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야… 끊어.”
픽업아티스트 친구와 연락을 종료하는 강철남이었다. 그도 꽤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있는 화장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심지어 변기칸에서 등장한 사람은 자신과 구면인 사람이었다. 서민국… 하필이면 막장계 비제이 랭킹 1위에 속하는 그였다. 강철남은 짐짓 눈웃음을 지으며 뻔뻔스럽게 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서민국 씨. 하하.”
강철남은 어색하게 웃음을 보였다. 굳이 숨길 필요 없는 휴대폰까지 뒷주머니 숨기면서 말이었다. 서민국은 빙그레 미소 짓고는 입을 열었다.
“어리석은 영혼이여.”
“…….”
“뻐큐나 먹어라.”
민국은 진심으로 혼신을 다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그의 중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가운데 손가락이 곡선을 그리며 자신을 향해 욕을 하는 모습에 강철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오해가 있으신가 보네요. 이건 제 친구가 연극가라서 맞춰준 것뿐이에요.”
"호오, 연극가요?"
"네. 제 친구가 이번에 픽업아티스트 관련된 연극을 찍거든요. 그런데 늘 저한테 대본 연습에 맞춰달라고 해서요."
강철남은 빙그레 웃으면서 아닌 척 연기를 했다. 허나 민국의 눈썰미를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이래봬도 서민국은 한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자신을 쳐다볼 때, 그 여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군요. 근데 엿 좋아하십니까?"
"예?"
"왼쪽 엿만 드시기엔 배가 너무 고프신 거 같으니 오른쪽 엿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서민국은 왼쪽 손가락도 들어서 뻐큐를 날렸다. 이로써 가운데 중지 손가락 두 개가 곡선을 그리면서 당면의 강철남을 욕했다. 강철남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애초에 이야기도 다 들었는데 어디서 헛소리를 지껄입니까 이 양반아? 개연성 없는 이야기를 해도 정도가 있지."
아무래도 쥐구멍으로 빠져나갈 여유조차 없는 것 같았다. 강철남은 고개를 조금 내리고 눈매 쪽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잠시 후 고개를 든 강철남의 얼굴엔 특유의 가면이 아닌, 뻔뻔스런 낯짝이 존재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호오, 본심을 드러내는거 보소."
"네가 뭐 할 수 있는 거 있냐? 어차피 그래봤자 최유이는 날 좋아할 걸?"
강철남은 조금도 아쉬울 게 없었다. 민국의 모습을 보니 증거물이랄 것도 없는 거 같았고, 본래 사람이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믿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남자 물정 뭐 하나 모르는 최유이라면 강철남에게 일편단심을 취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민국이 조금 진지해진 눈매로 말했다.
"정신병원 수석환자 자격도 박탈 당할 놈이네 이거."
강철남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지껄였다.
"애초에 여자라는 건 삼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행세만 해주면 꿈뻑 죽는 동물이야. 지들 딴에선 복잡한 동물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맞춰주기만 하면 몸도 마음도 다 주는 단순한 동물이라고."
"그게 네 본심이냐? 강철남?"
"내 본심이면 뭐 어쩔 건데 킥킥. 그 여자에게 말하려고? 들어주기나 할까? 너 같은 변태 이미지가 콕 박힌 놈한테?"
변태 이미지가 콕 박힌 놈이 아니라 진짜 변태였다. 하지만 민국은 차라리 자신처럼 솔직한 변태가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진솔한 변태 입장에서는 가면을 쓰고 여자의 몸만 노리는 비열한 변태가 절대 좋을 리가 없었다.(……?) 민국이 비열한 웃음을 짓는 그를 보면서 웃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내가 아무것도 준비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하냐?"
"네가 뭘 준비하는데?"
"뷰웅신."
술을 한 사발 들이킨 사람처럼 장난스런 목소리로 욕을 지껄이며 민국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곳에는 현재도 녹음 진행 중에 있는 민국의 휴대폰이 있었다. 당연지사 그것을 본 강철남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아차하는 표정을 짓게 되었다. 민국이 마치 범인을 추궁하는 코난처럼 지껄였다.
"네놈은 가장 큰 실수를 범했어. 그 중에 한 가지는 여기서 내가 설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최유이에 관련해서 언급했다는 것."
"……."
"그리고 이 휴대폰은 갤럭시s4로 우리 엄마가 6개월 할부로 산 휴대폰이다 이 새끼야!"
