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한 문장이 갖는 임팩트(두 번째 메인파트)>
‘뭐지 이건, 꿈인가?’
일순간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으면서 민국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다. 어딜 봐도 여긴 현실…. 그리고 철창 안이다.
‘뭐야? 내가 왜 이런 곳에.’
“어, 깨어났구만. 변태 총각.”
경찰서 내부의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경찰모를 쓰고 있는 그 남자는 민국보다 나이가 두 배는 많은 아저씨였다. 이윽고 민국에게 인사를 건네 보인 그가 점잖게 눈웃음 지으면서 말했다.
“오늘 저녁 뉴스 해드라인에 뜨겠어. 총각 무슨 정력왕인가?”
“…예?”
철창 안에서 일어나는 민국이었다. 일어나는 도중 이상하게 다리가 풀려서 비틀거릴 뻔했다. 이윽고 철창을 양손으로 붙잡은 민국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 경찰 아저씨를 향해 소리쳤다.
“저기… 경찰관님. 제가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설마 진짜로 기억 안 나나? 하긴 확인해보니 술을 엄청 퍼마셨던데… 어휴, 내 살다 살다 그런 주사는 처음 봤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민국은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고 말을 이어갔다. 정말로 기억을 하려고 해도 아무런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어제의 기억 자체가 통째로 완전히 사라진 기분이었다.
보통 때라면 술에 취한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제의 기억이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민국은 어제 어디에 갔고 누구를 만났는지 싹 다 잊어버렸다. 이윽고 경찰 아저씨가 안색을 굳히면서 말했다.
“어찌 됐든 자넨 강간죄까지 합해서 재판을 받게 될 거야. 술 취해서 저지른 일이라도 잡아때봤자 방법은 없을 테니까 마음이나 다져놔.”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게!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다는 거예요!”
느닷없이 강간을 저질렀다는 소식에 민국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러자 웅성웅성거리던 경찰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민국에게로 쏟아졌다. 민국은 이미 이 동네의 헤드라인 일면을 장식할 존재감 1위의 인물로 거듭나 있었다.
“임순경… 저 자식 일어났구만.”
“…….”
임순경은 의자에 앉아서 커다란 자켓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녀는 민국에게 그런 일을 당했단 사실에 여자로서의 수치를 느끼고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피해자들이 깨어나는 즉시 부모들도 부를 테니 각오해두게.”
“…예, 예?”
정말이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 민국의 입장에선 누가 피해자인지도 도통 모를 지경이었다. 이윽고 철창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민국의 눈에 익숙한 인물이 드리웠다.
“예나! 은별아!”
자신의 하나뿐인 여자친구와 소꿉친구가 경찰서의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근처에서 지켜보던 나이 많은 경찰관이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쯧쯧, 아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는 거봐라. 양심도 없지.”
“…….”
이미 경찰관 내부의 수많은 사람들은 민국을 짐승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민국은 졸지에 짐승 취급을 받게 된 현실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네는 아주 큰 형벌을 받을 거야. 아니, 꼭 그리 받아야해.”
정처를 알 수 없던 민국에게 쓴 소리를 하던 경찰관이었다. 이윽고 경찰서로 카메라를 든 전문 기자 몇 명이 들어왔다. 기다리고 있던 이번 사건의 주요 경찰관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 헤드라인 장식할 기사 준비하려고 왔는데요.”
“아, 예. 저기 있습니다.”
이미 기자들은 민국의 집 근처의 참사 현장까지 고스란히 사진으로 찍어온 상태였다. 그들은 오늘의 화제의 인물인 서민국에 관련해서 이미 정보를 입수하고 왔는지, 철창의 그에게로 다가왔다.
“서민국 씨 맞으십니까?”
“…….”
“저는 kbx 전문 기자 최병호라고 합니다. 어제 있던 여성 피해자들의 사건에 관련하여 몇 가지 여쭙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공중파 kbx의 전문 기자 최병호가 자기 명함을 내밀었으나 민국은 받지 않았다. 그는 상관없다는 듯 카메라로 민국의 얼굴을 한 차례 찍은 다음에 질문했다.
