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야, 심심한데 단합 방송이나 같이 하게 파뿌리 들어와라."
"읭? 행님. 지 이번 주 학교 여행 있는데여?"
서라는 아직 고등학생으로서 대학생들처럼 빠르게 방학을 하는 게 아니었다. 고로 이제 막 기말고사 시험도 끝났겠다 2학기 막바지로 학교에서 단체로 수학여행을 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민국은 절로 탄성이 나오는 걸 느끼면서 서라에게 물었다.
"넌 또 얼마나 있다가 오는데."
"3박 4일이여! 바쁨!"
"와나."
무슨 우연이란 게 이토록 딱 맞아떨어지는지… 마치 운명처럼 세 사람 다 같은 날짜 같은 시간 때에 여행을 간단다. 민국이 말했다.
"넌 안 가면 안 되냐."
"돈 다 냈는데여?"
"야 인마. 남녀공학이잖아. 요즘 남자 새끼들 얼마나 불량하고 양아치 같은데 가가지고 어떤 수모를 당하려고. 친 오빠 같은 오빠로서 그 여행 극구 반대다."
"남자랑 여자랑 따로 갈라져서 가는 건데여? 여자들만 가는 수학 여행이에여!"
민국은 '뭐 그런 수학 여행이 다 있다냐….'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마지막 발악을 하기로 다짐했다.
"야, 하나뿐인 너의 오라버니가 이렇게 씁쓸해 하는데 꼭 가야겠냐?"
"오라버니 진지나 드시고 3박 4일 즐딸!"
그리고 뚝하고 통화를 끊어버리는 서라였다. 수학여행 앞에선 참으로 매정한 아이…. 애초에 친구도 없으면서 수학 여행에 가서 대체 뭘 그렇게 즐겁게 논다는 말인가!
'아니… 내가 이전에 도와줬기 때문에 겉 친구들은 좀 많으려나?'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민국은 3박 4일 동안 홀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무진장 씁쓸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된 이상 간만에 대학교 선후배들과 만나서 술 파티나 짠짠 열어버릴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친목도 안 한 지라 요즘 들어 소홀해졌지.'
물론 민국도 낄 수 있으면 끼겠지만, 괜히 이미지 더럽혀지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터였다. 갔다가는 시도 때도 없이 여자가 꼬일 테고, 그랬다간 은별이가 또 크게 성을 낼 테고 말이었다.
'심지어 요즘은 예나도 많이 경계하는 모습인지라 자제해야지.'
참으로 이상한 세 사람의 사이! 하지만 이젠 그 사이가 서서히 익숙해지는 찰나였다. 물론 앙금은 상당히 남아 있는 듯한 은별이었지만… 그래도 민국을 좋아하는 마음을 저버리진 않아 심히 다행이었다.
"으아! 그러면 나는 뭘 해야 할꼬!"
여행을 가게 되면 할 것도 어지간히 없겠다, 방송이나 줄창 해야할까? 참으로 혼란 그 자체였던 민국이었다. …그러나 민국은 이때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너무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겨버린 게 잘못이었다. 은별이나 예나도 여행 때문에 바빴던 탓에 까먹은 게 문제였다.
* *
"그리그리해서 지금은 제가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
"훗! 방송도 했지요! 하지만 방송이란 것도 계속하니까 체력 빠지고 힘 빠지고! 슈벌 그놈의 시청자들 나랑 같은 막장 성분이 다소 섞인 놈들이라서 욕하는 거 개좋아하고! 으아아아아!"
"……."
"아무튼, 지금은 세 사람 모두 여행을 떠나고 하루 지난 상황입니다. 저는 이렇게 씁쓸히 고독히 혼자 있지요."
민국은 고독을 즐기는 사나이처럼 가볍게 웃음을 지으면서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 모습에 유이는 한참동안 침묵했다. 민국이 물었다.
"유이 씨도 고독했겠지요? 실은 이 약을 얻기 위함이 아닌, 저를 만나서 외로움을 덜 타기 위함임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건 아니…."
"어헛! 때찌! 더 이상 말하면 가슴 터치 해버릴 겁니다! 저 무서운 사람이에요!"
"……."
어지간히 씁쓸하고 심심한 모양이었다. 유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있었다. 진짜 약만 받으러 온 마음이었다. 때문에 민국의 심심함이라던가… 그런 건 아예 배제를 하고 있던 실정. 당연지사 유이는 표정은 침묵 그대로였지만, 속으론 어찌 해야 할 지 난감해진 실정이었다.
"아무튼 그런 고로 유이 씨. 오늘은 심심한데 저랑 같이 놉시다."
"죄송…."
