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꺄아 꺄아!”
“슴가 여왕찡 가슴 어떰? 푹신푹신하졍?”
“꺄아아!”
“헤헤, 푹신해서 좋다네여 가슴찡! 저도 눕고 싶은 맘이 드네여!”
“…….”
유이는 품속에서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대는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아기는 순진한 웃음을 담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유이는 가슴을 가리기는커녕 오히려 흥미 깊은 눈동자로 놔두고 있었다. 서라는 장난감 박스에 있던 딸랑이를 아기에게 흔들었다.
“딸랑 딸랑!”
“꺄아아!”
“유이찡도 이거 하나 드세여! 아기들이 좋아하는 딸랑이에여! 좌우로 거칠게 사납게 흔드시면 됩니다여!”
“…….”
서라가 내미는 딸랑이를 손에 얌전히 쥐는 유이였다. 그러자 아기가 딸랑이에 흥미가 있는 듯 양손을 내뻗는다. 그런 아기의 모습에 유이가 딸랑이를 건네주자, 아기는 딸랑이를 막 흔드는가 싶더니 곧 입으로 그것을 깨물었다.
“……!”
“아앗! 그러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나여!”
유이에게 안겨 있는 아기를 대신 품에 안으면서 딸랑이를 빼앗는 서라였다. 그러자 아기가 양손으로 다시금 딸랑이를 달라면서 손을 뻗어댄다. 서라는 완강히 고개를 가로저었고, 아기가 끅끅거리며 재차 울음을 터트리려하자 서라가 유이를 쳐다보았다. 유이는 서라의 눈빛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슴가블레이드 1조 억양의 완수를 보여주셈!”
…이제 막 부활해서 충전되던 민국은 또다시 투다다다다닥!
“아이고야 죽지 못해 사네!”
그런 유언을 남기고 깊이 잠들었다. 아기는 또다시 기쁜 듯이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언제 보아도 마냥 웃음꽃을 피우게 만드는 광경인 모양이었다. 유이는 뿌듯하게 고개를 까닥인 다음에 다시금 아기에게로 향했다. 이제 민국의 빈자리를 그녀가 대신하며, 세 사람은 화목함을 조성하고 있었다.
“유이 언니찡 인상이 좋은가 봐여. 자꾸만 달려들려 하네여?”
“…….”
유이는 느리게 고개를 까닥였다. 아기에게서 한 치도 눈길을 때지 않는 그녀였다.
“으아아앙!”
“읭?”
“……?”
그런데 어느 찰나였다. 느닷없이 울음보를 터트리는 아기. 이번엔 또 무슨 일로 그러는가 싶었다. 분명히 해괴한 짓을 하는 인간도 없었고, 민국도 쓰러져 있었는데!
“…….”
유이는 혹시나 싶어서 쓰러져 있는 민국을 일으켜 열심히 구타해보았다. 투다다다닥! 하지만 기절해 있는 민국을 나비처럼 사방팔방 날게 만들어도 아기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
품속에 아기를 안고 있던 유이는 적잖이 불안해졌다. 혹시나 자기가 뭔가 큰 잘못을 해서 그러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가면 갈수록 커지자 이젠 불안하다 못해 심장이 조여들 지경! 안절부절 못하는 유이의 모습에 서라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분유병!”
“…….”
“아마 분유 때문에 그럴 거예염!”
정확했다. 아기라서 분유가 많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고, 배가 고파서 우는 것이었다. 서라는 유이에게 안심하라는 듯 분유병이 있는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으악! 발에 경련 일어났어 씨밤!”
콰당탕! 근데 그때였다. 기절해 있던 민국이 발을 좀 접질렀는지 깨어나자마자 발을 부여잡은 것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다른 발로 그만 분유병을 건드리고 말았다. 뚜껑이 느슨해져 있던 분유병의 내용물이 바닥에 흘러내리며 퍼졌고, 서라와 유이는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구경하게 되었다.
“으아! 온니찡! 다리가 아프면 혼자 아파야지 분유병을 치면 어떡함!”
“…….”
투다다다다다닥! 또다시 유이의 정의의 심판으로 하늘을 나는 민국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익숙해졌는지… 그나마 버틸 수 있는 민국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민국은 중얼거렸다.
“자, 잠깐 타임…. 배고파서 그러는 거면 방법이 하나 있잖아.”
“……?”
마지막으로 내리찍으려던 유이였다. 민국의 말에 의문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녀. 이윽고 민국이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은 정확히 유이의 품속에 있는 아기! 아니… 그 아기의 뒤에 있는 유이의 가슴이었다.
