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밥은 드셨습니까?"
"……."
"아니, 안 그래도 가슴만 크고 살도 없는 여자가 가슴살 전부 공복에 사용하려고 남겨두었습니까? 빨리 일어나요. 일단 밥부터 먹읍시다."
민국은 심상치 않은 유이의 상태에 재촉하듯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유이는 정신만 죽은 게 아니라 육체도 죽은 듯이, 쉽사리 일어나질 못했다. 민국은 '끙…'하면서 잠시 골머리를 썩히다가 몸을 앉히면서 말했다.
"보통 이런 식으로 말하면 한 대 때릴 텐데 말이지."
"……."
"잠시 좀 업겠습니다."
얼이 빠진 듯한 유이에게서 등을 보이는 민국이었다. 그리고 뒤로 두 손을 당겨 조심스레 유이의 등을 만지작만지작거려 자신의 곁으로 당겨왔다. 이윽고 유이가 바람에 하릴 없이 부는 양탄자처럼 민국의 등에 기댔다.
'오오옷!'
민국은 그 순간 등으로 밀착되는 봉긋한 두 개의 산을 느꼈다.
'이게 정녕 가슴이란 말인가? 이게 정녕 신이 만든 창조물이란 말인가?'
다른 의미로 흥분에 도취되는 민국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느껴지는 씁쓸한 기운에 민국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에라이, 강철남 그 자식 때문에 성드립을 쳐도 재미가 없구만.'
파렴치한 사람을 보는 것마냥 침묵하던 유이의 얼굴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침묵을 하되 그 침묵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었다. 감정이 죽은 사람의 얼굴 같았으니까. 민국은 유이를 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우야, 몸무게가 상당히 많이 나가시는군요. 가슴만 3kg는 될 듯합니다."
"……."
그리고 유이를 업은 채로 천천히 방문으로 나가는 민국이었다. 얼마지 않아 계단 쪽에 도달한 민국은 저벅저벅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에 내려온 직후, 민국은 거실로 곧장 향해 유이를 테이블 쪽에 앉혀주었다. 높낮이가 낮은 그 테이블 근처의 바닥에 두 다리를 뻗고 앉은 유이는 허리조차 축 쳐진 상태였다.
민국은 손을 아래에 대서 바닥의 온도를 체크해보았다.
'차갑네. 보일러 안 켰나.'
민국은 벽면의 보일러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두리번거렸다. 머지 않아 보일러를 찾은 민국이 자신이 사용하던 보일러와는 다르자 사용법을 좀 찾는 듯싶다가, 거실의 온도를 높였다.
"좀 기다리고 있으세요 유이 씨. 제가 그쪽 기운내라고 맛나는 요리 한 번 해드리겠습니다. 흠흠."
"……."
"젠장, 이것이 공기랑 말하는 느낌인가?"
중얼중얼거리며 민국은 부엌으로 이동했다. 냉장고의 문을 열고 내부를 들여다본다.
"허허, 비어 있구만."
민국은 냉장고 내부가 상당히 썰렁하다는 걸 느꼈다.
'과연 혼자 사는 사람다운 집이네.'
민국의 냉장고와도 비슷한 유이의 냉장고였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직접 요리해서 먹기 보단 주문 배달해서 먹는 류가 많았으니까. 민국 역시 예나나 은별이가 아니었으면 냉장고가 항상 비어 있는 일이 잦았을 것이다.
'이거 계란 유통 기한은… 오메나, 다행히 먹을 수 있겠군.'
그나마 먹을 만한 계란이 두 개는 있음에 민국은 후라이팬으로 계란 노른자나 만들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까다로운 요리는 불가능했다. 애초에 요리란 걸 별로 즐겨하는 습성이 없었으니까.
"캐챱도 있구만. 후후."
민국은 배달해서 먹기에 돈이 아까울 때 자신이 늘 먹던 방법을 유이에게 선사하자고 생각했다. 이윽고 가스레인지에 후라이팬을 두고, 기름을 조금 뿌린 민국이 계란을 싱크대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서민국의! 요리 교실!"
자, 계란 후라이를 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선 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킨 다음 30초 정도 놔둬줍니다…. 이후 기름이 지글지글 끓기 시작하는 순간 계란 두 개를 으깨서 투척! 껍질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시고 다음에는 소금을 촥촥 뿌려서 맛을 복돋아 준 다음 이제 계란의 뒤를 돌려서 익혀주시면 됩니다!
"참 쉽죠?"
