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158화 (158/369)

158화

“하지만 행님. 나님은 노력하는 자의 열망을 무시할 수가 없어여. 고로 고백하는 것에 용기를 낸 그이의 정성에 대해 어렵사리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음여!”

“고민은 무슨. 야 인마, 잘 생각해봐. 내가 결론을 내려줄게. 그 녀석은 나랑 같은 남자야. 고로 내가 남자를 너보다 잘 이해하지. 그리고 그 녀석 나이는 사춘기 때의 나이다.”

“이응이응.”

“그리고 너는 그 나이 때 애들에 비해서 묘한 섹시미가 있어. 왠지 지키고 싶지만 덮치고 싶은 마음이랄까.”

“변태다! 변태가 나타났당!”

“어쨌든 나조차도 그런 욕정을 품는데 그 녀석이 너에게 그런 욕정을 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냐?”

졸지에 서라에게 그런 감정을 때때로 풍기고 있다고 고백하는 민국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늘 그런 식으로 성드립을 치면서 놀아왔기 때문에 별 다른 충격은 없었다. 서라는 손을 들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선생님! 나님은 사귀면 그런 건 신경 안 씀!”

“오… 마이 갓!”

사랑을 하면 나이는 필요 없는 요소다. 성적인 접촉이든 대시든 그런 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서라는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 여기는 타입이었다.

“야, 몸이 끌리면 마음도 자연스레 끌리는 법이야. 절대 안 돼. 이 몸은 그 고백에 승낙을 반대한다!”

“부들부들! 왜 고민 상담만 들으려 한 건데 반대를 받는 거임?”

서라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온니찡은 내님의 친오빠가 아니라서 거부권에 효과가 없는데여? 으히히!”

“제길! 넌 친오빠도 없냐? 이거 당장에라도 가서 말해주고 싶은데.”

“있었으면 왠지 형님도 못 만났을 듯.”

그러하다.

“야. 그럼 이제부터 내가 네 친 오빠다. 계약서 작성할 테니까 지장 찍어.”

“으아니이잇.”

따지고 보면 서라와 민국은 남남이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민국이 서라에게 신경을 쓰는 것일까? 그건 서라가 전 세계의 여자들 중에서 빼어난 외모를 가진 톱의 여성이기 때문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라, 멘탈이나 성격이나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그녀가 자칫 나쁜 인연을 만나 나쁜 물이 든다면…? 민국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분이자 귀여운 여동생이 그런 꼴을 당하는 건 보기 싫었다.

“왜 좋은 애일 수도 있다는 가정은 제외하져?”

“그 녀석보다 내가 무조건 낫기 때문이지.”

“허억, 형님은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인데 그 애는 토한 찌꺼기라는 건가여?”

“그래. 음식물 찌꺼기는 길거리 고양이들이라도 먹잖아? 하지만 토한 찌꺼기는 비둘기들이나 먹지. 빨리 지장이나 찍어 인마.”

“으으! 코토와루!”

코토와루 : 거절한다의 일본어

“행님 종말 너무하시네영! 동생느님이 모처럼 온니찡에게 고민 상담을 받겠다는데 마냥 안 된다만 하시다니영! 부모님에게 음악하고 싶어요 라고 하니까 안 된다고 거절만 하는 부모님이랑 뭐가 다른 가염!”

“음악에 음자도 모르는 녀석이 느닷없이 음악하고 싶다고 난리 부르스치면 어느 부모가 좋다고 승낙해주겠냐?”

“헉. 논리적인 소리라서 할 말이 없셈.”

“어찌 됐든 그놈은 안 된다. 이 친 오빠가 거절한다!”

“까닭을 정확히 말씀해주시면 포기해드리져!”

“그래 인마. 내가 아주 정확하게 말해주마. 듣고 나서 놀라지나 마라.”

민국은 정확하게 서라가 그 오타쿠랑 사귀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놈 오타쿠라고 했지? 애니 많이 보냐?”

“끄덕!”

“그럼 그놈은 나중에 너랑 뭔가 은밀한 접촉을 했을 때 너에게 어떤 걸 요구할 거야. 그게 뭐라고 생각하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서라였다.

“뭐가염?”

“어휴, 세상 물정 모르는 놈. 야, 너 같이 예쁜 애를 두고 그놈이 평범한 짓만 하려고 하겠냐? 분명히 너를 통해서 요상한 판타지란 판타지는 다 경험해보려고 할 거다. 가령 메이드라던가 간호사복이라던가! 마사지하는 방에 초대한 것처럼 꾸며서 오일을 듬뿍 바르고 만진다던가!”

“어, 어멋? 부끄부끄! 왠지 온니짱만 할 거 같은 생각이네여.”

