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235화 (235/369)

235화

유이도 그제야 바캉스 건을 떠올리면서 민국이 앓고 있는 한 가지 조건에 대해 떠올렸다. 이전에 바캉스 사건 이후 흑마법사와 조우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앓게 된 병의 조건과 더불어… 민국이 평소에 앓고 있던 병의 조건에 대해 들었었다.

그때 민국은 이전에 죽고도 남았어야 할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팬심으로 흑마법사가 치료를 해주었고, 치료해주는 대신 흑마법의 저주로 인해 한 가지의 조건이 걸리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가슴을 한 시간 동안 만져야 하루를 살 수 있는 조건.'

그리고 민국은 여전히 지금도 그 조건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요즘은 은별이라는 여자 친구 덕분에 큰 문제 없이 지내온 모양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은별도 그 현상이 너무나도 익숙해지자 깜빡한 모양이었다.

"으어어 나 죽어어…."

"……."

호흡 곤란을 일으키면서 민국은 정말이지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유이조차도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랄 정도로 말이었다.

평소 표정 변화가 없는 유이를 떠올릴 때 이런 변화는… 민국이 정말로 심하게 아프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이윽고 거칠게 숨결을 토하던 민국이 다시 한 번 가슴을 쥐면서 유이에게로 손을 뻗었다.

"가스음…!"

"……."

유이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누구의 여자 친구와는 다르게 풍만하다 못해 풍족한 가슴…. 하지만 그 살결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짓은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었다.

강철남에게는 차후 시간이 지나면 한 번쯤은 만지게 해줄 생각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강철남과 사귀고 있었을 때고, 그땐 그가 사악한 면모를 지닌 사람이란 걸 몰랐으니까 말이었다.

"가스… 으어어 가스…."

말이 서서히 어눌해지는 민국을 보면서 유이는 자신과의 갈등을 심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민국의 고통. 그리고 서서히 찾아오는 그의 죽음. 하지만 단 한 번도 누군가와 접촉해본 적 없는 자기의 가슴! 유이는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가스으으으…!"

"……!"

필사적으로 다시 한 번 소리를 치는 민국의 모습에 유이는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그간 자신의 가슴을 탐닉하기 위해 바라보던 무수한 남자들의 시선을 그녀도 몰랐을 리 없다.

때문에 그녀는 자연스레 어깨를 굽히고 고개를 숙인 채 다니게 되었고, 최대한 가슴을 가리기 위해 두터운 옷을 입고 다니길 반복하게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어찌 보면 이 큰 가슴은… 장점보단 단점으로 다가오는 작용이 되고 있었다.

"……!!!"

결국 유이는 민국이 뻗는 손을 내치고는 휘리릭 몸을 돌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후다닥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유이는 떠오르는 남자들의 예전 음탕한 시선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만지게 해줄 수 있을 리 없다. 남자란 족손은 하나같이… 믿지 못할 존재들… 믿지 못할 사람들이었으니까!

"으아아…."

홀로 남게 된 민국은 방금 전 유이의 거절에 마음이 쿵하는 걸 느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동정 딱지는 땠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어이없이 죽음을 맞이하면 훗날 자신의 컴퓨터에 있는 야동 파일들을 가족들이 보게 될까 겁이났다. 아니 물론 그것만 겁이 나는 건 아니지만….

"크으… 크아아…."

결국 죽지 않고자 젖먹던 힘을 내면서 침대를 부여 잡고 일어나려는 민국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정말… 팔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심지어 몸이 금방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중력이 자꾸만 몸을 압박하는 심정이 들었다.

"크윽!"

결국 민국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금 쓰러진 그는 더 이상 일어날 기력이 없음에 서서히 눈이 감기는 걸 느꼈다.

이대로… 이대로 어이없이 죽는구나…. 뇌리 속으로 정말이지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감과 더불어, 자신의 죽음에 슬퍼할 은별과 예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직 하렘왕도 건설하지 못했는데… 참으로 비극적인 죽음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며… 민국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

그렇게 민국의 집을 완전히 벗어난 유이였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와서 한참 도로를 뛰다 보니 순간적으로 멈칫하게 되었다.

