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아응! 오빠!”
“응?”
후라이팬에 김치와 밥을 넣고 볶던 민국이었다. 순간 들려온 소리에 손을 멈추면서 민국은 의아한 얼굴을 지었다. 이윽고 방안에 있을 예나를 떠올리면서 그녀를 호명한다.
“예나야. 혹시 네가 나 불렀어?”
“아… 아니?! 왜, 왜…?”
“흠….”
민국은 그냥 잘못 들은 건가 생각하면서 목 근육을 풀어 보였다. 예나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숨을 죽였다.
하마터면 심상치 않은 현장을 그대로 들킬 뻔했다. 예나는 놓았던 마우스를 곧장 쥐어 정지 버튼을 클릭한 상태였다.
뒤로 가기를 누르려다가 팔꿈치로 그만 엔터 버튼을 클릭한 게 실수였다. 켜진 영상을 잠시 붉어진 얼굴로 지켜보던 예나가 엑스 자를 눌렀다.
‘수능 특강…이라면서….’
야구 2012년 베스트 영상 폴더를 비롯해 수능 특강 교실 영상, in서울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 강의 등등의 폴더가 있었다. 그러나 그 폴더의 실상은 모조리 야동이었다. 또한 국가별로 있는지 영어로 된 강의, 일본어로 된 강의… 이런 식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
예나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못 들었다. 그래도 역시 민국이도 남자니까… 남자라면 다 이런 것을 본다는 것쯤은 친구들의 이야기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내가 이해해야 할 부분이야….’
그리 생각하고 예나는 야동 폴더를 아예 꺼버렸다. 폴더에는 특별히 비제이라 추정할 수 있는 약점(?)이 없는 것 같았다.
이번엔 인터넷 익스플로어를 켜보는 예나였다. 그녀는 친구가 가르쳐주었던 것을 토대로 상단 우측의 즐겨찾기를 눌러보았다. 그러자 민국이가 자주 사용하는 홈페이지로 추가 된 사이트가 일렬로 나열되었다.
“…….”
굉장히 많은 홈페이지가 추가되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예나는 그 중에 비제이와 관련된 목록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찌나 많은지 도무지 걸러낼 수가 없었다. 이윽고 하나하나 딸칵딸칵거리며 홈페이지에 들어가던 예나였다.
“……?!”
이번에 역시 심상치 않은 걸 발견했다. 허나 비제이와 관련된 홈페이지는 아니었다. 예나는 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본능적으로 마우스에서 손을 놓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심호흡으로 안정을 다스리고 모니터를 확인하는 그녀였다.
‘마, 망가…?’
순결한 예나로선 처음 듣는 단어였다. 애초에 글자라는 것도 늘 성숙한 것만 사용해온 그녀였다. ‘망가’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뿐더러, 그 아래에 나열된 은근히 야한 그림체들은….
‘…….’
스크롤을 내리던 예나는 아래로 내리면 내릴수록 야해지는 그림과 더불어 격해지는 접촉씬에 얼굴을 붉혔다. 황급히 다른 홈페이지를 찾으려고 마우스를 놀리는 예나였다.
“예나야. 뭐해?”
“……!!!!”
가까워지는 발걸음과 함께 급작스레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예나가 화들짝 놀랐다. 마우스를 격하게 놀려 홈페이지 창을 끄려던 그녀! 허나 땀 때문에 실수로 마우스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툭! 저벅 저벅. 민국은 마침 안방의 예나에게 거의 도착한 상황!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민국이 안방에 당도해서 예나가 있는 쪽을 보았다.
“예나야? 왜 그러고 서 있어?”
“아… 하하… 으, 응… 그러게?”
전신에 식은땀이 흐른다. 애써 짓는 눈웃음은 누가 봐도 정말이지 어색했다. 민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컴퓨터는 또 왜 몸으로 가리고 있는지….
“컴퓨터는 왜 가리고 있어?”
“어?! 아… 으응. 가, 가리긴… 자 잘 봐….”
짐짓 미소 지으며 컴퓨터를 가리던 자리에서 벗어나는 예나였다. 그러자 전원이 꺼져 있는 모니터 화면이 보였다. 민국은 ‘흠?’하고 의문을 품은 소리를 냈지만, 예나는 여전히 어색하게 웃음 지을 따름이었다. 수상하지 아니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민국은 예나니까, 뭐 별 큰 탈은 없겠거니 생각하고 몸을 돌렸다.
