주를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민국이 다음 타자로 한국 노래를 선정했다. 이번엔 랩이었다.

“oh.”

허나 그 랩도 일반 랩이 아니었다. 막무가내 작사에 재능이 있던 민국은 어디 한 번 이 노래를 듣고도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겠냐는 듯이 노래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oh! 지금 내 근처에는 시퍼런 고딩 두 명이 허허실실거리면서 쌩쇼를 하고 있지 oh! 딱 봐도 좆고딩 oh! 후라보노 씹다가 뱉을 년놈 oh! 어이 년, 네 가슴은 몇 컵? A컵? no! 공기컵! oh! 어이 애송이? 네 고추는 몇 사이즈? 10? no! 사이즈 같은 건 없어! 넌 고추가 잘렸으니까! oh!”

“…….”

“oh! 어린 애들은 주제를 모르고 너무 설쳐! 그러다가 자기보다 강한 놈을 만나면 꿈뻑 당하고 말지! 거기도 작은 놈이 어떻게 싸움을 잘하나! oh! 공기컵인 여자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

“저 새끼가….”

옆방은 이미 간주를 멈추고 민국의 랩 가사를 들으면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oh! 내 장담하는데 네 여자는 날 보는 순간 숨이 멎는다! 이야호! 자신 있으면 나와보라해!”

랩으로 막곡을 열창한 뒤, 마이크를 내려놓고 방문을 나오는 민국이었다. 끼이익. 이윽고 그때에 맞춰서 옆방에서 나오는 남녀 고등학생. 대체 어떤 자신감으로 그런 노래를 불렀나 하는 얼굴로 민국을 쳐다보는 두 사람이었다.

“…….”

그리고 민국의 얼굴을 보는 순간 넋을 잃고 마는 두 사람. 이윽고 민국이 ‘훗’하고 웃음 지으면서 천천히 여자 쪽으로 다가간다. 은근슬쩍 손을 들어서 여자의 어깨를 털어주는 민국.

“먼지가 묻었네요.”

“…….”

“노래 재밌게 해요.”

그리고 마치 이 노래 배틀이 즐거웠다는 것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고 몸을 돌리는 민국이었다. 여자는 이미 두 눈에 하트가 뿅뿅이 되어 배틀 같은 건 뒷전으로 둔 모습이었다. 남자는 당황해서 여자에게 소리쳤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닥쳐. 인생은 완얼이야.”

노래는 민국보다 남자가 훨씬 잘했지만, 얼굴은 남자보다 민국이 훨씬 잘 생겼다. 그리고 노래와 얼굴이 붙었을 때 결과가 현재의 상황이었다. …이렇게 민국의 혼자 놀기쇼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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