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파이어인더홀!>
“큭큭….”
어느 차디찬 겨울 밤. 이제 가을은 가고 쌀쌀한 추위만이 불어 넘치는 지금 이 시점, 한 남자는 치렁치렁한 코트를 흔들어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걷고 있는 곳은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로 밤이 찾아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형성하여 즐겁게 놀고 있었다. 하지만 길을 걷는 그 남자만은 사람들의 즐거움 속에 똑같이 휩싸일 수가 없었다.
“크크크큭….”
남자는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하고 있었다. 커플이고 뭐고 상관없이 지나가던 주변 여자들이 한 번씩 흘긋 돌아볼 정도였다.
만일 남자의 얼굴이 모자와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 않았더라면 이미 수많은 여자들의 눈동자에 하트 뿅뿅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윽고 남자는 손을 아래로 뻗어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덜그럭거리는 동전들을 한 번 만져보는 그였다.
‘완벽해, 아주 완벽하군.’
사실 그는 며칠 전 있던 사건으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저번처럼 누군가가 수습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이건 오로지 홀로 안고 가야 하는 아버지의 고뇌라고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낳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을까? 문득 들었던 거로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속도위반을 했다고 하는데….
“크큭, 하지만 난 두 명을 속도위반 시켰으니 아버지보다 성장한 셈이로군.”
왜 애니나 소설에서 이따금씩 나오는 하렘 계획이라는 게 있다. 주인공이 수많은 이성들에게 둘러싸여 하렘 왕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계획. 그것은 주인공이 의도하여 저지르는 경우도 있고, 원치 않아도 알아서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원한 적은 있어도 의도한 적은 없었다.
“어서 오세요~.”
이윽고 분주한 번화가의 편의점에 당도한 남자였다. 카운터에서는 한 여직원이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새벽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말이지 죽을 맛일 텐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순간순간 손님에게 잘 대하는 것이 아르바이트 직원으로서의 의무라 생각했는지 성실함과 끈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마스크의 남자는 숨은 입으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이윽고 남자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리 없는 그 발걸음은 가볍기 보단 왠지 무거운 분위기가 들었다. 편의점 카운터 직원도 여자라서 촉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 예상스럽지 않은 분위기에 돌연 지켜보는 눈빛을 지었다. 남자는 음료수들이 있는 나열대로 향해서는 자신의 얼굴 근처를 만져보기 시작했다.
‘마스크 착용 완료, 모자 착용 완료.’
선글라스는 쓰지 않았으나 모자 끝이 길어서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심지어 손에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고… 신발은 혹시나 싶어 깔창도 3센치나 더 끼고 온 상황.
‘완벽해. 완벽하다고 후후.’
이윽고 뒤에서 직원이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보내는 걸 느꼈는지, 남자는 천천히 나열대에서 아무 음료수 하나를 빼왔다. 가격을 어렴풋이 측정하고 주머니 속에서 동전을 만지며 남자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1500원입니다 손님.”
카운터 직원은 특별히 뭘 훔치거나 도둑질을 한 흔적은 없자 내심 안도하는 눈웃음으로 마주했다. 남자는 직원이 부른 음료수의 가격을 곱씹으면서 주머니 속에서 동전들을 꺼내들었다.
“1500원이요?”
그리고 내심 질문을 던져본다. 여직원이 대답한다.
“네.”
남자는 손바닥에 꺼낸 동전들을 한 번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손짓으로 500원부터 100원까지, 그리고 10원까지 전부 골라본 남자가 이윽고 500원 한 개와 100원 5개를 먼저 건네주었다.
“여기 일단 천원이요.”
“네. …응?”
분명히 손아귀에 또 다른 동전이 쥐어져 있는 것 같은데 왜 천원어치 동전만 주는 건지 당최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3개월 차 편의점 직원을 함으로서 이런저런 또라이를 새벽에만 본 게 무려 백 건이 넘었다. 또 다른 또라이의 출현을 본능적으로 감지하지 못한다면 3개월 차라는 경력이 무색한 것이다. 이윽고 편의점 직원이 눈을 크게 뜨는 순간이었다.
남자가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나머지는.”
