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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237화 (237/369)

237화

유이는 부모도 없는 고아임에도 불구하고 또래 애들에게 절대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또래 동성 친구들을 사귀는데 헌신하였고, 금방 친구들과 친해져서 즐겁게 놀기 바빴다.

'근데 유이 너 부모님 안 계시다며?'

'응! 하지만 괜찮아. 아저씨가 날 보살펴 주거든!'

고아들에겐 약점이라 불릴 수도 있는 그런 점조차도 유이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저 태어난 방식은 같았지만 살아가는 방식만 조금 남들과 다를 뿐이었다. 그게 뭐가 그리 대수로운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나에겐 가족 같은 아저씨가 있는 걸!'

유이가 신뢰할 수 있고, 반드시 은혜를 갚고 싶어하는 사람이 고아원으로 들여준 아저씨였다. 유이는 그를 위해서라면 정말이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중에 나이를 먹게 되면 그에게 보답하고자 반드시 성공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쟤가 최유이래….'

'와, 예쁘네.'

그리고 최유이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건 아마 또래 애들에 비해 발육이 상당히 좋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분위기가 워낙 활기찼고 아리따운 미모의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당연지사 남학생들에겐 무수히 많은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재밌었니 유이야?'

'네! 재밌었어요 아저씨!'

14살의 유이는 해맑았다.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만큼 말이었다. 그녀는 애초부터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긍정적인 아이였던 것이다.

2년이 흘렀다. 16살이 된 유이는 중학생 3학년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에도 열렬히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그녀의 곁에 2년지기 친구로 있어주는 동성 친구들을 비롯해… 유이에게 계속해서 호감을 보내 결국엔 사귀게 된 1년된 남자 친구도 있었는데, 아직 손도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다.

두 사람 다 연애의 연자도 알지 못했으니까 말이었다. 그저 서로 오순도순 얘기하고 호감을 표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때였다.

'유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는구나.'

그리고 고아원의 아저씨는 어느 덧 나이를 먹어 오십 후반을 가까이하고 있었는데, 인자한 할아버지의 인상으로 방에서 공부하는 유이를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저씨!'

유이는 아저씨가 나타나자마자 볼펜을 내팽개치고 달려가서 후다닥 그에게 안겼다. 아저씨는 그런 유이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우지 않고 안아주었다. 그의 체온을 느끼던 유이가 물러나면서 밝게 소리쳤다.

'이번에 중간고사 시험 점수 높을 거 같아요! 생각 이상으로 잘 본 거 같거든요!'

'유이는 정말 공부도 잘하는구나. 부모님이 좋은 머리를 물려주신 거 같다?'

그 말에 유이는 활짝 미소 지었다.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매정한 부모님이었지만, 결코 원망하진 않았다. 어떤 환경에서든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고 노력하면 된다고 유이는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그런 밝은 유이를 아저씨는 그저 인자한 미소로 지켜볼 따름이었다. 물론 그 눈웃음이 그려진 눈길이 잠시간 유이의 가슴으로 향하는 걸, 유이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많이 성장했구나, 녀석.'

유이는 이제 성숙해질 16살의 나이답게 확실히 몸매가 좋아지고 있었다. 또래 여자 애들보다 훨씬 성숙한 몸매에 예쁘장한 얼굴. 교내에서도 유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인기인이었다. 그리고 유이는 현재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유이는 알지 못했다. 그 찰나의 순간이 끝나게 될 시간을 말이었다.

'유이야.'

'응?'

그녀에게 있는 일 년된 남자 친구. 이제 그도 슬슬 성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는 나이였고, 여자 친구인 최유이와 진도를 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는 상태였다. 심지어 최유이는 또래 여자 애들보다 발육이 좋다 보니 교복을 입고 있어도 자꾸 노골적으로 부각이 되는 부위가 있었다.

그녀의 출렁이는 가슴을 흘긋 곁눈질하던 남자 친구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저기… 우리 이제 뭐 진도라던가 나가보는 건 어때?'

'진도…?'

'응. 막 커플들끼리 진도 나가고 그러잖아? 그런 진도.'

얼굴을 붉히면서 주절주절대는 남자 친구. 하지만 최유이는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왜냐하면 도덕 선생님에게 배우길….

'도덕 선생님이랑 가정 선생님에게 배우길 그런 건 성인이 되어서 하라고 하던데?'

'하, 하지만! 내 또래 커플들은 다 이제 슬슬 그러고 있으니까! 선생들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잖아?'

'으음~ 그래도 안 돼~.'

