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122화 (122/369)

122화

웅성웅성. 학교 운동장은 순식간에 논란으로 들끓고 말았다. 민국에게 들러붙어 사인을 요청하던 수많은 여학생들이 얼에 빠진 표정으로 소곤거렸다.

“무슨 소리지?”

“뱃속에 아이라니… 설마….”

“쟤는 누구야?”

“헉, 설마 강서라?”

여학생들이 다른 의미로 패닉에 빠졌다. 강서라. 서라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교내에서는 아주 유명인이었다. 왜냐하면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상위권에 들고 몸매도 좋고 발랄하기까지 하니,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다들 강서라가 뿜어내는 4차원적인 신비한 매력에 지켜보기만 할 뿐, 그녀를 내심 흠모하는 남학생들도 많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학생들 입장에서 강서라는 굉장히 매서운 적이었다. 당연지사 견제 어린 표정을 짓게 되기엔 충분한 입장이었다.

“임신이라니… 오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설마 저희들 몰래 그런 짓을 하셨단 말이에요?”

“오빠! 전 그래도 상관없어요! 전 오빠만 제 곁에 있어주시면 되요!”

“실망이에요! 오빠!”

제각기 다른 반응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끝까지 곁에 남아 있겠다고 하는 사람부터 실망해서 돌아서는 여자들까지. 분명 초면일뿐더러 대화를 나눈 지도 몇 분 채 되지 않았을 텐데, 이미 그녀들은 10년 동안 함께 해온 오랜 가수 팬처럼 굴었다. 민국은 생각했다.

‘서라 네 이놈!’

‘깔깔깔!’

민국과 서라의 눈빛이 교류했다. 민국은 마치 데스노트의 주인이 자신인데 그것을 누군가 알아낸 사람마냥 ‘당했다!’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잠깐. 오히려 이걸 역으로 사용할 수 있어.’

민국은 생각했다. 이것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일종의 심리 대결이다. 현재의 주도권과 분위기만 그대로 가져가서 유리한 쪽으로 돌려버린다면…!

“애들아. 너희들 쟤 아니?”

“네. 강서라잖아요.”

“특히 우리 학교에서 남학생들에게 엄청 인기 많은… 지는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후후, 역시 여기서도 인기가 많구나 강서라.’

강서라에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바로 자신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도 그러했다. 때문에 인기가 많은 만큼 질투를 하는 동성 친구들도 어찌나 많은지 전혀 모르겠지.

“애들아, 사실 너희들이 알 런지 모르지만 서라에겐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네? 그게 뭔가요 오빠?”

“내가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 창피하지만 솔직히 나 잘 생겼지?”

그 말에 남아 있는 여학생들 일동이 ‘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민국은 슬그머니 웃음 지으면서 주변에 있는 여학생들의 머리를 차근차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그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에 여학생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어린아이마냥 흠뻑 빠져들었다. 민국은 말을 이어갔다.

“그래. 내가 너무 잘 생겼기 때문에 서라 쟤도 나한테 매달리는 거란다.”

“네? 그게 정말이에요?”

“그래 사실 쟤도 불쌍한 아이야. 나를 짝사랑하지만 차마 손에 넣을 수 없으니 어떻게든 거짓말이라도 쳐서 수작을 부리려는 속셈이란 거야.”

“아!”

“심지어 서라에게는 정신병이 있어. 왜 교내에서 서라 보면 약간 4차원 기질이 보이지 않니?”

그 말에 또 몇몇 여학생들이 ‘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기도 많고 말도 많은 애라서 다들 알아요! 4차원 기질로도 좀 유명해요!”

“그렇지? 외모는 예쁜 편인데 4차원 기질이 특이하고… 하지만 그런 서라에게도 단점이 있어요. 바로 아까 언급한 정신병이지. 서라는 망상에 빠지는 이상한 취미가 있어. 그 취미가 강박증이 되고 강박증이 틱이 되고 틱이….”

“졌습니다 항복!”

서라가 후다닥 달려와서는 두 팔을 도리도리 흔들면서 외쳤다. 주변 여학생들 사이로 파고든 서라가 그녀들의 시선을 한 몸에 집중 받게 되자 민국이 꽃미남스러운 웃음을 머금으며 물었다.

“이제 깨달았느냐?”

“네! 역시 오빠는 이길 수 없는 거 같아여!”

“그래, 그렇지?”

그렇게 말하며 민국은 서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서라는 ‘헤헤’하면서 마치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마냥 행동했다. 물론 그것은 하필이면 등교를 하고 하교를 하는 자신의 교내에서 진행된 심리전이라 불리함을 느꼈기 때문에 말고 간 꼬리였다.

‘악의 무리! 부들부들…!’

‘푸헤헤헤헤!’

승자가 정해진 상황에서 여학생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오빠, 그러면 무슨 사이예요?”

“설마 애인….”

“응? 아니야.”

민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제로 여자 친구가 있어서 완강히 부정한 것도 있지만, 사실 다른 까닭에서도 있었다.

여자에 대해서 곧잘 아는 민국답게 여자의 질투심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민국은 서라의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자기 쪽으로 당기고는 허리를 숙였다.

볼과 볼이 맞닿았고 지켜보던 여학생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라가 돌연 닿은 볼의 감촉에 ‘부왁!’하면서 놀라는 가운데 민국이 슬그머니 웃으며 말했다.

“내 친척 동생이야.”

“친척 동생?!”

“그, 그럼…! 서라의 친척 오빠?!”

“그런 셈이지.”

어째서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치느냐. 바로 여기 주변에 있는 여학생들이 자세히 보니 서라에게 상당히 적개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시선 따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서라라지만 그래도 여학생들의 질투는 굉장히 위험한 요소였기 때문에 분명 교내에서 안 보이게끔 괴롭힐 지도 모를 것이었다.

