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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160화 (160/369)

160화

<우리 가족됐어요>

민국은 옥상에서 흑마법사와 했던 대화 한 문장을 떠올렸다.

‘그래? 아쉽군. 정력에 도움 되는 아이템이나 하나 줄까 했는데.’

“아하.”

007 가방에 담겨 있는 건 비단 아기씨를 담을 수 있는 병들만이 아니었다. 센스 있는 흑마법사답게 또 다른 아이템도 넣어둔 것이다. 민국은 약 한 알이 담겨 있는 투명 봉투와 더불어 그 옆에 놓여 있는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정력을 올려주는 아이템. 효과는 하루 24시간만 가능. 무엇을 생각하든 상상 이상의 정력을 발휘하게 되는 아이템.’

“오호라.”

민국은 절로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침대에 있던 서라가 ‘으차으차’하면서 기어왔다.

“읭? 정력 증강 아이템이랍시구여?”

“서라야. 어쩌면 조만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지도 모르겠구나. 음하하하하.”

딱 하루만 사용 가능한 아이템이었으니 민국은 소중히 보관해두자고 생각하며 컴퓨터 맨 밑 서랍칸에 모셔두었다. 그리고 007 가방을 다시금 정리하려고 하는데… 틱.

“어? 또 뭐냐?”

민국은 또 다른 무언가가 가방에 걸리는 걸 느꼈다. 이윽고 고개를 내려 이목으로 확인한 민국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것도 서비스로 놓고 간 건가?”

정력 향상 아이템처럼 투명한 봉투에 담긴 알약이었는데, 색깔이 허연 것이 심상치 않았다. 민국은 혹시나 근처에 설명서가 놓여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허어, 설명서가 없구만. 실수로 떨어뜨린 건가?’

하지만 민국은 곧 그 생각을 정정했다. 왜냐하면 흑마법사는 오랜 시간 만나보진 않았어도 몇 차례 접해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결코 필요가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 타입으로서, 이 약 역시 가방에 의도적으로 남겨둔 걸지도 몰랐다. 민국은 그것을 엄지와 검지로 쥐어 들어 보이면서 관찰했다.

“흐음, 대체 이게 뭐실까나.”

“혹시 은별 언니찡의 슴가슴가를 성장시켜주는 발육 향상 아이템이 아님?”

“야 이, 말도 안 되지 인마. 내가 만져봐서 아는데 걔 가슴은 커질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야.”

“허억 은별 언니찡이 들으면 부들부들 떨 소리네여! 그나저나 벌써 만져보시다니… 마, 마사카 진도 다 끝냈셈?”

은근슬쩍 진심으로 묻는 서라였으나 민국은 ‘로리는 유아용 TV프로나 시청해라’라고 말하면서 화제를 다시 약으로 돌렸다.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일꼬.’

정력 증강 아이템처럼 알약이 한 개인 것도 아니었다. 총 두 개였다. A와 B. 그리고 색깔은 하얀색….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약일까? 민국은 사극 속의 남자가 어느 신기한 물건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듯한 눈빛을 지었다. 한참을 둘러보던 그가 자문하길.

“그냥 먹어볼까.”

“헐, 형님. 아무것도 모르고 먹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은 없는 거임여! 혹시나 그게 고질라를 죽이기 위한 미국의 비밀병기 독약 캡슐이면 어쩌려고 그러시는 거져?”

“만일 그렇다면 뭐 어쩌라는 거냐.”

“그러하다면!”

서라가 대뜸 손을 내뻗으면서 소리쳤다.

“행님의 소중한 목숨을 대신해 나님이 희생할 테니 한 번 줘보세여!”

“꿀꺽.”

“으아닛!”

더 이상의 개소리는 듣지 않겠다는 듯 민국은 A라 적힌 알약을 물 없이 그대로 삼켰다. 도중에 목에 조금 막히긴 했지만 크기가 크지는 않은지라 침으로 삼켜냈다. 이윽고 민국이 ‘크아아’하면서 맥주로 갈증을 해소했을 때나 할 법한 소리를 냈고, 서라가 관심 있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생체실험 1호 테스트 닝겐님. 신체에 어떤 급작스런 변화나 부작용은 없으신감여?”

“흠, 그런 건 없는 거 같다만. 대체 이게 무슨 약이다냐.”

설마 독약은 아닐 것이었다. 뭔가 일시적으로 특별한 효능을 가져다주는 그런 약일 것이 보나마나 뻔할 터였을 텐데….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삼켜버린 자신의 행동이 너무 과했던 것인가 뒤늦게 후회하는 민국이었다.

“근데 별 다른 반응 없는 거 보니 그냥 평범한 알약인가?”

“읭… 한 개 더 남았지여?”

민국은 그러하다며 나머지 B라 적힌 알약을 손바닥 채로 보여주었다. 이윽고 서라가 기회를 노린 듯이 ‘스틸!’하면서 손바닥에 있는 그 알약을 가로채 자신의 입속에 넣었다. 민국이 소리쳤다.