세차게 고개를 돌리는 유이였다. 유이의 그 모습에 남자 친구는 곧 실망한 듯한 얼굴을 지었다. 하지만 별 수 있으랴? 유이는 도덕과 윤리, 가정에 대해선 중요하게 여겼다.

'그럼 손이라도….'

'그래! 그건 해줄게!'

하지만 손을 잡는 것쯤은 도덕에 어긋나지 않았기에 유이도 혼쾌히 받아들였다.

중간고사가 다가오는 시험 전날, 유이는 열심히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고아원 방에서 또래 친구들이 잠에 들었을 때도 오로지 혼자 불을 켜두고 공부에 임했는데, 고아원의 주인은 그런 유이가 있는 방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씨발 못 참겠다.'

그리고 유이가 평소에 아저씨라 부르던 고아원 주인은 무슨 까닭에선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마치 당장에라도 어딘가에 가서 자신의 욕정을 풀고 싶어하는 모습 같았다.

…끼이익. 이윽고 유이가 있는 방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유이는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친구 때문에 그저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만 돌렸다.

'아저씨?'

'하아, 하아, 유이야.'

유이는 아저씨가 왠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자 깜짝 놀랐다.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친구를 흘긋 곁눈질한 유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옷깃을 붙잡고 올려다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아저씨 왜 그래요? 어디 아프세요?'

'하아, 하아.'

'얼굴이 되게 빨게요. 어디 아프신거면 누워서….'

'하아!'

아저씨의 안색을 살피던 유이가 벽면의 전등 스위치를 클릭하려는 찰나였다. 유이는 '꺄악!'하고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면서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그런 유이를 눕힌 아저씨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유이야….'

'아, 아저씨…?'

'유이야, 나 이제 그만 참아도 되지? 응? 충분히 좋은 아저씨였잖니.'

사실 유이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이 고아원에 들어오게 된 이유가 그저 먼 훗날 성욕의 노리개로 이용해먹기 위한 그의 계략이었음을 말이었다. 고아원에 들어온 태반의 여자 아이들이 은밀하게 그런 식으로 전락 당했고, 그건 그저 기사화가 되지 않을뿐 음지에서 들려오는 은밀한 진실의 이야기였다.

'아, 아저씨… 왜 그러세요 무섭게….'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 하아, 유이야. 나 이제 못 참겠다. 조금만 기다려봐라.'

그리고 '유이야, 유이야.'를 외치면서 아저씨는 천천히 자신의 벨트를 벗기 시작했다. 바지의 벨트를 거칠게 벗는 그의 동작에 유이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공포에 떨었다.

'아저씨… 왜 그래요….'

'하아, 하압!'

유이가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가 바지를 벗어 던지고는 그대로 유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유이는 생전 처음 자신의 입술을 가져간 남자가, 전혀 예상도 못했던…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신뢰하던 남자였음에 크게 눈을 뜨면서 놀랐다.

'유이야!'

'……!'

온순한 아저씨는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이젠 사나운 야수로 변한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유이는 끈적끈적한 아저씨의 타액이 담긴 입맞춤에 거칠게 그를 밀쳐냈다.

혼신의 힘으로 간신히 그를 밀쳐낸 유이는 입술을 닦으면서 후다닥 로비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망울이 여느 때보다도 크게 혼란에 닥친 듯 흔들렸고, 아저씨는 '유이야!'하면서 그녀를 외쳤지만, 유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우웅….'

'…….'

'무슨 소리야…?'

그리고 그때였다. 옆자리에서 자고 있던 유이의 고아원 친구가 시끄러운 소리에 결국 눈을 뜨는 모습이었다. 아저씨는 결국 유이는 놓쳐 버렸지만, 별 수 없다는 듯 방문을 굳게 잠갔다. 그리고 유이를 대신해서 그 아이를….

'허억! 허억!'

늦은 밤, 홀로 고아원을 뛰쳐나온 유이였다. 철창으로 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유이는 곧장 전봇대 근처의 쓰레기 봉투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에 몸을 숨겼다. 쏴아아아…. 그땐 마침 폭풍처럼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유이는 젖은 몸으로 그저 사납게 숨결을 헐떡였다.

'허억, …우웁.'

자신의 첫 입술이 그런 짐승 같은 입술에 포개졌음에, 유이는 속이 울렁이는 걸 느꼈다. 자신이 오랫동안 알고 지낸 남자가 순식간에 짐승으로 변했음에, 자신의 신념도 무너지는 것 같아 그만 속을 개워낼 뻔했다.

'…….'

유이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간들 또 짐승으로 변모한 아저씨가 있을 것만 같았다. 선생님께 배운 대로 이런 일이 생기면 곧장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했지만… 유이는 그러지 못했다. 애초에 유이는 방금 전의 일을 어떤 오해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 무섭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유이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웠던 건 육체적인 압박이 아닌….

