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162화 (162/369)

162화

“언니찡들에겐 말씀하셨세여?”

“기다려봐라 지금 하고 있다.”

서라는 사복으로 입고 품에 아기를 안고 있었다. 민국은 그 반대로 휴대폰을 품에 들고 은별과 메시지를 나누고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은별의 메시지에 민국은 휴대폰에서 시선을 때면서 ‘후우’하고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나이스 타이밍.”

“욜, 성공?”

“그래 성공이다.”

민국은 서라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은별이랑 예나, 유이 셋 다 모두 민국의 사정으로 오늘은 집에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흑마법사가 건네준 새로운 신개발 아이템, 아기씨를 1년 동안 보관할 수 있는 유통기한 병 때문이기도 했다. 만일 그것이 없었더라면 오늘 사랑과 전쟁 극장판을 찍었을 지도 모른다.

“꺄아아~.”

“찰지게 웃는 거 보소. 웃는 건 서라 너랑 닮은 거 같구만.”

“의잉? 내가 저리 예쁘게 웃던가여?”

민국은 노골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서라는 ‘부끄부끄!’하면서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건 그렇고 유전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비록 정규 절차(?)를 통해서 낳은 아기는 아니었지만, 일단 흑마법사의 신뢰 높은 아이템으로 말미암아 낳은 슈퍼 약물 아기 아닌가? 결과적으로 민국과 서라의 핏줄과 이어진 아기인 거고, 그 유전의 힘이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대로 크면 남자들 여럿 울리겠구만. 흠, 고이 키워서 키잡하고 싶은 맘뿐이야.”

“행님의 변태력은 유전 받지 않았길 간절히 빕니다여.”

사복을 입은 두 사람은 길을 거닐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아기에게 필요한 용품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근데 아기에게 필요한 용품이 무엇일까여?”

“뭐, 기저귀랑 아기가 놀기에 좋은 장난감이겠지. 그리고.”

민국이 서라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서라는 ‘어머멍?’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쳐다보는 민국을 올려다보았다. 민국이 돌직구로 물었다.

“너 모유 나오냐?”

“나올까여?”

서라도 내심 의문이 들었는지 자신의 가슴을 스리슬쩍 만져보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안 나오는 거 같음요.”

“그렇군. 모유까지는 안 나온다는 건가. 야, 그런데 너 내가 앞에 있는데 그렇게 가슴 주물럭거려도 안 창피하냐?”

“이미 아기까지 낳은 숙녀, 부끄러움은 없사옵네다.”

“와, 그럼 어디 나도 만져보자.”

“꺄아아~ 치한이야!”

큰 소리로 외치는 서라였고, 길거리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민국은 아쉬워하면서 손을 회수했다. 은별이 보았으면 죽어라 맞았을 지도 모를 모습이었다. 어찌됐든 그런 장난은 뒤로하고, 두 사람은 근처의 커다란 마트로 향했다.

“사람들이 왠지 이상하게 쳐다볼 거 같은데여?”

“그러면 까짓것 왜 그렇게 쳐다보냐, 19살 이하가 임신해서 아기 낳은 거 처음 보냐, 라고 따지면 되겠지.”

“우왕! 그 문장에 알게 모르게 요즘 세대의 아이들을 비판하는 교훈이 담긴 거 아세여?”

그러하다.

“흐음… 마트가 커서 그런가 어디에 용품이 있는지 모르겠네.”

“저기 직원에게 물어볼까여?”

한참동안 마트를 둘러보던 민국과 서라였다. 아기 용품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고, 마트에 들리는 것도 오랜만이었던 지라 두 사람은 많이 방황했다.

이윽고 아기를 품에 안은 서라가 한 손으로 직원을 가리켰다. 마침 오가는 사람들이 물품을 찾고 싶을 때 물어보면 답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물어보기로 하지.”

“끄덕.”

그리고 민국이 앞장서서 당차게 걸어 나갔다. 직원은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기척에 상업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민국을 반겼다.

“손님,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아기 용품이 있는 곳 좀 알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네?”

민국의 대답에 순간 당황했는지 직원의 눈길이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로 꽂혔다. 아기를 품에 안고 열심히 달래는 서라의 모습이었다. 이윽고 직원이 다소 당혹을 머금은 눈빛으로 민국을 쳐다보다가 미소 지으며 안내했다.

