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196화 (196/369)

196화

“망할! 무서워서 그만 처음으로 돌아와 버렸다!”

현관문 너머 실루엣의 공포에 그만 처음으로 돌아오길 요청한 민국이었다. 결국 때는 다시 열 시…. 민국은 이번엔 날짜를 확인할 필요성도 안 느끼고 곧장 은별에게 연락을 했다. 은별은 아까 전처럼 민국의 이상한 대사에 황당해했지만, ‘예나’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찾아가기로 약속했다.

“빨리 와주십시오 은별느님! 빨리 와주시면 얼굴에 사정해드리겠습니다!”

“네 소중한 부위에 지뢰 설치하기 전에 닥쳐!”

은별에게 구조를 요청한 뒤 민국은 후다닥 거실로 향했다. 다행히 아직은 현관문 너머로 실루엣이 보이지 않았다.

민국은 혹시 지금 나가면 예나를 피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날씨는 폭풍처럼 비가 몰아치는 날씨였고, 추위도 상당했다. 이런 상태에서 예나가 마냥 바깥에만 있는 다면 또 감기에 걸려서 심하게 아파질 텐데!

‘안 그래도 몸 안 좋은 애라서 그런 짓할 수도 없고 으아아.’

결국 과거로 돌아와도 선택지는 얼마 없었다. 심지어 예나가 은별보다 먼저 도착해서 대기할 것이 자명했다. 방금 전의 결과로 볼 때도 그러했고.

‘그러하다면.’

민국은 창고로 향했다. 이전에 예나가 술에 취해 자신을 침대에 묶을 때 사용했던 기다란 밧줄. 오랫동안 처박아둔 터라 줄이 많이 끊어질 듯해보였지만 그래도 활용하기엔 쓸모가 있었다. 민국은 그 줄을 빳빳이 당겨본 다음에 결정했다.

‘은별이가 올 때까지 대기하다가 이걸로 예나를 덮쳐서 묶는다! 그리고 시간을 보내면 만사 오케이!’

아아 완벽하다! 이토록 쉬운데 왜 그동안 마음 고생한 것일까? 민국은 현관문 근처에서 자취를 숨기고 대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치 호러영화의 주인공이 벽면에 숨어서 귀신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듯한 모습…. 엄습하는 긴장감에 민국이 꿀꺽 침을 삼켰다.

터벅… 터벅…. 계단을 천천히, 흐늘흐늘거리듯 올라오는 여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민국은 직감했다.

‘왔…다!’

터벅… 터…벅…. 한참동안 계단을 오르던 여인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민국은 현관문 너머로 서서히 드러나는 실루엣을 보았다.

누가 보아도… 그 여인은 예나였다.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예나는 보지 않아도 비에 쫄딱 젖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수중 한 곳에는 역시나 익숙해 보이는 커다란 크기의 흑화 소주가 쥐어져 있었다.

‘대기…. 숨죽이고 대기다….’

보통 이 시간 때라면 민국이 먼저 예나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현관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자 예나는 가만히 현관문 너머에 서 있는 듯하더니….

{똑똑}

‘으아아아아.’

{똑똑 똑똑}

감정 없는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노크 소리의 음침함에 민국은 아연질색했다. 그렇다고 예나를 나쁜 이미지로 보는 민국은 아니었지만, 술에 취한 그녀는 정말이지 호러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짐에 민국은 괜히 애꿎은 밧줄만 꽈악 짓눌렀다. 소리를 참기 위함이었다.

“민국아….”

“…….”

“거기 있지? 바로 앞에….”

“…!!!!!”

{똑똑}

“문 열어… 민국아….”

{똑똑}

“문 열어줘… 민국아….”

“…….”

“민국아… 민국아….”

공포에 식겁하여 입가를 손으로 틀어막는 민국이었다. 예나는 지지 않고 계속해서 민국이를 호명하며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박자에 맞추는 조용한 노크의 반복에 민국은 전신에 땀이 흘렀다.

‘으아, 빨리 와라 내 애인아!’

무시무시한 공포를 감당하고 있던 그때였다.

“…거기서 지금 뭐하는 거야?”

당랑하고 당찬 음성이 들려왔다. 민국에게도 심히 익숙한 음성으로서, 그것을 듣는 순간 절로 반가워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곤혹에 빠진 주인공을 도와주려고 나타난 정의의 수호자 같았다.

