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우리가 '족' 됐어요>
'으아아아악!'
'행님!'
민국과 서라는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현관문 너머에 있는 유이는 말미를 흐린 채로 침묵하고 있었다. 그 침묵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음을 내부의 두 사람은 알고 있었기에 한층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슈밤! 엿됐다!'
민국은 서락산에서 괜히 등산객들을 향해 아우성을 치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일은 서라와 민국 단 둘만의 비밀로 꾸역꾸역 담아두어야만 했다.
만일 이것이 은별이라거나 은별이라거나 은별이라거나… 등의 사람 귓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가령 양다리로 입지가 좁혀 아주 찬 밥 신세가 될 수 있었고, 그건 당연지사 서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니된당깨여!'
서라는 비록 민국처럼 은별과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형제지간처럼 사이 좋은 자매 사이였다. 남남이라 하되 마사지(?)도 해준 적 있고, 민국이 본 적 없는 은별이의 색다른 모습도 서라는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런 그녀 딴에서도 은별과 사이가 안 좋아지는 건 결코 좋게 생각지 못했다. 고로…!
"꺄아아악! 아 왠지 갑자기 아기처럼 목소리를 내보고 싶어졌어! 크아아~ 젋은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들어서 좋네!"
"……."
어차피 현관문 너머에 있는 사람은 내부에서 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민국은 대충 그렇게 얼버부리고는 서라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서라만 들을 수 있게 호명했다.
"서라야."
"넵 온니 사부찡."
서라는 아기의 입을 한 손으로 막고 있었다. 자칫해서 또 딴 소리가 새어 나갔다간 일을 돌이킬 수 없을 지도 몰랐다. 민국은 말했다.
"아기 숨겨야 한다."
"근데 어디에 숨기져?"
"우선 지금 찾아온 사람이 가슴왕이니까 은별이처럼 이곳저곳 뒤져볼 타입은 아닐 거다. 고로 아기가 있을 만한 안전한 방에 두자."
민국은 거실과 화장실, 안방과 부엌을 둘러보았다. 총 네 개의 방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적절해 보이는 방은 부엌이었다. 이윽고 서라가 아기를 품에 안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기를 놓고 부엌 문을 닫으려다가 순간 소리쳤다.
"온니찡…! 혹시 울면 어떻게 되여?"
"야, 그럼 그냥 너랑 여기에 단 둘이 숨어 있어.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와따시와 온니찡을 믿어여! 실패해도 좋으니까 나님에 대한 건 언급하지 말아주세여!"
그리고 부엌 문을 닫고 잠그는 서라였다. 아빠인 민국과 잠시 떨어진 아기였지만, 서라는 그런 아기가 울지 않게 얼굴을 마주보면서 혀를 내밀고 웃기기 시작했다. 아기는 작게 꺄아 꺄아 거리면서 웃어댔고, 그 모습에 흐뭇해하던 것도 잠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곧 행동을 멈추었다.
"잠시 조용히 해야됑. 알았징?"
"꺄아~."
과연 아기가 어떻게 할 지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부엌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민국이 거실에서 현관문으로 향해 문을 연 건 바로였다. 현관문 너머에는 풍만한 마음씨를 담고 있는 한 여인이 긴 발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채로 서 있었다. 민국이 이를 보고 소리쳤다.
"아이고 가슴왕 납시여."
"……."
"가슴왕이시여, 이런 누추한 곳에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민국은 '성은히 망극하옵니다~.'하듯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다. 유이는 그런 민국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민국이 스윽 고개를 들어 유이를 올려다보았다.
'들키지 마라 들키지 마라 들키지 마라.'
머릿속으로 부엌을 떠올리면서 읊조리는 민국이었다. 유이가 부디 방금 전 들려온 소리에 의문을 갖지 않길 바랄 따름이었다.
"액체가…."
"응?"
"액체가 떨어져서…."
이윽고 유이가 주머니 속에서 꺼낸 병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흑마법사가 제작하여 어제 민국에게 건네주었던 1년 유통기한의 투명한 병이었다. 민국은 그 투명한 병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자신의 아기씨에 '호오라.'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제 아기씨가 그렇게 맛있었습니까 유이 씨? 이거 영광이군요. 왠지 얼굴에 뿌려드리는 게 그쪽에 더 이득일 것 같은데."