"……."

생각을 다시 해보면… 민국의 액체는 바캉스 사고 이후 네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생존약이었다. 그런데 민국이 죽게 되면…? 더 이상 그 생존약을 받게 되지 못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네 사람 역시도 아까 전 민국과 마찬가지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것은 즉 슨….

"……."

현존하는 유이 역시도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그것을 깨닫게 되자 유이의 눈이 다른 의미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건 민국 개인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기도 한 것이다.

"……."

홱하고 몸을 민국의 집 쪽으로 돌리는 유이였다. 가슴을 내줄 수 있을 리 없다. 남자 친구도 아니었던, 어찌 보면 생판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에게 가슴을 만지게끔 해줄 수 있을 리 전무했다. 하지만… 하지만…!

"……."

사람을 믿지 못한들, 그녀도 살고 싶었다.

*  *

민국은 아주 깊은 꿈을 꾸었다. 물론 그게 꿈인지 사후세계인지 이때의 민국은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꿈이 아니라 사후세계를 잠시 경험하는 것일 지도 몰랐다.

'여긴 어디? 나는 어디?'

'예끼 이놈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이곳에 오고 지랄이여 지랄은?'

땡강! 머리를 강타하는 아픔에 민국이 '끄악!'하면서 머리를 부여 잡는다. 그리고 자신을 때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소리쳤다.

'아프잖아요 이 사람아! 그런데 당신은 누굽니까?'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자기 소개를 부탁하는 민국이었다. 하얀 천을 입고 있던 주름 진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쯧쯧'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인상이 되게 심술 궂게 생겼다.

'자식아. 너는 네 할아버지도 모르냐?'

'헐? 할아버지?'

참고로 민국은 할아버지를 생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일찍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에이, 뻥치지 맙시다 우리. 솔직하게 털어놓고 얘기하죠.'

'어리석고 호리호리한 자식. 뻥은 무슨 뻥이냐. 뻥튀기나 쳐묵어라.'

'이야, 말씀 한 번 구수하시네.'

참고로 민국은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소개하는 이 사람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의 사진은 한 장도 남겨져 있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이 꿈속인지 사후세계인지도 모를 곳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할아버지의 말을 믿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여긴 어딥니까? 혹시 사후 세계?'

'대충 그런 곳이랑 비슷한 세계지.'

'허헐, 그럼 저 결국엔 죽은 겁니까? 하… 쓔밤….'

극도로 좌절하는 민국을 보면서 할아버지가 묻는다.

'니 고추는 써봤냐?'

'아니, 무슨 초면에 그런 실례되는 말을? 당연히 써봤지요.'

'그래도 손자로서 자랑스러운 짓은 좀 했네. 그럼 여자 친구는?'

'여자 친구 둘 있습니다. 엇흠, 부럽지요?'

'에끼 이놈아. 내가 네 나이 때는 무려 백 명의 여자 친구를 사귀었어. 까불지 마라!'

'히익! 뻥치시네!'

또다시 민국을 때렸던 지팡이가 날아온다. 민국은 이번엔 그 지팡이의 궤도를 읽은 탓에 무사히 피해낼 수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 우리 폭력으론 대화하지 맙시다.'

'에휴 쯧쯧.'

할아버지가 이윽고 지팡이를 내려 놓으면서 말한다.

'그나저나 어쩔 거냐. 여기 계속 있을 거냐?'

'그럼 여기 있어야지요. 죽었잖아요.'

'쯧쯧'하고 할아버지가 다시 말을 잇는다.

'죽긴 누가 죽어? 너 안 죽었어 이놈아.'

'예? 그럼 여긴 대체 뭔데요?'

'사후 세계의 중간 역할 되는 곳이지. 아무튼 이놈아. 손자가 여기 나타난다고 해서 간만에 얼굴 보려고 나타났는데 고추 써봤다고 하니 다행이구나.'