“김치볶음밥 다 해놨거든. 안으로 들어와서 먹을까 아니면 부엌에서 먹을래?”
“부, 부엌!”
“그래? 알았어. 그럼 빨리 와.”
“응!”
또다시 민국이 부엌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예나가 크게 안도를 한 얼굴로 모니터를 보았다. …가까스로 본체의 전원을 끄는데 성공했다. 한 발로 서서 본체 쪽 전원을 엄지로 끄는 건 정말이지 경련이 일어나는 행위였다.
‘그래도 다행이야….’
예나는 또 다른 의미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연히 동명이인이었을 뿐, 역시 민국과 현대왕은 다른 인물이었던 것이다. 만일 그가 정말 비제이로서 잘 나가는 현대왕이었다면, 컴퓨터에 흔적이 전혀 없을 리 없다. 즐겨찾기 추가창에도 그의 방송 홈페이지라던가 띄어 있어야 했다.
“…….”
비록 민국의 성적 취향은 깔끔 떨 거 없이 모조리 확인해버린 예나였지만, 그래도 현대왕이란 인물과 동일인물이 아니란 점으로도 충분히 안심했다.
“예나야? 안 와?”
“으응… 갈게…!”
후다닥 민국이 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민국은 단순히 김치와 밥을 볶은 요리에 불과했지만, 정성들여 했는지 겉보기에 꽤나 맛있어 보였다. 맞은편 의자에 앉은 예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정말 맛있어 보여, 민국아. 고마워.”
“아니야. 늘 네가 도시락 싸준 정성이란 게 있잖아. 나도 보답을 해야지.”
예나는 감동한 눈동자로 테이블의 음식을 내려다봤다. 예나가 해준 정성 하나 하나를 숙지하고 언제든지 보답하기 위해 준비하는 민국이었다. 이런 그가 그런 해괴망측하고 파렴치한 현대왕일 리가 없지 않은가? 역시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라 확신하며 예나는 수저를 들었다.
“먹어봐도 돼?”
“응. 먹어 봐.”
이윽고 예나가 수저를 들어 한 입 먹었고, 곧 입가에 느껴지는 달가운 맛에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민국아. 맛있어!”
“그래? 다행이다. 탈나지 않게 조심히 먹어.”
“응…!”
아주 오붓한 분위기다. 은별이 이를 본다면 부리나케 화를 내며 달려오겠지만, 지금은 그런 훼방꾼도 없다. 민국과 단 둘이 식사를 한다는 게 예나에겐 실로 오랜만인 일이었다. 민국에게 생긴 애인, 강은별로 말미암아 그녀의 자리가 사라진지 오래였으니까.
‘민국이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정말 기뻐.’
고작 김치볶음밥 하나 요리해준 것이었으나, 그 요리에 든 정성에 예나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식사했다. 우우우우웅….
“응?”
“……?”
그때였다. 테이블에서 갑자기 진동 소리가 울려왔다. 예나가 의문 어린 눈동자로 고개를 드니, 민국이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게 보였다.
“…….”
“…….”
두 사람은 순간 말문이 멎었다. 특히나 휴대폰의 주인인 서민국은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가앙간!]
통화를 건 상대의 이름이 그리 적혀 있었다. 이것은 필시 민국이 적은 것이 아니리라. 어젯밤 강서라가 서민국의 휴대폰으로 장난을 쳤는데… 필시 그 장난의 흔적이 분명했다.
‘으아 강서라 이 자식!’
“…….”
민국이 후다닥 휴대폰을 쥐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밥 먹다 말고 이쪽을 쳐다보는 예나를 향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하하, 하하. 나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누가 연락을 해와서.”
“…….”
뜸을 들이던 예나가 곧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응… 그래도 괜찮아….”
“응, 금방 갔다 올게.”드르륵. 민국이 의자를 밀고 부엌을 나간다. 어찌나 중요한 사정인지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까지 잠그는 모습이었다. 예나는 밥을 먹다 말고 그것을 지켜보다가 순간 회상했다.
‘가앙간은…….’
‘가아아아아아앙가아아아아아안!!!!!!!!!!!!!!’
현대왕이 최유이와 닮은 비제이에게 소리를 내지를 때 쓰던 말이었다. 대놓고 성적인 단어, 강간 강간을 발음하며 여자 비제이를 놀릴 때 쓰던 말!
‘아… 아니야… 아닐 거야…!’
