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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149화 (149/369)

149화

<명탐정 한예나!>

사골로 우려낸 라디오 방송이 끝난 뒤였다. 현대왕은 더 해달라고 징징대는 시청자들에게 욕을 한 사발해준 다음 콩딱지에게 말했다.

"넌 그럼 이제 뭐할 거냐?"

"야동 볼 건데여? 방해하지 마셈! 나 야동 볼 땐 매우 바쁜 사람임!"

"오 그러냐? 야 그럼 나도 할 거 없는데 같이 보자."

"부, 부들부들! 어떻게 남자인 저랑 야동을 같이 보려하시져? 정말 못된 심보잼!"

"이 자식 남자랑 남자가 야동보면 더 심각한 사태라고 알 듯한 놈일세."

실제로는 여자였으니까 이러는 것이리라. 어쨌든 이제 일도 끝났겠다, 현대왕은 가볍게 인사나 하고 방송 종료를 하자고 생각했다.

"어쨌든 수고해라. 스카이 라이프부터 나가고."

"오잉오잉. 헉? 으엌 형님!"

"또 왜 인마."

"나 이제야 안 건데 마우스 공포증있음! 그래서 스카이 라이프 종료 버튼을 못 누르겠음! 어릴 때 쥐에게 물려서 그런 듯! 꺄악꺄악!"

"……."

그리고는 뚝하고 통화를 종료하는 콩딱지였다. 시청자들은 웃겨 죽는 모습이었고, 현대왕은 이제 자신이 인사할 차례임을 알았다.

"즐딸."

쿨하게 스카이 라이프를 종료하는 현대왕이었다.

"흐아아아아암."

컴퓨터에 하도 앉아서 방송 짓을 하느라 굳어버린 근육을 기지개로 펴주는 서민국이었다. 정말이지 방송이란 게 즐거울 때는 즐거웠지만, 은근하게 체력을 많이 소비하는 일임은 분명했다.

"누워서 책이나 읽어야겠다."

여자 네 분은 밤에 찾아올 테니 그때까지 책이나 읽다가 낮잠이나 자자고 결심했다.

*  *

예나는 알 사람은 알겠지만 꽤나 지고지순한 타입이었다. 자기 남자에게는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꽤나 쑥쓰러워하는 기색도 역력했지만, 그를 위해서라면 할 때는 무엇이든지 다 해줄 수 있는 타입이었다. 그런 그녀가 심지어 공부에도 노력파이니… 정말이지 수많은 남자들의 로망이 아닐 수 없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한참 공부를 하던 끝에 팬을 놓는 그녀였다. 오늘은 학교도 안 가는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예나는 따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어는 사회에 나가면 기반이 되어 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민국이는 뭐하고 있을까…?'

공부를 마치고 나니 문득 그의 생각이 떠오르는 예나였다. 하지만 선뜻 전화하기도 뭐한 입장이었다. 애초에 자신은 여자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은별 씨랑 또….'

예전에 입으로 행위를 해주는 은별의 광경을 보고 난 뒤로, 예나는 알게 모를 낯부끄러움과 더불어 가슴 속 꿈틀대는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자기 입장상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었다. 뭐, 어쩔 수 있겠는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원래 질투라는 무기를 다루게 되는 법!

'어차피 밤에 만날 거니까… 잠시 잊게 딴 일이라도 하자.'

하지만 공부는 이미 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 기력 소모는 지나친 일이었다. 예나는 잠시 인터넷이나 둘러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소 인터넷을 자주 쓰는 타입도 아니었기 때문에 고작 한다고 해봤자 게이버에서 웹툰을 보는 정도일 것이었다.

'뭐지…?'

그렇게 여러 웹툰을 찾아서 한참 읽던 예나였다. 문득 스크롤바를 아래로 내려 댓글을 확인하던 예나는 의문의 눈길을 담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왠지 기억의 조각에 틀어 박혀 유독 익숙한 듯한 단어 한 가지가 있던 것이다.

'현대…왕?'

현대왕! 분명히 어디선가 익히 들어본 단어였다. 그 때문에 의문이었다. 자신이 이것을 어디서 들었는가 심히 궁금했던 것이었다. 베스트에 올라 있는 그 댓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왠지 캐릭터가 비제이 현대왕을 닮은 것 같네요 ㅋㅋㅋㅋ]

[아 웃기네 이거 ㅋㅋㅋ 개 막장이네 ㅋㅋㅋㅋㅋ]

[라노벨 같은 게 이런 거구나. 쇼크다. 나같이 정.상.적. 인 성인남자는 이거보고 암 생겨서 죽을듯.]