강철남은 그제야 큰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아무리 사람의 목소리만 녹음되는 녹음기라 해도, 목소리를 통해 그 주인을 알아내는 건 구면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녹음된 내용에는 오로지 강철남만이 알고 있을 유이의 사생활도 곱게 담겨 있었다. 만일 저 녹음 내용이 유이에게 전파되었다간 강철남은 빠져나갈 쥐구멍조차 없어질 것이었다.
강철남이 한층 진지해진 표정으로 서민국에게 다가가면서 손을 뻗었다.
"그 휴대폰 내놔."
"후후, 이제 좀 진지해지는 모양이지 이놈아?"
"좋은 말 할 때 내놓으세요 서민국…."
민국은 녹음 버튼 종료를 누른 다음에 저장을 하고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양손을 들면서 파이팅 자세를 취하고는 대치했다.
"덤벼."
"……."
"너 같은 비열한 변태는 진실된 변태가 용서하지 않는다."
정의의 이름을 가지고 말이었다. 강철남은 '씨발….'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 옹알거리는 소리가 민국의 귓전에도 닿았다. 강철남은 슬슬 분노 게이지가 한계치에 달했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민국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대뜸 그에게로 뛰어가는 강철남이었다.
"내놔 새끼야!"
"와라 변태 새끼야!"
민국은 파이팅 자세에서 얼마든지 싸울 준비를 하였다. 이래봬도 민국은 허우대가 남자들 중에서 굉장히 좋은 편에 속했다.
키도 185가 넘었고 몸무게도 70~80 중간 사이는 되었다. 남자 평균 스팩으로서 좋은 편에 속했기 때문에 민국은 일반인이 상대라면 얼마든지 대적할 자신이 있었다.
휘익! 부우우웅! 이윽고 민국이 한 손으로 뛰어오는 강철남의 얼굴을 손아귀로 붙잡으려는 찰나였다. 강철남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허리를 숙이더니 그대로 민국의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민국은 그런 강철남의 스피드에 '헐?'하면서 순간적으로 놀랐다. 분노하며 달려들었던 강철남은 민국의 한심한 손동작에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이래봬도 강철남은 격투기 생활 1년을 한 아마추어였다. 키가 작고 여리여리해서 픽업을 할 때 남자들의 견제를 많이 받았던 지라, 지지 않기 위해서 배웠던 게 적잖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당연지사 허우대가 좋다 한들 싸움의 지식이 일반인 수치에만 달하는 민국 딴에선 상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퍼억!
"허억!"
민국은 체중이 실린 강철남의 스트레이트를 복부에 맞고 말았다. 민국은 다른 의미에서 욕이 나오는 걸 느꼈다.
'슈밤! 설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복부의 또 다른 고통을 느끼면서 민국은 강철남의 머리에 주먹을 내려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강철남은 그 주먹을 여유롭게 피한 다음에 민국의 발에 로우킥을 날렸다. 퍼억! 확실히 고작 1년이라고 해도 격투기의 경험은 큰 차이를 가지고 왔다.
"이런 비열한 변태 놈이!"
민국은 혼신을 다해서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그러나 한 대도 맞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 몇 대 얻어맞게 되었다. 잘 생긴 얼굴까지 맞게 된 민국은 이내 변기칸의 문에 털썩하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강철남이 그 틈을 노리고는 후다닥 달려들어서 민국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으어어…."
"……."
좀비처럼 손을 뻗는 민국의 손을 내쳐버린 다음에 강철남은 주머니에서 민국의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확인하려고 액정을 만지는 강철남이었다.
"칫…."
하필이면 비번이 걸려 있었다. 아예 손도 못 대게 할 셈인 것이었다. 강철남은 어차피 주저앉아있는 민국이 비밀번호도 언급할 것 같지 않자 변기칸을 돌아보았다. 휴대폰 값을 차라리 물어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며 강철남은 그 변기칸에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던졌다.
"……."
민국은 하도 얻어맞아서 정신이 없어 그냥 고통의 신음만 질렀다. 퐁당! 휴대폰이 변기칸에 무사히 빠진 것을 확인한 강철남이 고개 돌려 민국을 내려다보았다.
"병신새끼…."
"…….'
강철남이 낄낄 비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민국이 여기서 주눅들 소냐? 자기보다 강한 사람일 수록 어떻게든 이기고 싶은 것이 민국의 철칙이었다. 그것이 비록 어떤 방법이든 말이다.