민국은 이 영감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그럼 네가 있는 곳으로 원래대로 돌아가라. 그리고 아직 넌 여기 올 때가 아니야. 너에겐 할 게 더 많다 어린 노무 아이야.'

'아니 이 할아버지가… 대체 할아버지 나이 얼마나 먹었다고 저를 자꾸 어린 놈으로 취급하십니까? 저 이래봬도 스물 한 살입니다!'

'나 69다 이놈아!'

'허헉. 생각보다 많이 늙으셨군요.'

'싹수'하고는 하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젓던 영감이었다.

'아무튼.'

'…….'

'네 딸에게도 얘기 잘 전해주려꾸나. 조만간 만나게 될 테니.'

'예? 딸이요? 헐, 설마 은별이랑 예나 임신한 것도 아십니까?'

'벌써 임신도 시켰냐? 에이 못된 놈!'

또다시 지팡이로 때리려 하자 이번엔 엑스 자를 그리면서 가드하는 민국이었다. 하지만 엑스 자로 가드한들 팔만 더 아프다. 팔을 부여 잡고 '으아악'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그때,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내가 말하는 네 딸은 그 애들이 아니야! 그 애들보다 더 빨리 일찍 나타날 거다.'

'예? 대체 뭔 바짓가락에 오줌 싸는 소리를….'

'빨리 가 이놈아!'

'끄앙!'

결국 엉덩이를 걷어 차이는 민국이었다. 그렇게 민국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으어어…."

"……."

하지만 현실로 돌아왔을 때 민국은 쉽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본래 흑마법사가 달아준 이 저주의 조건이 이러했다.

생명력을 미리 채워두지 않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생명력을 채우려고 하면 눈이 쉽게 떠지지 않고 몸도 물먹은 빨래판처럼 무거운 것이었다. 민국은 한참을 사경을 해매듯이 천장을 향해 손을 올리고 있었고, 나머지 한 손은 이상하게도 어떤 풍요로운 것에 갖다대고 있었다.

"오…."

"……."

민국은 그 풍요로운 것의 감촉을 느끼고는 내심 감탄했다. 대체 이게 뭐시란 말인가? 대체 뭐에 쓰는 물건이길래 이토록 감촉이 좋고 느낌이 좋단 말인가? 민국은 한 번 호기심삼아 그것을 주물럭 해보았다.

"윽…."

그러자 어떤 여인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민국은 그제야 '헉?'하고 깜짝 놀라면서 생각했다.

'설마! 어떤 부위를 누르면 말을 하는 인형 같은 건가?'

그런 건 개소리고, 민국도 이제 슬슬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은 선뜻 뜨지 못했다. 한 몇 분은 경과하고 나서야, 서서히 눈을 뜨게 된 민국이었다.

"……."

그리고 서서히 천장을 바라보는 민국. 천장은 자신의 집임을 증명시켜주고 있었고, 그는 현재 침대에 누워 있었다. 죽기 직전이었는지 침대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민국의 손은 어딘가를 물컹 쥐고 있었다.

"……."

민국은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당연히 그 감촉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

"……."

"오오…."

"……."

"오오오…!"

이윽고 찾아온 절경에 민국이 미쳐 환장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좋아라 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에게 처음으로 가슴을 내주는 유이의 입장에선 정말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가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저도 모르게… 퍼억!

"오… 크억!"

"……."

퍼억! 퍼억! 퍼억!

"크억! 잠깐! 잠깐만요 유이 씨…!"

"……."

"으아악! 나 죽어어!"

기어이 다시금 기절하고 마는 민국이었다. 그가 기절하고 나서야 다시금 몸의 긴장을 풀면서 안도하는 유이였다.

다시금 눈을 감고 민국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은 다음 자신의 가슴 쪽으로 갖다댄다. 참으로 야릇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유이는 애써 무시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참으로 아스트랄한 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부디 1시간 동안은 일어나지 말기를.

============================ 작품 후기 ============================

글 쓰는데 한 시간!

추천하는데 1초!

으아아 추천 줘어 추천 추천 징징 추천 추천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