“…….”
남자가 편의점 천장 높이로 동전들을 던져버린다.
“파이어인더홀!”
그것은 하나같이 10원짜리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무려 50개 가까이 되었다. 500원 어치를 이런 식으로 선물해준 것이다.
“피해! 수류탄이다! 으악!”
“…….”
우수수수수! 편의점 바닥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10원짜리들. 남자는 마치 전쟁터에서 날아오는 수류탄을 발견한 것처럼 양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편의점 밖을 나갔다. 직원은 지금까지 별의별 또라이는 다 봤지만 저런 신종 또라이는 처음 봤다는 듯, 부들부들 떨면서 바닥의 10원짜리들을 줍기 시작했다.
“큭큭, 아직이야. 아직… 더 많은 피가 필요해.”
짜증난단 표정으로 열심히 10원짜리를 줍고 있는 편의점 직원을 밖에서 보던 남자였다. 이것만으론 자신의 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부족했는지, 남자는 또 다른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하하하! 진짜? 진짜 그런 일이 있었어?”
“응! 정말 재미있었어 히히!”
“후후, 역시 자기밖에 없다니까!”
번화가를 어슬렁다니는 커플을 발견한 남자였다. 그의 포착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검은 코트의 남자가 귀 한 쪽에 이어폰을 끼고 치렁치렁 코트를 흔들어대며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대뜸 앞을 가로막으면서 커플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오순도순 잘 놀고 있던 커플은 느닷없이 당면에 등장한 한 인물에 이놈은 뭔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마스크를 착용한 남자가 커플인 남자를 바라보다 옆의 여자를 보면서 물었다.
“집에서 일 좀 보겠다더니 여기서 남자랑 만나고 있냐?”
“너 뭐야 새끼야? 대뜸 무슨 개소리를.”
“설마 날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검은 코트의 남자가 여자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커플인 남자가 여자를 돌아본다. 여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난 정말 아무런 사람도… 난 자기밖에 없어!”
“너 누구냐? 나밖에 없다잖아 새끼야! 사람 잘못 본 거 같은데 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저리 가라.”
커플이 이젠 의심하는 눈초리로 쳐다본다. 하지만 검은 코트의 남자는 냉랭한 눈빛으로 커플인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나 모르겠냐?”
“…….”
“진짜 모른다고 시치미 땔 생각이냐?”
계속되는 추궁이었다. 돌연 전신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여자.
“설마… 자기?”
“응?”
갑자기 바뀐 여자의 태도에 커플인 남자가 의문스러운 눈동자로 돌아본다.
“자기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자기야?”
“…미, 미안해! 진짜 할 말이 없어…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진짜 한 순간 실수로…!”
“…….”
“클럽에서 만나서 술자리 한 번 가졌다가… 정말 미안해! 미안!”
커플인 남자가 여자를 어이없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커플인 남자는 이제 불이 난 눈빛으로 검은 코트의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개새끼야! 네가 내 여자를 건드려!”
“응? 다짜고짜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크게 격노하는 커플 남자의 모습에 코트의 남자가 언제 냉랭한 표정을 지었냐는 것처럼 귓속에 있던 이어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저 다른 사람이랑 통화하고 있던 건데요? 착각하셨나 봅니다.”
“…….”
“깔깔깔!”
그렇게 어장을 품은 여자에게서 남자를 구해준 코트의 인영이었다. 실소를 터트리며 후다닥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검은 코트의 남자! 커플인 남자는 빽빽 소리를 지르면서 격노했지만, 결국 그 격노의 화살은 커플인 여자에게로 돌아갈 따름이었다.
여자도 설마 누군가의 장난으로 영원히 비밀로 간직 될 줄 알았던 진실이 이렇게 쉽게 밝혀질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어찌 됐건 분명한 건 한 커플을 두 솔로로 찢었다는 점과, 남자를 구제했다는 점?
“크크크큭!”
