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민국이 손수 요리한 김치 볶음밥의 나머지를 먹으면서 식사를 끝내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예나가 용기 내어 물었다.
“그… 만석이라는 분이 보내준 영상 그거… 현대왕이란 비제이였지?”
“우웁.”
김치볶음밥을 입에 담던 민국이 그만 그것을 토해낼 뻔했다. 당황을 숨기면서 민국은 입가에 묻은 밥 알갱이들을 스윽 처리했다.
‘설마 예나가 먼저 그 주제에 대해서 거론할 줄이야.’
예나의 속내를 확실히 추정한 민국이었다. 짐짓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민국이 반문했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예나라면 그런 거 잘 모를 줄 알았는데.”
‘피하려는 거구나.’
그런 민국이의 속내를 확실히 추정한 예나였다. 짐짓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예나가 답했다.
“우연히 알게 됐어. 워낙 유명한 사람이더라고… 내가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아, 그래?”
다시금 식사. 하지만 어색한 침묵이 깨진 것도 또다시 그녀의 물음 덕분이었다.
“민국이는… 그 사람에 대해서 좀 알고 있어…?”
“어? 아니, 난 그 사람이 현대왕인 것도 지금 처음 알았는데?”
‘아차!’
민국은 그리 얘기하고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현대왕! 예나같이 인터넷을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는 비제이였다. 하지만 인터넷을 곧잘 접해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 법한 비제이였다.
애초에 민국이가 인터넷을 많이 한다는 건 예나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거짓말인 게 당연지사 들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일… 민국은 다시금 어색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
예나는 나머지 볶음밥의 알갱이들을 입에 넣고는 씹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
“그 사람… 너랑 닮은 점이 좀 있어….”
“응? 나랑 닮은 점?”
민국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시선을 피했다.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민국이 말을 이었다.
“나랑 닮은 점이라니. 나는 그 현대… 뭐시기하는 분이랑 별로 닮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야… 닮았어. 이름도 비슷해.”
예나가 말을 이었다.
“그 사람 성자는 모르겠지만 이름이 너랑 똑같았어. 민국이라고….”
“허? 진짜?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오늘 방송했던 게 있더라고… 녹화 방송이라고 하는 거 처음 봤는데 거기에서 너랑 같은 이름이 거론됐어….”
‘역시나!’
민국이 아까 전 접했던 그 녹화 방송이 원인이었다. 그것만 없었더라면! 민국의 본체(?)가 유출되는 일은 결코 없었으리라. 민국은 한 순간의 실수가 이런 무지막지한 결과를 벌였음에 꿀꺽 침을 삼켰다. 애써 아닌 척 미소를 잃지 않는다.
“정말? 그거 신기하네. 그런 이상한 사람이 나랑 비슷한 이름이라니 하하.”
“이상한… 사람?”
예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어디까지 숨겨볼 지 두고 보자는 듯한 음성이었다. 민국은 서서히 긴장이 타오르는 걸 느끼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행히 테이블 아래에 숨기고 있는지라 보이지는 않았다. 예나의 말이 이어졌다.
“으응… 정말 이상한 것 같아, 왜냐면 민국이 이름만 똑같은 게 아니었거든….”
“내 이름만 똑같은 게 아니야? 그게 무슨 뜻이야?”
“거기에 나오는 다른 비제이 이름도 비슷했어….”
“…….”
“은별 씨라던가… 다른 비제이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왠지 기존에 내가 알던 사람들이랑도 행동이 비슷했고….”
‘으아아!’
민국은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범죄현장에서 명탐정에게 자신의 사건 현장을 속속히 들키고 있는 듯한 범인의 느낌이었다. 예나는 뚫는 창으로서 방패를 산산조각내기 위해 조곤조곤 말을 토해냈다.
“특히 그 민국이라는 현대왕 비제이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도 은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
“은별이라… 내 여자 친구랑 이름이 똑같구나.”
