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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142화 (142/369)

142화

사실 보통 때라면 타인의 시선에 극도로 반응하지 않았을 민국이었다. 그러나 평소 때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민국도 곧장 장소를 옮긴 것이었다.

'물론 장소를 옮겼다고 해서 시선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군.'

민국은 눈길만 스윽 옮겨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러 사람들이 민국과 더불어 맞은편의 유이를 보면서 웅성웅성거리고 있었다.

'훗, 나란 놈은 항상 어딜 가든 인기가 많아서 탈이란 말이지. 은별이가 고생이 많아.'

그리고 그와 더불어 저 맞은편에 있는, 상복부를 의도치 않게 부각하고 있는 한 여자.

'이 양반도 의도치 않게 비쥬얼이 좋아서 탈이네.'

비쥬얼이 좋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게 아니었다. 허나 유이는 자신의 비쥬얼과 내면에 속해 있는 재능을 노리고 접근했던 강철남 때문에 많이 상처를 받은 상태였다.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은 상태. 당연지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런 감정을 품을 것이었다.

{왜 이렇게 태어났단 말인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

민국 역시 그 감정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사실 민국은 자기 과거 얘기를 꺼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뿐, 자신이 가진 장점으로 말미암아 안 좋은 일도 많이 당해보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질투도 그렇고, 무언가를 노리고 접근하는 여자들도 있었고. 다 제각각 꿍꿍이가 있어서 믿기 어려웠었지.'

참, 어떻게 태어나든 태어나면서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갖든, 항상 좋지 않은 기후는 발생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장점을 갖고 태어나서 실컷 잘난체를 하면서 오만방제하게 노는 게 낫지 않겠는가?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직원 분 예쁘시네요."

"아… 고, 고맙습니다."

민국이 슬그머니 웃음 지으면서 던지는 말에 여자 직원이 얼굴이 뻘개진 모습이었다. 이윽고 음식을 놓고 후다닥 도망가듯 달려가는 여자 직원. 민국은 그런 여자 직원의 등을 보다가 유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죽은 듯이 있을 겁니까?"

"……."

"여기 레스토랑 음식 무진장 비싸더만요. 이렇게 샀는데 하나도 먹지 않으면 저 진짜 유이 씨 두고두고 원망할 겁니다. 채무 갚으라고 협박하는 사채업자로 변질할 거예요. 자, 그러니까 식기 전에 빨리 드십쇼."

뭐 식을 음식도 아닌, 그저 고급스러운 오므라이스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전보다는 조금 정신을 차린 유이가 조금씩 수저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수저를 쥐자마자 툭툭 오므라이스를 잘게 잘게 썰 듯이 접시에 수저를 부딪히기 시작했다. 툭툭.

'후아! 답답해 죽겠구만!'

보다 못한 민국이 자기 수저를 들어서 유이의 것을 대신 잘라주었다. 그리고 오므라이스 한 조각을 수저에 담아 유이에게 건네준다.

"자, 아해보세요."

"……."

"아~."

"……."

친절하게 드립도 안 쳐주고 행동하는 민국이었으나, 오히려 그게 역효과였다. 유이는 냉랭하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것은 거절의 표시였다. 민국은 '이런 젠장'하면서 수저를 회수했다.

"간접 키스를 시도하려던 내 꿍꿍이를 기어코 간파했단 말인가. 대단하군 최유이."

"……."

"아니, 어쨌든 제가 그렇게 못 미더우십니까? 아니 뭐 못 미덥게 행동하는 건 내 자신도 알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드시긴 드셔야죠. 혼자 제대로 먹지도 못하니까 답답해서 나서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유이가 다시금 음식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는 느리게 다시금 오므라이스를 자르기 시작했다. 뚝뚝, 수 초를 잘라대다가 마침내 수저로 그것을 떠서 찬찬히 입속에 집어넣는 유이였다.

"……."

"……."

우물, 우물, 아주 느리게 씹는 모습. 기어코 삼키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민국은 자신의 음식으로 집중하였다.

"아무 말도 안 걸 테니까 일단 식사에 집중하세요. 괜한 생각도 하지 마시고요. 예?"

"……."

"쩝."

본래라면 성드립을 치면서 놀다가 한 대 맞아야 할 테지만, 분위기상 민국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아주 조용하고 조곤한 식사가 진행되었다.

*  *

"으아니, 기어코 날 두고 바람을 핀다는 거냐 은별아!"

"무슨 개소리야? 내가 언제 바람을 핀다고 했어? 동기들끼리 모여서 해야 하는 과제니까 빠질 수 없다고 얘기하는 거잖아!"

"으헝헝. 사랑하는 여인이 기어코 날 버리는구나. 내 몸과 마음도 전부 가져간 주제에…."

