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본격 19금 자극 방송>
“그렇군, 흠.”
“어쩔 거야?”
은별의 물음이었다. 민국이 결정을 지을 문제는 아니었다. 해킹범이 노리는 건 은별이었고, 당사자인 은별이가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게 올바랐다. 하지만 은별은 일단 민국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민국의 대답은 간결했다.
“잡아야지.”
“잡는다고?”
“당연하지요 은별 낭자. 이런 놈일수록 나중에 널 어떻게 할지도 몰라. 집 주소까지 알아내다 못해 네 신상에 관련되어서 다 알고 있고, 심지어 네 몸매도 어떤지 전부 알고 있다는 건 언젠간 너에게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뭔가 태클 걸고 싶은 이야기가 있긴 했는데 그냥 넘어가겠어. 그럼 어떻게 잡을 건데?”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한들 은별은 결국 민국의 여자 친구다. 아직 둘의 사이가 깨진 것도 아니었고 헤어진 것도 아닌 실정에서, 이런 스토커의 집착은 올바르지 않았다.
민국은 편지 내용을 계속해서 내려다보다가 곧 ‘우후후후’하고 웃음 지었다. 은별은 그 느닷없는 웃음이 차마 이해가 안 되어 인상을 찡그린 애매한 얼굴을 지었다.
“방송을 합시다 은별 낭자.”
“뭐?”
“방송을 해서 가면을 쓰고 너와 나의 사랑을 돈독히 보여주는 것이야.”
은별이 질색하면서 소리쳤다.
“미쳤어? 내가 왜 그걸 너랑…!”
“어허, 그래도 우리 커플이지 않소? 이참에 커플 방송을 해서 솔로들 염장 주는 짓도 한 번 해보는 거 좋지 않냐?”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지금 너는 내 본모습을 방송에 보여달란 소리잖아?”
“가면 쓰고 하는 건데 뭐 어때? 그리고 가면 써도 넌 예쁠 텐데 뭐가 걱정이야.”
버터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민국의 발언에 은별은 순간적으로 얼굴이 붉어져서 ‘으으’하고 소리를 냈다.
“그래… 만일 방송을 한다고 하자. 그렇게 해서 어떡할 건데? 설마 그걸로 스토커를 도발할 셈이야?”
“그런 셈이지. 보아하니 이 자식 너에게 홀려도 단단히 홀린 것 같은데, 자극시키는 행위만 몇 가지해도 녀석 발끈해서 본 모습 드러낼 가능성 높을 걸?”
“…실제로 나타나면 어떡하게?”
“내 필살 메가톤 펀치로 한 대 일단 때려줄 테다.”
은별의 남자 친구로서 민국의 심정이 불쾌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터다. 심지어 상대가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이런 집착형 스토커라면 위험할 가능성이 백퍼였다.
민국은 결코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다. 은별은 민국의 제안에 한참동안 팔짱만 끼고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민국이 그런 은별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려놓으면서 물었다.
“방송에서 섹스하자던가 그러진 않을게. 그러니까 하자.”
“어깨에 올린 손 때! 그리고 그런 거 하자고 해서 내가 해줄 것 같아?!”
“난 은별이 네가 원하면 고민하지 않고 해줄 생각 있다!”
“웃기셔…! 그러다 영구정지 당하면 다 끝이거든요!”
아무리 인기 있는 비제이라도 파뿌리 TV 사이트에서 논란을 불러오는 행위는 아이디 영구정지의 지름길이다. 이윽고 민국이 은별을 보다가 말했다.
“어쨌든 해보자. 그래야 녀석을 자극하기에도 좋을 테니까.”
“…….”
아무런 말도 않고 있을 찰나였다. 민국이 ‘아!’하고 은별이 방의 책상으로 이동했다. 은별은 ‘뭐야?’하면서 민국을 보았다. 민국은 책상 위에 올려진 은별이의 컴퓨터를 가리키면서 질문했다.
“이거 아직 안 킨 거지?”
“…그렇긴 한데 왜?”
“그럼 뭐 도청이나 그런 건 없겠군.”
이래봬도 민국은 컴퓨터의 잡다한 지식은 알고 있는 상태였다. 캠이 찍히는 카메라를 종이 테이프로 가려버린 민국은 전원을 키자마자 곧장 명령 프롬프트를 실행했다. 그리고 포트를 이용해 8080으로 좀비 pc가 있는지 판별하기 시작했다. 은별은 침대에 걸터앉아 민국이 하는 행위를 막연히 지켜보았다.
“뭐하는 거야?”
“혹시 그놈이 네 컴퓨터 해킹한 건 아닌 가 해서 말이지.”