“응. 그 외에 콩딱지라는 비제이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이름은 거론된 적이 없는 것 같지만 서라랑 행동거지가 비슷했어.”
“…….”
“그리고 유이 씨도….”
“…….”
“목소리부터 행동까지… 모조리 비슷했어….”
사실상 비제이로서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극도적으로 반대인 편에 속하는 건 서민국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 서민국과 얽혀 있는 비제이들은 그래도 가상에서의 모습이 현실에서 어느 정도 반영되는 상태였다.
특히나 개성이 짙은 강서라라던가 최유이, 강은별 같은 경우는 지인이라면 눈치를 챌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고개를 숙여 표정을 가리던 예나가 얼굴을 드러냈다.
그녀의 얼굴에는 역시나 눈웃음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 눈웃음이 결코 즐거움이 담긴 웃음은 아니었다.
“신기하지?”
“아하하, 그러네. 신기하네. 정말 신기해 아하하.”
민국은 완전 굳어버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평소라면 숨기는데 철벽같을 민국이었지만, 위험 요소가 모조리 들키고 마니까 떨릴 수밖에 없었다. 민국은 먹던 김치볶음밥을 남기고 두 손을 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깍지를 끼면서 당면의 예나를 쳐다보았다. 흔들리는 시선을 최대한 바로하면서 말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비제이가 있던 것도 이제 알아서 말이야. 참 재밌네 인생. 하긴 국민이 5천만이 넘어가는데 그런 우연도 존재하겠지? 왜 심심해서 로또 자동으로 천원어치 했는데 1등 당첨된 사람들도 있잖아? 필시 그런 우연일 거야.”
“과연 그런 걸까….”
“응, 그렇겠지. 설마 은별이나 유이 씨, 강서라가 나 몰래 그런 일을 할 리도 없을 테잖아? 특히 은별이 같은 경우는 나랑 있는 시간도 많았는데.”
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궁금하며 반문하는 듯한 갸웃거림이 아니었다. 다 알고 있다는 듯 취하는 제스쳐였다.
“근데 민국아. 더 재밌는 게 있어. 그게 뭔지 알아?”
“…이번엔 또 뭡니까.”
저도 모르게 경어가 튀어 나오는 민국이었다.
“거기서 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현대왕이랑… 은별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고딩이 실은 사귀고 있대.”
“…….”
“심지어 사귀고 있다고 발표하는 영상이 있는데… 날짜가 너랑 은별 씨가 실제로 사귀었던 날짜랑 가까워.”
“와, 진짜? 그거 대박이네.”
민국은 정말 우연의 일치라는 듯 손뼉을 치면서 또다시 위기를 피해가려고 했다.
“심지어 나이도 비슷한가봐. 거기서 현대왕은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남고딩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허어, 그래? 혹시 서울 쪽 대학교 다니려나.”
“응, 그런 것 같아.”
민국은 팔짱을 끼면서 진심으로 놀랍다는 얼굴을 보였다.
“나중에 살다가 언젠간 만날 수도 있겠네. 도플갱어라는 게 실존하는구나.”
“응. 진짜 도플갱어는 존재하는 것 같아.”
‘아, 맞아.’라고 덧붙이면서 예나가 대뜸 휴대폰을 들었다.
“더 신기한 게 있어.”
‘보여줄게’라고 덧붙이며 그녀가 휴대폰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어느 덧 인터넷에 들어가서 현대왕의 방송국에 접속해 있었다.
“여기 전체게시판에 공지를 보면 며칠부터 며칠까지 쉰다는 예고가 있어. 그런데 이때가 민국이 너랑 나랑,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랑 바캉스에 갔던 날짜야.”
“…….”
“이 사람이 왜 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신기하지? 우리가 바캉스 갔던 날짜에 쉬고….”
‘아뿔사.’
민국은 전체게시판에 올린 공지를 하필이면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구나 생각했다. 공지 내용으로는 어디까지나 쉬고서 며칠 뒤에 돌아오겠다는 말만 적혀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충분히 예나의 의심에 개연성을 덧붙여줄 수 있는 그릇이 되었다. 남은 것은 그릇 위에 음식만 세팅하는 것이다.
