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강철남 에피소드>
파뿌리 TV에서 가장 인기를 많이 받는 비제이는 게임 비제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비제이들의 웃기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그걸로 스트레스를 푼다.
물론 비제이들마다 컨셉이 다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형식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막장 비제이로 시청자들과 서로 욕을 하면서 즐겁게 노닥거리는 타입이 있고, 어떤 사람은 친분 있는 비제이로 시청자들과 선비처럼 교류하며 점잖게 대하는 타입이 있다.
저마다의 즐거움을 안고 있는 방송들.
자, 여기서 한 번 재밌는 질문을 해보자!
인기는 게임 비제이가 많다만, 돈을 가장 많이 버는 비제이는 어떤 종류일까? 비제이들 중에는 캠코더를 달고 얼굴을 방송에 생생히 보여주면서 돈을 버는 비제이들이 있다. 그런 비제이들은 달풍선을 받으면 거하게 리액션을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보답을 하는데… 그런 비제이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잘 생기거나 조금이라도 예쁘면 날마다 상상 이상의 금액을 벌게 된다.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때문에 게임 비제이나 각종 방송 비제이들은 캠코더를 달고 얼굴을 비추는 비제이들에 반해 큰 수익을 내지 못했다.
아니,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유튜프라는 영상 사이트를 통해서 많은 돈을 벌고 있었고, 심지어 파뿌리 TV 게임 비제이들의 홈페이지에 각자 스폰을 달아서 스폰서를 통해서 돈을 벌고 있었다.
물론 스폰서의 비용은 저마다 다르다. 비용을 업체의 물건을 대신해서 주는 경우도 있었고, 시청자들의 숫자에 많게 광고를 해주면 주는 형식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게임 비제이가 이제는 캠코더 비제이와 맞먹는 수익을 얻기 시작하고 있었다.
물론 게임 비제이들 중에 잘 알려진 비제이들만 비등비등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후후, 많은 돈이 쌓였군.'
민국은 유튜프 정산 시스템에 들어가서 개인 금액을 조회해보았다. 조회수를 비롯해서 보유 시청자들도 많아졌고, 이제는 다달이 끝내주는 금액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은 중소기업이라고 해도 충분하다고 할까? 애초에 민국은 오랫동안 비제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운이 좋게도 여러 번 게이버에 급상승 검색어로 올라가며 주목을 받았었다.
'슬슬 진정한 프로로서 의식을 갖는 것도 좋으려나.'
그런 생각을 내심 하게 될 정도로 민국은 사실상 부유한 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젠 방송을 끊기는커녕 한층 즐겨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로서 생각하게 되면 방송을 하게 될 때 뭔가 재미나게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길 것이었다. 민국은 그 부담감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예, 여보세요. 서민국입니다."
국내 유튜프 비제이 순위권 4위임을 현재 확인한 서민국이 울리는 휴대폰의 전화를 받는다. 참고로 순위권 5위가 남고딩, 6위가 콩딱지였다.
"아, 은주 누나."
민국은 오랜만에 연락을 하게 된 파뿌리 TV 업체의 은주와 대화를 나누었다. 스폰서 계약이 있을 때 파뿌리 TV와 비제이 간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었다.
"컴퓨터 스폰서 제안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글쎄요."
꾸준히 방송을 진행하다 보니 스폰서들도 끊이지 않고 제안이 왔는데, 민국은 어떻게 할까 잠시 동안 고민하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일단 가서 얘기 나눠보도록 할게요."
애초에 스폰서를 제안하는 업체와 정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결정을 하는 게 올바른 방침이었다. 민국도 이젠 스폰서와 대화를 나누는 부분은 프로에 가까웠으니까. 곧장 집밖으로 나가는 서민국이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민국은 김은주가 소개시켜준 스폰서 업체 사장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었다. 스폰서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주는 수익 금액이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엔 거절하게 된 민국이었다. 이유는… 수익을 돈이 아니라 컴퓨터 부품으로 지불하겠다는 것이었다.
'집에 컴퓨터 부품 충분히 많습니다.'
그동안 스폰서를 받으면서 쌓이고도 쌓인 컴퓨터 부품들이었다. 아직 돌아가고도 남는 본 컴퓨터를 생각해서라도 민국은 최대한 자제했다. 어찌 됐든 결국엔 스폰서 계약은 물건너가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민국이었다. 어차피 아쉬울 것도 없겠다, 회사를 빠져나가려는 찰나였을까.
