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그래서… 세 번째 컨텐츠는 뭔데?”
“세 번째 컨텐츠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컨텐츠만이 남은 실정이었다. 남고딩은 두 번째 컨텐츠가 끝날 때까지 얘기를 하지 않은 세 번째 컨텐츠에 꽤나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이윽고 현대왕이 웃음 지으면서 두 팔을 벌렸다.
“오늘의 우리 둘 사생활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은별은 한참동안 말을 맺지 못했다.
“뭐어?!”
“왜? 충분히 괜찮은 컨텐츠 아닌가?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을 열렬하게 보여줄 수 있는 슈퍼 컨텐츠!”
“…야. 지금 그게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현대왕이 제안한 세 번째 컨텐츠는 이런 것이었다. 두 사람의 사생활을 캠을 통해 열렬히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오늘 밤까지 쭈욱 진행하는 것이었다.
남고딩은 극구 반대했다. 안 그래도 방송이란 건 사람의 진을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오랫동안 하면 방송을 어떻게 살려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프로 의식 때문에… 방송 진행 도중에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방송을 밤까지 진행한다고?
“뭐 어때? 어차피 우리가 일상 생활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되는 건데.”
“…이게 스토커 자극하는데 충분히 통한다고 생각해?”
현대왕에게 최대한 얼굴을 들이밀면서 질문하는 남고딩이었다. 현대왕은 은근슬쩍 캠을 곁눈질했다. 이윽고 시청자들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하는 현대왕이었다.
“아마 상당히 자극받았을 걸. 지금도 분명히 받고 있을 거야.”
“…….”
본래 집착형 스토커는 상대방의 의사는 생각지도 않고 기대하는 것이 많은 법. 현대왕은 그 심리를 정확하게 노렸다. 이윽고 남고딩이 한참동안 머뭇거리자, 설득을 늘어놓는 현대왕이었다.
“너무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 없어. 네가 생각하는 만큼 부담을 가질 컨텐츠도 아니고, 그저 우리가 일상 생활하는 모습만 이 방에서 보여주면 되는 거야.”
“…그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게 굉장히 어려울 거란 소리야. 가면도 계속 쓰고 있어야 하니 어지간히 답답할 테고.”
“괜찮아. 날 믿어.”
이번에는 현대왕이 남고딩에게 얼굴을 들이밀면서 말했다. 속삭임과 동시에 그녀를 붙잡는 그의 손. 무의식적으로 그 손을 내려다보던 남고딩이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현대왕의 얼굴이 떠올랐다. 적어도 그 눈빛은 진심으로 남고딩을 사랑하고 있었다.
“…….”
돌이켜보니… 현대왕의 첫인상은 정말이지 답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변태였었다. 하지만 그와 계속 사귀면서 징글징글한 변태의 면모를 봄과 동시에… 보통 남자가 갖기 힘든 상당한 책임감과 사랑을 느꼈다. 남고딩은 예나 건을 상상하면 항상 욱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민국의 이전 선했던 행동들이 자꾸만 뇌리 속에 엉키자 꿋꿋이 참게 되었다.
다르게 보면 많이 신뢰를 하고 있다 보면 되었다.
“그럼.”
“…….”
“한 번 믿어볼게….”
결국엔 져주는 남고딩이었다. 그런 남고딩의 허가에 현대왕은 피식 미소를 머금고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노골적인 쓰다듬에 남고딩은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조금 돌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윽고 방송 캠 쪽으로 얼굴을 돌린 현대왕이 소리쳤다.
“자! 마지막 컨텐츠, 일상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기! 지금부터 약 다섯 시간 동안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밥은 어떻게 먹을 거야?”
“아, 밥 먹을 때는 캠을 잠시 꺼두고 소리만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남고딩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청자들은 기존 비제이들이 선뜻 보이지 않은 신선한 컨텐츠에 당연히 좋아할 따름이었다.
[설마 ㅅㅅ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나?]
[ㄴ그걸 보여주겠냐 노답 새끼야]
[ㄴ?너 지금 나한테 욕했냐? 지금 나한테 욕한 거냐고!!!!(버럭!)]
[기대된다]
음란한 생각을 늘어놓는 시청자들의 면모에 남고딩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현대왕.
“시청자들이 한 판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들어주는 게 어때?”
“영구차단 당하고 싶으면 그러시던가.”
