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현대왕 : 언제 들어와 이 머리뚜껑 존나게 열어보고 싶은 놈아."
콩딱지 : 잇힝~ 앗카링! 유루유리 하지마루여!
현대왕 : 2년이?
조금만 기다려 보라는 콩딱지의 왈이었다. 현대왕은 딱 10분만 주겠다고 선언한 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11분이 지난 후 콩딱지가 스카이 라이프에 접속했다. 물론 그녀 역시 방송을 켰고 말이다.
"안냐세여! 여러분! 모에모에큥~ 아리땁고 간지나는 청년, 콩딱지라 합네다!"
[오오오오오오 콩딱지 등장]
[콩딱지도 현대왕에 버금가는 미친놈이지]
[미친놈이 둘이나 모였다!]
현대왕은 기습적으로 소리쳤다.
"10분 안에 오라니까 11분 지나서 오냐 이놈아?"
"형아는 뭘 좀 모르시나 보넴! 학교에서 지각 시간이 8시 30분이라 할 때 왠지 8시 20분에 뛰어가야 할 것 같지 않나여? 지는 그런 학생들의 마음을 대변했을 뿐이라구여!"
"60초면 네가 먹던 밥도 토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인마."
방송을 키면 여자에서 남자로 변모하게 되는 콩딱지. 실제 성별은 여자였지만 방송에서는 남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방송을 어디까지나 즐겁고 재미나게 하고 싶은 맘도 있었고, 여자라는 명목 하에 특별 대우를 받는 게 별로 탐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읭? 껌딱지 누님도 있으시넴?"
"…누가 껌딱지야?"
남고딩의 동물적인 반응이었다.
"앗! 지송! 껌딱지가 아니라 아스팔트 껌딱지잼!"
"…확 아스팔트 바닥에다 밀어버려서 머리 부딪히게 해버린다?"
그 말에 콩딱지가 자기 허벅지를 짝짝 치면서 웃기다는 듯 폭소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거 웃겨서 방송하겠음?!!!! 맙소사, 그런 드립은 어디서 나옴!!!! 엌……! 나님 공중 제비 좀 그만 둘게 해주세염! 누님 같은 비제이 덕분에 방송하는 맛이 나네여 으아아아악! 그런 드립은 혼자서 꽁꽁 숨겨놓지 말고 얼른 드립보따리를 한아름 풀어주세염 으아아악!!!! 세상에나 이런 드립이 다 있나염 키키키키킥! 누님 씽크빅 했으여? 드립학원 꿀잼! 완전 드립 머신이 따로 없네여!"
"……."
"머리 어깨 무릎 이마 그곳도 박수가 짝짝작! 누님 나님 배꼽 좀 물어내주세여! 으아아아아 완전 사람 죽이는 드립임!!!! 숨을 못 쉬겠네여 헠헠! 제발 지 좀 구원해주세여 끄아아아아!"
"닥쳐 미친놈아! 한 번 더 놀리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츄릅… 국물 맛있쪙."
그동안 자신의 곁에서 순하게 행동하던 콩딱지였기에, 실제 방송에서 어떤 아이인지 까먹고 있던 남고딩이었다. 그렇다. 콩딱지는 방송에서는 이런 아이였다.
현실에서도 이런 끼가 다분히 넘쳤지만, 방송에서는 그 끼가 플러스 알파로 강화되는 인물이었다. 현대왕은 그런 콩딱지를 보면서 마치 스승이 된 사람처럼 대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견하다 콩딱지여. 너도 츤고딩 놀리는 맛을 알았구나."
"행님! 난 진즉에 알았음여! 놀릴 때마다 얼굴 붉히면서 태클거는 게 얼마나 모에모에한데염!"
"암, 그렇지. 츤고딩의 태클이 없다면 그건 죽은 대화나 마찬가지일 뿐이야."
"그렇습네다 동무!"
"모에모에는 얼어죽을! 모였으니까 빨리 게임이나 진행해!"
그래도 모에모에라는 단어가 결코 나쁜 게 아니니 만큼, 속으로는 내심 즐거워하는 남고딩이었….
'닥쳐!'
이번에도 자신의 속마음을 강하게 외면하는 남고딩이었다. 콩딱지가 물었다.
"그럼 마인 크래프트 한다구염? 에헤헤헴, 준비해야겠음."
"나랑 은별이는 준비해둔 지 오래니까 너만 하면 된다."
"아 잠깐 급하게 용무가 생겨서 그러는데 360분만 기다려 주셈여."
그 말에 현대왕은 '오늘 밤에 너에게 주어질 약은 한 방울이 아닐 것이다.'라고 협박했고, 남고딩은 '12시에 음식물 쓰레기통의 쓰레기들을 운반하는 쓰레기차에 봉투 채로 실리고 싶어?'라고 위협했다. 당연지사 콩딱지는 '히이익'하면서 파들파들 두려운 목소리로 떨었다.
"커, 커플답게 하나가 되어가는군여! 매우 무서워서 오줌 나올 거 같아여!"