“큰 가슴으로 모유를 주면 되지! 가슴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거야!”
투다다다다닥!
“크하하하! 어차피 죽을 거 드립이라도 치고 죽자!”
“…….”
털썩. 오늘은 아마 민국이 죽을 고비가 가장 많았던 날로 점찍힐 것이었다. 기절한 민국을 뒤로하고, 유이는 울고 있는 아기를 걱정스럽게 보았다. 서라는 그런 유이를 불렀다.
“슴가슴가찡! 여기서 기다리세영! 나님이 금방 마트 갔다 올 테니까 좀만 달래고 있으시면 되염!”
“…….”
아무래도 부모가 아닌 자신으로서는 달래는데 무리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서라는 이미 어미 되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는지 후다닥 현관으로 달려갔다. 쿵! 문이 닫히고 기절한 민국과 함께 내부에 남게 된 유이는, 엉엉 울어대는 아기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으아아아아아앙!”
어찌나 서글프게 울던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유이는 배고파서 우는 것이라 한들 가슴을 선뜻 내밀 자신은 없었다. 무엇보다… 모유가 나오는 신체도 아니었고 말이다.
“…….”
그리 혼란의 도가니 속에 있던 그녀였다. 돌연 아기를 웃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제스쳐들이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우연찮게 본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이때라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유이는 어색하게나마 손을 올렸다. 그리고 우는 소리에 움찔거리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자기 볼을 손으로 붙잡고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당긴다고 해야 할까?
“베….”
“으아아아아앙!”
“베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용없었다. 혀 내밀고 볼을 당기는 걸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다. 유이는 이번엔 코끝을 쭉 밀어서 돼지 코를 만들어보았다.
“꿀….”
그리고 아주 소심하게 꿀 소리를 내보았으나… 요번에도 매한가지였다. 아기 울음을 멈추는 게 이리도 어려웠단 말인가… 민국만 줘패면 다 해결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세상만사 쉬운 일은 없었다.
“장난감….”
유이는 장난감 박스에 있는 물건을 하나 꺼내 아기의 손에 쥐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울고 있는 아기는 그것을 받기는커녕, 유이가 쥐어주려던 물건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유이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슬픔을 느꼈다. 이번엔 자리에서 일어나 용기 있게 천장 높이 올려주었으나… 그래도 답은 마찬가지였다.
“으아아아아앙!”
“…….”
기어이 방법은 없단 말인가…? 10분간 갖갖이 방법을 동원해보았으나 단 한 가지도 아이의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큰 가슴으로 모유를 주면 되지! 가슴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거야!’
“…….”
기절한 민국이 했던 말을 떠올림과 동시에 유이는 자신의 상의를 만졌다. 나오지 않는데… 나오지 않을뿐더러 아기의 배를 채우게 해줄 수도 없을 텐데… 하지만 물면 좀 잠잠해지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가던 가운데, 결국 작심한 듯 상의를 들려던 그녀였다.
“내가 왔당깨요!”
“……!”
평소 그녀답지 않게 화들짝 놀라면서 상의를 내려버리는 유이였다. 서라는 열심히 뛰어갔다 온 듯 땀범벅인 모습이었다. 유이는 두근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가오는 서라를 지켜보았다. 혹시나 보았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은 모양이었다.
“받으세염 아기찡.”
“으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앙! 아아아아… 아아… 앙….”
분유를 담은 분유병을 아기의 입술에 대는 서라였다. 그러자 한창 울어재끼던 아기가 언제 울었냐는 듯 서서히 울음을 그치더니… 쪽쪽거리면서 그것을 마시기 시작했다.
“…….”
유이는 급속도로 안색이 바뀌는 아기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아기는 우느라 눈이 부었지만, 초롱초롱해진 눈빛으로 분유병을 양손으로 잡고 쪽쪽 빨아대고 있었다. 서라는 그것을 히히거리면서 지켜보았다.
“잘 빠네여! 언젠간 남자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듯!”
성드립이었으나 그런 걸 아기가 이해할 리 전무했다. 유이 역시 뭔가 어감이 이상했으나 완연히 이해하지도 못했고 말이다. 이윽고 서라가 유이를 돌아보았다.
“고생 많이 하셨어여 슴가슴가찡.”
“…….”
유이는 말없이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무슨 수를 써도 결국엔 아기의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민국을 줘패는 능력만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했던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무력함을 느낀 유이는 순간 일말의 음울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지 않아….
“맛있으셈여? 헤헤 천천히 드셈.”