“야 인마!”

“우물우물! 꿀꺽!”

“야 이놈아, 아직 내가 어떤 반응이 올 지도 모르는 판에 똑같이 삼키면 어떡해?”

“옆에 있는 친구가 하늘을 보면 자연스레 자기도 하늘을 따라보게 되는 하늘의 이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서라도 먹고 나니 내심 불안해지는 모양이었다. 주절주절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한참동안 자신들의 현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아무 일도 없네여…?”

“그러게 말이다. 그냥 진짜 수면제 같은 약이었나.”

“으음… 그러고 보니 쪼매 졸린 느낌도 드네여!”

숙면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서라는 급작스레 피로가 몰려오는 걸 느꼈다. 눈가를 손가락으로 비비던 서라가 ‘한숨 더 잘래여!’하면서 베개에 누웠다. 민국은 그런 서라를 보다가 문득 궁금하여 물었다.

“그럼 너 오늘 내 집에서 잘 거냐?”

“온니찡… 혹시나 자는 대가로 나님의 성스러움을 갖고 싶으신 건가여?”

“후후, 너를 타락시켜서 무릎 꿇고 나를 올려다보는 귀여운 어린 양으로 만들고 싶구나.”

“아아앗 그러면 다메엣.”

“하지만 오늘은 나도 꽤 졸리네. 아무래도 그간 쌓인 피로 때문인가.”

민국은 집에 온 세 여자도 상대했겠다, 서라의 장단도 맞춰주었겠다, 심지어 난데없이 교류한 흑마법사와 친근하게 아이템을 거래했겠다… 쉬는 날 같지 않은 쉬는 날을 보냈음에 하품을 내쉬었다. 누워서 이불을 돌돌 마는 서라의 옆으로 다가간 민국이 침대에 누우면서 이불을 붙잡았다.

“야 나도 좀 써야지. 어디서 혼자 독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냐? 네가 얀데레냐?”

“흐흐흐… 내 이불은 아무에게도 못 넘겨준다능! 내 이불찡이 바람을 피우면 이불찡도 찌르고 나도 죽을 거라능!”

어색한 얀데레 연기였다. 이윽고 서라가 질문했다.

“그런데 은별 언니찡이 나 여기 있어도 된다고 함?”

“뭐, 넌 견제의 대상으로 안 보는지 그래도 된다고 하더라. 아니면 예나라는 적수가 있으니까 신경을 못 쓰는 걸 수도 있고.”

“견제의 대상으로 안 본다고 하니까 왠지 견제의 대상으로 보여 지고 싶네여! 형!”

“왜 인마.”

서라가 이불 속에 감춰두었던 얼굴을 드러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민국을 마주하면서 그녀가 물었다.

“붕가붕가해서 아기 낳을래여?”

“오, 나야 좋지.”

“장난이에염! 꺄~.”

“…….”

그리고 이불을 푹 덮어 쓰고 잠에 드는 서라였다. 민국은 그런 서라의 장난에 천장으로 몸을 돌리고는 눈을 감았다. 나른한 태양처럼 쏟아지는 피로…. 민국은 이번에는 악몽을 꾸지 않고 푹 쉴 수 있겠단 직감이 들었다.

***

짹짹짹! 참새가 지저귀는 따사로운 아침! 벽면의 시계는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날씨는 산들산들하고 푸른 가을의 냄새가 나는 것이 기분 좋았다. 민국은 간만에 꿈도 안 꾸고 푹 잠에 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흑마법사가 건네준 그 약이 악몽을 꾸지 않게 해주는 약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콕콕.

“으음 누구냐.”

민국은 뒤척였다. 돌연 누군가가 작디작은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찔러온 것이다. 콕콕.

“아우, 누구야.”

“으아잉 행님… 볼 좀 늘어뜨리지 마시라요.”

“나 아닌데 이놈아 으아….”

민국과 서라는 동시에 뒤척였다. 왜냐하면 자꾸 누군가가 볼을 톡톡 건드리거나 꼬집고 있던 것이다. 서라는 아프지는 않되 자꾸만 누군가가 볼을 잡고 늘어뜨리자 신음이 절로 날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둘 다 푹 잠에 들어 좋은 휴식을 보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으아 어떤 놈이야!”

그러나 인내심이 바닥난 건 민국 쪽이었다. 볼을 두드리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찔러대는 속도가 빨라지자 슬슬 화가 난 민국이 그리 소리치면서 상체를 일으킨 것이다. 그러자 쏙하고 이불 속으로 사라지는 무언가.

민국은 그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서라 쪽을 보았다. 서라는 눈을 감고 새근새근 다시금 잠에 들려 하고 있었다.

민국은 다시금 이불을 덮어쓰면서 서라에게 충고했다.

