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147화 (147/369)

147화

"……."

짝!

"아! 이참에 외부입력도 있고 볼륨 조절도 있으면 좋겠어요! 채널 고정만 빼고요!"

"볼륨 조절은 왜 넣으려고 하느냐 애미야?"

"입 좀 닥치게요. 주둥아리 놀리면 시끄럽잖아요?"

해맑게 씨익 미소 지으면서 대답하는 남고딩이었고, 콩딱지는 깊게 감명을 받은 듯 캐릭터의 고개를 두 번 끄덕거리게 했다.

"돌직구의 방식을 아는구나 애미야! 네가 진정한 애미야 시로다 애미야!"

"감사해요 어머니~."

남고딩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언제 콩딱지의 시할머니 역할에 당황을 머금었냐는 듯 곧잘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를 뒤에서 얌전히 관람하고 있던 현대왕이었다.

"엇흠 콜록콜록 컷큼 큼큼!"

"어라, 채널 변경하고 싶은 애 왔네."

"……."

"인석아! 애끼 얼마나 네가 아내에게 함부로 대했으면 볼륨조절을 해서 재갈물리고 싶다 할꼬!"

[오오오오 ㅋㅋ 잘한다 ㅋㅋㅋㅋ]

[콩딱지 연기 잘하네?]

콩딱지는 어느 덧 자신의 본래 컨셉을 버리고 따뜻한 품으로 자식을 감싸주는 어미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러한 컨셉에 시청자들이 새삼 감탄하는 가운데, 현대왕이 말했다.

"어머니. 아직 어머니가 뭘 모르시는 모양인데 원래 여자는 밖에서 돈을 벌고 남자는 집에서 빨래를 너는 겁니다."

"조선시대를 역순환하셨나 보네요. 대시선조에서 사셨어요?"

현대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보, 옛말에 이런 말이 있소. 고통이 없으면 성취도 없다."

"그래서요?"

"근데 고통이 있다고 해서 성취도 있는 것은 아니다."

"……."

"즉 내가 지금 조루라고 해서 지루가 안 될 거란 건 아니다!"

논리 없는 말에 남고딩은 '무슨 말이야?'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남정네로서 자신의 자존심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려는 그의 모습임을 알고 남고딩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남편님, 아내가 드릴 말씀이 있네요."

"엇흠, 그게 뭐요?"

"일이 잘 안 되어갈 때 포기하지 않으면 더 흉해보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남고딩에게 엄청 발리네 현대왕?]

여자친구가 된 이후 현대왕과 하도 여러 일을 겪으면서 쿠크다스 멘탈이 밥통 멘탈로 성장한 남고딩이었다. 현대왕은 그런 남고딩의 발언에 심히 당황스러웠는지 팔짱을 꼈다.

"내가 알던 남고딩은 이런 여자가 아니었는데."

"언제까지 당해주고만 있을 여자라고 생각했어? 그럼 오산이어도 단단히 오산이지!"

"훗, 그래. 가끔은 여자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마치 양보하듯이 말하는 현대왕의 행동이었다. 남고딩은 '어휴'하면서 진심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윽고 콩딱지가 입을 열었다.

"근데 아가야."

"네 어머니~."

남고딩이 즉각 반응했다. 콩딱지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난 너희들이 결혼을 했단 사실이 진짜인지 모르겠구나~."

"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마인 크래프트에서는 결혼을 했다는 가정 하에 진행하는 것이었다. 콩딱지가 '엣흠!'하면서 거하게 기침을 하였다.

"말 그대로 너희들이 결혼을 했단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거구나! 예로 들어 고딩이 네가 현대왕의 정자를 노리고 결혼을 한 걸 수도 있지 않냔 말이다!"

"어, 어머니! 제가 어째서 저딴 자식의 정자를 노리고…."

"그런 고로 난 너희들이 결혼을 했단 것을 증명받고 싶구나! 어디 이 자리에서 한 번 키스라도 해보거라!"

남고딩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

"키스를 해보래두 않느냐! 딱히 나님이 연애 지식도 키울 겸 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 츤츤!"

"……."

콩딱지의 급작스런 제안이었다. 남고딩은 심히 당혹한 얼굴로 현대왕을 돌아보았다. 현대왕은 '호오'하면서 말했다.

"어머니 그거 참 좋은 제안이십니다."

"알고 있으니 채널 변경 바란다 아들아 어큼큼!"

콩딱지가 컴퓨터 근처에 있는 막대기 하나를 들어 책상을 '탁!'치면서 소리쳤다.

"뭐하느냐, 빈유야? 어서 결과물을 보여주래두!"

"……."

남고딩은 진심으로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방송이라도 그렇지 이건 너무 성적인 거 아니야? 어쩌면 운영자가 차단할 지도 몰라…! 아, 아니… 차단은 하지 않더라도 시청자들이 다 보고 있잖아? 캐릭터로 하는 거니까 상관없나? 아… 무엇보다!!'