"뭐요? 저랑 같이 노는 게 너무 영광스러워서 죄송하다고요? 허허! 이 사람이? 언제부터 그렇게 예의바른 사람이 되었어! 가슴만큼 마음도 포괄적이고 관대해지신 건가!"
"집에 가야…."
"집? 내 집은 여기잖아! 이야, 설마 유이 씨. 애들 없는 틈타서 저랑 집에서 밤까지 같이 있고 싶으신 겁니까? 단.둘.이? 허허, 이 사람 참!"
"안 된…."
"안 된다니…. 아직 옷도 찢지 않았는데 뭐가 안 돼 이 여자야!"
후우웅! 거친 바람 소리가 민국의 귓전을 스쳐 갔다. 분위기를 타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치던 민국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금세 전신을 적시는 무수한 땀들. 민국의 고개가 자연스레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귀 옆으로 그녀의 얇은 다리가 스쳐 지나간 채로 오똑히 서 있었다. 하지만 맞았다간 골로 가겠지.
"……."
그 무언의 협박에 민국은 덜덜 떨면서 유이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제야 발을 내린 유이가 민국을 보면서 말했다.
"안 되요…."
"……"
"집에 가야…."
애초에 민국과 어울릴 생각은 별로 없었고, 그에게 가끔씩 이끌리는 감정은 있었지만 그게 이성적 감정이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유이였기 때문에… 그녀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벌벌 떨던 민국은 곧 그녀의 진심에, 또한 맞으면 진짜로 죽을까봐 무서운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이거 참… 하는 수 없군요."
"……."
"그렇다면 나도 약을 주지 않겠어! 나랑 조금이라도 놀아주지 않으면!"
두다다다다다다! 잠시 동안 하늘을 높이 날아 보인 민국이었다. 간만에 맞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철푸덕 쓰러진 민국. 끝까지 참으려고 했으나 정말로 너무 문제다! 이윽고 수 초 후 정신을 차린 민국이 유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늘어진다.
"으헝헝헝! 이 가슴 큰 여자야! 가슴은 크면서 마음은 왜 그렇게 좁아! 심심해 죽겠다는데! 어! 좀 놀아주라고! 놀아줘어!"
"……."
"으아아아! 개심심하다고!!!"
사람은 때때로… 엄청 외롭거나 심심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민국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는 정말 미친 듯이 심심해서 떨어지는 나뭇잎 쥐푸라기라도 손에 잡고 찢어버리고 싶었다.
"……."
본래는 맞으면 끝나기 마련인데, 민국이 이토록 구차하게 나오니 진심이란 맘이 드는 유이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확실히 인간 관계에 대해서는 미숙하다 보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간절함에도 믿음을 갖는 버릇이 있었다.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 한들 선천적인 성격이 그러하니, 유이도 스스로에게 참으로 난감할 수밖에.
"……."
"응? 예? 좀만 놀아주십쇼! 한 시간! 아니 두 시간 만! 세 시간은 너무한 거 같으니까 두 시간만 나랑 같이 놉시다! 으어어어! 심심하다고오!"
"……."
일부러 안약을 넣어서 눈물까지 엉엉 흘리고 있는 민국을 보자니 유이도 마음이 약해졌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바캉스 사건 때 자신을 살려준 건 민국이었다. 또한 그는 흑마법사를 통해 일정 조건을 달아 자신의 액체를 항상 공급함으로서… 유이를 계속해서 살 수 있게끔 생명력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따지면 유이가 이런 식으로 갑의 위치에서 행세하는 게 이상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
유이도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민국이 자신에게 이토록 부탁을 해오니 마냥 거절하기 어려웠다.
"으어엉엉!"
"한 시간…."
결국 받은 만큼 주긴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 유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외로움에 사무쳐서 눈물을 흘리던 민국이 '엉?'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유이가 민국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천천히 손가락 하나를 들고 있었다.
"한 시간만…."
"……."
"한 시간만이요…."
결국 허락을 받게 된 민국이었다. 민국은 무슨 100년 동안 무인도에서 혼자 있던 사람처럼 그 손가락을 보자마자 기뻐서 죽을 듯이 환호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 삼창을 하는 민국이었다.
"만세! 만세!"
"……."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게 저토록 좋을까. 내심 이해는 됐지만 그래도 사람에 대한 믿음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유이로서는,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좋아라 하던 민국이 유이에게로 다가와서 손가락을 내밀더니 말한다.
"그럼 한 시간 놀아주는 건 허락 받았으니 이제 가슴 만지는 거 한 시간만!"
"……."
그 뒤의 대답은 불보듯 뻔했다.
"허허허, 밤하늘의 별은 참으로 아름답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유이 씨?"
"……."