“…….”
서라의 품속에서 분유병의 모유를 마시고 있는 아기를 보면서 유이는 뭔가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오로지 핏줄끼리만 느낄 수 있는… 돈독함이라고 할까? 자신의 아기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엔 서라만큼 좋은 부모는 될 수 없었다.
‘부모….’
돌연 그 단어를 생각하게 되자 유이는 말문을 완전히 닫게 되었다. 자신에겐 부모가 없었다. 그래서 부모의 따뜻한 온전이란 게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기를 안고 있는 서라를 보자….
‘…….’
자신의 부모는 단 한 번이라도 자기를 저렇게 안고 웃었던 적이 있을까, 내심 궁금증이 들었다. 물론 그 궁금증은 평생이 가도 해결 못할 게 자명했지만 말이다.
“으어어….”
죽다 못해 살아난 민국이 좀비처럼 엉엉 기어서 유이와 서라에게로 오기 시작했다. 유이는 또 반사적으로 민국에게 발을 놀리려다가 관두었다. 민국이 슬그머니 유이의 눈치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이제 딸쳐야 하니 그만 치십시오. 정자 생산 못하게 됩니다.”
“…….”
“야 서라야, 잠시 애 좀 돌보고 있어라. 오라버니 딸치고 온다.”
“어멋! 두 번째 애는 안 낳고 딸로 승화시킬 생각인가여? 나님이 그렇게 매력이 없는 여자였나여 흑흑!”
“후후, 임신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실제로 그랬다간 맞아 죽을 게 뻔하니 내 목숨 걸고 참도록 하겠다.”
그리고 슬그머니 안방으로 향하는 민국이었다. 유이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기씨가 들어 있는 병을 엎어버린 건 사실상 유이의 잘못이었고, 비록 이런 상황에 딸을 쳐야한다는 게 몹시도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민국도 자기 의무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따름이었다.
“오오! 스고이 스고이!”
그렇게 방에서 해드셋을 끼고 아기씨 생성을 완료한 민국이었다. 거친 행위로 말미암아 후들거리는 다리로 휘청이며 안방을 나온 민국이 병에 담긴 아기씨를 유이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가슴왕이 그토록 원하는 내 아기씨요. 이제 이것을 그쪽 자궁에 넣으면 폭풍 임신….”
“…….”
“그만해! 그만하라고! 오늘 진짜 많이 맞았잖아! 죽을 뻔했어!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까지 보였다니깐!”
처절한 민국의 절규에 유이는 그냥 한 번 봐주기로 했다. 정말 민국은 오늘따라 유난히 많이 맞았으니까 말이었다.
“…….”
어찌 되었든 유이의 용무는 이제 끝난 셈이었다. 아기를 보는 맛에 더 있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그래도 유이도 집에 돌아가서 자기 할 일도 좀 남아 있었다. 언제고 여기에 있기도 어색했고 말이다. 투명 병을 받은 유이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넣었고, 아기에게 말하는 서라의 말을 듣게 되었다.
“슴가여왕찡 가신다네여! 분유 그만 먹고 인사해주세여 인사!”
“꺄, 꺄아!”
어느 덧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유이에게 다가가는 서라였다. 서라의 품속 아기는 분유로 배가 채워졌는지 해맑은 웃음으로 유이에게 두 손을 뻗고 있었다.
유이는 슬쩍 서라를 눈치보았고, 서라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아기를 잠시 품에 안으면서 눈을 감던 유이였다.
아기의 포근한 체온은 정말이지 너무도 순수해서… 사적인 용무를 가지고 접근하던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꺄아아.”
“…….”
아기에게서 멀어진 유이였다. 서라의 품에 온전히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난 유이는 민국을 돌아보았다.
“말은….”
“…….”
“안할게요….”
은별에게 얘기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 말의 의미를 깨우친 민국이 ‘오? 오오!’하면서 감탄한 얼굴을 지었다.
“맞은 값을 톡톡히 했군 하하하하!”
“…….”
어찌 됐든, 서라에게도 인사를 하고 이제 집밖으로 나온 유이였다. 그녀는 올 때와는 다르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몇 차례 뒤를 돌아보던 유이는 주머니 속에 있는 병을 꺼냈다.
‘여기 가슴왕이 그토록 원하는 내 아기씨요. 이제 이것을 그쪽 자궁에 넣으면 폭풍 임신….’
농담조로 했던 민국의 말이 어른거렸고, 유이는 느리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용히 병을 주머니 속에 넣고 집으로 향하는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