"어?"
민국의 눈에 돌연 테이블에 있는 어떤 서류가 들어왔다. 천천히 손으로 그 서류를 들어 보이는 민국이었다. 막 업체 사장과 이야기를 끝내고 대기실로 들어온 은주를 향해 민국이 물었다.
"은주 누나. 이거 설마 스폰서 계약한 비제이들 주소 적혀 있는 거예요?"
"아, 그래. 이리 줘."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은주도 많이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양이었다. 그래도 어른스럽게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손을 건넨다. 민국은 손을 뻗어 서류를 건네주었다. 물론 건네주기 직전 민국은 낯익은 이름을 확인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강철남.'
실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최유이 사건 이후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했다. 듣기로는 스폰서 계약을 했다가 인기가 시들시들해지자 계약도 파기된 거로 아는데,
'그럼 이건 이전에 계약했을 때 적었던 주소겠군. 흐음.'
하지만 고작 몇 달 사이에 살고 있는 집이 바뀔 가능성은 현저히 적었고, 민국은 그 주소를 눈으로 쭈욱 훑어 외우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윽고 서류를 건네준 민국이 은주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회사를 나왔다.
'강철남, 강철남이라. 흐음, 그 고약한 자식.'
솔직히 쪼매 열받을 수밖에 없었다. 민국도 강철남이 그런 놈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단합 방송을 하면서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했었으니까. 그 녀석이 그렇게 약삭 빠른 픽업 아티스트라고 가정할 때, 예전 민국의 술 파티에서도 어느 정도 자기와 친분이 있는 여자들을 한 번씩 계산을 했다는 거 아닌가? 그 중에 유이를 먼저 노리려고 했던 것이고.
'맞았던 것도 생각하면 은근히 열받고 말이지. 그래, 결심했다.'
민국은 이참에 주소도 알았겠다, 각오를 다지기로 했다. 어떤 각오를 하냐면….
'이 새끼 괴롭혀주러 가야지!'
아직도 예전에 화장실에서 얼굴 맞았던 게 기억난다. 민국 스스로도 너무나도 사랑하는 자신의 잘 생긴 얼굴. 그 얼굴에 상처를 줬다는 게 도무지 생각해도 화가 났다.
"크크, 각오해라 강철남! 내가 간만에 찾아가서 복수를 해주마!"
유치찬란한 계획을 꿈꾸면서 민국은 심심하겠다 강철남의 집으로 곧장 향했다.
'잘못 외운 게 아니라면 이쪽이 맞는데 말이지.'
강철남은 파뿌리 TV 업체 쪽과 가까운 위치에서 살고 있었다. 민국은 회색 콘크리트로 된 바닥을 걸으면서 서서히 사람이 좁아지는 좁은 길에 자리했다. 전봇대가 근처에 있었고 돌아가는 모퉁이가 있었는데, 민국은 네 갈래 길로 나눠지는 그곳에서 정면으로 걸음을 이어갔다.
"흠."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민국은 강철남의 집으로 보이는 곳에 당도했다. 꼴에 1층짜리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겉보기에 유달리 멋져 보이는 집은 아니었고, 민국은 딱 봐도 혼자 살고 있겠다고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한 번 맞는지나 확인해볼까."
민국은 대문의 인터폰의 초인종을 클릭했다. 그러자 집 내부에서 딩동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민국은 인터폰에 자기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녀석이 확실한지 알기 위함이었다. …이윽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네, 누구십니까."
'맞군!'
단 번에 집을 찾아내는 명석한 두뇌의 서민국이었다. 민국은 애써 목소리를 가라앉게 한 다음에, 재차 알아보기 위함에 질문했다.
"엇흠, 택배가 와서 그러는데요. 강철남 씨 댁 되십니까?"
"예. 저인데요."
"혼자 살고 계시구요?"
"…? 예, 근데 그걸 왜."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택배 대문 앞에 놓고 갈 테니 가져 가십쇼."
그리고 택배 대신 근처에 있는 강아지 똥을 발견한 서민국이었다. 떨어져 있는 나무 막대기로 그것을 대문 앞에 옮겨놓고 후다닥 강철남의 집에서 도망간다. 투웅. 잠시 후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민국은 모퉁이 저 편에 숨어서 멀리서 지켜보았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강철남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와, 오랜만에 보네 저 썅노무 쉐끼.'