칭찬하는 댓글도 있는 반면, 진심으로 오글거린다고 적은 댓글도 있었다. 어차피 웹툰이란 것도 취향을 타기 일쑤였으니까 말이었다.

[10화까지 봤는데 글 내용은 전체가 말장난에, 욕설에, 비속어에… 꼭 예전 귀여니 소설 보는 줄 알았다. 아주 오글오글 거려서 내가 구운 오징어가 되어가. 이런 게 라노벨 같은 웹툰이라면 난 죽을때까지 보지 않으리…. 그리고 위에 칭찬하는 양반들… 양심좀 있어라 진짜. 다른 사람들 낚지 말고…타쿠타쿠오타쿠]

[ㄴ댓글보소 중2병 걸리셨나 ㅋㅋㅋㅋ 아 개오글거리게 댓글 쳐적네 님같은 인간은 댓글같은것좀 안햇으면 좋겟어요 암걸림]

[ㄴ 이 웹툰을 본적이 없어서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는데 댓글쓴 색히가 병신임]

[ㄴ 정. 상. 적. 인. 성인남자… 네 다음 파.괘.왕.]

[ㄴ 라임좀봐! ㅋㅋㅋㅋ 오글오글 오징어 타쿠타쿠 오타쿠!]

[ㄴ 코드가 맞는 나는 병신인거구나. 가볍게 웃고 넘어가기엔 나쁘지 않은데?]

'현대왕이… 어디서 들어본 거지…?'

난리 부르스인 댓글들을 훑어보던 예나는 자꾸만 눈매를 모으게 되었다. 현대왕… 어디서 들어봤지? 어디서 들어봤더라? 한참을 생각하던 끝에 예나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으며 한 가지 추억을 더듬게 되었다.

"아…!"

바캉스! 서민국, 강은별, 강서라, 최유이, 한예나! 이렇게 다섯 명이 놀러갔던 바캉스에서 들었던 단어였다. 그리고 그 단어를 언급했던 것은 다름 아닌 강서라! 초면이었던 그녀는 꽤나 귀여운 매력으로 언니들까지 호감을 품게 만들었는데… 그런 그녀가 현대왕을 언급할 때 가리켰던 사람은 다름 아닌….

'서민…국?'

뭔가 좀 이상했다. 예나도 눈치가 꽤나 있던 여자인지라, 잘 생각해보니 그때 분위기도 꽤나 요상하게 흘러갔던 걸로 숙지한다. 일제히 한예나를 쳐다보았던 네 사람…. 그리고 당황을 머금었던 강서라의 얼굴…. 애써 우스운 드립으로 장구질을 쳐대며 위기를 피해가던 듯한 분위기….

[현대왕보단 남고딩이 짱이지 병슨들아]

그리고 웹툰의 댓글 아래에는 또 다른 댓글이 한 가지 적혀 있었다. 한예나는 '남고딩…?'하면서 또 다른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 역시 누군가에게서 들은 단어였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히 현대왕만큼 짧지 않은 시간에 한 번은 들어봤던 단어였다. 그리고 그때 남고딩은 다름 아닌….

'강은별….'

서민국의 여자 친구, 강은별. 왠지 엉망으로 널브러진 퍼즐들이 하나 하나 조각을 맞춰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왜 그런 상황이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예나였다. 어쩜 자신이 너무 과민반응을 하는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때 분위기가 돌연 신경 쓰이는 예나였다.

'…….'

한예나는 불안한 마음에 웹툰을 뒤로가기 하고, 게이버 검색창에 현대왕을 검색했다. 그러자 막 현대까지 쓰는 순간 '현x자동차부터 비롯해서 현대왕의 굴욕' 등등이 뜨기 시작했다. 예나는 현대왕이라 적던 것을 멈추고 키워드 검색란에 올라와 있는 현대왕의 굴욕을 마우스로 클릭했다. 그러자 일부 동영상과 함께 폭소했다는 칭찬의 댓글들이 좌르륵 올라왔다.

예나는 그 동영상을 재생시켜보았다. 그러자 대뜸.

"여보세요."

"사랑한다."

"……예?"

"사랑한다고 이년아. 닥치고 내 사랑이나 받아줘."

"……."

불현듯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익숙한 목소리가 한 개가 아니었다. 왠지 영상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모두, 기존에 한예나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듯한 음성이었다.

"현대왕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신지…."