서라가 두 뺨에 양손을 올리면서 부끄러운 척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다가 엇나가서 그만 새 생명을 낳을 수도 있어. 넌 아직 고등학생이야! 부모님에게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지. 어때? 이 정도면 내가 왜 너와 그 녀석의 사귐을 반대하는지 알겠냐?”

단순히 서라가 예쁘기 때문에 자신이 소유하려는 마음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잘난 여자였다. 그녀 스스로만 모를 뿐 남정네들에게 인기를 미친 듯이 받고 있는 아이였는데, 언제 나쁜 일이 일어나도 모르는 것이었다. 민국은 아는 오빠로서 보호 본능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의이이이이잉…. 엿 드리고 싶은데 엿이 없는 게 몹시 분함.”

“됐고 밥이나 먹고 방송이나 해. 난 먹고 나서 한 숨 잘 테니까.”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위에 안 좋은 거 모름? 온니짱은 위의 건강은 생각도 안하시는군! 으히히히히!”

“…….”

“…넹.”

여하튼 고백 건은 뒤로 미뤄두고, 두 사람은 오붓하게 식사를 마쳤다. 역시 자취를 하는 사람답게 민국의 요리 실력은 가면 갈수록 늘고 있었다. 이윽고 식사를 마친 민국이 침대에 ‘으랏차’하면서 드러누웠고, 서라는 컴퓨터를 키고 파뿌리 TV 화면에 접속했다.

“여기 의자 높낮이가 왠지 적응이 안 되네여.”

“그거 높낮이 조절 될 걸? 흐아암. 무지하게 졸렵네.”

민국은 기지개를 키면서 낮잠 잘 준비를 했다. 서라는 그런 민국에게서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보았다.

“나 시끄러운데 잘 수 있겠삼?”

“너의 목소리는 천사가 동요를 부르는 것과 같다.”

“느끼함으로 사람의 몸을 녹여버리는 신스킬인가여?"

그리하여 민국은 이불을 쓰고 옆으로 몸을 돌리면서 눈을 감았다. 서라는 그와는 반대로 방송을 키고 혼자서 쇼를 위한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에 접속하고 시청자들이 채팅방에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서라가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남정네스럽게 소리냈다.

“콩딱지입네다 뻑유!”

***

방송은 약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역시 이 상황이 어색해서 그런가… 서라는 방송을 쉽사리 하는 게 조금은 어려웠다. 그래도 서민국의 집이기에 이렇게 방송을 한다고 부탁을 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 그만큼 서라는 민국에게 많은 신뢰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

“온니쨩 자셈?”

방송을 마친 서라가 본래의 목소리로 돌아와 민국을 불렀다. 하지만 민국은 완전히 잠에 들었는지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새근새근 눈을 감고 잠든 민국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던 서라였다.

‘너 같이 예쁜 애를 두고 그놈이 평범한 짓만 하려고 하겠냐?’

서라는 민국의 얼굴을 보면서 방금 전의 대화 내용을 떠올렸다. 민국이 순수하게 언급했던 그 대사가 묘하게 머릿속에 울렸다.

요즘 들어 서라도 자신의 외모가 자기가 생각하던 것보다 한층 빼어나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었다. 교내에서 남녀 불문하고 질투를 비롯하여 호감의 시선이 느껴지곤 하였으니까. 이젠 그녀도 그걸 느낄 정도의 눈치가 있었다.

“의잉. 자시는구나.”

하지만 서라는 사실상 그들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누가 고백을 해오든 말든, 이성적인 호감이 조금도 싹트질 않았으니까. 생각해봐라.

애초부터 친한 척 대화를 나눈 적도 없던 남자들이 다가와서 대뜸 좋다고 사귀자고 하면 어느 여자가 좋다고 느끼겠는가? 자신의 가치가 높구나 깨우치는 것을 제외하면,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은 싹트기가 어려운 게 정상적인 생각의 범위였다.

‘오빠 노릇 별로 하실 필요 없는데 말이에여.’

서라는 오빠오빠거리면서 자신을 최대한 보호하려던 민국의 행동을 느꼈다. 뭐… 서라가 너무 예쁘다 보니 애증의 감정도 조금은 생기겠지만, 그래도 그만큼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역력했던 것이다. 서라도 그 감정을 느꼈고 한층 호감이 싹트는 걸 느꼈다.

‘만일 은별 언니찡이 없었으면 오빠는 어떻게 됐을까여?’

불현듯이 그런 생각을 품으면서, 서라는 기지개를 피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집에 돌아갈 수도 없겠다, 요 3일간은 민국의 집에 있든가 친구네 집에 있든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으음! 피곤피곤!”

