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유이의 과거>
"……."
"……."
"…엇흠."
휘익!
"…타임! 가만히 있었어요! 가만히 있었습니다! 때리면 반칙! 누워 있는 사람 때리면 폭력죄로 고소!"
"……."
조금만 움찔거려도 곧장 반응이 온다. 그 정도로 최유이는 이 상황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판 아무런 감정이 없는 남자에게 자신의 가슴을 내주고 있었으니까. 또 내준 가슴에 닿는 감촉이 가끔씩 쪼물락거리는 느낌이 나면 어찌나 기분이 요상하던지… 유이는 애써 참고 있었다.
"엇흠흠…."
기절에서 깨어난 민국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온전하게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우선 은별, 예나가 없는 지금 이 상황에서 유이는 민국에게 생명력을 부여 넣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고로 잘 보이는 게 좋을 것이었다.
"어흠, 고맙습니다 유이 씨."
"……"
"슴가를 내주셔서."
휘익!
"으앗! 또 왜 때리려고 합니까! 좀 멈춰요!"
가슴이란 단어만 언급되어도 수치스럽기 그지 없다. 애초에 남자에 대한 면연력도 거의 제로에 가까운 유이였다. 과거에 남자들과 얽혔던 그녀의 경험은 하나같이 안 좋은 것들뿐이었으니까.
"……."
고로 유이는 최대한 용기를 내고 있었다. 자신의 신체 부위 접촉을 허용시켜주는 일에 말이었다.
물론 이 일에는 자신의 목숨도 걸려 있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한들 그녀도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당연했으니까 말이었다. 그러나, 그때 유이는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민국을 남남으로만 생각했더라면 결코 이런 접촉을 해주지 못할 것이었음을 말이었다.
"그나저나 아까 내치고 가실 때 저 진짜 죽을 줄 알았습니다."
"……."
"허허, 매정하시구만요 유이 씨."
어색함을 깨기 위해 괜히 한 마디하는 민국이었다. 유이는 그냥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어쩜 이기적인 것일 지도 모른다. 현재 그녀가 자각한 자신의 심리상으로는, 그저 자신이 살고자 하는 마음에 다시 그를 찾아온 것이었으니까. 민국도 그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는지 가볍게 입을 열었다.
"뭐 그래도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자기 목숨만큼 소중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
왠지 두루뭉술한 기분이 되는 유이였다. 이윽고 자기 가슴에 대고 있던 민국의 손을 때는 유이였다. 민국은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으잉?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설마 진심 화나셨어요?!'하면서 놀라는 얼굴을 지었다.
"시간…."
"……."
"끝났어요…."
"아하."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본래는 지금쯤이면 유이에게 약을 건네주고, 집에 혼자 남아 컴퓨터나 두들겼을 민국이었다. 그러나 흑마법사가 걸어준 마법의 조건이 또 한 번 이런 의외적인 상황을 연출시켰다.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든, 고맙습니다 유이 씨."
"……."
"아, 그런데 한 시간 가슴 만지면 하루 생명력만 채워주기 때문에 예나랑 은별이가 올 때까지 한 두 시간 정도만 더…."
벌떡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이. 민국이 손사래를 치며 소리쳤다.
"아니! 지금 그럴 필요는 없고 이 양반아! 여자가 왜 이렇게 소심해? 어, 그 내일 좀 부탁드린다는 말입니다. 예?"
"……."
어차피 여행을 간 여자 세 명을 제외하고 민국이 앓고 있는 조건을 아는 사람은 유이밖에 없었다. 고로 그녀가 도와주는 게 최선의 상책이었다. 유이는 차마 대답은 못했지만, 어차피 내일 해줄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감지했다. 이윽고 민국이 몸이 팔팔해진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네요. 잠시 거실에 나가 있으세요 유이 씨. 약도 준비해서 곧장 드리기로 하지요."
"……."
일이 생각보다 많이 뒤쳐졌음에,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실로 조용히 향하는 유이를 뒤로하고 방문을 닫은 민국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위험했네."
하마터면 진짜로 죽을 뻔했다. 아니, 잘은 모르겠지만 죽기 직전의 어떤 세계에도 갖다온 느낌이었다.
'딸에게 안부 전해주려꾸나.'
"그게 무슨 소리더라."
급작스레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어떤 문장에 민국은 머리를 긁적였다. 마치 한 순간의 꿈처럼, 새까맣게 까먹고 마는 민국이었다.
"엣차, 여기 있습니다. 받으십시오."
"……."
"내 10년 묶은 액체가 녹록히 쌓여 있는 병이지요 우후후후."
투명한 액체에는 흰 색의 액체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그저 시각적으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사람을 울렁이게 만드는, 그런 것이 있었다. 유이는 그나마 익숙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액체가 남자의 그곳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시금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어쨌든 유이 씨, 내일도 부탁드립니다."
"……."
볼 일도 끝났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지만… 어차피 결국엔 내일 또 민국의 집에 방문해야 하는 유이의 처지였다. 유이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향했다.
* *
"……."
집으로 돌아가면서 유이는 상념에 잠겼다. 그녀는 조심스레 자신의 가슴 쪽으로 고개를 내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만한 가슴. 결국 남남에 가까운 남자에게 이 가슴을 접촉시켜주었다. 물론 자신의 목숨도 걸려 있었으니까….
"……."
민국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도와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사실 그건 그녀가 그간 쌓인 사람을 향한 원망의 영향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그 사람을 도와주고 공헌을 하여도, 결국 무수한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행동을 이용해먹으려고 한다. 강철남도… 이외 과거 속의 무수한 사람들도.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실로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늘 말이었다.
"……."
그렇게 길을 거니며, 유이는 옛날의 기억 속에 잠시 빠져들었다.