"사랑한다고 이 년아. 내 말 못 알아듣겠어?"

대뜸 고백을 하는 남자는 굉장히 앙칼지고 매서웠다. 늘 부드럽고 상냥하기에 바쁜 서민국과는 심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에 반면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은 은근 소심하고 말이 적잖이 없는 편이….

"이거 몰카죠?"

"아닌데?"

"몰카 맞는 것 같은데…."

"아니라니깐. 그나저나 너 자꾸 왜 대답을 회피하냐."

"네……?"

"야 강강!"

"…네?"

"너 나 사랑하지?"

"……."

영상의 내용은 이러했다. 현대왕이란 비제이가 한 여자 비제이에게 대뜸 고백을 하는 몰래 카메라를 찍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백을 받는 '강강'이란 비제이가 유독 소심하다 보니, 현대왕의 그런 노골적인 장난에 휘말리는 모습이었다.

'미안해요 흑흑!'

결과적으로 강강이란 여자 비제이는 울먹이면서 현대왕의 고백을 거절했고, 현대왕은 어디까지나 몰래 카메라였으나 시청자들을 비롯해서, 자신이 믿던 콩딱지라는 여인까지 합세해 멘탈을 붕괴시키고 말았다.

'으아아 씨부럴!'

'…….'

이제는 뭐 진실이 밝혀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이건 현대왕의 굴욕으로서 남겨진 상태였다. 예나는 여기서 또 한 명 거슬리는 비제이를 발견했다. 바로 '콩딱지.' 특히 이 비제이는 영상에서 출연한 세 비제이 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고 개성이 강한 타입이다 보니 유독 기억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심지어 무엇보다 이건….'

왠지 강서라가 떠올랐다. 강서라 같이 천방지축에 현실에서도 그런 식으로 장난 부르스를 칠 수 있는 사람은 족히 드물었다. 심지어 그게 어여쁜 여자라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콩딱지라는 비제이는… 남자…?'

콩딱지에 대해서도 정보를 검색해서 알아보니, 성별이 남자로 나왔다. 애초에 실제로 방송에서도 자신을 남자로 자칭하는 것이 몇 번이고 언급되었고 말이었다. 하지만 예나는 자꾸만 자신의 촉이 틀리지 않았단 생각이 들었다.

'…….'

아냐…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아무리 그래도 민국이가….'

돌연 예나는 민국이의 게이버 아이디가 떠올랐다. 문득 게이버에서 이메일을 주고 받았던 것을 확인하기 위해 아이디로 로그인하였다. 그리고 메일함을 뒤적이자 예전 고등학교 때 민국이와 숙제 문제로 나누었던 게이버 아이디가 보였다.

'wjej23v….'

그것이 서민국의 게이버 아이디였다. 예나는 이것을 현대왕이라는 비제이의 아이디와 대조해보자고 생각했다. 애초에 사람이란 게 대부분이 아이디를 똑같이 사용하곤 하였으니까 말이었다. 예나는 불안한 촉에 자꾸 얽매이면서도, 행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설마 아닐 거야…. 민국이가 이런 식으로 행동할 리 없잖아? 무엇보다 그렇게 성드립에… 이상한 드립까지….'

하지만 이전에 바캉스에서 몇 번이고 보였던, 마치 예나에게 무언가 행위를 들키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그 장면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의문과 함께 떠오르게 되자 정말이지 진득하게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wjej23v….'

이윽고 예나가 현대왕의 방송 사이트에 들어와서는 그의 아이디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게이버 아이디는 일단 wjej23v였다. 그럼 현대왕의 방송 아이디는?

'wjej7469v….'

…….

'…….'

…….

'…….'

예나는 잠시 동안 말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아이디가… 일단… 일단은 다르긴 달라…!'

하지만, 전부 다르다고 하기도 뭐했고, 아예 아니라고 하기도 뭐했다. 오히려 더욱 의혹을 품게 만드는 아이디였던 것이다. 예나는 부디 아니길 기원하면서 자문했다.

'아니지? 아니지 민국아…? 설마 나한테 이런 걸 숨기고….'

소꿉 친구 시절을 쭈욱 함께 해왔던 사이인데 설마 이런 어마무지한 비밀을 숨기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비록 애인 사이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서민국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무의식적인 자신이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오늘 올라온 메인 녹화 방송을 클릭하여 확인하던 예나였다.

"은별아! 엣헴!"

"……."

"민국아~."

하지만 환상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예나는 얼이 빠진 듯 마우스를 내려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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