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161화 (161/369)

161화

“빠빠!”

“…….”

“마마!”

“…….”

혼란의 도가니였다. 민국과 서라는 한동안 침대 위에 있는 아기를 보면서 멍을 때릴 따름이었다. 한참동안 넋을 놓던 그들은 이윽고 서로에게로 고개를 돌리면서 시선을 마주했다. 입을 먼저 연 것은 서라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여 행님?”

“그걸 내가 알면 이러고 있겠냐. 벌써 너에게 논리정연하게 이 아이는 이런 아이이다 라고 설명했겠지.”

“헉! 설마 남의 집 애가 이 집으로 들어온 건가여?”

“그건 아닐 텐데. 문은 확실히 잠궈둔 거로 기억하는데.”

중얼거리며 민국은 거실로 나가보았다. 그리고 현관문을 확인한다. 아주 굳건히 잠겨 있었다. 아기가 이 집안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럼 창문?’

민국은 창문 쪽을 보았다. 요즘 가을인 탓에 밤이 되면 날씨가 많이 춥고 그랬다. 때문에 밤이 되면 항상 창문을 닫았던 탓에 거기로 들어올 수도 없었다. 심지어 여긴 2층이었다.

“빠빠!”

“왜 날 보면서 빠빠라고 하냐?”

침대 위의 아기가 방긋 웃으면서 두 팔을 벌리자 민국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서라가 ‘으아닛’하면서 어디론가 향했다. 빠르게 기어가 그녀가 도달한 곳은 바닥에 놓여진 007 가방이었다.

“온니짱! 설마 이거 확인 안하셨세여?”

“어? 그건 어디 있었냐? 내가 어제 볼 때는 없었는데?”

어제 볼 때 없던 게 아니라 007 가방 맨 밑에 놓여져 있던 터라 차마 확인을 못한 모양이었다. 의아해하면서 서라에게로 다가오는 민국. 서라는 그 종이를 확인하더니 글자를 읊었다.

“A와 B라는 알약은 ‘만일 우리가 아기를 낳은 가족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될까?’라는 테스트를 해보기 위함에 제작된 약품입니다. 실제 결혼 직전인 커플들이 자신들의 아기는 어떻게 생겼고 육아 교육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기 위해 이계에서 많이들 사용했던 약입니다.”

“설명서에 그리 써 있냐?”

“이응이응.”

고개를 주억거리는 서라였고 민국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상황을 대충 정리해보기 시작하는 두 사람이었다.

“온니짱이 어제 드셨던 약이 A고 내가 먹었던 약이 B임. 그리고 이 약은 ‘만일 우리가 아기를 낳은 가족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될까?’를 테스트해보는 약이라네여?”

“그렇다면 저 아기는 딱 봐도 뻔하군.”

두 사람의 고개가 홱 아기에게로 돌아갔다. 부모 되는 사람들이 동시에 쳐다보자 아기는 해맑게 방긋 웃으면서 두 팔을 벌렸다. 민국이 경외스럽게 소리쳤다.

“우리 아기다!”

“히익! 난 아직 임신한 기억도 없는뎅!”

“서라 네가 아직 로리라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아기는 폭풍 세수로 낳는 것만이 있는 게 아니야! 손만 잡고 자도 낳을 수 있지!”

“우와! 왠지 부모님이 내가 어릴 때 ‘아기는 어떻게 낳아여?’ 질문하면 나올 답변이네여!”

“난 섹스해서 낳는다고 당당하게 말할 거다!”

“히이이익!”

어찌 되었든… 설명서 아래에는 또 다른 내용도 첨부되어 있었다.

“이 약의 효능은 24시간으로. 딱 하루만 경험할 수 있는 약입니다. 아이 역시 24시간이 경과하면 사라지게 됩니다.”

“호오, 그렇구만. ”

다행이라 여겨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 안심되는 건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서라와 민국이 한 편으로 안도하는 가운데 침대 위에 있던 아기가 돌연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앙!”

“억?”

“읭…?”

대뜸 눈물을 쏟아내면서 울기 시작하는 아기의 모습에 민국과 서라는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아기를 다뤄본 적도 없고, 함께 놀아본 경험도 미지했던 지라 이런 상황에 어찌해야 할 지 잘 몰랐던 것이다. 이윽고 서라가 민국의 옷자락을 붙잡으면서 물었다.

“온니찡! 저 아이가 왜 우는 걸까여! 어떻게 좀 해봐여!”