진짜 애인인 현대왕과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방송한다는 게 심히 민망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실제 두 사람이 키스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마치… 진짜로 했던 그때를 떠올리는 느낌…?'

그렇다. 남고딩은 이미 현대왕과 한 번 첫키스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가 언제였냐면 불과 몇 개월 전… 현대왕의 몰래 카메라로 말미암아 남고딩의 멘탈이 산산조각으로 우수수수 부수어졌을 때였다. 그때 현대왕이 남고딩의 마음을 우연치 않게 알아냈고, 그로 인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다행히 현대왕도 남고딩에게 일말의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둘은 연결되었었고 말이다.

'…….'

키스하면 그때 일이 가장 인상 깊었다. 대학교에서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현대왕을 돌아보지도 않던 남고딩. 그런 남고딩에게 기습적으로 키스를 했던 현대왕! 평범한 놈이 했으면 몰라도 남녀가 우러러보는 잘 생긴 놈이 그런 짓을 하니 그야 말로 드라마나 다름없던 것이었다.

키스하면 자꾸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서 창피해지는데, 손쉽게 할 수 있을리가!

'현대왕… 쟤는 괜찮나…?'

은근슬쩍 현대왕의 캐릭터를 보는 남고딩이었다. 현대왕은 콩딱지와 대치해서 대화하고 있었다.

"왠지 코딱지 좋아할 거 같은데 저보다 어릴 것 같은 동생 같은 어머니. 고맙습니다."

"왠지 행님일 것 같은데 행님이지 않은 우리 아들아.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단다. 영상 찍어서 AV 업체에 비싼 돈에 넘길 테니."

[ㅋㅋㅋㅋㅋㅋ]

"……."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괜시리 자기만 신경 쓰는 것 같아 남고딩은 조금 부들부들했다.

'그래, 어떻게 보면 방송일 뿐이니까. 내가 이건 너무 과민반응하는 거야.'

사실 그랬다. 애초부터 현대왕이나 콩딱지나 지금은 오로지 방송의 재미에만 비중을 두고 있었으니까. 현실에선 그들의 쌍판때기가 방송과 똑같다 한들, 방송의 재미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진 않지 않은가? 그런 차이였다.

"애미야! 뭐하고 있느냐! 빨리 AV업체에 넘길 동영상을 찍어야쥐!"

"네 갈게요 어머니! …그런데 AV업체에 찍어서 동영상 넘기면 아마 어머닌 죽을 거예요!"

"에구머니! 산와머니처럼 아주 철저하고 강렬한 대사구나!"

그리하여 대치한 현대왕과 남고딩이었다. 시청자들은 실제 커플이 어디까지나 캐릭터로 키스를 하는 것이었으나 꽤나 흥미가 돋는 모양이었다.

[오오오오오옼ㅋㅋㅋㅋㅋㅋ]

[실제로 했던 키스를 그대로 보여주려나? 츄릅]

[ㄴ미친놈아, 이건 방송이거든? 방송이랑 현실 좀 구별해라]

[지금 나보고 미친 놈이라 했냐? 미친 놈이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 미친 놈아]

[ㄴ 너네 둘이 서로 좋은 말만 하지 말고 나한테도 해줘]

[ㄴ 미친 새끼야]

[ㄴ 욕하지마 새끼야]

시청자들은 비제이를 닮는다고 했다. 그 증거가 시청자 채팅방에 있었다.

"저장된 보구는 충분한가 남고딩?"

"…보구는 충분한데 굳이 방송에서 이럴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현대왕님?"

현대왕이 '후훗'하고 고개를 저었다.

"어리석은 여자. 내 혀놀림에 홀라당 넘어가서 이성을 잃지 말도록."

"쑈한다."

그리고 시작된 두 사람의 키스였다. 물론 실제로는 마인 크래프트 두 캐릭터가 얼굴을 갖다대는 것밖에 안 됐다. 남고딩은 그냥 가만히 마이크에 입을 놀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왕은 달랐다.

"츄릅 츄릅."

"……."

"쪽쪽. 쵸르르르륵. 쵸읍. 하앍."

"……."

"하앍, 입술 더 내밀어봐. 혀를 츄르르르릅."

"……."

"헠헠 좀 더!"

"이 변태놈아 그만해!"

"억! 이빨 세우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 '이빨 세우지마'는 키스를 할 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필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 터…. 남고딩은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며 칼을 들었다. 그리고 그 나무 칼로 현대왕을 툭툭 건드려서 캐릭터를 밀쳐냈다. 그러자 지켜보던 콩딱지가 소리쳤다.

"애미야!"

"…네 어머니!"

콩딱지가 캐릭터를 이용해 허공을 맨손으로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간절함이 시린 행동이었다.

"몰입하는데 끊어버리면 어떡하냐 애미야! 다시 하거라 애미야!"