“어째서 그런 일을 저지르신 겁니까?”
또 다른 전문기자들도 돌발적으로 질문을 건넸다. 그러나 민국은 한 가지도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자기가 질문하고 싶은 맘이 굴뚝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저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
전문 기자들이 서로의 눈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술에 취한 척하면서 거짓말을 치는 거라고밖에 생각 안하는 모양이었다. 실제 범죄들은 그런 식으로 일어났으니까. 하지만… 민국은 정말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윽고 플래시가 파밧하고 여러 차례 터지는 가운데 민국은 미칠 지경이었다.
“도를 지나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파밧하고 연이어 터지는 플래시에 눈가를 가리고 인상을 찡긋하던 민국이었다. 갑작스레 들려온 그 목소리를 기점으로 주변이 갑자기 정적으로 휩싸였다. 플래시에 눈을 감고 있던 민국은 급작스레 조용해진 주변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선물해준 아이템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서민국.”
터졌던 플래시가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고로 민국은 그 자리에서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익숙한 그 음성에 민국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면을 보았다. 철창 너머의 경찰서 문을 열고 치렁치렁한 코트의 누군가가 들어오고 있었다.
“흑…마법사느님?”
“내가 살던 세계나 이곳의 세계나 망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이유는 쾌락에서 비롯되는 법이지.”
민국은 아직도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으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대체 뭡니까? 전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요…. 왜 제가 이런 곳에 갇혀 있는 겁니까?”
“글세. 나도 자세한 이유를 알고 싶군. 애초에 내가 제공한 아이템이 그리 절제력을 마이너스로 낮추는 아이템은 아니라 알고 있는데.”
흑마법사가 건네준 정력제는 어디까지나 정력 보강의 아이템이었다. 비록 그 정력이 사기스럽게 바뀐다는 게 웃긴 점이었지만,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고로 민국이 집 근처에서 그런 난동을 부렸다는 사실이 흑마법사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윽고 흑마법사가 검지와 엄지를 딱 맞부딪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자리에 일어나 있던 경찰서 내부의 수많은 관계자들이 기절해버렸다.
민국은 그것을 막연히 지켜보았다.
“새벽 일찍 일 처리하느라 많이 바빴군. 인터넷부터 뉴스 관련 기업까지 모조리 정리하고 왔지.”
“…….”
“이건 팬으로서 주는 도리의 선물이라기 보단, 나중에 서민국 자네가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할 것 같다.”
조소를 머금는 흑마법사였다. 또다시 저려오는 이마에 인상을 찡그리던 서민국이었다. 철창의 문이 혼자서 열어젖혀지고, 흑마법사가 몸을 돌려 의자에 있는 피해자들에게로 향했다.
강은별과 한예나. 둘 다 여자 경찰 임순경이 대신 입혀준 사복을 입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 앞에서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딱하고 맞부딪히는 흑마법사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으음….”
“아으….”
예나와 강은별이 미간과 인상을 찌푸리다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각자 눈을 비비다가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뭐, 무슨….”
“…여긴 어디….”
두 사람도 머리가 아픈 건 마찬가지였는지 이마를 부여잡고 한참을 찡긋거렸다. 흑마법사는 그런 둘을 내려다보다가 돌연 물었다.
“어제 일에 관련해서 기억하는 게 있나?”
“…앗!”
“……?”
은별은 두 눈앞에 없어야 할 인물이 있자 크게 눈을 뜨며 놀라는 모습이었다. 예나 역시 다른 의미로 놀라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흑마법사가 진지하게 내려다보자 은별이 ‘아으….’하면서 중얼거렸다.
“…모르겠어요. 어으…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지…?”
“…….”
예나도 말없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은별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민국과 은별, 예나 셋 다 모두 어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완전히 망각해버린 것이다. 그건 단순히 일반적인 술잔을 기울인다고 해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은 아니었다.
“서민국.”
