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나도 이상하지만 서라 이놈도 뭔가 이상한데?’
이래봬도 은별이만큼은 아니지만 촉이 좋은 민국이었다. 고로 오늘따라 서라도 이상하게 얼굴이 붉어져서는 어색하게 행동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슈밤, 그나저나 나도 왜 이런다냐.’
하지만 서라의 행동에 의문을 품기에 앞서 민국도 스스로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본래라면 그 귀여운 모습에 ‘와 시밤 엄청 귀엽네.’이 한 마디로 소감을 표하고 끝마쳤을 것이었다. 그리고 온갖 드립을 치면서 사이좋게 길을 거닐었을 터인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유독 본능이 꿈틀거려서는… 결국 자제하지 못하고 그만 못 볼 꼴을 보여주고 말았다.
‘미연시 세계에서만 보여주었던 내 성스러운 엑스칼리버를 이곳에서 보여주고 말다니.’
본체를 본 것은 아니었지만 형체를 본 것은 맞았으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이윽고 앞장서서 길을 거닐던 서라였다. 한참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걷고만 있었다. 이윽고 얼떨결에 9900원까지 치킨점 앞에 당도한 서라였다. 그녀가 몸을 돌려 그쪽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간판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해, 행님! 여기가 행님이 말씀하신 9900원짜리 치킨점이지여?”
“그…러하다?”
“나, 나님의 카와이한 모습으로 행님의 하트를 두근두근거리게 만들었지만 오늘은 행님의 지갑 사정을 봐드릴게여! 영광으로 아세여!”
그리고 민국이 말하기 전에 허겁지겁 문을 여는 서라였다. 민국은 그런 녀석의 언동에 지속해서 의문을 느꼈지만 차마 추궁하지는 않았다. 이윽고 서라를 따라 치킨점 안으로 들어온 민국이었다. 각자 자리에 앉는 두 사람. 어색함을 깨고 민국이 물었다.
“뭐 먹을래?”
“후라이드와 양념이 섞여 있는!”
“반반이구만. 알겠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직원을 부르는 민국. 자연스럽게 음식을 주문한 뒤 직원이 사라졌을 때 민국은 서라에게 말했다.
“어, 음. 미안하게 됐다. 나도 널 그렇게 에스이엑스 스럽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히익… 온니찡의 물건 형체를 본 건 처음이었다능! 사실 너무너무 부끄럽다능!”
양 뺨에다가 두 손을 올리면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서라였다. 민국은 ‘휘유’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슬슬 돌아오는 두 사람의 본래 모습이었다.
“너 방송 랭킹 내려갔더만. 역시 이 오빠가 없으니까 금방 추락하는구나.”
“어흠흠흠흠! 행님, 아직 지는 코털로만 방송을 했음여. 내가 두 손으로 방송을 하면 세상이 멸망할 정도로 방송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참는 거예여. 지구의 사랑과 평화를 위해서!”
“지구엔 나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사랑과 평화를 굳이 지켜줄 필요가 없단다. 때때로 이기적일 필요가 있지.”
“아앗, 어떻게 그런 소리를? 마치 분리수거를 하려고 쓰레기통에 향했는데 알고 보니 피규어를 버리는 듯한 사람이시네여!”
서로 농담 따먹기를 하는 두 사람의 비쥬얼은 환상적이다. 당연지사 식당에 있는 무수한 사람들의 시선이 이따금씩 흘긋 흘긋 그들에게로 꽂힐 수밖에 없었다.
“야.”
“왜여?”
“…에휴, 됐다.”
말을 하려다가 마는 민국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궁금해하는 서라였다.
“왜 그러신데여 행님? 아까 전에 지를 보고 욕정하신 것처럼 뭔가 숨기는 꿍꿍이가 있는 거 같은데여.”
“크으, 강렬하게 덮쳐서 급속도의 피스톤으로 그 입을 막아버리고 싶구나.”
“데헷 데헷.”
깜찍하게 윙크하는 표정을 짓던 서라였다. 민국은 어차피 꿈이니까 상관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농담 식으로 이야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이윽고 두 손을 책상에 올려놓으면서 운을 띄우는 민국이었다.
“나 오늘 엄청난 개꿈을 꾸었다.”
“읭? 무슨 꿈이여?”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무구한 듯한 눈동자로 질문하는 서라였다. 민국은 대놓고 말했다.
“내가 너랑 사귀는 꿈.”
“푸압!”