혼자 쇼를 하던 민국이었다. 유이가 얼마나 공기 같이 굴었으면 외로운 맘에 그만 이런 쇼를 하고 있을까? 민국은 '인생 슈발.'하면서 접시에 계란을 내려놓았다.
"계란은 다 된 거 같고. 이제 밥은."
밥통으로 향해서 내부를 확인한 민국은 할 말을 잃었다. …잠시 후 계란만 가지고 유이에게로 향한 민국이었다. 테이블에 계란이 들린 접시를 내려 놓으면서 민국이 말했다.
"일단 단백질이 풍부한 이 계란 두 개부터 드십쇼."
"……."
"아니 근데 무슨 밥을 안 해두고 삽니까 여자가? 굶어죽으려고 환장하셨어요?"
밥통에 밥알이 한 알도 없어서 민국은 밥을 가져오는 건 포기했다. 이제와서 밥을 한들 한 시간은 족히 걸릴 예정이었다. 민국은 수저를 접시에 내려놓았다.
"이거라도 드세요 일단."
"……."
"어허! 드시지 아니하고 뭐하십니까."
그러던가 말던가 그저 멍을 때리는 유이였다. 민국은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는 수 없지. 은별아 미안하다. 너에게도 해준 적이 없는 쇼맨쉽을.'
그리고 민국은 계란 후라이를 수저로 자른 다음에 담으면서 유이의 입술로 가져다주었다.
"유이 씨 아~."
"……"
"자기야 아~."
"……."
"사랑스런 자기 입술 속에 이 하얗고 진득진득하고 끈적거리는 것을 넣고 싶어 아~."
"……."
"와나."
입술 자체를 열 생각을 안한다. 그렇다고 강제로 입술을 열자니 진짜로 맞을 듯한 느낌이다. 아니, 음식을 입속에 담으면 씹기라도 할까? 왠지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유이 가슴은 만날 출렁이지!"
"……."
"출렁출렁 대왕! 좀 때려봐라! 겁나서 못 때리지 이힝힝?"
이번엔 옆에서 대놓고 도발하는 민국이었다.
"후후후, 내가 언젠간 이런 날이 찾아올 줄 알았지! 내가 성드립을 해도 아무런 반응조차 못할 이런 날을! 난 두고 두고 기다려왔다! 감히 나를 발로 차서 마조히스트의 정체성을 깨닫게 만들어? 가만두지 않겠다 최유이!"
"……."
"슴가슴가! 출렁출렁! 파이즈리!"
별 성적인 언어까지 난무하는 민국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응이 없자 민국은 놀리던 것도 관두게 되었다.
"허… 참."
"……."
"아니, 그놈이 얼마나 좋다고 이렇게까지 힘드시답니까."
투덜대는 민국이었지만, 실은 알고 있었다. 유이의 과거 기록을 알고 있는 민국으로서 그녀가 얼마나 그 사람에게 마음을 주려고 했는지를.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건 그 자식만 좋게 만드는 행위라고.'
결코 강철남 같이 추잡한 남자 때문에 망가지는 건 민국도 원치 않았다. 자신 같이 추잡한 사람에게 망가지는 게 아닌 이상.(?)
'최후의 비기를 써야겠구만.'
민국은 초점도 없는 유이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돌려놓을 수 있는 최후의 비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드는 민국이었다. 강철남과 싸울 때 변기칸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고장난 적이 없는 초특급 휴대폰. 삼성의 갤럭시s4 액티브! 이 액티브에는 아주 특별한 기능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컴퓨터의 영상을 이곳에 담아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후후후후, 각오해라 최유이. 눈을 뜨고 싶지 않아도 뜨게 될 것이다."
"……."
민국은 사운드를 최대로 올렸다. 그는 이미 동영상을 키고 준비 중인 상태였다. 이윽고 재생 버튼을 누른 뒤 민국은 그녀가 멍을 때리고 있는 정면 앞으로 그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휴대폰 안에서 거친 동작과 더불어, 거친 사운드가 들려왔다.
{앙앙! 이쿠이쿠요!}
{김치데스까! 김치 맛있데스까!}
{노노! 아임양파링!}
{오메 반란군노무데쓰!}
{앙앙!}
그것은 비단 민국만이 선보일 수 있는 비기. 식물인간 환자조차 창피함에 깨어나게 만들 초특급 비기, 야동 보여주기였다!
{앙앙앙앙!}
"……."