눈 근처에 푸르게 멍이 든 상태로 민국은 아직 화창한 겨울 날씨의 태양을 창문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유이는 현재 민국의 안방에 들어와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혹시나 그가 이상한 행세를 취하진 않을까… 묘한 의구심과 함께 말이었다.
"아니, 이봐요. 제가 아무리 그쪽의 가슴에 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에서만 그칠 뿐, 현실에서까지 행동하는 놈은 아닙니다."
"……"
"아, 근데 이실직고 해버렸군요. 훗, 그렇지. 한 때 상상으로 그것을 범한 적이 있었지."
침대에 걸터앉은 민국을 보면서 유이는 가만히 앉아있을 따름이었다. 그녀의 고개가 자연스레 벽면의 시계로 돌아갔다. 아직 시간이 10분도 흐르지 않았다. 얼른 한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지경인데….
"이제 무엇을…."
"무엇을 할 거라냐라. 흐음, 유이 씨는 뭘 하고 싶으십니까?"
놀자고 제안한 건 민국이면서 정작 놀이거리는 유이에게 물어보는 민국이었다. 유이는 그냥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민국은 진심으로 팔짱을 끼고 심도 있게 고충을 하는가 싶더니 손뼉을 딱 치면서 손을 보여주었다.
"이거 합시다 이거."
"……?"
"손바닥 밀기. 어떻습니까. 재밌지 않겠습니까?"
손바닥을 보여주는 민국의 모습에 유이도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 밀기…?"
"예예. 심심한데 손바닥 밀기 게임을 하는거죠. 이거 은근 재밌습니다. 어때요? 같이 합시다!"
"……."
몸으로 하는 게임이니 만큼 좀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민국과 놀아준다는 마음으로 임하기 때문에 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주었다. 민국은 유이가 거절하지 않고 곧장 수응해주자 '오오'하면서 좋아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간에 대치해서 손바닥을 뻗어서 밀기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후후후후, 각오하십시오 유이 씨. 제 손바닥의 테크닉은 제 허리놀림과 맞먹습니다."
"……."
"흐아압!"
이윽고 선제 공격을 하는 민국이었다. 레이디 퍼스트라면서 말이었다. 하지만 유이는 그 공격을 받아주지 않고 여유롭게 피했다. 민국이 도발한다.
"후후, 그렇게 도망만 치실 겁니까? 도망자!"
"……."
그래도 도발엔 받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유이가 손을 뻗는다. 민국은 아무리 그래도 손바닥이니 만큼 위력은 덜하겠지 생각하고 그 손바닥을 그냥 받아줄 마음을 먹었다. 짝!
"…끄억!"
하지만 가볍게 쳤음에도 손바닥이 붉게 물들면서 얼얼해지자 민국은 비명을 질렀다. 유이는 자신이 의도했던 행동이 아니었기에 엎드리면서 비명을 지르는 그의 모습에 눈이 두 번 껌뻑일 수밖에 없었다.
"괜찮…."
"으아아아! 엄청 아파! 조온나 아프다!"
"……."
"으아아아악!"
하지만 더불어 열도 받은 민국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민국이 아까와 같은 손바닥 밀기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
"다시 붙읍시다 이 여자야!"
"……."
"얼른 손바닥 펼쳐요! 덤비십쇼!"
그래도 남자라고 승부욕이 있었다. 유이는 결국 다시 대치를 하고 민국과 놀아주기 위해 손바닥을 펼쳤다. 그때였다. 민국이 비웃음을 그린 것은.
"후후훗!"
사실 민국이 이 게임을 진행한 이유는 각별한 이유 때문이었다. 손바닥 밀치기를 하다가 가끔씩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선제 공격을 했던 사람이 중심을 잃고 그만 상대방이 있는 앞으로 쏠려버리는 것이었다.
'의외로 손바닥도 아파서 당황했지만! 그래도 내 계획은 그대로 이행된다!'
사실 이 손바닥 밀치기도 다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단 사실! 민국은 눈앞에 보이는 큼지막한 가슴을 보면서 손바닥 선제 공격을 시도했다. 당연지사 유이는 받아주지 않고 회피했고, 민국은 그때를 기회로
"어어?"
"……."
"으어어어? 어어! 유이 씨! 피해요 으아아악!"
하면서 자연스레 앞으로 넘어지는 척하면서 손을 유이의 가슴으로 뻗는 민국이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민국의 두 손이 유이의 가슴 근처에 닿을락말락하는 순간!
'만질 수 있…!'
무서운 속도로 민국의 두 손목이 부여잡힘과 동시에 유이가 자리에서 벗어나면서 힘을 주었다. 그러자 민국은 '으아악!'하면서 그대로 바닥에 덩그러니 눕혀질 수밖에 없었다. 강철 방어, 최유이였다. 민국의 성기술(?)가지고는 소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