"와 이 미친 놈이…. 무슨 처녀 뺏긴 여자처럼 얘기하고 있네."

느리게 식사를 하고 있는 최유이를 두고, 잠시 레스토랑에서 나온 민국은 은별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의 주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은별이가 돌연 동기들이 모여 진행하는 과제로 말미암아 바쁘게 된 실정이라 오늘 가기 어렵다는 통보였다.

"나도 바람 필 거야! 내가 유이 씨 가슴 만지는 동안 넌 과제랑 바람이나 펴라!"

"미친놈아! 너야말로 바람 피면 죽을 줄 알아!"

씩씩거리던 은별이었다.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었는지, 은별이가 자신을 통제하면서 말을 이었다.

"…어쨌든, 끝나는데로 갈 테니까 너무 그러지 마 바보야."

"훗, 알았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그 정도는 기다려주지."

"…멍청이."

그리고 뚝하고 전화가 끊겼다. 민국은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을 보다가 '허참'하면서 고개를 위로 올렸다. 하늘은 푸르렇다.

"강철남 이 자식을 그냥 가서 한 대 패줘?"

맨몸으로 하는 맞짱은 이길 자신이 없었지만, 변칙적인 공격을 통해서 이길 자신은 있었다. 예를 들면 거시기 차기라던가 눈동자에 침 뱉기라던가….

"그런다 한들 뭐가 바뀌겠냐 에라이."

애꿎은 깡통이나 뻥 발로 차는 민국이었다. 사실상 민국이 최유이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건데…. 어쩌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개입하여 이토록 오지랖을 피우고 있는 민국이었다.

"다 드셨습니까 유이 씨?"

"……."

"반은 드셨네요. 그럼 일어납시다."

어차피 이제 먹지도 않을 것 같았으니, 유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는 민국이었다. 유이가 그 말에 천천히 수저를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돌려 카운터로 향하는 민국을 따라 움직인다.

"얼마죠?"

"38000원입니다."

'와, 무지하게 비싸네.'

무슨 음식 두 끼가 이토록 비싼지, 혀를 내두르면서 카드를 건네주는 민국이었다. 이윽고 카드에 싸인을 마치고 가게를 나온 민국이 뒤의 유이를 보면서 말했다.

"제가 은별이에게도 38000원 어치 돈을 쓴 적이 없습니다 유이 씨. 예? 오늘 저한테 엄청 고마워해야 해요."

"……."

38000원 어치도 쓰지 않았다는 건 자랑이 아니지만(어차피 100일에 선물할 거다) 말이다.

'자, 그럼 이제 어딜 가야 하나.'

어차피 집에 가봤자 우울증만 또 도질 테니 민국은 유이의 기분을 캐어해줄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엇! 저것은!'

그렇게 거리를 얼씬거리면서 둘러보던 민국이었다. 갑작스레 무엇인가가 눈에 박혔다. 민국은 '호오~.'하면서 유이를 냉큼 그곳으로 끌고갔다.

"유이 씨, 보이십니까? 850점입니다."

"……."

"이 정도 점수는 유이 씨면 가뿐히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후훗, 말이 없군. 약한 녀석."

민국이 유이와 함께 도착한 곳은 오락실이었다. 그리고 그 오락실에는 펀치 기계가 있었는데, 누가 치고 갔는지 최고 점수 850점이 나와 있었다. 민국은 가만히 서 있는 유이를 뒤로하고 카운터의 할머니에게로 가서 돈을 거슬렀다.

"어디 보자, 500원에 세 판이라고?"

"……."

"저 두 판 칠 테니 유이 씨도 한 번은 치게 해드리죠. 어휴, 나의 대단한 배려보소. 모든 여자들이 울고 갈 정도야."

그리고 민국은 펀치 기계에 500원을 한 개 투입했다. 딸캉. 그런 소리와 함께 펀치 기계의 샌드백되는 원형 부분이 직선으로 일어섰다.

민국은 뒤로 다섯 걸음은 물러난 다음에 허리를 조금 숙였다. 야생의 치타가 된 기분이었다.

어차피 오락실에는 주인장 할머니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으니, 쇼 한 번 해도 되겠지 싶었다.

"오로지 이 날만을 위해 500원을 투입했다!"

"……."

"받아라!"

그러면서 '내 드릴은! 하늘을 뚫는 드릴이다!'하고 있는 힘껏 달려가서 샌드백을 치는 민국이었다. 빠강!

"아이고야! 내 손목! 손목 꺾였어!"

"……."

그러나 펀치 기계에는 조금도 조예가 없던 지라 순식간에 울상을 짓고 엉엉거리는 민국이었다. 메롱 되어버린 손목을 부여 잡고 있던 민국이 근처에 있는 유이에게 소리쳤다.