“뭐어?”
애초에 온라인상으로밖에 알 수 없는 남고딩에 관련해서 신상을 전부 알고 있다는 것은, 컴퓨터를 해킹해서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증명했다. 민국은 갖갖이 방법을 사용해서 컴퓨터를 확인하다가 말했다.
“찾았다.”
“…….”
그리고 좀비pc가 한 개 있음을 발견한 민국이 곧장 그것을 삭제했다. 처음 보는 잡다한 화면들이 지나가는 모습에 은별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윽고 그녀의 고개가 민국의 옆얼굴로 돌아갔다. 무엇이든 자신 있게 해나가는 민국. 은별 역시 어떤 분야든 간에 성실히 하고 열심히 하는 면모를 갖췄으나, 그래도 민국이 자신보다 한 단계 높은 곳에 있단 느낌이 들자 왠지 모르게 든든함이 들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그 든든함이 필시 은별이가 자꾸만 민국에게 호감을 주는 이유일 터였다. 이윽고 빤히 쳐다보는 은별이의 시선을 느낀 민국이 고개를 돌려 웃음 지었다.
“강은별 양.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오. 내가 그렇게 잘 생겼소?”
“무, 무슨!”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은별이었다. 얼굴이 빤히 붉어진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고개를 돌리는 모양새였다.
“왜 갑자기 피하는 것이오? 아까는 잘 생긴 얼굴 계속 쳐다보려고 노력하는 거 같더니.”
“계, 계속 쳐다보긴 누가 쳐다 봐! 어이없어 진짜…!”
이성적 호감을 갖고 있다 한들, 민국을 아직 완전히 인정할 수는 없는 은별이었다. 아무리 든든하고 믿음직하다 해도… 두 사람을 책임지겠다는 민국의 발언만으로도 은별은 그를 완전히 받아주긴 어려웠다.
‘지금 이렇게 도와준다고 해도…!’
참으로 사람 마음이란 건 스스로도 다루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방송을 하게 되었다. 어디에서? 민국의 집에서 말이었다.
‘으으… 설마 이런 식으로 될 줄은 몰랐는데….’
문방구에서 산 가면 하나를 착용해보는 은별이었다. 고무줄을 귀에 착용하자니 어지간히 아팠다. 결국엔 다른 가면을 고르는 은별이었다.
“후레쉬맨! 정의의 용사 후레쉬맨! 아뵤오!”
민국은 후레쉬맨 가면을 골라 착용한 다음에 만화영화의 후레쉬맨처럼 쇼를 하고 있었다. 사명감이 깊은 영웅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쪽팔려….’
은별은 속으로 웅얼거리면서 또 다른 가면을 착용했다. 그제야 가면이 좀 맞는 느낌이었다. 하얀 가면이었는데 착용감도 나쁘지 않았다. 이윽고 은별이 가면을 고른 다음에 민국에게 말했다.
“골랐어….”
“호오, 역시 가면을 착용해도 예쁘시군요 은별 낭자.”
“눈에 보이는 뻔한 칭찬은 하지 마시죠? 이 인간아.”
그리고 컴퓨터로 향하는 두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은별이의 집에는 부모님이 있다 보니까 큰 소리를 내며 방송을 하기가 뭐했다. 그러한 까닭에 은별도 자기 방에서 방송을 할 때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이따금씩 민국과 합동 방송을 할 때를 제외하곤….
“역시 커플 방송이 그 어떤 방송보다도 재밌는 법이지. 시작합니다 남고딩 양.”
“그래… 아니, 잠깐! 기다려봐!”
파뿌리 TV 방송 홈페이지에서 방송을 키려던 민국이었다. 그런 민국을 제지하는 은별. 민국이 돌아보면서 물었다.
“왜 그래?”
“…방송은 어떻게 할 건데? 뭐 기획한 거나 컨텐츠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설마 그런 것도 없이 진행할 생각은 아니지?”
애초에 방송이란 건 컨텐츠를 가지고 임해야 하는 것이었다. 컨텐츠 없는 방송은 재미없기 마련이었고, 망하는 징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윽고 민국이 손가락을 들어 좌우로 까딱까딱 움직였다.
“훗, 은별아. 나 이래봬도 현대왕이야. 막장 랭킹 비제이 1위 현대왕! 그런 내가 설마 컨텐츠 하나 준비 안 해두고 너랑 방송을 하겠냐?”
“…그 말은 왠지 논리적인 느낌이 들어서 할 말은 없네. 그럼 컨텐츠는 일단 있다는 거지?”
“암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만 믿고 진행해주십쇼.”