“조카인가 보네요.”

“제 딸인데요?”

“…아기 용품점은 2층에 있습니다. 올라가셔서 뒤편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

민국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몸을 돌리는 민국. 이윽고 서라가 있는 곳까지 다가온 민국이었고, 서라가 물었다.

“뭐라고 함?”

“2층으로 올라가랜다. 거기에 있다네.”

“오키오키. 그런데 저 직원들 왜 우리보고 수군대져? 혹시 행님…!”

“우리 아기라고 말했는데? 뭐 어쩌냐. 마법으로 만들어졌던 어쨌던 우리 아기는 맞잖아.”

“그, 그렇긴 하지여?”

그리 말하며 서라가 다시 품에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았고, 민국은 수군거리는 직원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을 쳐다보며 수군거리던 직원 두 명이 그 시선에 화들짝 놀란 듯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아무런 일이 없던 것처럼 굴었다. 민국은 피식 웃은 다음에 2층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서라를 안내했다.

“자, 갑시다 1일 아내여.”

“이게 말로만 듣던 불륜인가여? 은별이 언니찡은 졸지에 NTR 당하고 있네영….”

“레알… 들키면 진짜 죽을 지도 모르겠다.”

은별이 성깔을 아는 민국이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이번 일에 대해선 비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로 이 마트에서도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는 게 좋겠지. 혹시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답이 없을 테니까 말이었다.

“빨리 올라가자.”

“이응이응.”

“까아~.”

“어휴, 웃는 거 보소. 아빠조차 범죄를 일으키게 만들 미소야.”

어찌 됐든 1일 가족을 하게 된 두 사람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두 사람은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크나큰 착각이었다.

“…….”

“얘. 뭐하니? 왜 가만히 있고 그래?”

“자, 잠시만… 내가 지금 뭔가 잘못 본 거 같아서….”

그 여자는 순간 잘못 본 거 아닌 가 이마를 부여잡고 휘청거렸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어린 여자 아이와 함께 오붓한 분위기 속에서 올라가는 훤칠한 남자는… 누가 봐도 그 남자였다!

‘예전 팬티 차림의 그 남자!’

그러하다! 아주 당당하게 방안에서 팬티 차림으로 나와 두 여자에게 ‘야동 보고 있는데요? 방해하지 마시죠!’라고 외쳤던 그 남자! 비록 실명은 몰랐지만 얼굴은 유난히 잘 생긴 편인지라 몇 개월이 지난 일임에도 기억이 났다. 근처 마트에서 물건을 몇 개 구매하려고 온 그녀는, 민국에게 대리순교회로 오해 받았던… 하느님을 믿는 그때 그 여자였다.

‘저기 품속에 있는 거는… 아기?’

그 변태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의 품속에 있는 무언가! 하느님을 믿던 그녀는 처녀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평생을 보존하는 것이 여자로서의 의무라 생각하였다. 때문에 팬티 차림으로 자신들을 마주했던 그 남자가… 이번엔 자신보다 한층 어려 보이는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것도 심히 파격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다.

근데 그뿐만이 아니라… 아기라니!

‘결혼 전… 신호 위반!’

또다시 파격적인 광경을 목도한 것 같아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는 여자였다. 세상엔 참으로 몹쓸 사람이 많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그녀였다.

***

그리고 그 날의 여자에 대해서는 일체 기억도 않고 있는 민국. 서라와 함께 아기 용품이 있는 2층으로 향해서 이것저것 고르기 시작했다.

“기저귀는 어떤 거로 사는 게 좋으려나. 좀 까칠까칠한 게 낫나.”

“온니찡, 팬티가 까칠까칠하면 기분이 좋을까여? 나님은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 거로 해야 된다고 생각해여.”

“혹시 모르잖냐. 우리 아기가 까칠까칠한 걸 좋아하는 마조히스트일 지도.”

“변태 유전자를 이어 받았을 가능성도 있어서 그 의견에 반대하는 게 불가능한 게 함정.”

민국이 한창 아기 용품 구르기에 열중할 때 서라는 품속의 아기를 보았다. 아기는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서라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이성을 보는 사랑의 눈빛이 아닌, 자신을 지켜주는 부모를 향한 따스한 눈빛에 가까웠다. 서라는 그 감정을 가슴 속에 차근차근 느껴가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온니짱이랑 나의 아기라닝.’