어찌 됐든, 그렇게 다섯 시간 가량의 일상생활 컨텐츠가 시작되었다. 컨텐츠의 내용은 간결했다.
그냥 가면을 쓰고 두 사람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모습. 물론 캠으로 볼 수 있는 방은 안방이 전부였고 거실이나 부엌에 가 있을 땐 소리만 들어야 했다. 고로 현대왕은 소리가 어느 정도 들릴 수 있도록 마이크의 들리는 소리를 최대로 조절했다.
방송을 하는 방송인답게 마이크도 일반인이 사용하는 마이크가 아니었다. 이윽고 셋팅을 마친 현대왕이 남고딩을 돌아보았다.
“자, 그럼 방송하자.”
“…….”
“여러분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세 번째 마지막 컨텐츠 방송!”
드디어 시작된 일상생활의 방송이었고 시청자들은 채팅창으로 떠들썩거렸다. 애초에 다섯 시간 동안 방송 비제이의 멘트도 없이 진행되는 방송이었기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왕의 일상 생활을 볼 수 있단 사실에 그의 상당히 많은 팬들은 계속 방송에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남고딩의 팬들도 똑같았다.
“자, 그럼.”
이윽고 의자에서 일어난 현대왕이었다. 그의 기다란 다리와 커다란 어깨가 멀리에서 드러나자 시청자들이 크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ㅅㅂ… 다리 봐]
[어깨 지리네 전투 머신인가]
랭킹 1위 막장 비제이라는 겉모습과는 확연히 다르게, 속모습은 연예인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난 모습이었다. 캠으로 비춘 남고딩의 전신도 마찬가지였다.
[다리 진짜 가늘다 쩐다]
[피부 섹시하네 갑자기 고기 먹고 싶다]
[와 작은데 뭔가 쩐다]
감탄과 성드립이 난무하는 시청자 채팅방. 현대왕의 방송을 익히 보던 시청자들은 남고딩을 향한 성드립을 끊일 줄 몰랐고, 반대로 남고딩의 팬들은 현대왕 팬들의 그런 철없는 멘트에 화를 낼 따름이었다.
[남고딩 가지고 성드립하지마라 오타쿠 같은 놈들이!]
[네 얼굴이 더 오타쿠다. 피규어 만지면서 부카게 할 쉐끼]
[현대왕 팬들은 다 노답이구만 ㅉㅉ]
[뭐라고? 노답인 거 이제 알았냐? 새끼야!]
왁자지껄 붙고 있는 시청자 채팅방이야 원래 그러했으니, 현대왕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윽고 남고딩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거실로 향하는 현대왕이었다. 그는 마이크에 최대한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담가질 거 없으니 평상시처럼 행동만 해. 나도 그렇게 할 테니까.”
남고딩은 확실히 현대왕이라면 시청자들의 눈길이 있는 와중에도 평상시처럼 행동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남고딩은 좀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밥부터 먹어볼까?”
“…바로 캠 꺼야겠네.”
“이따가 식사 차리면 끄도록 하자. 내가 밥 준비할 테니까 침대에서 놀고 있어.”
남고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상생활이라 쳐도 방송을 하는 건 맞으니까. 이윽고 침대로 향한 남고딩이 그곳에 가만히 걸터앉았다. 자꾸만 캠으로 시선이 꽂혔지만 애써 모른 채 할 따름이었다.
[얼굴 보고 싶다 남고딩]
[얼마나 예쁘게 생겼을까]
이번엔 남고딩의 옆라인에 관련해서 떠들고 있는 시청자들이었다. 남고딩은 그런 시청자들의 채팅방을 보다가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현대왕의 팬들답게 하나같이 변태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길 어연 10분. 간단한 밥상과 함께 식사를 차려온 현대왕이 안방으로 그것을 들고 들어왔다.
“자, 그럼 밥 먹어야 하니까 잠시 캠 끄도록 하겠습니다.”[으아 ㅅㅂ]
[아노돼 무슨 재미로 보라고!]
“그냥 라디오 시청한다고 생각해 이것들아.”
그리고 캠을 뚝 꺼버리는 현대왕이었고, 정말로 꺼졌는지 재차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휴우.”
이윽고 캠이 꺼졌음을 확인한 현대왕이 차려둔 밥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먼저 밥상 앞에 앉아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남고딩이 물었다.