“야! 네가 엄마잖아! 아기는 원래 엄마가 달래는 거야!”

“요즘은 맞벌이 시대! 아빠도 아이를 키운다!”

투닥투닥 말다툼을 나누는 동안 아기의 울음보가 더욱 커졌다. 이젠 귓청이 쩌렁쩌렁할 정도로 시끄러워지자 잠시 귀를 닫던 민국과 서라가 의논을 했다.

“안 되겠다. 일단 우는 것부터 달래자.”

“그, 그래여 온니짱.”

그리고 용기 있게 아기에게로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 하지만 손이 닿을 거리에 당도했으되, 두 사람은 선뜻 손을 내뻗어 아기의 몸을 만질 수가 없었다. 이 작고 여린 몸에 혹시 상처라도 날까 싶었던 것이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민국과 서라. 먼저 민국이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아기야! 울면 고추가 큰 고추 못 된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앙!”

“더 커지잖음! 노답이시네여!”

“으아아 나보고 어쩌라는 겨!”

갑자기 우는 이유를 당최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콧속으로 시큼시큼한 냄새가 스며들었다. 그것을 먼저 맡았던 서라가 민국에게 물었다.

“온니짱, 뭔가 이상한 냄새나지 않아여?”

“어? 설마.”

두 사람의 시선이 아기가 입고 있는 기저귀로 향했다. 상의는 없고 오로지 하얀 기저귀만을 착용하고 있는 그 아기…. 그리고 그 하얀 기저귀가 어떤 알록달록한 색깔로 물드는 것을 확인하며 여러모로 경기를 일으키게 되었다.

“으앙 형아! 엉덩이 괴물이 나왔나봐여!”

“이, 이런!”

더 악화되는 사태! 아기의 울음보는 시간이 지날 수록 커지고 있었고, 카오스를 겪던 민국과 서라는 이내 마음의 결심을 다지게 되었다. 민국이 말했다.

“내가 기저귀를 풀 테니 똥은 네가 치워라.”

“똥은 내가 치울 테니 형이 드세여.”

“미친 놈이?”

“으아아아아앙!”

“어찌 됐든 빨리 하자!”

그리고 침대에 아기를 그대로 눕히는 민국이었다. 서라는 혹시나 아기가 다칠까봐 조마조마해하며 손을 근처에 두었다.

한층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의 모습에 서라가 ‘치, 침착하라능… 큰 문제없을 거라능….’이라고 달램 같지 않은 달램을 하면서 민국을 지켜보았다. 민국은 아주 신중한 손길로 기저귀를 풀기 시작했다.

‘크으윽, 강렬한 냄새.’

아기 똥도 결국엔 똥이다.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졸지에 부모가 되어버린 두 사람. 당연히 이 상황에 방심하고 넋을 놓을 수밖에!

“온니짱! 맑은 똥이에여!”

“아주 똥냄새가 푸짐하게 나는구나!”

본래는 민국이 기저귀를 벗기면 서라가 대신 치우기로 했지만, 그냥 민국이 한꺼번에 다 해버렸다. 기저귀를 치우고 다른 기저귀를 채우자니….

“슈밤! 기저귀가 없구만! 야! 서라야! 일단 휴지로 애 엉덩이 좀 닦아!”

“아, 안 그래도 그러고 있다능!”

서라가 허겁지겁 휴지를 꺼내서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물을 적당히 스며들게 해준 다음에 아기에게로 향해 엉덩이를 부비적부비적 닦아주었다. 침대 위에서 그러고 있으니 조금 더러울 수도 있었으나, 그런 새새한 부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으아아앙….”

이윽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느낀 민국과 서라의 눈동자가 아기의 얼굴로 향했다.

“꺄아아~♥”

“…….”

“…….”

언제 울보였냐는 것처럼 금세 활짝 미소를 피우는 아기의 얼굴. 민국과 서라는 일시적으로 심장이 쿵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거슨… 심쿵!’

‘예쁜 거 보니 내 아기가 맞는데?’

기승전결에서 절정을 맞이하던 두 사람은 이제 결말에 닿고 있었다. 민국과 서라의 고개가 또다시 돌아가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민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이 녀석 우리 아이라고 했었지?”

“끄덕. 설명서에 그렇게 나와 있었음여.”

“흠… 얼굴을 보면 우리 아기는 맞는 거 같군. 잘 생기고 예쁜 거 보니 말이야.”

“왠지 혼혈아처럼 생겼네여.”