유이는 어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다. 엄마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 그녀는 고아원 근처 앞마당에 홀로 버려져 있었는데… 아기였던 그녀를 고아원의 주인이 발견하고 대신 키워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십년 이상을 고아원에서 생활하던 유이는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부모가 없음에 그것을 당연히 여기기 시작했다. 부모가 있는 게 이상하고, 없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저거 사줘요!'
'안 돼! 아까도 다른 거 사줬잖니!'
'으아아앙! 엄마 나빠!'
그래서 고아원 아저씨의 허락을 받아 잠깐 근처 슈퍼에 들릴 때면, 엄마라는 동물에게 땡깡을 쓰는 아이가 실로 이상하게 보였다. 저 아이는 왜 저러고 있는 걸까? 저 엄마라는 게 무엇이길래 저렇게 울고 있는 걸까?
'저런 놈들이 난 제일 싫어.'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때 유이의 곁에는 자신의 또래인 남자애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심술 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때를 쓰는 아이를 향해 짜증을 내고 있었다.
'우린 가족이 없어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지네들은 뭐가 불행하다고 항상 저리 투정 불만인지.'
'…….'
그 말에는… 조금 공감이 갔다. 아무리 무슨 짓을 저질러도 저들에겐 보호자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그 명분 하에 얼마든지 보호를 받고 삶을 고쳐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고아원의 아이들은 그것을 지도 받는다 한들 곁에서 지속해서 도와줄 사람이 없었고, 결국엔 자신의 의지 하에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로가 자칫해서 엇나가기라도 하면… 그때 모든 것의 책임은 자신이 져야만 했다.
'괜찮니 유이야?'
'…….'
'꽃은 꺾으면 안 되요. 그러면 꽃이 아야 하면서 아파한단 말이야.'
어린 시절, 그 누구보다 순수한 눈빛을 지니고 있던 유이는 고아원의 주인에게 물었다.
'꽃이 왜 아야 해요?'
'음… 그건 꽃도 우리처럼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너랑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꽃도 꽃들 간에 얘기를 나눌 수 있고 하하 호호 웃을 수가 있단다. 그러니까 꽃을 꺾는 건 올바른 행동이 못되요. 알겠니 유이야?'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저씨.'
고아원의 주인은 남자였다. 그는 비영리단체로 정부에게 지원을 받으면서 고아원을 차렸고, 부모가 없이 홀로 내팽개쳐진 무수한 아이들을 데리고 와 보살펴주고 보듬어주기 일쑤였다.
유이는 그런 아저씨가 좋았다. 자기보다 고아원에서 4년 정도 일찍 있던 선배들이 말하기로, 자신은 고아원 대문 앞 근처에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아저씨가 데리고 와서 정성껏 보살펴주었다고 한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결국 그 대문 앞에서 생명을 저버렸을 유이였다. 적어도 어릴 때의 유이는 인생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누구보다도 강한 아이였기 때문에… 자신을 보살펴준 그 아저씨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가족이 없더라도, 나에겐 가족 같은 사람이 있어.'
유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라왔다. 13살이 되고 14살이 되고, 슬슬 고아원에서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할 때도 유이는 계속 이곳에서 자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유이의 환상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우리 유이는 굳이 공부를 하라고 하지 않아도 열심히 하는구나.'
'아저씨 덕분이에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 그 손길에 유이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의 그녀는 이렇게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자였었다. 유이를 오랫동안 보살펴준 고아원의 주인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
하지만 한 편으론 유이의 서서히 성장하는 신체를 보면서 흑심을 품는 모습이었다. 다만 유이가 최대한 눈치 채지 못하도록 욕망을 노련하게 숨기고 있었다.
'……?'
'유이야, 너 혹시 학교 다니고 싶지 않니?'
'학교요?'
'그래.'
부모님이 없어도 학교는 다닐 수 있다. 고아원의 주인이 대신해서 보호자 역할을 하면 가능했다. 하지만 유이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식비라던가… 학교에 내야 하는 등록금 같은 건 어떡하죠…?'
'그거야 이제 너도 나이가 있으니까 내 곁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렴. 그럼 그걸로 충당할 수 있고 넌 학교에서 또래 애들처럼 공부도 할 수 있는 거야.'
그 말에 유이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도 또래 애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이의 급작스런 표정 변화에 고아원 주인은 뿌듯한 미소를 더 짙게 지었다.
'좋니?'
'네!'
유이는 당차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인을 돌아보았다. 두 손을 가슴에 포개고 유이는 설레는 감정을 가까스로 숨기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열심히 할게요 아저씨!'
'…….'
'저! 정말로 열심히 할게요!'
수많은 또래 아이들이 세상은 비극적이다, 좋지 못하다라고 얘기하고 있었지만 유이는 절대 그런 세상만이 존재할 거라곤 믿지 않았다. 이토록 자신을 도와주고, 자신이 삶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는 세상이 마냥 더럽기만 하단 말인가? 유이는 결코 아니라고 부정했다.
……
그리고 14살이란 나이에 유이는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초등학교는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검정고시로 통과했고, 마침내 중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학생들이 입는 중학생 교복이란 걸 처음으로 입어보게 되었다.
'사이즈가 안 맞아….'
왠지 또래 애들에 비해서 성장통이 너무나도 깊던 유이였다. 발육이 남달랐기 때문에 서서히 차오르는 가슴 사이즈가 은근 유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땐 성이란 것에 대한 지식도 미흡했기 때문에 유이는 그에 대해서 크게 염두를 두지 않았다. 이 세상은 아름다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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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ㄷㄷ 이 분들 추천 달라고 징징거리니까 상상 초월할 정도로 많이 주시네 거봐요! 님들도 할 수 있다니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