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으아아, 날 두고 가다니. 은별이 네 녀석,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유이가 오기 전 민국은 심심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을 두고 즐겁게 여행을 떠난 은별이가 새삼 미워지는 민국이었다. 결국 은별이를 향해서 휴대폰 메시지를 보내는 민국이었다.
[네 방에 가서 네 침대에다가 부카게 할 거야!]
우우우웅. 답장은 곧장 왔다.
[미친 놈…]
남의 방에 허락도 없이 가는 건 안 되니까 그렇게 메시지를 보낸 것뿐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구멍을 타고 은별의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언제나 보던 단정되고 세련된 그녀의 방이 드러났다. 민국은 일단 그녀의 방에 도착하는 즉시 해야 하는 행동을 먼저 선보였다.
"흐읍~ 으음~ 스멜~. 이 향기는 나를 상상하면서 위로를 하던 그 냄새로군."
우우웅. 또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확인하자….
[내 방에 들어와서 또 어떤 개소리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역시 강은별! 대단한 직관력이야."
하지만 그 직관력과 관계없이, 지금 이곳에 방의 주인은 존재치 않았다. 이 집은 아예 텅빈 셈이었다. 허나 은별이의 방에서 나가서 물건을 훔친다거나 그런 취미는 존재치 않았다. 그저 민국은 자기 집에만 있기 심심하니….
"후후, 어떤 옷들을 입나 한 번 볼까."
장롱이나 한 번 살피던 민국이었다. 그런데 그때….
"허얼."
실로 못 믿을 듯한 광경이 눈에 드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장롱의 맨 끝자락에 교복이 있는 것이었다. 민국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너 고교 교복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뭐야? 지금 장롱 열어봤어?!]
우우웅, 하고 온 메시지에 민국은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씨익 미소 짓더니 그 교복을 빼서 자신의 몸에 맞춰보기 시작했다.
"후훗, 잘 생겨서 그런지 나쁘지 않군."
왠지 입어보고 싶은 심리가 생기는 민국이었다. 결국 자기 집으로 돌아간 민국은 한 번 맘 편하게 그것을 입어보자고 생각했다.
"조금 끼지만 으흠~ 완벽해, 아주 완벽해!"
여장에 취미는 없었으나 은별이가 입은 교복이라고 하니 왠지 한 몸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진짜 변태로서의 힘이란 말인가? 민국은 여자 교복을 입고 나니 뭔가 불끈 솟아나는 강력함을 느꼈다.
"메지컬 리리컬 라로하 뿅!"
그렇게 교복을 입고 온갖 쇼를 다하던 찰나에 최유이가 등장한 것이다.
"으아아! 기억 잃게 만들기 슈퍼 필살 철권 드레곤 어퍼…!"
투다다다다닥!
* *
본격적으로 수사를 진행한 끝에 고아원의 주인이 성폭행한 아이들은 무려 열 명 가까이…. 그 중에 남자 아이도 껴있을 뿐더러 피해자들은 전부 정신적으로 질환을 갖게 된 상태였다. 유이는 그것도 모른 채로 그저 고아원의 주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행복하다고 세상을 살아온 것이었다.
'흑… 흐윽…'
'……'
눈물을 흘리는 피해자들도 피의자인 주인을 따라서 고아원 대문에서 나오고 있었다. 수갑을 걸치고 있는 주인의 고개가 잠시 유이에게로 돌아간다. 이 사건을 연락한 유이를 매우 괘씸하게 쳐다보는 눈빛. 유이는 차마 그 눈빛을 마주하기가 두려운 마음에, 그만 고개를 내려 숙이고 말았다.
'빨리 움직여.'
경찰의 말에 결국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기는 주인이었다. 유이는 그런 아저씨가 먼저 등을 돌려 차로 향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차례대로 나오는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부모가 없는 고아들로서… 수사로 말미암아 모인 무수한 인파에게도 연민 어린 시선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 유독 한 명은 유이의 인상에 밟혔는데.
'…흑, 흐으윽….'
'…….'
바로 자신과 같은 방을 썼던 친구였다. 그녀 또한 아저씨에게 파렴치한 짓을 당한 피해자로서 마음의 충격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이는 그녀에게만은 유독 신경이 갈 수밖에 없었다.
'흐윽… 윽….'