"안 되겠습니다 유이 씨! 나머지 두 개의 몫은 당신에게 부탁드리죠!"

"……."

"빨리 해 이 여자야! 가슴만 크면 다야?"

대놓고 성드립을 했으나 유이는 반응도 없었다. 민국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펀치 기계 정면으로 데려온 다음에, 꼿꼿히 서 있는 샌드백의 원형판을 두 손으로 붙잡으면서 중얼거렸다.

"자, 최유이 씨. 보십시오. 이게 강철남의 얼굴입니다."

"……."

"강철남은 당신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어요. 존나게 나쁜 새끼. 이 치토스 같은 새끼."

툭툭 건드리면서 민국은 말을 이어갔다.

"당신의 쭉 빠진 몸매와 얼큰한 가슴, 그리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 그것을 공략하기 위해 접근했던 새끼입니다 이 새끼는. 어떠십니까? 화나지 않습니까?"

"……."

"화나죠? 화나지요! 푸헤헤헤헤! 화나잖아! 자, 어서 쳐보란 말입니다? 언제까지 주눅 들어서 도망치기만 할 거야 이 여자야! 쳐봐! 쳐봐! 쳐보라니깐!"

돌연 굉장한 살기가 느껴졌다. 민국은 순간적으로 양손을 회수했다. 휘이이이잉! 바람을 찢는 거친 소리와 더불어서 매서운 주먹 한 개가 방금 전 민국이 잡고 있던 원형 샌드백으로 향했다. 파앙!!!!!!!!!!!!!!!

"히익!"

"에고야!"

굉음과 더불어 오락실 내부가 흔들릴 지경이었다. 일순간 카운터 할머니조차도 앉아있다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손을 짚을 정도였다. 그런데 유이가 그렇게 주먹을 내지르는 걸 옆에서 본 민국은 어땠겠는가? 식은땀이 뻘뻘 흐를 정도였다.

"슈, 슈밤바…."

"……."

"사람 죽이려고 환장했습니까? 말은 하고 치셔야지!"

띠용! 점수를 계산하고 원형 샌드백이 다시금 올라왔을 찰나였다. 이번엔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바람을 때리면서 날아갔다. 파아아아아앙!!!!!!!!!!!!!!!!!!!!!!!!!!!!!!!!

"!!!!!!!!!!!!"

"!!!!!!!!!!!!!!"

옆에 있던 민국은 자신의 볼을 스쳐 지나간 신발에 경악을 하였고, 카운터에서 이를 지켜보던 할머니 역시 눈이 휘둥그레 지고 말았다. 분명히 펀치 기계라서 펀치만 써야 하는데… 유이는 발을 이용해서 펀치 기계를 아예 날려버릴 듯이 쳐버렸다. 푸쉬이이이….

"에구머니나!"

펀치 기계에서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하자, 카운터의 할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오죽하면 나와야 할 점수가 나오지 않고 고장나고 있었다.

"이노무 자식들이! 펀치 기계를 발로 차면 우짜는 거야!"

"으어억!"

시뻘개진 얼굴로 변상하라면서 다가오는 할머니의 모습에 민국은 거칠게 숨결을 토하는 유이의 손목을 냉큼 잡았다. 그리고는 출렁이는 바스트의 그녀를 이끌고 잽싸게 오락실에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빨리 도망갑시다 유이 씨!"

"이놈들!"

"으아아, 여자 발에 펀치 기계가 부셔질 지는 누가 알았겠냐고!"

그리하여 5분간을 도망친 민국과 유이. 허리를 숙이고 헉헉거리는 두 사람이었다.

"하아, 하아."

"헥헥."

개처럼 숨을 토하면서 괴로워하던 민국. 이윽고 어느 정도 숨결이 가뿐해졌을 때였다. 민국은 뒤에 있는 유이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그래도 이제 좀 괜찮아졌습니까?"

"……."

"어이, 이보세요 유이 씨."

말 좀 해보라면서 손으로 툭 건드리려는 찰나였다. 허리를 숙이고 땀을 흘리던 유이가 그 손길을 감지한 듯 잽싸게 몸을 물리는 모습이었다.

"……."

"……."

그 모습에 괜찮아진 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는 민국이었다.

"엉?"

그때 무언가 눈에 띄는 것을 보게 된 민국이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칵테일 바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

민국은 말없이 그것을 쳐다보다가 유이를 호명했다.

"유이 씨."

"……."

"들어갑시다."

비록 밤도 아니었지만, 뭐 어떻겠는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으면 그만이지. 군말 말고 칵테일 바를 엄지로 가리키는 민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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