“제대로 꺼졌어?”
“다 확인했지요. 이제 벗자.”
그리고 가면을 벗는 현대왕. 남고딩 역시도 가면을 천천히 벗었다. 혹여나 캠을 통해 보이진 않을까 불안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 확인했다고 하니 안심하는 수밖에. 이윽고 가면을 벗은 두 사람이 얼굴에 땀이 차 있자 슥슥 닦는 모습이었다.
“얼굴에 땀보소.”
현대왕이 차디찬 물수건을 꺼내서 남고딩을 먼저 닦아주었다. 남고딩은 느닷없는 그의 친절에 잠시 당황하다가 가만히 받았다. 이윽고 남고딩을 닦아준 수건으로 자신의 땀도 닦은 현대왕이 수저를 들었다.
“자, 그럼 먹읍시다 남고딩 씨.”
“…그래요 현대왕 씨.”
정말 이렇게 방송을 진행해도 되는 것인가 의혹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끼니부터 채우자고 생각하는 남고딩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현대왕이 돌발적인 행동을 하였다.
“아니? 고딩아!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
느닷없이 소리치는 현대왕의 행동에 남고딩이 물음표 어린 얼굴로 쳐다보았다.
“내가 뭘?”
“아닛! 고딩아 그러면 안 돼! 아무리 캠이 꺼져 있다고 해도 지금 방송을 진행하고 있고 우리 목소리가 시청자들에게 들릴 텐데!”
“…….”
“뭐? 시청자가 무슨 소리를 듣든 상관없다고? 고딩아! 정말 넌 날 지독히 사랑하는구나!”
캠은 꺼져 있고 오로지 소리만 들리겠다, 현대왕은 짓궂은 장난을 치려는 것이었다. 남고딩이 수저를 세게 내려놓으면서 소리쳤다.
“웃기고 있네…! 내가 언제 그랬어!”
“아앗! 고딩아 그렇게 말하면서 내 츄파츕스를! 으아아! 가버렷!”
“미친놈이!”
현대왕을 수저로 한 대 때리려는 남고딩이었다. 후다닥 자리에서 벗어나 도망간 현대왕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농담입니다.”
“…….”
그리고 남고딩의 노화가 풀리자 슬그머니 자리로 돌아오는 현대왕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붓하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사죄의 의미로 이거 드세요.”
“굳이 줄 필요 없거든? 내가 알아서 먹을 거야.”
“어허, 우리 애기. 가끔은 오빠가 말하는 것도 들어야지?”
“누가 오빠야? 동갑 주제에….”
젓가락으로 선심하게 반찬을 골라 주는 현대왕의 행위에 남고딩은 투덜거리면서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남고딩은 뒤늦게 서야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그의 장난으로 그나마 안고 있던 방송에 대한 부담감이 훨훨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 *
‘끝났네….’
대학 수업을 마치고 늦게 집으로 돌아온 예나는 가방부터 정리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을 줄기차게 보내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그녀는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손버릇으로 파뿌리 TV에 접속했다. 당연히 그녀가 행하려는 행동은 한 가지였다.
‘…….’
현대왕의 방송에 접속하는 것. 그녀가 파뿌리 TV라는 사이트를 알게 된 것도, 인터넷 방송 비제이라는 것도 알게 된 건 전부 현대왕… 서민국 덕분이었다. 만일 그가 방송을 하지 않았더라면 예나는 이런 건 아예 모른 채로 살았을 것이다.
‘…….’
그렇게 현대왕의 방송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순간이었다. 예나는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오늘의 방송 제목이 보였던 것이다.
[커플 단합 방송!]
그 글자는 예나의 심장을 뭔가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보통 혼자 방송할 때의 모습을 즐겨 보던 예나로선 당연히 기분이 이상할 수밖에….
“아….”
이윽고 예나가 방송에 접속했을 때였다. 그러자 익숙한 안방의 모습과 함께 익숙한 두 사람의 모습이 이목에 들어왔다. 예나는 단 번에 서민국과 함께 있는 사람이 강은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뭐하는 거지…?’
난리 부르스인 시청자 채팅방에 물어보니 대충 어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민국이가 내세운 오늘의 컨텐츠, 커플의 모습을 일상생활로 보여주는 컨텐츠였던 것이다.
“…….”
예나는 이를 막연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