'…….'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눈물 짓던 그녀의 고개가 유이 쪽으로 돌아갔다. 시선을 마주한 유이는 일순간 화들짝하는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팔이 바들바들 떨리고 발걸음을 물리게 되었지만… 유이는 끝끝내 견디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
얼굴을 마주한 상대방의 표정이 서서히 붉어짐과 동시에… 살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얼마지 않아 피해자인 그녀는….'
'아아아아아아아아!'
'……!'
절규 같은 비명을 지르면서 유이에게로 달려들었다. 인파에 있던 한 사람이 나타나 아이를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유이는 어떻게 됐을 지 모른다. 이윽고 절규하면서 유이에게로 달려들려는 그 아이를 경찰들이 제지하기 시작했다. 유이는 막연히 굳은 얼굴로 그 모습을 참다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너… 너어!!!!!"
이윽고 눈물 짓던 피해자가 유이를 쳐다보면서 소리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소리는 유이의 가슴에 정확히 비수를 박아버렸다.
'너 때문에…!'
'…….'
'너 때문에! 너 때문이야…! 너만 없었더라면… 아니, 네가 가만히 있었더라면…!!!!'
그 날, 유이가 도망가지 않고 얌전히 당해주었더라면… 자신 같은 피해자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속내를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기적이든 냉소적이든 관계는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모든 책임을 유이에게 떠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너만… 너만…! 크으으… 너마안!!!!'
'…….'
'괴물! 살인자!!!! 쓰레기 같은 년!!!!'
경찰들의 제지로 인해서 물러나는 와중에도 그녀의 분노는 끊이지 않았다. 지켜보던 인파는 대체 무슨 연유로 자기 또래의 아이에게 그토록 화를 내는 것인지, 의문을 품은 시선으로 유이를 일제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유이는 이미 공포에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떨면서… 가만히 넋을 놓고 있을 따름이었다.
얼마지 않아 모든 사건이 종료되고 인파가 물러남으로서 고아원 대문 앞에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유이는 털썩 돌벽에 주저앉으면서 머리를 부여 잡았다.
'미안…해요….'
찢어질 듯한 가슴의 아픔을 참으면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연거푸 쉬도 새도 없이 계속해서 말이었다. 눈물이 한 가닥 볼을 타고 흘러 나오는 와중에도 말이었다.
'미안…미안해요… 미안해… 미안….'
* *
'죄송해요… 애초부터 사귈 생각은….'
최유이는 현대왕 서민국과 방송을 한 뒤, 강철남에게 고백을 받아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송 형식상의 승낙이었다. 최유이도 비제이로서 방송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조금은 알고 있던 것이었다.
허나 매번 초면에 성드립만 치는 현대왕보단… 차라리 강철남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점도 있었다. 물론 스카이 라이프로 일대일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때 최유이는 강철남에게 솔직히 이실직고했다.
'만나는 건 어려울 거 같아요… 아무래도….'
'그러시군요….'
강철남은 겉보기에 예의 바르고 매너 있는 청년이었다. 그것이 꾸밈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 본능적으로 의심을 품는 유이였지만, 그래도 서민국보단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이 씨, 저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지신 거라면 저를 직접 만나보고 결정하는 게 어떨까요?'
'…….'
'저도 유이 씨가 제 고백을 승낙해주셨단 점이 기분이 좋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단순히 방송 형식상의 승낙이었다면 조금은 아까울 것 같아서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왠지 마음이 가시는 분이거든요.'
유이는 그래도 믿지 않았다. 전부 이런 것은 거품일 거라 생각했다. 가면의 탈을 쓴 사람의 모순된 모습들. 그러나 그 그릇됨을 알면서도, 유이는 혼자만의 생활을 해온 지 어연 6년이 지난 후였다. 현실의 사람이 보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
결국 진짜로 뵙되 사귀진 않겠다고 마음을 다지는 유이였다.
하지만 강철남은 여자를 다루는데 프로였다. 괜히 픽업 아티스트를 몇 년차 진행한 게 아니었고, 여자들이 안고 있는 트라우마를 감싸줌으로서 자신에게 호감을 갖게끔 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유이는 어릴 때 그토록 괴로운 시절을 보내다가 사람을 한 점 만나지 않고 시절을 보냈다. 당연지사 그녀의 괴로움과 더불어, 그녀가 안고 있는 트라우마를 순식간에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키킥, 사람을 그렇게 모를 수가 있나. 그 여자는.'
'…….'