어찌 됐든 간에 콩딱지도 마인크래프트에 접속했다. 이번엔 셋 다 모두 미리 다운로드를 해두었기 때문에 곧장 진행할 수가 있었다. 이윽고 서버를 만들고 접속한 세 사람이었다.
"근데 서버 운영자 없이 해도 되는 거야 이거?"
남고딩의 물음이었다. 보통 마인크래프트에서 어떤 컨텐츠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서버 운영자라는 게 필수 요소였다. 채널의 방이나 비밀번호를 캐서 들어온 사람들을 추방하거나 처리하는 역할을 했으니까 말이었다. 현대왕은 느끼하게 답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너와 나, 지금 이 순간 우리 둘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할 뿐."
"…등신."
"우와, 안 그래도 느끼한데 오늘 치즈 먹으면 토할 듯."
서버에 온전히 접속한 세 사람의 캐릭터였다. 하지만 각자 위치가 떨어져 있었다. 콩딱지가 물었다.
"근데 온니쨩 오늘 무슨 컨텐츠 하는 겅미? 저 아무것도 모르는뎁쇼?"
"우선 네가 남고딩이랑 내가 낳은 아기다."
"허억!"
콩딱지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둘이 붕가붕가해서 낳은 게 나라니!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숨겨진 비밀!"
"훗. 이제야 알았느냐 이 영롱한 아이야? 사실 너는 남고딩이랑 내가 열 살 때 낳은 귀한 자식이란다."
"빠덜! 그럼 전 열살이란 말인가염? 근데 왤케 발육이 빠른 느낌이져?"
"요즘 학생들은 발육이 빠르잖니 아가야. 가슴도 키도 아주 어린 나이에 쑥쑥 자라곤 하지."
"헠! 그럼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가슴이 없는거예여? 아직 성장기인가여!"
"그래. 사실 남고딩은 너보다 나이가 어리단다! 그래서 아직 발육이 덜 진행됐지!"
"진짜 어디 산들 모래밭에다가 머리부터 파묻어버리고 싶다…."
진심으로 중얼거리는 남고딩이었고, 현대왕과 콩딱지는 상황극은 이쯤에서 하자는 의미에서 가볍게 헛기침을 하였다. 현대왕이 말했다.
"자, 그럼 어디 한 번 게임을 진행해봅시다. 일단 역할은 남고딩이랑 내가 엄마랑 아빠. 콩딱지 네가 아이다."
"잠깐만! 진짜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럼 당연하지. 남자가 고추가 달렸는데 했던 말을 삼키진 않아."
"…좀 삼켜줬으면 좋겠는데?"
알콩달콩 대화를 나누는 남고딩과 현대왕이었고, 그 사이를 지켜보는 콩딱지는 그저 어색하게 미소만 지을 따름이었다. 이윽고 콩딱지가 소리쳤다.
"그럼 전 온니쨩만 믿공! 아기 역할을 해보겠슴다!"
"암, 그래야지. 역시 내 제자답다."
"헤헤헤."
"……."
그리하여, 실제 캐릭터들 세 명이 모두 모인 가운데 남고딩과 현대왕, 콩딱지의 가족 놀이가 성사되었다. 역할은 현대왕이 언급했듯이 현대왕은 아빠, 남고딩은 엄마, 콩딱지는 자식을 하게 되었다.
"근데 난 성별 뭐로 하면 됨?"
"네 꼴리는 대로 해라."
"오키도키."
마인크래프트의 장점은 어느 곳에서든 블록(?)같은 것을 이용해 집을 지울 수 있다는 사실. 나무로 대충 2평짜리 집을 지은 세 사람. 곧장 가족 놀이를 시작하였다.
[기대되네 ㅋㅋㅋㅋㅋㅋ]
[왠지 개망할 거 같은 스멜]
"흠흠. 자, 그럼 가상 신혼 시작."
"……."
남고딩은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비록 게임이긴 했지만 그래도 실제로 사귀고 있는 사람과 함께 가상 신혼 게임을 한다는 게 좀 기분이 싱숭생숭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있었으니 좀 더 그렇다고 할까? 이윽고 콩딱지가 선으로 먼저 치고 나왔다.
"아부지!"
"왜 그러냐 딱지야."
콩딱지가 졸레졸레 아버지인 현대왕 곁으로 다가왔다. 현대왕은 근엄한 목소리로 대응하였다.
"저 제 성정체성을 깨달았어여! 전 남자가 되고 싶어여!"
"……."
남고딩은 할 말을 잃고 지켜볼 따름이었다. 하지만 현대왕은 진지하게 마우스를 왔다리 갔다리 돌리면서 캐릭터의 고개를 저었다.
"네가 진정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이냐?"
"하잇!"
하잇(일본어) 뜻 : 네!
"그것이 진정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내가 막을 길은 없구나."
"아, 아부지…."
"하지만! 그전에!"
스르륵! 현대왕이 미리 만들어두었던 나무 검을 꺼내들었다.