어차피 스토커를 자극하기 위한 방송. 은별이의 방송은 자극적인 방송보단 시청자들간의 부드러운 친목이 오고가는 방송이었다. 고로 자극적인 컨셉을 진행하는 민국이 스토커를 건드리기에 훨씬 수월할 것이었다.
은별은 내심 불안했으나 한 번 민국을 신뢰해보자고 생각했다. 이윽고 컴퓨터 앞 원형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던 은별. 민국이 ‘시작한다.
’라는 신호와 함께 방송 버튼을 클릭했다. 그렇게, 스토커를 자극하기 위한 두 사람의 합동 방송이 시작되었다.
* *
“안녕하십니까 이 쌍쌍바 같은 인간들아. 영원히 잘날 존재 현대왕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남고딩이에요.”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폭발적으로 시청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시청자들의 수에 남고딩은 들리지 않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2천… 3천… 5천….”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그만큼 현대왕이 유명해졌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현대왕은 ‘엇흠!’하면서 기침을 내뱉은 다음에 말을 이었다.
“벌써 시청자들의 수가 1만이 넘다니. 이 얼마나 백수들 천지란 말이냐. 댁들 하나같이 백수지? 깔깔깔!”
시작하자마자 시청자들 비하하기 일쑤인 현대왕이었다. 채팅방에 들어온 시청자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파들파들]
[진짜 시청자들 많이 들어오네 ㅎㄷㄷ]
[나만의 현대왕이 이리 인기가 많아지다니, 새삼 자부심이 드는구만!]
[ㄴ누가 네 현대왕임? 뻐큐 드셈]
[ㄴ너 지금 시비거냐? 내가 그렇게 만만해? 어!!!!!!!]
[ㄴㅇ…]
시청자들의 대화 역시 가관이 아니었다. 남고딩은 다소 현대왕스러운 시청자들의 대화를 쳐다보다가 현대왕에게 말했다.
“시청자들을 보듬어줄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핍박을 하면 어떡해?”
“나의 버터 같은 멘트는 오로지 강은별… 너만의 것이야.”
“…징그러워. 그만해 좀.”
어찌 됐든 이제 본론으로 넘어갈 때였다. 현대왕도 그리 생각했는지 ‘자!’하고 키보드를 탁 두드린 다음에 소리쳤다.
“방에 들어온 무수하고 많은 시청자님들. 오늘은 제 여인 남고딩과 진행할 커플 방송입니다. 물론 기존의 커플 방송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오니 많이들 염장 먹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무슨 방송이라는 거지?]
[커플 방송 파들파들]
커플 방송이라고 해봤자 다른 방송과 사실상 다를 게 없었다. 다른 커플 비제이들처럼 카메라를 키고 서로 하하 호호 웃으면서 커플 놀이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현대왕과 남고딩이 그런 커플 비제이들의 행동을 따라한다는 건 굉장한 이슈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현대왕이 캠을 통해서 가면을 쓴 실제 모습을 보여주었던 건, 예전에 강은별에게 몰래 카메라 건으로 잘못하였을 때 말곤 없었다. 그때도 현대왕의 얼굴이라면서 최초의 모습으로 인터넷에 많이 뿌려졌는데, 이번엔 현대왕뿐만이 아니라 남고딩도 동행하는 것이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실제 모습을 보여줄 줄은….’
그래도 가면을 쓰고 있으니 크게 부담이 가는 건 아니었다. 만일 실제 얼굴을 보여주라고 했으면 진짜 부담 백배로 거부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이윽고 캠을 만지작거리면서 ‘준비됐어?’하고 묻는 모습에 남고딩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봐라 이것들아! 이것이 바로 우리 커플의 알록달록 알콩달콩 모습이다!”
그리고 캠을 딱 키는 현대왕이었다. 그러자 방송 화면에 현대왕과 남고딩의 가면 쓴 모습이 나타났고, 무엇을 할 지 궁금해하던 시청자들이 그 광경을 목도하고는 ‘오오오오오!’하고 대화를 쓰기 시작했다. 대화창은 폭발 직전이었다.
[또 캠 방송이다!!!!!!!!!!!!!!]
[현대왕 가면 쓴 거 봐라!!!! 벗어! 벗어 새끼야!]
[와! 남고딩이 실제 모습을 보였어! 가면이지만 무지 예쁘다!]
[되게 왜소한데 섹시하네! 와! 짱짱!]
[없다! 없어!]
마지막 대화가 심히 거슬리는 남고딩이었으나, 일단 캠으로 보여주는 방송은 처음이었으니 짐짓 웃음 짓는데 노력하는 남고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