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민국은 자고로 싸움이란, 어떤 형식으로든 이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물론 정당한 룰 안에서 싸우는 것이라면 그 룰 안에 맞는 행위로 게임을 끝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여긴 길거리. 룰이 없는 길거리 싸움으로서 민국은 그에 걸맞는 싸움질에 타고났다.
비록 상대방이 격투기를 배웠든 자기보다 힘이 쌔든 싸움을 잘하든 상관없다! 민국은 민국만의 방법으로!
“꼬집기!”
“으어어어!”
“악! 씨발롬아! 존나 아프다고! 얼굴 긁혀버려라!”
휙휙! 뚱뚱한 남자와 민국은 서로 얽히고 얽혀서 싸움 중이었다. 남자는 그래도 주먹을 휘두르면서 민국을 때리고 있었는데, 민국은 주먹보다 자신의 할퀴기가 더 강하다는 듯 면면에다가 대놓고 손톱을 긋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그 손톱 긁기가 상당히 효과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남자가 괴로워하면서 민국에게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 딜도! 망가!”
어차피 달리기도 느린 뚱뚱한 남자. 민국은 그의 등을 향해 점프해서 드롭킥을 시도했다. 하지만 드롭킥의 사정 거리는 짧아서 공중에 띄어졌던 민국의 몸이 처참하게 바닥에 내려올 뿐이었다.
“커헉! 바닥에 떨어지면서 명치가!”
“…….”
“으어어!”
도망가던 남자가 쓰러져서 괴로워하는 민국을 보고 재차 돌아온다. 민국은 ‘뭐 저리 비겁한!’하면서 그를 욕했지만, 사실상 민국도 별 반 다를 게 없었다. 이윽고 남자가 민국을 깔아뭉개고 주먹으로 내지르기 시작하자 민국은 그의 소중한 거시기 쪽을 있는 힘껏 주먹으로 내리꽂기 시작했다. 퍼억!
“으억!”
남자가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나다가 그곳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민국은 쓰러진 그 남자에게로 달려가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그 신발의 안쪽을 남자의 얼굴에다가 들이댔다.
“발 안 씻어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내 신발이다 자식아!”
“으어어!”
“죽어라! 죽어 자식아!”
정말이지 처참한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격투기 선수도 이 싸움을 보면서 끼어들 엄두는 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 처참한 사투 끝에 결국 남자는 지쳐 버렸는지 반쯤 실신한 모습으로 드러누웠다. 민국은 그제야 들고 있던 신발을 자신의 발에 다시금 장착했다.
몸을 홱하고 폼나게 돌리면서 코트까지 휘날린다. 후우웅…. 쌀쌀한 바람이 불어 닥치고, 민국은 당면의 은별을 향해 구두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왔다. 또각 또각.
“괜찮습니까? 아가씨.”
“…….”
“많이 다치지나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일어나십시오.”
막 폼나게 코트 깃까지 세우면서 손을 내미는 민국이었으나 하나도 멋지지 않았다. 일단 싸움 자체가 치사 빤스에 개판 그 자체였으니까 말이었다. 은별은 잠시 동안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가 일단 물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분명 아까 휴대폰으로 연락할 때 만나지 않기로 했던 거 같은데.”
“사실 은별이 널 스토킹하고 있었지.”
“뭐?”
“저 녀석이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말이야. 근데 어디에서 나타날 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으니까 생각을 했지. 아, 은별이 뒤를 쫓아야겠다. 그러다 보면 나오겠지. 라고.”
“…그럼 너도 날 스토킹했다고? 바보 아니야?”
“엇흠, 진정한 남자 친구란 여자 친구 스토킹은 아무것도 아닌 법!”
“개소리를 하시네요! 아무튼….”
한 번 박력 있게 소리를 질러주긴 했으나,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었다. 민국이 없었으면 큰 일이 날 뻔했으니까. 그가 내밀고 있는 손을 그제야 잡은 은별이 고마움을 표했다.
“고마워….”
“훗.”
“…안 도와줬으면 큰일날 뻔했네.”
‘일어나시오 여인이여.’하면서 민국이 그녀를 일으키려고 했을 때였다. 은별이 ‘읏’하면서 인상을 찌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민국도 반사적으로 그녀의 아래 무릎을 보게 되었다. 무릎에 꽤나 심한 타박상이 있었는지,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민국은 그 모습을 보고는 은별이를 나머지 손으로도 부축해줘서 일으켜 세워 주었다.