"나를 쓰러뜨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허억!"
콩딱지가 당황한 듯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아부지… 진정 내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길을 걸어야 하는 겁니께? 정말이지 나님의 가혹한 운명은 홍길동과 비슷한 팔자로군여!"
"훗… 내 언젠간 너와 검을 부딪힐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바람의 검심과 같은 검싸움 판이 벌어질 상황이 되었다. 시작하자마자 막장스러운 전개로 치닿는 현황에 사이에서 막연히 지켜보던 남고딩이 끼어들었다.
"잠깐! 무슨 가놀이 이렇게 뜬금없이 전개를 하는데?!"
"여자는 빠져!"
"죽을래?"
꾸벅 숙이며 잘못했다고 하는 현대왕이었고, 남고딩은 하아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이상하잖아. 이건 가놀이 아니라 그냥 막장극이라고. 하려면 제대로 하란 말이야…."
"호옹이, 그럼 츤츤누님은 진지하게 온니쨩이랑 신혼 여행을 즐겨보고 싶은 거세여?"
"오오~ 남고딩 너 설마 나랑 진심으로 우리 결혼했어요를 찍어보고 싶었던 거냐?"
"……."
"츤츤쟁이느님!"
"츤츤대는거보소."
"시끄러워! 단순히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려면 좀 시청자들이 재밌게 할 만한 거리로 해보란 뜻이야!"
[ㅋㅋㅋㅋㅋ]
[충분히 재밌는데? ㅋㅋㅋㅋㅋ]
[난 노잼……]
확실히 비제이들마다 성격이 틀리다 보니까 맞는 층이 있었고 아닌 층이 있었다. 하지만 남고딩의 말이 극히 틀리진 않다고 생각했는지 검을 내려놓은 현대왕과 콩딱지였다.
"흠, 온니쨩. 확실히 언니쨩이 빈유답지 않게 탱탱거리긴 해도 맞는 말은 하는 거 같아염."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직접 만져본 결과 빈유가 맞긴 했지만 그래도 탱탱거리는 것이 일품인 것답게 하는 소리도 맞는 것 같아."
남고딩은 두 뺨에 양손을 대고는 '빡쳐!'하면서 마이크를 끄고 소리쳤다. 이윽고 콩딱지가 '아앗!'하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난 듯 손뼉을 짝 쳤다.
"그럼 행님! 저 시할머니 해도 됨?"
"시할머니 말이냐?"
"이응이응! 행님 엄마 하는 거임! 리얼 꿀잼이겠는데여?"
아이디어를 내놓는 콩딱지였고, 현대왕은 '흠~'하면서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괜찮구만! 츤고딩은 생각이 어떠시오?"
"…몰라. 포기했어. 맘대로 해."
자포자기 중인 남고딩이었다. 그저 그녀답게 '어째서 이런 애들과 방송을 하는 거지….'하면서 궁시렁궁시렁 회의감만 느낄 따름이었다. 하지만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게 남고딩의 매력일 터!
"자, 그럼 콩딱지는 내 친 엄마. 나는 아빠. 남고딩은 내 아내. 이렇게 합시다."
"……."
"그럼 스타트!"
그리하여 역할을 바꾸고 다시 진행하게 된 방송이었다. 콩딱지는 대뜸 식탁 하나를 만들더니 거기에 앉아 무언가를 '후르릅'마시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우읍!'하면서 대뜸 이렇게 소리친다.
"애미야, 이리 와보거라."
"……."
"애미야! 이리 와보래두 뭐하고 있니!"
"……."
남고딩이 현대왕의 캐릭터를 보면서 묻는다.
"…진짜 가?"
"가족 놀이의 역할엔 다 이유가 있는 터. 엇흠."
남고딩은 '이 뭐 병'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콩딱지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애써 친근한 목소리를 내뱉는 남고딩이었다.
"네~ 어머니~."
"애미야, 국물이 짜다."
"구, 국물이 짠가요? 아까 마셔봤을 때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대뜸 검을 꺼내는 콩딱지였다.
"너 지금 내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는 거냐? 애미야! 난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단다!"
"……."
"애미야! 귀가 먹었니 애미야! 사랑한다 애미야!"
"네, 네 어머니! 저, 저도 사랑해요!"
일단 역할이 역할이었으니, 분하고 열 받아도 참는 남고딩이었다. 콩딱지는 주도권을 얻은 사람답게 콜록콜록하고 짐짓 기침을 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진중하게 얘기하는 모습이었다.
"애미야, 네가 국을 이따구로 만들었으니 내가 그냥 두고 볼 수는 없겠구나."
"……."
"네가 네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구 싶다! 만약 네게 성생활을 조종하는 리모컨이 있다면 어떤 버튼을 가장 많이 누를 거냐?"
그래도 가놀이니까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행동해야겠거니 생각하던 남고딩이었다. 그만 그 질문에는 저도 모르게 정색하면서 진지하게 답하는 그녀였다.
"채널 변경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