민국이가 손수 해준 요리가 언제 맛있었냐는 것처럼, 예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고뇌했다.
‘…….’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다만 그것이 실수인지 정답인지는 아직 예나도 알 수 없다. 드르륵. 이윽고 의자에서 일어나는 예나였다.
저벅 저벅…. 소리가 나지 않게 미약한 발걸음으로 화장실 앞까지 다가간 예나였다. 혹시 문에 귀를 대면 좀이라도 들릴까 싶어, 밀착해본다. 그러자… 그러자 아주 조금이지만 무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예? 시간을 늦추자고요?”
“…….”
“아니 이 가슴만 빈대떡처럼 큰 여자가… 아니,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
“후, 그래서 늦추자는 이유가 뭡니까? 예? 말 못한다구요? 생리세요? 뜨악!”
“…….”
예나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것은… 이 천방지축스럽고 다소 막장스러운 이 말투는…!
‘현대…왕…!’
숨겨진 십년 묵은 전설이(?) 이제 막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
“일이 좀…….”
“혹시 그 일이라는 게 저격 고수 일은 아니죠?”
“…….”
최유이는 침묵했다. 보통 침묵을 하면 긍정이란 표시건만, 그녀는 보통 부정의 표시로 사용했다. 그녀의 심리를 읽은 민국이 거하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어찌 됐든 아무 일 없이 이따 보기로 합시다. 가슴왕 파이팅.”
“…….”
“어허, 뭐하십니까? 빨리 파이팅해야죠. 파이팅.”
“…파.”
“그래요 그래. 엇험, 이제 내 말 좀 듣네. 파이팅.”
“파….”
민국의 요구에 결국엔 따라주는 것일까?
“파멸.”
하지만 아니었다. 유이는 그 단어를 읊조리고 조용히 연락을 끊었다. 연락이 끊긴 직후, 민국은 침묵하면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
엿 됐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이가 파멸이란 단어를 사용할 정도면 민국이 어지간히 비아냥을 거렸다는 것이었다. 민국은 ‘으, 씨발 어쩌지?’하면서 머리를 박박 긁다가 결심했다.
“자살하자.”
물론 그건 농담이었다. 아직 민국은 세상에서 즐기고 싶은 일이 많은 아이였다.
“모르겠다. 일단 아무 일 없길 바라야지.”
최유이가 부디 헛된 짓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민국은 화장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덜컥.
“엇!”
“아…!”
그러다 그만 앞에 있는 예나를 못 보고 부딪힌 민국이었다. 다행히 민국은 크게 밀리지 않았고, 예나는 조금 휘청인 모습이었다.
“예나야 괜찮아?”
“으, 으응….”
“어… 그런데 왜…?”
민국은 심히 의문 어린 눈길로 예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방금 전 행동은 마치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엿보려고 한 듯한….
“화, 화장실… 언제 나오나 해서…!”
“……그래?”
“응….”
예나가 고개를 내리듯 끄덕이며 다소곳이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민국을 비껴지나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민국은 그런 예나의 뒷모습을 막연히 지켜보다가 닫히는 문에 갸웃거렸다.
‘뭐지? 오늘따라 예나가 좀 이상한데?’
혹시 그날인가? 머릿속에 물음표를 담으며 거실을 내딛자니, 민국은 뇌리 속에 파팟하고 터지는 스파크를 느꼈다.
‘설마…….’
민국은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굳건히 닫힌 화장실 문을 보았다. 그곳에서 예나가 진정 볼 일을 보고 있을 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만일… 만일 민국이 일순간 생각한 그 추측대로라면…!
‘아니지. 내가 말을 안했는데 어떻게 알아?’
민국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이 과민하게 생각하는 거라 자신했다. 애초에 가상의 현대왕과 현실의 서민국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설사 예나가 현대왕이라는 비제이를 알고 있다 한들, 서민국일 거라곤 조금도 생각지 못할 것이었다.
‘…….’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만 하는데….
‘…….’
후다닥! 잽싸게 안방으로 달려가 컴퓨터를 켜보는 민국이었다. 그리고 화장실의 문이 아직 닫혀 있는 걸 확인하고 현대왕 전용 방송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이윽고 오늘 날짜, 아침에 있었던 방송을 켜보는 민국이었다.
“민국아.”
“…….”
“응, 은별아~.”
그리고 방송 몇 분 몇 초를 계속해서 돌려보다가, 우연히 그 장면을 발견하는 서민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