“저거 나쁜 놈일세. 저 놈이 저렇게 만든 거지?”
“…….”
은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국은 은별이도 일으켜 세웠겠다, 다시금 드러누워 있는 그 남자에게로 향했다.
일단 그간 스토킹을 해온 이유와 더불어 마땅한 처벌을 주는 게 올바를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고 다가가던 찰나였다.
갑자기 드러누워 있던 남자가 자기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은별이 그것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다가 소리를 질렀다.
“위험해!”
“응? 헉!”
“으아아!”
휘익!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난 남자가 무언가를 홱 그었다. 민국은 가까스로 뒷걸음질 쳐서 그것을 피해냈다. 하마터면 그여서 심한 상처를 입을 뻔했다. 그 증거로, 남자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4센치 짜리의 작은 나이프였다. 은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민국은 혀를 내둘렀다.
“와 저 미친 놈… 너 진짜 미쳤구나?”
“너, 너 때문이야….”
남자는 모든 책임을 민국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것처럼 나이프를 양손으로 꼿꼿이 들었다. 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민국을 향한 살의는 분명 진심이었다.
“네가 없었더라면 남고딩은 내꺼 였을 텐데! 너, 너 때문에!”
민국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딜 가든 싸이코는 당연지사 있는 법이었다.
천하의 막장 비제이에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서민국조차도, 이따금씩 제정신이 아닌 여자 팬이 쪽지를 보내오는 경우가 있었다. 같이 하룻밤 자지 않겠냐는 둥, 만나고 싶으니 집 주소를 알려달라는 둥…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있는 만큼 그런 또라이들도 상당수 존재하는 법이었다.
민국은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심한 부류에 속하는 상대가 바로 이 스토커라고 생각했다.
“네꺼는 무슨 네꺼야. 남고딩 빤스 만져보기나 했어? 겨털 냄새 맡아보기나 했냐? 뭣도 모르는 놈이 까불어.”
“뭣…!”
“야! 남고딩 자다 일어났을 때 입냄새 맡아본 적 있냐! 엄청 구리구리한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묘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지! 그래서 가끔은 이빨 닦지 말라고 하려다가 혼날 까봐 꾹꾹 참을 때가 많은 법이야!”
느닷없이 은별에 대한 속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하는 민국이었다. 은별은 ‘저 새끼 왜 저래!’하는 얼굴로 민국을 노려보면서 얼굴을 붉혔다. 민국은 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집에는 내꺼보단 작지만 상당한 크기의 딜도가 있지! 하지만 나랑 관계를 한 뒤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먼지가 많더군! 침대 아래에 항상 숨기는데 모를 리가 있나! 아무튼 이런 강은별에 대해 네가 아는 게 있어 새끼야!”
“미친놈아! 그만해!”
짜악! 강하게 민국의 등짝을 때리는 은별이었다. 민국은 졸지에 등짝을 맞고는 ‘으어억! 개아프다!’하고는 소리를 지르면서 전율했다. 이윽고 다시 진지한 얼굴로 상대방을 노려보는 민국이었다.
“뭣도 모르면서 아는 채 하지 말란 말이다! 팍씨!”
민국의 강렬한 위협에 남자는 나이프를 든 채로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떨어댄다.
“거, 거짓말치지마… 내 사랑… 남고딩이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긴 뭐가 없어! 내가 증인이야 임마!”
“그만하라고 멍청아!”
은별이의 강한 제지와 더불어 민국은 스토커를 계속 위협하고 있었으나, 사실 정신적으로 쫄릴 수밖에 없었다.
‘나이프다. 나이프다! 슈발! 어떡하지?’
아무리 4센치짜리 나이프라고 해도 그래도 찔리면 무지하게 아플 것이다. 코트가 그나마 겹겹이로 되어 있는거라 방패 역할이 조금은 되어 줄 수 있다고 해도, 그래도 작정하고 미친 짓을 저지르는 놈에게서 쉽게 이길 수 있을 수는 없었다.
민국은 자칫했다간 숨통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음에 본능적으로 여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 번째 루트, 은별이를 안고 도망간다. 아니야. 딸치고 와서 지금 힘이 없어.’
‘두 번째 루트, 날아드는 칼의 궤도를 파악하고 손목을 붙잡아서 멈추게 한 다음에 그대로 팔을 분질러 버린다. 가능할 리가 슈밤!’
‘세 번째 루트… 그렇다면!’