'우웁!'

자신이 그간 믿어온 아저씨의 신뢰가 무너질까 하는 무서움이었다.

'유이야?'

'…….'

'왜, 왜 그러고 있어! 빨리 집으로 들어와!'

늦은 새벽, 유이는 자신이 2년 동안 알고 지낸 절친인 동성 친구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는 시각에 초인종을 누르는 건 예의가 아님을 알면서도, 유이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밖에서 오돌오돌 떨다가 결국엔 죽어버릴 테니까. 유이는 살고 싶었다.

'하암~ 무슨 일이니? 이 시간에 대체 뭔 일이래.'

'…엄마, 제 친구가….'

유이의 절친은 유이의 몸상태를 보면서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절친의 어머니는 현관문에서 쫄딱 비를 맞은 기세로 엉망진창인 몰골의 유이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말로만 듣던 유이구나. 근데 옷차림이 왜 그러니?'

'무, 무슨 일 있었나 봐요. 제 방에 들어오라 해도 되죠?'

절친의 어머니는 못 마땅한 표정으로 유이를 쳐다보았다. 유이는 아까 전 아저씨의 일로 인해 크게 충격을 먹었는지 눈이 반쯤 죽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던 절친의 어머니가 차마 밤 늦게 거절할 수는 없음에 말했다.

'들어오거라.'

'…들어와 유이야.'

'옷은 네가 알아서 챙겨주고. 그리고 샤워부터 씻겨라.'

그리고 어머니는 졸려운 듯 하품을 하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갔다. 절친은 유이를 데리고 2층의 자기 방으로 향했다.

'…머리 수건으로 닦아 유이야.'

'…….'

'…….'

반응이 없는 유이의 모습에 절친은 잠시 침묵하다가 곧 수건을 들어서 대신 닦아주기 시작했다. 엉망인 머리가 조금씩 물기가 빠져가던 때였다. 똑똑, 하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절친이 '누구세요?'하고 묻자 그녀의 어머니가 대답한다.

'잠시 나와보렴.'

'…….'

유이를 겨냥한 말이 아니었다. 절친을 겨냥한 말이었다. 절친은 고개를 돌려서 유이에게말했다.

'나 잠깐 엄마랑 대화하고 올게. 이걸로 나머지 닦고 있어.'

'…….'

그리고 수건을 내려놓은 절친이 밖으로 나간다. 방문을 굳게 닫는 모양새까지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와 절친의 목소리를 못 들을 리 전무했다.

'넌 왜 저런 애를 이 늦은 밤에 데리고 오니?'

'하, 하지만… 제 친구인데….'

'친구는 무슨…. 엄마가 부모 없는 애랑 다니지 말라고 한 적 있어 없어?'

'…….'

'부모가 없는 애들은 못 배워가지고 어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몰라. 그리고 사회에 나가면 결국 지네들 피해의식 때문에 자기 도와준 사람들도 함부로 여긴단다.'

'엄마!'

'내가 하는 말이 지금 되게 매정하고 이기적으로 보여도 결국엔 내 말이 맞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네 앞가림 똑바로 하고 싶으면 저런 애랑은 얼른…!'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중엔 착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 가끔은 상상을 초월하는 또라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유이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얼싸 안아줄 수 있는 가슴 따듯한 사람들이리라,

'…….'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 작품 후기 ============================

독자의 질문 : 가슴을 내준다... 몇달 사귀지도 않았고 그냥 호기심에 만난 강철남에게는 그럴 생각이 있었으면서 생명의 은인 민국이를 죽든 말든 버리고 튈 정도로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으면서요? 아니면 유이는 민국이에게 하나도 고마운 마음이 없는건가요?

현재의 에피소드에서 유이의 심리가 많이 반영될 예정이기 때문에 대답할 필요는 없겠지만 서도! 추천을 많이 받았으니 엇흠... 관대한 마음으로 대답해드리지요.

유이는 캐릭터 설정에서 2순위로 불쌍한 캐릭터에 속합니다.

고로 어릴 때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불쌍한 어린 양으로 보시면 됩니다.

또한 선천적으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지만, 그 산전수전에서 사람에게 미움 털이 박혀서, 자신의 신념은 분명 사람은 아름답고 세상은 따뜻하다인데, 지금까지 보아온 세상은 어둡고 칠흑 같기만 했으니,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게 어렵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마음을 갖게 된 불쌍한 캐릭터지와요.

하하하하!

딱히 추천 받아서 이렇게 성심성의껏 설명해준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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