물을 홀짝이던 서라가 그만 물을 뱉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과한 행동에 민국은 토끼눈으로 두어번 껌뻑거렸다.
“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리액션이 과도하냐.”
“생리라서 그럼!”
“그러냐?”
그 드립조차도 매우 과장된 리액션 같았다. 하지만 어찌 됐든 간에 서라가 질문했다.
“그런데 사귀는 꿈이라니여… 무슨 그런 개꿈을 꾸세여? 서, 서르마 정말 진짜로 날 좋아하는 거 아님여?”
“꿈은 무의식의 소망이라고, 나도 진짜로 그런 건 아닌가 생각하고 있지. 심지어 아까 전 너의 카와이한 모습을 보고 용솟음쳤던 나의 도도한 물건을 떠올려봐라. 아무리 생각해도 개연성으로 볼 땐 그 말이 맞아.”
민국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은별을 사귀고 있지.”
“그렇지여.”
“고로 내가 너와 사귀려면 너를 하렘 계획에 포함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소오름!”
의견을 표명한 민국을 향해서 질문하는 서라였다.
“하지만 온니찡. 만일 내가 온니찡이랑 이러쿵저러쿵 으쌰으쌰 사귀게 되면여. 은별 언니찡이 온니짱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여. 어쩌면 스쿨x이즈처럼 온니찡의 복부가 움푹움푹 파여서 구멍이 날지도 모른다구여 꺄아아!”
“허얼? 너 그 애니메이션 봤냐? 그거 성인용 애니메이션으로 아는데.”
“엇흠! 요즘 애들은 어릴 때부터 성관계 영상을 봅네다!”
자랑은 아니었지만 사실이었다. 한숨을 쉰 민국이 말을 잇는다.
“어찌 됐든 간에 그 꿈 진짜 생생하더라. 난 무슨 현실인 줄 알았다. 어쩌면 다른 세계가 있다고 가정할 때 진짜 그런 일이 생겼을 지도 모르겠네.”
“이이잉…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무진장 궁금함여. 대체 어떤 내용이었는데요.”
“으음, 그러니까 말이다.”
관자놀이가 간지러운지 긁적이면서 말을 꺼내는 민국이었다.
“일단 날은 몇 개월 전 파뿌리 시상식 때로 돌아간다.”
“오키도키.”
고개를 끄덕이는 서라.
“그때 강은별, 최유이, 너, 나, 이렇게 네 명이서 모텔을 간 적이 있었지? 막 알몸으로 잠을 자고 일어난 적이 있잖아. 그걸 하필이면 4P를 했다고 오해를 했었고.”
“옛 추억 아름다운 추억이네여.”
“그런데 그 모텔을 가기 전에 술버릇들. 난 솔직히 잘 기억이 안 난다만 꿈에선 선명했었는데… 거기서 네 술버릇이 울상을 짓고 자기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는 거더라.”
그 말에 서라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민국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거기서 네가 나 좋아한다고 술버릇으로 계속 잉잉거렸었단 뜻이야.”
“…….”
가만히 듣던 서라였다. 몸도 가만히, 얼굴도 가만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움직이던 초점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허나 맞은편의 민국은 자기 이야기에 집중하기 바빴기에 그녀의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가 없었다.
“막 뭐라고 했더라? 오빠… 정말 좋아해… 흑흑….”
“부아아앙!”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를 지르는 서라. 그런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민국이 눈을 크게 뜨면서 올려다본다.
테이블에서 떠들던 무수한 사람들도 그녀의 이상한 소리를 듣고는 서라에게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서라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것처럼 홍조가 미세하게 일고 있었다.
이윽고 서라가 민국을 호명하면서 소리쳤다.
“형님! 나 응아 마려움! 화장실 갔다옴!”
“어? 그, 그래라. 너 급했구나 인마….”
얼마나 급하면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갈까. 민국은 여전히 서라의 행동에 의문을 느꼈지만 그냥 가만히 있을 따름이었다.
“혼또니 난데여! 난데여 고레인가여! 돌고래인가여 핑고래인가여!”
‘으아아앙~’하면서 여자 화장실 세안대에서 거울을 쳐다보는 서라였다.
‘어떻게 꿈을 꿔도 그런 꿈을 꿀 수가 있는 거지여? 그것도 같은 꿈이라니여!’
서라가 이토록 민국을 의식하고 어색한 리액션을 취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그녀도… 오늘 같은 꿈을 꾼 것이었다.