스토커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은별은 그런 민국을 보면서 ‘빨리 도망가지 않고 뭐해!’하면서 민국의 옷자락을 늘어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민국은 그런 은별을 제지시키면서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래, 방법은 존재한다. 조금 무리수 같긴 하지만 얍삽한 방식으로 싸움에서 승리하는 민국의 장점을 그대로 이용한다면!
“으어어!”
이윽고 남자가 타이밍을 노리다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민국은 이때를 노려서 자신의 필살기를 꺼내들었다. 바로 강철남과 싸울 때도 훼이크 용으로 사용했던…! 갤럭시 S 엑티브였다!
‘방수가 되는 초특급 휴대폰! 하지만 그만큼 던지는 위력도 대단하다!’
딱 직진으로 달려오고 있다. 그럼 그 충격을 그대로 이용해서! 민국은 야구 선수처럼 어깨를 뒤로 당겼다가 그대로 갤럭시 s4를 수중에서 던져버렸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상대를 향해서 말이었다.
“으어…!”
달려오던 남자의 코뼈에 정확히 적중하는 갤럭시 s4였다. 확실히 단단함이 상당했던 지라 남자의 코뼈를 부러뜨리다 못해 코피를 내는데 성공까지 했다.
이윽고 그 남자가 큰 타격을 입고 허리를 숙이자 민국은 빠른 속도로 달려가서 녀석이 쥐고 있는 칼의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칼을 힘싸움으로 어떻게든 뺏어낸 다음에 녀석을 발로 밀어찼다. 퍼억!
“…….”
처음으로 그나마 정상적인 싸움의 방식을 보여준 서민국에 은별은 입을 다물었다. 민국은 핵핵거리면서 칼을 은별이에게 건네주었다. 4센치짜리 날이 선 나이프는 으스스했다. 민국은 이젠 진심으로 싸울 맘이 들었는지 쓰러진 남자의 머리 끄덩이를 붙잡았다.
“야 이 자식아.”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언제 미쳐 날뛰었냐는 것처럼, 민국에게 마지막 흉기조차 빼앗기자 비굴하게 구는 모습이었다. 민국은 그런 남자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용서해줄게.”
“…….”
“다만 그건, 내가 이 사건을 해결해주는 멋진 남자로 장식되기 위해 너를 한 대 때린 뒤부터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민국은 곧장 그의 얼굴로 주먹을 날렸다. 퍼억! 신음을 터트리면서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버린 남자. 이윽고 뒤척이면서 그가 다시 일어나려 하자 민국은 ‘일어나지마 가만히 있어. 기절한 척 해 새끼야!’하면서 그를 발로 마구 밟기 시작했다.
은별은 그것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방금 전 떨어뜨렸던 휴대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자신의 휴대폰을 곧장 주워든 은별. 다행히 휴대폰에는 큰 흠집도 없었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작동됨을 확인한 은별은 곧장 경찰서에 연락했다.
“여보세요. 네… 거기 경찰서죠?”
그리하여, 은별이를 그동안 괴롭혔던 스토커를 체포하는데 무사히 성공했다. 만일 민국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정말이지 큰 문제가 되었겠지. 물론 민국은 스토커를 똑같이 때린 행위로 폭행죄로 고소당할 뻔했으나… CCTV를 비롯해 은별이라는 증인이 있던 지라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다.
스토커 역시도 훈방조치 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민국에게 어지간히 굴욕을 당해서인지… 그 후 은별이에게는 눈길조차 안 주는 모습이었다.
“훗, 약한 자식. 이래서 인간이란 나약한 동물이란 거로군.”
“…잘 논다 정말.”
뭔가… 민국이 현명하게 해결해준 것 같긴 한데 참으로 막장스러운 느낌이었다. 이래저래 복잡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은별은 이마로 손을 올렸던 민국의 모습을 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너.”
“응? 왜 그러십니까?”
“손 이리 줘봐.”
이윽고 이마에 올리고 있던 손을 잽싸게 자기 쪽으로 당기는 은별이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확인한 은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래도 아까 전 스토커가 처음 칼을 꺼내들었을 때, 그 칼에 손바닥이 조금 긁힌 모양인지 상처가 있었다. 피도 뚝뚝 나다가 굳어버린 모양이었는데….
“상처 난 거 알고 있었어?”
“헐. 언제 상처가 났다냐.”
“…….”
민국도 전혀 몰랐는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모습. 은별은 일단 상처부터 치료해주자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