‘강은별느님!’

“진짜 그 자식 말대로 찾아 왔네… 이봐요, 일반적인 대시는 통하지도 않으니까 이젠 밤에 나타나서 꼬시기라도 해보겠다? 그런 꿍꿍이야 지금?”

어지간히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투박하게 계단을 오르는 은별이었다. 예나는 현관문을 보던 몸을 천천히 그녀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예나의 얼굴을 가렸다. 민국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기회다… 지금을 노리면!’

“애초에 서민국의 여자 친구는 나고! 당신에겐 그럴 권리는… 읍!”

예나의 뒤를 습격하기 위해 문을 벌컥 열었던 민국이었다. 그리고 밧줄을 끈끈하게 당겨 언제든지 몸통을 묶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데…!

“읍읍…! 으으으읍! …하읍!”

“…….”

민국은 일순간 얼이 빠져서 줄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 사건 때 은별이 어떻게 취하게 되었나, 그 실상은 알지 못했던 민국이었다. 침대에 묶인 채로 흑화 소주를 들이켜 기절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야 예나가 이런 식으로 은별을 취하게 만들었구나… 느낄 수 있었다.

“서, 서민국…….”

“…….”

자신의 몸을 꽁꽁 껴안고 얼굴에 키스를 하는 예나의 행동에 은별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얼굴을 붉히고 수치스런 표정을 짓던 그녀가 너머의 민국을 발견하고 손을 뻗는다. 잠깐 넋을 놓던 민국은 등을 보이는 예나의 모습에 기회라고 확신했다.

‘지금이다! 지금을 노려야 해!’

은별을 안고 있는 예나의 등을 향해 후다닥 달려가는 민국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예나는 여자! 민국은 남자! 그땐 예나가 술에 취해 있었고 난데없는 모습으로 민국을 당황스럽게 해 제대로 대처 못한 점도 있었다. 허나 민국이 맘만 먹으면 남자의 힘으로 여자를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고로…!

“받아라! +8강 아이템 밧줄의 투혼!”

물고기를 낚기 위한 어부의 낚시줄처럼 날아간 밧줄이었다. 그러나 폼나게 날아간 그 밧줄은 어느 여리여리한 손아귀에 잡혀 막히고 말았다.

“…….”

민국은 침묵하고 말았다. 안겨 있던 은별은 이미 술에 취할 대로 취해버렸는지, 예나가 몸을 놔주어도 발버둥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이따금씩 ‘흑, 끅.’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보아… 그리고 얼굴이 붉은 걸로 추정컨대… 이미 취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민국아….”

“예, 예, 예나느님?”

등에 눈이라도 달렸는지, 날아오는 밧줄을 가볍게 잡아보인 예나가 선선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반쯤 고개를 돌리는 그 모습이 어찌나 호러 같던지 민국은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이윽고 휘청거리면서 민국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예나였다.

“왜 그러는 거야… 나한테 왜 그래….”

“(@*#(!*#()[email protected]#()*!”

엄습하는 공포에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던 민국이었다. 결국 지원군조차 마비된 상황에 민국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처, 처음부터 다시 시작!”

…….

“뭐하는 겁니까 이 사람아! 빨리 다시 시작해!!! 으아아아아!”

선선히 접근하는 예나의 손아귀에 민국이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찔끔 감았다. 그 순간 다시 공간이 바뀌었고, 시간 역시 민국이 처음 시작한 열시로 바뀌었다.

“으헉 으허억….”

등을 적셨던 땀도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민국은 고동치는 심장만은 변함이 없음에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치 무서운 솔로 게임에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술을 마신 예나는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전투력 능력치가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때 예나의 표정은 마치 무슨 짓을 저질러서라도 민국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작심한 느낌이었다. 힘 가지고 제압한들 분명 예상 못할 짓으로 민국을 감금 시킬 것이었다.

‘은별이가 당하지 않은 타이밍에 나가야겠어. 그래서 힘을 합할 수밖에 없다!’

고로 민국은 아까처럼 다시 은별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곧장 지원군을 부르고… 이젠 조금 적응된 맘으로 현관문 벽면에 대기하며 은별을 기다렸다. 예나는 이미 당도한지 오래였다.

“민국아… 민국아….”