민국과 하나가 되면 낳게 될 지도 모를 아기. 두상부터 비롯해서 눈썹, 입술, 코, 모든 것이 뚜렷하고 완벽했다. 어찌 보면 나중에 컸을 때 민국이나 서라보다 훨씬 좋은 인물이 될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나중에 결혼을 하고 나서 낳게 될 아기가 이렇게 생겼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알게 모르게 두근두근거렸다.

“아가야~ 이거 봐라~.”

딸랑 딸랑~. 기저귀를 바구니에 집어넣던 민국이었다. 마침 아가 용품 중에 괜찮은 장난감을 발견한 듯 손에 그것을 쥐고 아가에게 흔들어 보였다. 좌우로 흔들 때마다 종이 딸랑거리는 딸랑이였다. 딸랑 딸랑~.

“꺄아~ 꺄아~.”

“훗, 귀여운 녀석.”

민국은 그 딸랑이도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서라가 물었다.

“온니찡 괜찮겠어여? 자금이 상당히 깨지겠는데여.”

“어차피 오늘 하루뿐이기도 하고, 임시로 낳은 애라지만 기왕 해줄 거 잘해줘야지.”

민국의 의견이었다. 서라는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민국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차피 약을 통해 임시로 낳은 아기. 하루면 사라질 아기였고, 사랑을 주기에는 한정된 시간이었다. 그 때문에 정을 주고 잘 대해준다는 게 어찌 보면 어려운 일일 수도 있었다.

“나도 돕겠다능!”

하지만 망설임 없는 민국의 결정을 따라서 서라도 망설임이 없어졌다. 그녀도 곧장 아기에게 도움 되는 물건들을 고르기 시작했고, 민국과 투닥투닥 의견을 나누면서도 아기에게 좋은 결정들만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간 비용만 어연 5만원…. 민국은 먼저 카운터에서 물건을 계산하기 시작했고, 이를 지켜보던 서라는 아기를 계속 품에 안고 있느라 허리가 조금 아픈 걸 느꼈다.

“꺄아!”

“읭? 왜 그러셈?”

아가의 급방긋하는 표정에 서라가 고개를 돌렸다. 아가의 손이 어디론가 뻗어지고 있었다. 서라는 아가의 손길이 향하는 곳으로 저벅저벅 걸음을 움직였다. 그러자 덥썩 나열되어 있는 물건 상자 중 무언가를 손에 쥐는 아가의 손길.

“꺄아아!”

“헐. 장난감 가지고 싶으셈?”

서라의 물음이었고, 아가는 이미 두 손으로 그 장난감 상자를 들고 웃어 보였다. 양손으로 상자를 위아래로 흔드는 모습이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었다. 서라는 그 상자의 가격을 확인해 보았다. 무려 3만원이나 나갔다.

“읭… 온니짱에게 계속 사달라 하기도 미안한데여….”

서라도 인기 비제이로 돈을 꽤 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민국처럼 많이 버는 편은 아니었다. 애초에 여자 신분을 숨기고 행동하다 보니 스폰서도 많이 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고 말이다.

“꺄아 꺄아~.”

“…….”

하지만 서라는 해맑게 웃는 아가의 모습에 머지않아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같은 마마 두어서 좋은 거예여! 사줄 테니까 잘 사용해여!”

“꺄아~ 마마!”

“헤헤. 마마라 불러주니 기분 좋다능.”

비록 말투는 유치하고 어린애 같았지만, 서라도 나름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품속에서 웃음 짓는 아기의 모습에 서라도 저도 모르게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계산을 마치고 서라를 지켜보던 민국은 얼마지 않아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3만원입니다. 아기가 참 예쁘네요. 엄마이신가 봐요?”

“에? 네, 넹.”

카운터에서 물건을 계산하던 직원의 물음이었고, 서라는 눈을 휘둥그레 뜨다가 그리 대답했다. 민국이 당차게 옆에 와서는 서라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제가 애 아빠입니다.”

“어머? 둘 다 젊으신데 일찍 결혼하셨나 봐요?”

“하하, 사실 저희가 나이가 좀 있는데 얼굴이 젊은 겁니다. 동안이죠.”

태연하게 거짓말을 치는 민국이었고, 서라도 미소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