"……."
"때리지마! 드립친 건데 때리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거야!"
유이가 병을 들지 않은 손을 잠시 들어 보이려고 하자 민국이 움찔거리며 그렇게 소리쳤다. 정작 유이는 병을 꺼내느라 주름 진 바지 주머니를 살짝 피려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
"아무튼 알겠습니다. 어떠한 실수로 그 병이 비우고만 것이군요. 하지만 유이 씨, 제가 이 고사양 에너지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정말 무구한 희생들과 노력이 따릅니다. 심지어 제 1분 1초의 귀중한 시간들까지 함께 소비되지요."
"……."
유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국이 팔짱을 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심지어 요즘은 은별이가 제 에너지 생성에 도움되는 신 비밀의 왕국까지 손을 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로선 그 차원 에너지를 생성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흠흠."
여기서 신 비밀의 왕국이란, 야동 파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민국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서 그런데 이거, 아무래도 유이 씨도 힘을 빌려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유이 씨도 자신의 실수로 그 비싼 약을 허비해버린 것이니 협조해주시겠지요? 설마! 풍만한 하늘과 황홀한 바다처럼 관대한 마음씨를 가진 유이 씨가 그것을 공짜로 받으려는 건 아니겠지요?"
비싼 약이라는 건 심히 어폐가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유이는 일단 그건 넘어가기로 했다.
"협조……."
"예! 협조! 많은 건 바라지 않기로 하지요! 저도 유이 씨에 대해 이제 어지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유이 씨가 싫어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
유이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가 한다는 배려가 심히 의문스럽긴 했다. 하지만 민국은 오로지 유이의 끄덕거림에 '동의했습니까? 동의 한 거지요?!'하면서 흥분했다. 그의 흥분하는 행위에 더 의문이 찾아올 따름이었다.
"좋습니다! 기다려 보세요! 이제 와서 무르기 없습니다!"
"……."
"자! 이거 입어보세요!"
민국은 안방으로 후다닥 달려가더니 대뜸 장롱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유이는 자신의 발치에 던져진 하얀 와이셔츠를 보았다. 그것을 선뜻 들어 보인 유이가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
"후후, 왜 그러십니까? 입기만 하시면 되는 일입니다. 다만!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저기 화장실에서 벗은 다음에 속옷만 입고 착용하셔야 됩니다!"
"……."
"어휴, 그렇게 쳐다보시면 안 됩니다 유이 씨. 저는 유이 씨를 위해서 이렇게 숭고한 희생을 몇 번이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유이 씨도 조금은 저에게 딸감… 아니 해택을 주셔야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그 해택이 그토록 알뜰하고 쉬운 것이라면 유이 씨에겐 아쉬울 게 없다 이거지요!"
"……."
"음하하하하하하!"
중2병에 걸린 것처럼 행세하는 민국이었고, 유이는 그 민국의 행세에 긴 시간 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수중에 거머쥔 와이셔츠를 다시 내려다본다. 역시나 그의 음모를 모르는 그녀 딴에선 꺼림칙할 수밖에.
"……."
하지만 유이는 돌연 민국의 지난 행동들이 떠올랐다. 비록 변태스럽고 야만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래도 강철남으로 인해 큰 아픔을 느끼고 있을 때 그가 찾아와서 위로해준 적이 있지 않던가? 비록 그 위로가 절실히 와닿지도 않았고 아무도 믿지 않는 유이에겐 민국의 그런 행위조차 의심 투성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으나 그래도… 한 번쯤은 그의 말대로 따라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꺄아~."
그렇게 조금은 마음을 다지고 행동하려던 유이였다.
"……?"
"……."
민국의 웃던 얼굴이 그대로 경직되어 굳어버렸다. 반대로 유이는 어디선가 들려온 맑디 맑은 소리에 의문을 가졌다. 이윽고 유이의 고개가 소리가 들린 쪽으로 느리게 돌아갔다. '꺄아꺄아~'하면서 방금 전보단 덜하지만 조금씩 들려오는 소리. 소리의 근원지는….