어깨 근육을 이완해주기 위해 가볍게 체조를 하던 서라가 민국의 비어 있는 침대 자리로 스윽 향했다. 그리고는 그곳으로 퐁당 물에 빠진 올챙이처럼 도약하더니, 민국이 쓰고 있는 이불을 ‘스스슥’거리며 자신의 몸에다 덮었다.

“이불의 체온이여! 나님에게로 향하기를!”

마치 이불에게 주문을 걸듯 그리 소리를 치면서 서라는 새우처럼 몸을 구부렸다. 마치 어미의 뱃속 태아를 연상케 하는 자세였다.

“으으음….”

이불이 자꾸만 어디론가 끌려가자 민국이 잠결에 뒤척이는 모습이었다. 천장을 향한 민국의 몸이 옆으로 돌아갔다. 자연스레 서라의 뒤에서 포곤히 감싸주는 자세가 되어버렸다.

‘…잉?’

서라는 자신의 옆구리로 파고든 어느 따뜻한 살결을 느꼈다. 민국의 팔뚝이었다. 그것을 잠시 눈길로 흘겨보던 서라가 반쯤 고개를 돌려 민국의 상태를 확인했다. 민국은 ‘음냐음냐….’거리면서 아직도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숙면 중에도 로리를 노리다니! 역시 아청법의 아이콘!’

막 이런저런 장난들이 떠오르는 서라였지만, 그래도 잠자는 상대에게 그런 짓을 할 정도로 그녀는 짓궂지 않았다. 이윽고 서라도 한층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 눈을 감았다.

방송으로 체력도 좀 빠졌겠다, 원기 회복도 할 겸 잠을 자려는 모습이었다. 후우우….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뜨거운 숨결. 눈을 감았던 서라가 슬그머니 다시 떠 보이며 민국을 바라보았다.

‘?????’

조금 전만 해도 멀리 떨어져 있던 민국의 얼굴이었다. 어느 덧 서라의 뒤통수에 가까이 있었다. 심지어 서라의 옆구리에 있던 민국의 손은, 껴안을 듯이 모양새를 잡고 있었다.

“잉? 오, 온니쨩 타임….”

“으으음.”

“야, 야메떼영!”

민국도 서라와 마찬가지로 새우잠의 자세를 취했다. 덕분에 서라는 졸지에 민국이 껴안는 큰 베개가 되어버렸다. 민국에겐 잠을 잘 때 한 가지 버릇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큰 베개든 작은 베개든 일단 껴안고 자는 버릇이었다.

“으으음….”

“이러지 마시와영….”

서라는 얼굴을 붉히면서 진심으로 부끄러워했다. 물론 예전 말벌 사건에 비하면 큰일은 아니었다. 그때는 민국의 성스러운 검의 감촉도 느낀 적이 있으니까. 오히려 그때 두 사람에게 아무런 일이 없던 게 신기할 따름이다.

“으헤, 은별아. 내 아를 낳아도.”

“히이익. 패, 패도 새끼!”

벗어나려고 발벼둥도 쳐봤으나 민국의 손아귀는 절대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주문처럼 뻗어진 민국의 손아귀가 서라의 몸을 휘저었고, 졸지에 한 쪽 손은 서라의 와이셔츠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서라는 부끄러운 마음에 민국의 얼굴을 양손으로 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남자는 남자인지라! 힘이 너무나도 강했다.

“이, 이러지 마시랑깨여! 온니짱은 지금 아청법 위반에 가장 버금가는 행위를 하려고 한당깨여!”

“으으음, 은별아아아.”

대체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민국은 강렬하게 서라를 포옹했다. 발버둥치던 서라는 완전히 껴안겨버려 못 움직이게 되었다. 역시 남자 힘은 여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이잉… 망했어여.”

“지켜줄게 은별아….”

잠결에 옹알거리는 그 소리는, 얼굴이 가까워서인지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줄게에….”

“…….”

손아귀에 발악하던 서라도 그 소리에 돌연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사뭇 생각에 빠진 얼굴로 민국의 목덜미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예전 참사를 회상할 따름이었다.

‘안 돼애애애애!’

절망에 빠져 포효하던 민국은, 흑마법사의 구원으로 재차 새 삶을 받을 수 있었다. 그건 다른 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일 그때 민국이가 혼신을 다해 흑마법사에게 부탁하지 않았더라면, 네 여자는 지금쯤 이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으으음….”

이제 보니 민국의 꿈이 마냥 좋은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목덜미에 땀도 싱글싱글 맺혀 있었고, 얼굴도 생각보다 어두웠다. 아무래도 그때 악몽이 재현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서라는 그런 민국에게서 언제 벗어나려고 했냐는 듯, 양손으로 민국을 포근히 껴안았다.

“언니찡이 부럽네여.”

“…….”

“나도 오빠 같은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속마음을 몰래 내뱉으며, 서라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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