‘마, 마사카 나님을 민국 온니찡과 얽히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위험한 계획?’
마사카 : 설마의 일본어
서라는 진심으로 혼란스러웠다. 거울을 보는 와중에도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자신의 가슴 중심부에 손을 올리면서 마음을 다지는 서라였다.
‘아님 아님! 생각해보셈, 아직 얘기를 다 들어본 게 아닌데 어떻게 단정 지을 수가 있음여! 서라찡!’
그러하다. 울상을 짓고 술버릇으로 민국에게 좋아한다고 했던 건… 어디까지나 이 현실 세계에서도 있던 일이었다. …민국은 워낙 그때 여러 여자들에게 휘둘리다 못해 술까지 취한 지경인지라 기억하지 못했지만, 서라는 자신이 어떤 술버릇을 선보였는지 며칠 되지 않아 깨우친 실정이었다. 고로….
‘울상을 짓고 고백한 걸 꿈으로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여! 엣엣흠! 실상은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다는 말씀!’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불끈 주먹을 쥐는 서라였다. 거울을 보고 자기 최면을 건 서라는 곧장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민국이 평소에 하던 어색한 헛기침을 똑같이 따라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엣엣흠, 실례여. 아주 시원하게 싸고 왔어여.”
“이 녀석. 역시 보통 여자들과는 다르게 아주 노골적인 표현이구나.”
“히히, 온니찡을 상상하면서 싸니까 아주 시원하게 나왔어여!”
실제로는 갔다 오지도 않았지만 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드립을 치면서도 서라는 자꾸만 민국이 꾸었던 꿈의 다음 내용이 어땠을까 신경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애써 웃음을 지으면서 서라는 다음 내용을 듣기 위해 준비했다.
“그런데 그 꿈 내용 다음에 또 어떤 내용이 있었어여? 나님이 온니찡에게 고백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시츄웨이션 다음에여!”
“어 음, 그러니까 말이다. 이 뒤부터는 선명하게 기억은 안 나고 주요 내용만 몇 가지 기억나는데.”
고개를 두 어번 끄덕이면서 집중하는 서라의 모습. 그 여느 때보다도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에 민국은 다음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고백한 걸 내가 택시…에서? 갑자기 기억하게 되어서 서라 이 녀석…하면서 너를 만나러 갔거든. 그리고 만나서 너에게 4P 사건은 없던 일로 하자고 하니까 약간 실망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알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바쁘다면서 먼저 몸을 돌리는데 그걸 뒤에서 내가 안았어. 으흠, 여긴 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는군. 그 다음에는 널 안고 그런 식으로 거짓말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았냐면서 네가 나 좋아하는 거 안다고, 얘기했었어. 그러니까 네가 갑자기 흐느끼면서 오빠 좋아해요… 하더라. 그리고 나는 마음을 다지고 은별이랑… 아, 여긴 잘 기억 안 나네.”
“우왕… 왠지 옆으로 기어가는 모래벌판의 개가 떠오름.”
“그래. 개꿈인데 너무 생생해서 그냥 나도 이상한 거다. 그 다음에는, 읏흠. 말하면 안 되겠군.”
“헐, 이 이상 말했는데 우리 둘 사이에 무슨 비밀이 또 있나여?”
“이것아. 넌 아직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비밀도 있는 법이야. 세상이 그렇게 쉬운 줄 아냐?”
“부, 부들부들! 주연이 나인 개꿈인데 말씀해주세여! 막장 드라마 같아서 재미있게 듣고 있었단 말예여!”
“흠. 하긴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워낙 막장스러워서 꿈인데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겠다. 좋아, 그럼 각오해라. 다음 이야기는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지도 몰라.”
“요시!”
이윽고 집중해서 다시 민국의 이야기를 듣는 서라였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집에 네가 찾아왔는데 네가 내 컴퓨터 하드를 뒤지다가 야동 파일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야동 파일을 보더니 이런 것보단 실제가 낫다면서 날 유혹하더라. 나는 거부했지만 너는 이미 마음을 허가한 상태였고 결국 너와 나는 금지된 사랑을 나누면서 으쌰으쌰… AT 필드 파괴하고….”
“부아아아아악!”
다시 의자에서 소리치며 일어나는 서라였다. 이번에도 테이블의 사람들이 일제히 서라를 돌아보았고 민국도 순간 벙이 쪘지만, 서라는 이렇게 소리치며 화장실로 곧장 달려나갔다.
“급똥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