"쉿! 쉿해여 쉿!"
"꺄아아~."
부엌이었다. 그리고 그 부엌에서는 아기 소리와 더불어 누군가의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유이는 반복해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잠시 뜸을 들이면서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
"어이쿠 시방! 방음이 문제가 많아서 그런지 이웃집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네!"
"……."
"하하, 유이 씨는 제 집에 오래 있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나 본데 여기 방음 시설 개구립니다! 이따금 밤에는 한 남녀의 떡방아 소리도 고스란히 들려오죠! 이 집이 이런 곳입니다 으헤헤헤헤!"
유이는 민국을 돌아보았다. 유이는 공부에 대한 두뇌는 굉장히 타고났되 사람을 보는 눈이라던가, 직관력 같은 건 정말이지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 민국의 현재 행동이 지극히 이상하다는 건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뭐랄까… 민국의 현재 행동이 좀 과장되고 오바스럽단 느낌이 든달까?
"서라…."
"예? 어? 뭐라고요?"
"서라…."
"예? 아, 거기 서라구요? 저 서있지 않습니까?"
유이가 느리게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말을 이으려고 했다.
"서…."
"에잉 쯔쯔쯔쯔쯔! 귓구멍 막혔습니까? 지금 목소리가 서라 목소리처럼 들렸다니 제정신입니까? 가슴이 크면 원래 귀에 귀지가 많이 끼는 법입니까? 귀 좀 파요 이 사람아!"
투다다다다닥! 기어코 매를 버는 민국이었다. 혀를 내밀고 잠시간 아헤가오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서 꿈틀거리던 민국. '으헤 으헤'하면서 신음하길 1분. 서서히 정신을 차리는 그의 모습에 유이가 하고 싶던 말을 담았다.
"서라는 어디에…."
"……."
민국은 그제야 그녀가 하고자 하던 본래 말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대충 얼버부리는 민국이었다.
"아, 그 녀석 집 열쇠 찾았다고 집에 갔습니다. 아까 유이 씨 오기 전에 나갔어요."
"……."
유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렇게 얼버부리는 게 불리할 수도 있었는데, 민국도 워낙 정황이 없는 하루인지라 괜찮은 거짓말을 하기에도 정신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꺄아꺄아."
"조용히 해주랑깨여 자꾸 맘마 말 안 들으면 화낼 거임 부들부들!"
"꺄아꺄아."
"의이잉…. 열 번 찍어서 못 오를 나무 오르다가 경찰서 가는 경우 많다는뎅…!"
난감한 얼굴을 짓는 서라였다. 그런 어미의 얼굴이 심히 심각하게 다가왔는지 품속에 있던 아기가 서서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 해맑게 웃었냐는 듯, 서서히 울음을 터트리려는 듯한 얼굴이었다.
"흑… 끅… 흑…."
"어? 어엇? 왜 왜 그러냐능… 그러지 말라능."
돌연 얼굴이 바뀐 아기의 모습에 서라가 심히 당황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품속에 안은 아기를 바이킹처럼 가볍게 좌우로 흔들어주면서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울음은 끊어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흐잉…?!"
기어코 터져 버린 아기의 울음보에 서라는 해맬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흔들어주는 서라였다.
"으아아아아아앙!"
"왜, 왜 이러냐능! 갑자기 왜 이러는 거시냐능!"
혼란의 도가니에 휩싸인 서라가 허우적대길 수 초, 거실까지 울음보가 들리는 건 당연지사…. End라는 생각과 더불어 서라는 아기를 품에 안고 일어서서 흔들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그대로 등을 부엌 문에 부딪히고 말았다. 심지어… 부엌 문은 손잡이가 느슨해서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끼이익 열리고 말았다. 콰당!
"꺄앙!"
"으아니!"
서라가 그대로 등을 거실 바닥에 대고 쓰러졌고, 품에 안긴 아기는 계속해서 울음을 터트렸다. 민국과 대화를 하던 유이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돌아와서 간신히 썼습니다.
몸이 지친 상태라서 잘 안 써지네요.
내일 다시 열심히 쓰겠습니다.
오늘 12시에는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점 양해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