“서라 너 다시 한 번 그러면 진짜 폭풍 임신시켜버린다.”

“으잉… 행님이야 말로 딸친 손으로 내 볼 꼬집지 마시라여….”

“내가 언제 꼬집었다고….”

그리고 다시금 말미를 흐리면서 서서히 잠드는 두 사람. 아따, 지나가는 개가 옷자락을 물고 어디론가 끌고 가도 마냥 잠만 잘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또다시 이불 속에서 빼곰 고개를 내미는 누군가.

굉장히 왜소하고 작은 체구의 그것은 두 사람을 신기하게 번갈아 쳐다보는가 싶더니 소리 없는 미소를 그렸다. 이윽고 또다시 짓궂은 장난이 시작되었다.

톡톡. 콕콕.

“으음….”

“으아잉….”

“야 강서라….”

“온니찡 보자보자하니까 보자기내지 마시라여….”

“너야말로 자는 척하면서 자꾸 건들지 말라니까….”

“아음 내가 언제 건드렸새여… 지금도 온니찡이 건드리시넹….”

“이것 보소… 내가 기어코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어야겠냐?”

“읭 야동 다운받는데 컴퓨터 끊어진 남자느님의 맛을 보여 드릴까여?”

이 방에 자기 둘밖에 없다고 감안하는 지금, 두 사람 입장에선 자꾸 서로가 하는 짓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두 사람이 눈을 떴을 때 또다시 타이밍에 맞춰 이불 속으로 사라지는 누군가. 자연스레 눈을 마주친 서라와 민국은 공격 타이밍을 재는 야수와 맹수를 연상케 했다.

“흐압!”

“으아닛! 배리어찡!”

더 이상 못 참겠다는 것처럼 반격의 칼날을 갈며 천장 높이 뛰어올라 서라를 덮치려는 민국이었다. 이를 본 서라가 빠른 순발력으로 이불을 끌어 모아 민국에게 통째로 던져버렸다.

비록 여자라서 힘이 딸리는 건 있었지만, 민국은 면전에 이불이 덮쳐지자 ‘으아악 숨 막혀’하면서 고대로 침대에 추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추락한 그 아래에는 서라가 있었고, 민국은 벗어나려는 서라의 몸을 이곳저곳 만지면서 안 놓기 시작했다.

“네 이놈. 감히 내 볼을 현빈이 찍은 화장품 광고처럼 한 것에 용서할 거 같으냐?”

“형님이야 말로 어떻게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게 발냄새를 맡게 할 수 있져! 볼을 꼬집는 건 발 냄새와 같은 짓이라구염!”

투닥투닥 베개를 들고 스윙을 날리는 서라였고, 민국은 그런 서라를 붙잡고 어떻게든 깔아뭉개려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서라는 베개를 놓고 민국의 바지 벨트를 붙잡았으며, 나머지 손은 그의 상의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돌연 느껴지는 살결에 서라가 ‘아앗’하면서 소리쳤다.

“형님 암내나여!”

“너야말로 이빨 씻어라 인마! 어제 개똥 먹었지?”

“의이이잉! 분노한다능!”

민국의 손길 역시 발버둥치는 서라의 와이셔츠 속과 바지 속으로 향했으며… 다행히 성적인 부위에는 접촉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까지만 접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이이이잉! 받으라능! 분노의 거시기 차기라능!”

“남자도 똑같이 거시기 차기를 할 수 있다! 다시는 남자를 무시하지 마라!”

“하지만 경찰은 내 편이지여! 공권력을 이용해서 성폭행범으로 몰아내겠어여!”

“이, 이 자식… 그리 치사한 수법을!”

이제 슬슬 정신도 깨어나겠다, 한참을 뒤척이던 건강한 두 사람은 결국 침대 아래로 이불과 함께 떨어지고 말았다. 콰당!

“으악!”

“엉덩찡!”

비록 평화로운 잠에 들었으나, 새로운 하루의 시작은 첫 스타트부터 좋지 못했다. 민국과 서라는 떨어지면서 각자 부딪힌 부위를 매만지며 일어났다. 민국이 인상을 찡그리다가 서라에게 물었다.

“다시는 아침부터 그런 짓하지 마라. 알았냐? 그땐 진짜 임신시켜버린다.”

“온니찡이야 말로 다시는 내 소중한 뺨에 딸의 손길을 담게 하지 마시져! 아기씨를 빼버리겠어와여!”

그렇게 아침부터 장난스레 말배틀을 뜨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돌연 이불이 없어 휑해진 침대 위에서 누군가가 작디작은 양팔을 올리면서 뭐라 지껄이는 게 보였다. 당연지사 둘만 있을 거라 생각하던 서라와 민국의 고개가 소리가 난 쪽으로 잽싸게 돌아갔다.

“빠빠!”

“…….”

“마마!”

“…….”

아기 피부를 가진… 굉장히 어린 아기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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