“하. 하. 하. 그러게. 진짜 신기하네.”
“…….”
“우와, 정말 신기하다! 이건 기적일까? 아니면 필연? 언젠가는 이 사람이랑 꼭 만날 지도 모르겠는데? 근데 너무 막장 요소가 다분한 사람이라 좀 보기 싫을 지도 모르겠다!”
“…….”
예나가 또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제스쳐는 결코 의문이 아니었다.
“그래?”
“하하, 그렇지. 이런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 남고딩이란 비제이도 참 대단하네.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말이야!”
예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좋아할 사람은 있을 거라 생각해.”
“응?”
예나의 음성은 담담했다. 민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사뭇 진지한 그녀의 분위기는 정말이지….
“아무리 이런 면모를 갖춘 사람이라고 해도, 여자가 좋아한다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라고 봐. 그리고 사람이라는 건 한 가지의 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해.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어어, 그래도 예나 너라면 정이 떨어질 것 같은데.”
분위기에 그만 그리 질문을 던진 민국이었다. 하지만 예나는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처음엔 좀 놀라겠지만… 그래도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을까…?”
“…….”
“애초에 이런 식으로 본심을 숨기고 사는 거라면… 이 사람도 표현은 안하겠지만 외로움을 많이 탈거라고 생각해.”
현대왕이란 작자가 본심을 숨기고 현재에 사는지, 아닌지, 모를 예나였다. 하지만 민국이 현대왕임을 확신한 그녀 입장에선 이미 현대왕이 본심이란 것을 감추고 산다고 확정 짓고 있었다. 민국은 그런 예나의 말에 조금은 감동을 먹었다. 확실히 자신이 죽을병에 아플 때도 조치를 취해준 그녀다웠다.
‘말해줘도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약한 모습일 지도 모르지만 예나에게 숨겨왔던 본심을 보여준다면 그녀가 떠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예나의 성숙한 포옹력은 그런 민국의 변태적인 면모조차도 감싸 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놓고 쉽사리 떠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민국은 자문하듯 질문했다. 애초에 그것은 자기 혼자서 답을 알아낼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으니까. 예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도… 있을 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예나가 민국을 쳐다보았다. 똑바로 쳐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말해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을 거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
모든 것을 막아버리는 방패는 개뿔. 이미 창끝이 목 끝에 도달해 있는데, 그제 와서 방패를 들어봤자 늦은 뻔자다. 하지만… 하지만 역시 민국에게도 고집이 있다.
“미안해.”
“…….”
“미안해 예나야.”
민국은 왠지 모르게 사과를 하게 됐다. 예나를 이해하게 된 지금, 그녀가 자신에 대해 전부 다 알 거라 생각했겠지만 실은 아니었단 사실에 충격을 먹었을 것이다.
예나는 늘 전부를 보여주었는데 민국은 항상 중요한 사실을 꽁꽁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요 십 몇 년간을 그녀에게 항상 거짓된 모습으로 일관했었다. 어쩌면 예나가 민국에게 크게 실망한 까닭은 그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쭈욱 숨겨온 자신의 본심을, 자신의 변태력을 감히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이란 건 결코 쉽게 변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니다.
기존에 살아왔던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오면 자연스레 견제를 하게 되는 법이다. 어느 모임에 전혀 걸맞지 않는 다른 성질의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은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
맞춰주지 못하면 자연스레 밀려나고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재의 사회고 현실의 모습이다.
민국은 아직까지도 그리 생각했다.
“정말로 미안해.”
“…….”
그리고 그 생각은 늘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까지도 쭈욱. 영원히.
그러나 의외성은 존재했다. 그 의외성의 인물이 자신에게 신뢰를 준 인물이라면, 한 번 믿음을 걸어볼 만했다.
“내가 현대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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