이제 서서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번화가의 사람들은 언제 넘쳐났냐는 듯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검은 코트의 남자도 이젠 돌아가야겠다 싶어 집으로 돌아갈 따름이었다. 쏴아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코트와 모자로 가리며, 남자는 유유히 자신의 집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2층으로 올라가는 1층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 남자였다. 저벅 저벅. 쏴아아아…. 빗물로 넘쳐나는 계단을 밟아 오르면서 남자는 차근차근 현관문이 있는 2층으로 올랐다.
이윽고 2층에 무사히 올랐을 때 남자는 주머니 속의 열쇠를 꺼내 그것을 꽂고 열려고 했다.
“…….”
하지만 열쇠를 꽂다 말고 멈춘 남자는 멈칫하면서 3층 옥상 계단을 보았다. 본래는 옥탑방이 있어야 할 자리였지만, 이미 폐거된 지 오래인지라 그저 평면의 텅 비어버린 옥상. 그곳을 저벅저벅 올라간 남자는 마침내 정면으로 고개를 들어 한 눈에 들어오는 마을을 품에 담았다.
쏴아아아…. 하지만 먹구름이 껴 있을뿐더러 비가 어찌나 내리던지… 그 풍경이 아름답기는커녕 매우 울먹울먹하게 만드는 심정이었다.
“크크크크.”
이윽고 남자가 실성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크크… 크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주민 신고가 와도 모자랄 판으로 남자는 이웃집이 전부 들으라는 듯이 웃어댔다. 무릎을 꿇고 추락하는 빗방울을 면면으로 고스란히 담으며 절규하는 남자는 마치 킹오브파이터즈의 미친 이오리를 연상케 했다.
“크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핰! 하하하하하하캏핰핰! 내가… 이 내가…!”
남자가 양 주먹을 불끈 쥐며 하늘 높이 소리친다.
“애 아빠다!!!!!!!!!!!!!!!!!!!!!!!!!!!!!!!!!!!!!!!!!!!!!!!!!!!!!!!!!!!!!!!!!!!”
콰르르창창! 남자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맞장구를 치듯 먹구름 속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근처에서 내리친 번개 덕분에 남자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창백하게 보였다.
“스물한 살! 대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남자가 애 아빠다! 파뿌리TV 막장 비제이 랭킹 1위를 달리던 현대왕이 애 아빠다! …슈벌 내가 애 아빠다!”
남자는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남은 동전들을 옥상 밖으로 던져버리기 시작했다.
“파이어인더홀!”
그건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라는 적을 향한 필살 스킬이었다.
“크하하하핰 하하하하핰! 하하하하하하하핰! 애 아빠라니… 애 아빠라니이…!”
하렘을 바란 적은 있으나! 아기를 바란 적은 아직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는 아직 어엿한 아버지로 자라기에는 부족한 면모가 있었다. 돈이야 직장인들보다 훨씬 많이 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내 두 명에 아기 둘을 키우려면 교육비가 모자랄뿐더러… 심지어 그 아기가 한 명이 아니라 쌍둥이나 세 쌍둥이면….
“내가! 애 아빠라니이!!!!!!!!!!!!!!!!!!”
꿇고 있던 무릎을 일으켜 세우면서, 이번엔 허리를 기억자로 꺾고 주먹을 불끈 쥐며 아래를 쳐다보는 남자였다. 절규처럼 들려오는 분노의 외침에 이웃집에선 ‘뭔 소리야?’하면서 창문을 열었다가 닫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노을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어두컴컴함만이 자리하고 있는 밤 열 시. 쏟아지는 빗물들과 바닥을 내리치는 빗소리들이 냉랭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무렵, 남자는 마지막으로 양팔을 펼쳐들면서 하늘 높이 절규했다. 으아아아아! 라고!
“사람 살려어어!!!!!!!!!!!!!!!!!!!!!!!!!!!!”
뭐… 어쩌겠는가? 아이템의 효능이 너무 좋았고, 이성을 잃게 하기에 충분했었다. 심지어 인생은 소설보다 막장이라서, 이런 일이 다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고로 이런 게 사람의 인생이겠거니 생각할 수밖에….
“서민국 살려어어!!!!!!!!!!!!!!!!!!!!!!!!!!!!”
서민국, 그의 나이는 스물 한 살.
파뿌리 TV에서 현대왕이란 막장 비제이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