최유이 사건 이후 조금이라도 반성을 한 기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패션을 비롯해 왁스로 떡칠한 머리하며… 아무리 봐도 노답 같았다.
"아씨, 뭐야."
대문 앞에 택배는 없고 강아지 똥만 있음에 인상을 험상 궂게 찌푸리면서 돌아가는 강철남이었다. 그제야 모퉁이에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민국은 다시 성큼성큼 초인종 앞으로 향했다.
"……."
전봇대도 근처에 없고 보고 있는 CCTV도 없겠다, 민국은 있는 힘껏 인터폰의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했다.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아이씨!"
이제 막 집으로 들어간 강철남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민국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금 후다닥 모퉁이로 달려갔다.
워낙 도망가는 걸 잘하다 보니까 달리기 역시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빠른 속도로 대문을 나왔던 강철남이 얼굴이 붉어진 표정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없음에 인터폰을 쳐다보다가 현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후후후후후."
그것을 바라보면서 민국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야. 마치 어릴 때 초인종 가지고 장난치다가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걸려서 반성문 1장 썼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
동심이 떠오르는 추억의 장난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그 추억을 회상함과 더불어 강철남에게 복수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다. 아주 어이없는 행동이라도 좋다. 이걸로 코 한 번 납작해주게 만들 수 있다면…. 민국은 각오를 다지고 일단 근처 다이소로 향했다.
다이소에서 구비한 것은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검은 가면과 모자였다. 그리고 지문이 남지 않도록 주의하기 위해 볼품 없는 건전지 하나도 구매했다. 요즘은 손장갑을 껴도 지문을 체크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민국은 건전지로 마구 클릭해서 지문의 흔적을 없앨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주 철저한 그만의 복수였다.
'후후, 최유이 씨도 나름대로 바라고 있을 거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너를 무찔러주마.'
사실상 맞았던 게 화가 나기도 하고, 지 친분 이용해서 스폰서를 얻은 주제에 잘 사는 모습이 괘씸해서 그러는 것이었으나… 명분은 그렇게 잡아보는 민국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다시금 준비를 하고 강철남의 집 대문 앞으로 향했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는… 민국은 건전지를 꺼냈다. 그리고 인터폰을 향해서 다시금!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
"나와 이 자식아, 크크크크. 어떠냐 이것이 나의 패기. 딩동 패기다."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어떤 개새끼야아!"
현관문을 벌컥 열어 젖히고 뛰쳐 나오는 강철남이었다. 민국은 기다렸다는 듯 후다닥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도망가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강철남이 눈으로 포착하는 게 뒤늦었다. 극도로 화가 난 강철남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바깥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이번엔 근처를 찾아볼 생각이었는지 민국이 있는 모퉁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민국은 그 모퉁이에서 벗어나 또 다른 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
민국이 방금 전 있던 모퉁이를 훑어본 강철남이 아무도 없음에 '씨발….'하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민국은 킥킥 웃으면서 이번엔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가볍게 컵라면 하나를 먹은 민국이 이번엔 남은 컵라면의 국물을 보고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딩동~
"하… 누구십니까?"
"택배입니다."
"저기요, 자꾸 그런 식으로 장난치면 경찰에 신고해버립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
"무슨 소리신지… 저 진짜 택배원인데요."
인터폰에 얼굴도 보이지 않았으니, 강철남은 반신반의했다.
"그럼 인터폰에 얼굴을…."
"하… 불쾌하군요. 그냥 상자 놓고 가겠습니다. 누가 가져가든 말든."
그리고 무언가를 내려놓는 민국이었고, 강철남은 입을 꽉 다물었다. 뭔가 수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만일의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는 일단 대문 앞으로 나가 보았다. 그러자….
[먹다 남은 라면 국물 택배로 드립니다. 맛있게 드십쇼]
라는 종이의 글자와 함께 놓여 있는 라면 국물이 있었다. '씨발!'하고 컵라면을 발로 깡 차버리는 강철남이었다. 그러자 어이없게도 컵라면의 국물이 강철남의 바지에 묻어버렸고, 강철남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경찰에 신고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민국은 그러거나 말거나 모퉁이에 숨어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