"……."

"애미야! 이런 속담이 있단다 애미야!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너의 일을 묵묵히 하다 보면, 결국 남 좋은 일만 된다는 속담 말이다 애미야!"

"……."

"빨리 하거라 애미야!"

남고딩이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조금 갸웃하는 각도로 세웠다.

"꿈을 포기하면 어중간하게라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어요 어머니."

"히이이익!"

어찌 됐든, 이리하여 콩딱지가 시할머니 역할을 맡은 마인크래프트는 끝난 것 같았다. 애초에 현대왕도 콩딱지가 시할머니 역할을 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니, 자기 파트의 역할을 제대로 순화하기가 어려웠다.

오로지 남고딩만을 위한… 남고딩을 위한 방송 파트였다고 할까! 이젠 서로가 어울릴 수 있는 방송으로 진행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럼 나님 은별이 언니찡 동생해도 됨?"

콩딱지가 그리 제안했다. 실제로는 여자였지만 방송에선 남자로 알려져 있었다. 고로 시청자들은 남자가 여자를 하겠다고 자처하니 [ㅅㅂ]하면서 혐오했다.

"그럼 나는 내 여친의 아버지가 되어보록 하지. 엇흠."

"…네가 왜 내 아빠를 해?"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

심히 의문을 갖는 남고딩이었지만 현대왕은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때가 되면 알게 될 터였다. 이리하여 세 사람은 새로운 역할을 가지고 방송을 시작하였다. 현대왕이 소리쳤다.

"남고딩 언니! 콩딱지 남고딩의 여동생! 나는 남고딩과 콩딱지의 아버지! 스타트!"

"…하, 정말 이상한 컨텐츠네 이거."

궁시렁궁시렁 거리는 남고딩을 뒤로하고, 여동생 콩딱지가 집에 들어온 것처럼 문을 열며 나타났다.(2평인 집은 너무 작아서 정상적인 집을 만든 뒤 시작했다.)

"언니찡! 혼또니 혼또니 보고 싶었사와여! 심부름하는데 1분 1초도 안 걸렸는데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여! 어? 갑자기 죽었어여! 으윽!"

[우윀]

[ㅅㅂ]

토하는 시청자들이었고, 콩딱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컨셉에 열중했다. 그것이 그녀의 프로 의식이라면 프로 의식이랄까. 콩딱지가 심부름을 하고 집에 온 것을 얌전히 목도하고 있던 남고딩이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정말 힘들었겠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미 죽었는데여? 아참! 언니찡 저 언니찡이랑 하고 싶은 게 있어여!"

"뭔데?"

"아잉! 그걸 어떻게 말해여? 언니찡 정말 음란하네여! 그렇게 안 봤는데! 만날 컴퓨터로 p2p 야동 다운받아서 보고 뭔가 하져? 정말 음란하네여! 아잉!"

"……."

남고딩은 군말 없이 칼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군대의 이등병처럼 콩딱지가 곧장 말했다.

"언니찡이랑 목욕하고 싶습니다!"

"나랑… 목욕?"

"넹! 목욕해여 언니! 언니찡의 발가벗은 몸을 보고 싶어여 하앍하앍!"

"…게임인데도 엄청 싫네."

궁시렁거리는 남고딩이었지만, 어차피 캐릭터가 발가벗어봤자 그게 그거였고, 물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남고딩이었다.

"알았어. 그럼 들어가자."

"와아!"

"…아빠? 저희 잠시 화장실에서 목욕할게요."

신문을 보는 양 소파에 앉아 '어흐흠'기침을 하는 현대왕이었다.

"그래라 우후훗."

"……."

웃음이 꽤나 수상했지만 말이다. 여튼 이렇게 하여 캐릭터의 옷을 전부 벗고 대충 대조하여 만든 화장실에 들어간 남고딩과 콩딱지였다. 콩딱지는 좋다는 듯 헤헤 웃으며 말했다.

"언니찡이랑 이렇게 되고 싶었어여!"

"……."

"이러다 어느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쳐서 끊어질 수 없는 운명에 다다르겠져?"

"운명에 다다르기 전에 내가 끊을 테니 걱정하지마."

어색하게 미소 짓는 남고딩이었다. 근데 그때… 드르륵! 남고딩과 콩딱지의 고개가 돌아갔다. 남고딩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소리쳤다.

"아빠!"

"……."

"여긴 왜 들어와요?! 자매가 목욕하고 있는데!"

현대왕은 캐릭터의 옷을 다 벗긴 상태였다. 이윽고 현대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넌 내 딸이 아니다."

"……."

"크크크크크!"

혹시나 몰라 준비해두었던 화살을 꺼내 현대왕의 거시기에 적중시키는 남고딩이었다. 퓌융! 퍽!

"억!"

"나가."

"…………."

"안 나가?"

"…………."

"팍씨!"

"히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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