“아오… 머리야… 예, 흑마법사느님.”
일을 수습해준 흑마법사인 만큼 민국은 예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차렸다.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서민국을 향해 흑마법사가 말했다.
“나랑 단 둘이 얘기할 게 있을 것 같군.”
“…….”
“우선 이 둘부터 보내지.”
그 후 경찰서를 빠져나온 네 사람이었다. 흑마법사는 은별과 예나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은별은 대체 무슨 일이냐며 추궁을 하려 했지만 머리가 너무나도 아픈 탓에 결국 그 추궁을 관두었다.
“나중에 때가 되면 말해주기로 하지.”
고로 오늘은 가보라고 신호를 보내는 흑마법사였고, 은별은 서민국을 잠시 동안 쳐다보았다. 민국은 그런 은별의 걱정 어린 시선에 가볍게 미소 짓다가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 있어. 나중에 연락할게.”
“…….”
말없이 쳐다보던 은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민국은 다음 차례로 예나를 쳐다보았다.
“예나도 걱정하지 말고 가서 편히 쉬어.”
“응… 고마워 민국아.”
예나도 어제 일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지, 아픈 머리만 부여잡고 있었다. 이윽고 그런 둘을 보낸 뒤였다. 흑마법사가 선두로 몸을 돌려서 민국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민국을 이슈로 만들 수 있는 주변 장애물들은 모조리 정리해두었지만, 아직 그의 집 내부는 제대로 살피지 않은 상태였다.
“아오… 머리야, 미치고 환장하겠네. 흑마법사느님, 혹시 저 어제 무슨 깽판이라도 쳤습니까?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요?”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해주지.”
그리고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민국을 잠시 밖에 놔두고 홀로 들어가는 흑마법사였다. 난장판으로 어질러진 집은 그야말로 가관이 아닐 수 없었다. 흑마법의 힘으로 주변을 고이 정리하던 흑마법사가 안방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상당히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흑화 소주]
그 물건을 천천히 들어 보이는 흑마법사였다.
“흐음.”
흥미 있게 그것을 둘러보는 흑마법사였다. 적어도 정식으로 발매된 술은 아니었다. 또한 정식으로 발매할 가치의 술은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을 인상 깊게 쳐다보던 흑마법사가 이윽고 이상한 주문을 통해 그 술의 자세한 기능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얼마지 않아 마법을 마친 흑마법사가 침묵하다가 실소를 그렸다.
“크으… 머리가 너무 아픈데 이거….”
골이 깨질 것 같을 만큼 머리가 어지러워 눈도 뜨기 버거웠다. 바깥에서 막연히 기다리고 있는 것도 체력 소비가 심할 정도였다.
이윽고 저벅저벅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에 민국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흑마법사가 어떤 기구한 물건을 들고 내려오는 게 보였다. 이윽고 흑마법사가 ‘서민국’하면서 그를 호명하더니 흑화 소주를 들어 보였다.
“이 물건에 대해서 기억나는 게 있나?”
“흑화 소주…? 그건 또 뭡니까, 왠지 좀 이상이 깊은 것도 같은데….”
흑마법사가 실소를 머금었다. 이건 흑화 소주가 갖춘 특이한 기능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건 일반적인 술도 아닐뿐더러, 일반인이 제작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흑마법사였기에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기억에 대해서 걱정하진 않아도 될 거야. 한 숨 푹 자고 나면 다 떠오를 테니.”
“으으으….”
“어쨌든 오늘의 일은 수습해준 만큼 나중에 보답을 받기로 하지. 이건 팬으로서가 아니라 파트너로서의 도리로 보면 되겠군.”
그리고 내용물이 바닥난 흑화 소주를 치렁치렁한 코트 안으로 감추는 흑마법사였다. 신기하게도 그 커다란 흑화 소주가 코트 안에 들어가자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한 겉모습이 되었다.
더 이상 고통을 감당할 수가 없는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계단을 올라가는 서민국이었다. 흑마법사는 그런 서민국을 실소를 머금고 쳐다보다가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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