“뭐야 당신? 진짜 서민국 말대로….”

‘왔다!’

투덜대는 그녀의 목소리에 민국이 ‘은별아!’하며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이번엔… 촤아아아악!

“…….”

계단 맨 밑에 있는 은별에게 위에서 뿌려지는 어마무지한 액체들. 크기가 크기다 보니 담겨 있는 내용물이 남달랐다. 검고 쾌쾌한 그 액체가 면면에 뿌려지는 순간 은별은 저도 모르게 혀를 갖다 대며 삼켰고, 동시에 코를 찌릿찌릿하게 만드는 냄새에….

“아으으으…!”

심각하게 취해버리고 기절해버리는 은별이었다. 쿵! 대기하고 있다가 문을 열어젖혔던 민국은 그 당돌한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끼리릭… 천천히 예나의 고개가 민국에게로 돌아간다.

“…….”

그 어마무지한 공포에 민국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시여… 구세주시여… 예수 그리스도여… 부처님이여… 손오공이여… 미친놈들아 제발 나 좀 구원해줘!”

민국이 질색하는 현실용 호러 게임인들, 그만둘 수 있을 리 없다. 이대로 현실로 돌아가면 괴로워하는 예나와 은별을 다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책임감을 안고서라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엔딩으로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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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미친놈아! 구세주여! 사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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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야 오지 마! 팍씨 정액 싸버린다!”

“흑흑… 왜 그러는 거야 민국아….”

“아…! 미, 미안해 예나야 내가 그러려고 그런 건… 히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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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별아! 내 집 계단에 도착했을 때 우산으로 방패막이하게 커다란 우산 가지고 와!”

“…뜬금없이 뭔 소린데? 너 정말 뭐 잘못 먹은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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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국은 정말 많은 방식으로 헤피 엔딩을 이룩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미연시라는 게 한두 가지 루트만 있으면 몰라도… 서민국 미연시처럼 굉~~~~~~장히 많은 루트가 존재한다면… 해피엔딩 루트를 이룩한다는 건 사실상 어마무지하게 어려운 일이었다. 고로 민국은….

“…그래! 생각을 달리해보자. 섹스를 해도 사정을 바깥에 하면 되지!”

그리고 먼저 예나를 덮친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었다! 예나도 민국에게 원하는 건 결국 사랑 받는 것이었으니까…!

“민국아… 사랑해….”

“그래 나도 사랑해. 어서 한 몸이 되자.”

이번엔 은별을 부르지 않고 예나와 성교를 준비하는 민국이었다. 비록 은별에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니 나쁜 놈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임신 루트를 피할 수 있다면….

“응 민국아… 이 술 마셔줘….”

“…….”

“네 사랑스런 본능이 보고 싶어….”

하지만 이 역시 뜻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냥 옷을 벗기고 애무를 하다가 꽂아 넣으면 그만일 줄 알았는데! 예나는 어떻게든 민국에게 술을 먹이려 했고, 흑화 소주는 현실과 똑같이 체감되는 맛이었기에 민국도 거하게 취할 수밖에 없었다.

“처, 처음으로 다시 으아아….”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혼자서 안방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민국은 술 향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국 정신적으로 지쳐버린 민국은 제풀에 힘이 빠짐으로서 주저앉았다.

“이 시련과 역경과 고난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 겁니까 아오오!”

거칠게 머리를 긁적이던 민국이었다. 순간 다른 행동반경이 떠올랐다.

“그래! 만일 내가 집에서 다른 곳으로 유인한다면?”

집에 숨어서 끝까지 문을 안 열어주거나, 집에서 벗어나 아침까지 있다가 돌아오는 시도는 전부 해보았다. 그러자 첫 번째는 예나가 현관문 유리를 깨고 들어왔고, 두 번째는 예나가 추운 바깥에 계속 있던 지라 매우 상태가 위험해져 응급 환자로 병원에 실려 간 것이었다.(데드 루트) 허나 민국은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유인 방법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간다면 예나도 섣불리 나에게 그런 짓을 못하겠지. 설사 그런 짓을 한들 누군가 제지해줄 수가 있다!’

이 밤에, 심지어 민국의 집 근처에 사람이 많은 곳이 있을 가능성은 적었지만 그래도 시도해볼 만은 한 것 같았다. 민국은 마음을 먹고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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