"고추 차기!"
"……!"
몸을 돌려 화장실을 나가던 강철남이었다. 증거 흔적도 완연히 없앴다고 생각한 강철남이 한층 안도한 표정으로 나가는 찰나, 강렬한 일격이 그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왔다. 퍼억!
"어억…!"
"……."
"크어어어어억!"
강철남이 격심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다리를 오므렸다. 서서히 주저앉듯 쓰러지는 그를 바라보며 민국은 뒤에서 후다닥 달려갔다.
"너에게 쉴 시간은 없다 이 로리콘 같은 새끼야!"
"자, 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쓰러져가는 강철남의 뒤를 기습하는 민국이었다. 안기듯이 뒤에서 붙잡은 민국은 그대로 강철남을 앞으로 쓰러뜨렸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화장실 바닥에 얼굴을 붙이게 된 강철남은 민국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붙잡고 막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악! 씨발! 머리! 아악!"
"아프냐? 난 안 아프다!"
그러면서 있는 힘껏 머리카락을 쥐어잡고 늘어지는 민국이었다. 강철남은 씨발씨발거리면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민국의 체중 때문에 깔아뭉개져서 일어날 기세를 취하지 못했다.
"이번엔 이거나 먹어라!"
"억! 씨발롬아…!"
민국이 강철남의 양 콧구멍에다가 두 손가락을 집어넣고는 막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강철남은 생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끔찍한 고통에 욕지거리를 한사발하였다. 민국은 뭐가 좋은지 '푸헤헤헤헤헤!' 폭소를 터트렸다. 진정한 사디스트가 여기 있었다.
"이번엔 비기!"
"……."
"바지 내리기!"
"이 개색!"
강철남이 힘이 빠진 상태에서 민국이 아주 노련하게 그의 바지를 벗겨 버렸다. 강철남은 바지가 훌러덩 내려가는 느낌에 깜짝 놀라 양손을 뻗어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민국이 완전히 바지를 벗겨버린 다음에 후다닥 휴대폰이 떨어졌던 변기칸으로 향했다.
"야 이 멍청한 놈아. 넌 아직도 이 휴대폰이 보통 휴대폰인 줄 아냐?"
"크으으…."
졸지에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강철남이 허리를 부여잡고 벽면을 짚으며 일어났다. 휘청휘청거리는 그를 바라보면서 서민국이 변기칸으로 냅다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낸 다음에 톡톡 물기를 털어내고는 액정을 콕 클릭했다.
"봐봐."
"……."
"이게 그냥 휴대폰 같냐?"
참 아이러니하게도, 민국의 휴대폰은 물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상 작동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런 휴대폰의 생소한 모습에 강철남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의문을 품었따.
"어떻게 그런…."
"이게 그냥 갤럭시s4 같냐고 이 멍청아! 푸헤헤헤헤헤헤!"
"……."
"이거 갤럭시s4 액티브야 이놈아! 방탄유리 같은 놈이라고 새끼야!"
"……."
"푸헤헤헤헤헤헤!"
갤럭시s4 액티브! 휴대폰이 방수 처리가 되어 있는, 수영장에 대놓고 떨어뜨려도 고장나지 않는 최초의 휴대폰이었다. 고인 스티븐 잡스의 애플을 상대하기 위해 제작한 삼성의 어마무지한 휴대폰! 시상식 이후 짬이 몇 번 있었을 때 휴대폰 매장에서 어머니가 사준 휴대폰에 민국은 참말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물기는 네 바지에 닦을 테니 염두해두렴!"
"…이 새끼가아!"
"푸헤헤헤헤!"
민국은 변기물이 묻은 휴대폰의 물기를 강철남의 바지에 적셨다. 강철남이 후다닥 민국에게로 달려오자 민국은 변기칸의 문을 닫고는 걸어잠가버렸다.
"열어! 열어 새끼야!"
"어디서 욕질이야 임마! 네 엄마 안부나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이 멍청한 놈아!"
변기칸이 열리지 않게 막으면서 그대로 강철남의 바지를 변기칸에다가 투척해버리는 서민국이었다. 주먹질을 못할 지언정 결코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민국의 신조. 싸움을 이기는 방식이 마냥 주먹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푸헤헤헤헤헤!"
그리고 여기, 진정한 변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