하지만 그에게도 배신을 당함으로서 유이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란 건, 믿음을 이용해서 자신의 유리한 점만을 취득하려고 하는 동물이라고. 어떤 선의도 어떤 호의도 결코 올바르진 않다고. 그 행동엔 전부 꿍꿍이가 숨어 있다고… 말이었다.
'…….'
다시는 사람을 믿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유이는 사람을 향한 마지막 믿음조차 끊어버린 셈이었다.
* *
"으아, 시방 나의 취미가 뭐가 그렇게 혐오스러워서 이러시는 겁니까! 남자가 여자 고교 교복 입는 게 죄예요?!"
"……."
죄다.
"훗, 여자 고등학교 교복의 아름다움을 모르시는 군요 유이 씨는."
마치 고등학교 선배인 마냥 말하는 민국이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다. 민국은 유이가 어떤 과거를 안고 있는지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그리 쉽게 말하는 것이었다. 유이는 고개를 돌려 교복을 확인했다. 고등학교 교복….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교복이었다.
"에휴, 뭐 어쩔 수 없지. 어쨌든 간에 오늘도 부탁드립니다 으헤헤."
"……."
결국 가슴을 만질 타임이 왔음에 유이는 입을 다물었다. 이전의 수치스러운 기억들과 더불어 거부감이 물씬 풍겼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명목 하에 가슴을 내주기로 마음을 먹는 그녀였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
그런 마음 같은 건, 이미 이전부터 믿지 않게 된 그녀였다.
일정 시간이 흐른 뒤였다. 결국 오늘 하루도 생명력을 채우는데 기여한 유이는 민국에게 배웅을 받게 되었다.
"배웅은 없어도…."
"슈퍼마켓 가려고 따라가는 건데요? 결코 당신을 배웅해주려고 가는 게 아닙니다!"
"……."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유이는 계단을 따라 찬찬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민국도 현관문을 닫고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지하철 역까지 유이를 천천히 배웅해주는 민국이었다.
유이는 그의 그런 친절함조차도 선뜻 신뢰할 수가 없었다. 바캉스 사건 때 자신을 살렸던 것도…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론 본능적으로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위해, 대체 무엇을 위해서….
"어휴 슈밤. 엄청나게 춥네. 따뜻한 수박 두 개 안에 내 손을 겹쳐넣고 싶어라."
"……."
말 때문에 신뢰성이 더 떨어지는 게 함정이었다. 이윽고 지하철 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이제 유이에게 손을 흔들고 집으로 가려는 민국이었다. 유이도 더 이상 아쉬울 게 없었기 때문에 개찰구 계단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으아아앙!"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유이는 과거 자신의 또래 때와 비슷한 아이가 엉엉 울고 있는 게 보였다. 어찌나 서글프게 울던지…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길 한 번 주다가 자기 갈 길을 갈 뿐이다.
"……."
유이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몸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일순간 눈에 드리운 익숙한 인물의 모습에….
"길 잃었어? 엄마가 마지막에 어디 계셨는지 기억나니?"
"……."
유이는 믿고 싶지 않았다. 저 선의가, 저 호의가, 진실된 것임을 말이었다. 자신이 일생을 살면서 느낀 호의와 선의는 어디까지나 어떤 욕망을 이룩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이용해 먹기 위한 하나의 과정밖에.
"자, 가자. 내가 엄마 있는 곳까지 데려다줄게."
울던 아이가 조금은 불안하지만, 민국의 인자한 얼굴에 떨리는 눈길로 쳐다본다. 안 돼… 안 돼…. 거짓이다. 믿지 마라. 본능적인 외침이 있었지만, 유이는 그것을 끝끝내 입속에 담을 수가 없었다.
"…응!"
그리고 결국엔 민국을 믿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모습에 유이는 허탈한 감정을 느꼈다. 저벅 저벅, 손을 잡고 사라지는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유이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으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탈하게 손을 내리면서….
믿을 수 없다. 사람이란 건, 믿을 수가 없는 동물이다.
그렇게 당해와놓고 이제 와서 믿어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전부 부질 없는 짓인데… 사람은 혼자 살아가야 상처를 안 받고 살아갈 수 있는데….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나도… 나도….'
실은 유이도.
"믿고 싶…."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던 유이가 깜짝 놀란 얼굴을 지었다. 그것은 평소 무표정인 그녀에게서 보기 드문 표정이었다. 이윽고 입가를 손으로 틀어막으면서 유이는 숨을 죽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주먹으로 만들며 몸을 홱 돌리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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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은 유이 에피소드 끝어제 한 편 연재 못했는데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