{이쿠이쿠이쿠! 온니쨩 이쿠!}
{헉헉 온니쨩 다메! 노 헨타이요!}
{꺄아아아악!}
야한 사운드가 집안 곳곳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유이의 초점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민국은 자신의 최후의 비기가 어떠냐는 듯 흐흐 웃고 있었다. 이윽고 초점이 조금 돌아온 유이. 그 순간 혈색이 순간적으로 돌아옴과 더불어 강렬한 발차기가 아래에서 날아들었다. 퍼억!
"꾸엑!"
"……!"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꾸엑! 꾸에에엑!"
앙칼진 돼지 소리를 내면서 민국은 잠시 동안 하늘을 날았다. 그러다 얼마지 않아 새로운 콤보! UFC에서 추성훈이 선보였던 뒤돌아 복부차기를 그대로 민국에게 선사했다. 휘이잉! 퍼억! 쿠웅! 곧장 벽면으로 날아가 등을 부딪히고 쓰러져버리는 민국이었다.
"하아… 하아…."
"꾸에에엑."
민국은 역시 자신의 최후의 비기답다고 생각했다. 이걸로 깨어나지 못하게 할 인간은 없었다. 이윽고 조금 정신을 차린 듯 초점이 돌아온 유이가 아직도 거친 사운드가 들려오는 휴대폰 영상을 내려다보았다.
{맛있쪙 이쿠! 서민국 병신!}
{흐흐흐! 서민국 병신!}
"……."
그것을 엄지 발로 꺼버리는 유이였다. 민국이 '콜록콜록!'죽어가는 사람처럼 각혈을 토할 듯 기침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군요 유이 씨. 쿠웨엑!"
"……."
"헉헉, 저도 괜찮습니다."
안부를 물은 적도 없는데 대답하고 있다. 이윽고 일어난 민국이 맞은편의, 초점이 조금 돌아온 듯한 유이를 보면서 말했다.
"그렇게 집안에 쳐박혀서 죽을상 짓지 말고 저랑 밖이라도 나가요."
"……."
"재밌게 한 번 놀아봅시다."
서민국의 비기로 한 순간 눈을 뜬 유이였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유이는 다시금 강철남을 통한 아픔이 느껴졌는지 힘이 빠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민국은 일단 유이를 데리고 집을 나갈 채비를 하였다. 집안에 도통 틀어박혀 있어봤자 우울병만 도질 것이었으니까.
"……."
저벅 저벅.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두 사람은 천천히 길을 거닐기 시작했다. 민국이 요리한 계란 후라이도 일체 먹지 않은 채, 공복으로 나온 유이를 뒤돌아보면서 민국이 물었다.
"아니 근데 안 배고파요? 제가 선수 요리한 계란 후라이도 드시지 아니하고 말입니다."
"……."
"흐음."
마냥 발치만 보면서 걷는 유이의 모습에 민국은 팔짱을 끼며 쳐다보았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민국이 짐짓 당차게 소리쳤다.
"좋습니다!"
"……."
"기왕 이렇게 된 거, 제가 오늘은 유이 씨를 위해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한 끼 식사를 하기로 하죠. 후하하하하, 된장녀들도 부러운 시선으로 볼 듯한 그런 레스토랑에 가는 거니 고마워하셔도 됩니다."
"……."
"어이어이, 이 양반아 최소한 고맙다고라도 해봐."
유이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민국은 '흐어어.'하면서 한숨만 내쉬었다. 그렇게 민국의 안내로 말미암아 유이는 어느 괜찮은 듯한 레스토랑에 도착하게 되었다. 물론 민국이 유이가 사는 동네의 지리를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그냥 비싸 보이는 곳 아무대나 들어간 것이었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남자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민국이었다. 남자 직원이 민국의 얼굴을 보고는 순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와, 저 남자 봐봐. 개잘생겼네."
"그러게."
다들 민국의 얼굴에 할 말을 잃던 두 남자였다. 그때 힘없는 눈동자로 뒤따라오는 누군가가 있었으니.
"……!"
"허억."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이성으로서 엄청난 욕구가 막 샘솟을 수밖에 없는 여인이었다. 민국은 뒤를 돌아 유이를 보았다.
"봤지? 봤어?"
"봐, 봤지! 씨발 저 가슴 봐봐 우와…."
"……."
걸어가는 유이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중얼거리는 직원들. 그러나 그 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으리라. 민국은 죽어가는 유이의 눈동자를 보면서 '후우'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유이의 손목을 냉큼 잡고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직원 두 명이 당황한 듯 소리쳤다.
"어어, 손님! 왜 나가세요?"
"맞아요! 안으로 들어오시죠! 친절하게 모셔드릴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장사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유이를 데리고 다른 곳을 알아보는 민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