민국과 서라가 한 몸이 되어 낳으면 생길 아기. 그 아기의 얼굴은 정말이지 굉장히 비쥬얼이 뛰어난 얼굴이었다.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 오똑선 코! 입술까지 뽀샤시한 게 정말이지 이성에게 사랑을 많이 받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놈 남자냐 여자냐?”

“여자 같은데여? 저기 선명하게 생긴 계곡을 보세여.”

“오오.”

부모임에도 뭔가 대사가 음탕함의 아이콘을 유발했다. 타인이 아기에게 그리 행세를 했으면 범죄로 점 찍혔을 것이었다. 여자임을 판별한 민국이 말했다.

“그럼 24시간 동안 우린 이 녀석이랑 같이 있어야 하는 건가?”

“그렇겠네여? …으잉?”

서라가 눈을 껌뻑이다가 벽면의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는 화들짝 놀라면서 민국에게 소리쳤다.

“행님! 나님 학교가야 하는데염!”

“아! 야, 빨리 가방 대충 두르고 교복 입고 학교 가라. 교복 거실에 다 있으니까.”

서라는 이미 민국에게 받은 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거실로 향했고, 민국은 혼자 아기를 돌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내 세수를 하고 대충 교복을 입은 서라가 헐레벌떡 가방을 싸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민국은 졸지에 아기를 품에 안고 거실로 나왔다. 서라가 소리쳤다.

“갔다 올게여!”

“그래 빨리 갔다 와라!”

비록 스물 네 시간의 짧은 만남이겠지만 일단 자기 아기는 아기였다. 서라는 허겁지겁 학교에 갔다 온 뒤에 돌봐주려고 했다. 허나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앙!”

“…….”

“…….”

끼이익.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아기가 울음보를 터트렸다. 현관문 밖으로 나가려던 서라는 그 울음 소리에 그만 멈추고 말았다. 민국도 침묵하며 자신의 품에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훌쩍 훌쩍… 으아아아아앙!”

“…왜, 왜 이러는 거시여 시방? 착하지? 착하지 우리 아가?”

“으아아아앙! 마마!”

학교에 가야 할 처지인 고등학생, 강서라. 그녀는 다시금 용기를 내서 학교로 걸음을 향하려 했다. 그러나 일순간 들려온 그 소리에 심장이 쿵하는 걸 느꼈다. 결국 끼이익, 철컹.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고 아기를 향하던 민국의 고개가 위로 들렸다.

“아무래도 그냥 오늘은 있어야겠음여….”

“…….”

비록 약물로 만들어진 파워 약물 아기였지만, 그래도 결국엔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 낳게 될 아기라는 거 아닌가? 결국엔 자신들의 유전자를 고이 물려받은 핏줄의 아기인지라 마음이 안 가려 해도 안 갈 수가 없었다. 심지어 방금 전 서라를 향해 절규하듯 소리치던 ‘마마’소리는 서라를 은근 울컥하게 만들었다.

민국은 서라의 흔들리는 표정을 보면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오늘은 그냥 나도 있어야겠다.”

민국도 가지 않기로 결심했고, 이윽고 서라가 신발을 벗으면서 민국의 품에 안긴 아기에게로 다가갔다. 언제 울었냐는 듯 서라가 다가오자 다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두 팔을 뻗는 아기였다.

“마마!”

“…….”

서라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불과 아까 전만 해도 급작스레 등장해서 자신들의 아기라고 설명서에 적혀 있는 것을 보며,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마치 가족이 된 것처럼 온정이 느껴졌다.

“행님. 근데 아랫 계곡이 자꾸만 보이는데 기저귀가 필요하지 않을까여?”

“나도 그걸 좀 걱정하고 있다만. 일단 한 명이 나가서 사오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럼 내가 여기 있을 테니 행님이 갔다 오셔여. 또 울겠어여.”

그리고 서라가 민국을 대신해서 아기를 품에 안았다. 아기는 기다렸다는 듯 서라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그 모습이 매우 푸근하게 느껴져서 서라의 눈동자도 자연스레 따뜻함을 머금게 되었다. 민국이 그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현관으로 향하려 했다.

“빠빠!”

“…….”

“으아아아아아아앙!”

그러자 또 한 번 터트려지는 울음보. 이번엔 서라가 침묵하였고 민국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몸을 돌려 아기에게로 다가왔다. 서라를 내려다보면서 말하는 민국이었다.

“그냥 같이 나가야겠다.”

“이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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