민국은 서라를 귀하게 여기는 오빠로서 그런 처사를 원치 않았다. 때문에 다들 서라에게 잘 보이게끔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리얼 개소름….’

서라는 그런 심리력에 소름이 돋았지만 일단 민국을 따라하기로 했다.

“아잉 오빵~ 3교시 수업 때 교실로 들어온다더니 왜 4교시 끝난 점심시간 식사 때 오셨어여? 아잉아잉.”

“하하하. 3교시 수업 때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잖니 이 귀엽지만 어리석은 아이야.”

진짜 과장될 정도로 투닥투닥 민국의 가슴을 애교 부리듯 때리는 서라였고, 그런 서라의 볼을 꼬집는 민국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분위기였을 뿐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여학생들은 다른 의미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서라에게 저런 친척 오빠가 있었다니….’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저 오빠는 얼굴도 잘 생기고 몸매도 좋고… 친척 유전인 건가?’

‘그렇다면!’

갑작스레 서라를 쳐다보는 여학생들의 시선에 긍정적인 느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 따위 개의치 않는 서라조차도 그것을 순간적으로 느낄 정도였다.

“서라야, 앞으로 미술실 갈 때 못 가져온 준비물 있으면 얘기해줘. 나 그림 쪽 전문으로 준비하거든. 그런 용품들은 항상 가지고 있을 거야!”

“서라라고 했지? 반가워 난 세리라고 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얘기해줘. 특히 어떤 고약한 오빠들이나 여자들이 까불면 얘기해줘. 내가 나대지 못하게 아는 오빠들 불러서 혼내줄게.”

“너 참 예쁘다! 예전에 몇 번 네 이야기 들은 적 있는데 그때 안 좋은 소문만 들었던 거로 알거든. 역시 그건 잘못 퍼진 거겠지?”

그렇게 ‘서라야’를 기반으로 자신의 장점들을 피력하는 여학생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서라는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뭔 일이래여?’

‘후훗.’

이것이 바로 민국의 능력이었다. 단순히 외모만 잘 생긴 게 아닌! 외모를 통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능력!

“근데 애들아, 미안한데 서라랑 내가 단둘이 할 얘기가 있거든. 집안 사정이라 그러니 잠시 둘이 있게 해줄래?”

“네 오빠! 그럼 번호는 주실 거죠?”

“그래 그래 다 끝나면 주도록 할게.”

그리고 여학생들을 달랜 뒤 교문 쪽으로 향하는 두 사람이었다. 저벅저벅 언덕길을 내려가던 서라가 말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보조 마법 쉴드인가여? 마나가 얼마나 활용되었져?”

“난 페시브라서 이거 무한이다.”

“헐! 대박임. 고수인 걸 미처 몰라보고 싸움을 걸어 스미마셍!”

서라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가 들었다.

“근데 나님한테 그런 보조 마법 해줄 필요 없는뎅.”

“너 예쁘다고 질투하는 여학생들이 한 둘인 줄 아냐. 들어보니까 가관도 아니더만.”

“엣헴! 이것이 바로 이 몸의 힘임!”

가슴을 당당하게 피는 서라의 머리를 쓰다듬는 민국이었다.

“어쨌든 간에 옛다 받아라.”

“…….”

이윽고 주머니 속에 있던 하얀 병의 내용물을 건네는 민국이었다. 햇살 때문에 더 투명하게 보이는 그 액체의 모습에 서라는 진심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이윽고 그것을 건네받으며 서라가 중얼거렸다.

“세상에 비극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소고기다.”

“그게 지금 이 상황에 맞는 소리냐?”

“맞지 않는 소리도 때때로 해야 할 때가 있는 법! 여튼 땡큐여!”

받은 액체의 병을 주머니 속에 넣은 서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이제 온니쨩은 어디 갈 거예염?”

“훗. 놀라지 마라. 스폰 받으러 간다.”

“와아, 아예 스폰으로 떡칠을 하시겠어여! 저도 하나만 주시져!”

“됐어 임마. 너도 충분히 많잖아. 심지어 전성기가 다가오고 있는 녀석이 무슨.”

“파르르르! 부자가 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군여!”

그러하다.

“어쨌든 고마워여! 그럼 내일 또 뵈여!”

“그래, 앞으로 계속 만날 테니 우리 진득한 사이가 되도록 노력하자.”

“어맛! 제 처녀막을 노리는 야수성 깊은 헨타이!”

그렇게 서라와 작별을 고한 민국이었다. 만나는 시간은 짧았던 거 같은데 긴 싸움을 한 기분이었다. 민국은 쨍쨍한 햇볕 아래에서 다시 한 번 전철에 탑승했다.

‘어우, 이거 생각보다 힘든데?’

하루에 한 번씩 네 명을 만나야 한다. 약속을 정하길 하루는 민국이 네 사람 집에 갔다오고, 다음 하루는 네 사람이 민국의 집에 오는 식이었다. 물론 예나와 은별은 알아서 민국의 집에 온다고 하니 오늘은 제외고.

‘이제 다음 사람은 유이 씨인가.’

말이 없고 공기 같으며 무거운 그녀! 하지만 그 속에는 파이터들도 감당할 수 없는 어마무지한 강력함과 무서움이 깃들어 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그 육중함은….

‘큭, 아쉬워 하지마라 민국이여. 빈유를 택한 건 바로 너 자신이다.’

풍만함을 떠올리자니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는 민국이었다. 정작 유이는 민국에게 내줄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데 말이었다. 그리하여 민국은 유이의 집에 처음으로 향하게 되었다.

‘어떻게 생겼으려나. 의외로 그런 여자가 때부잣집의 딸일 수도 있어. 그럼 나는 장가를 잘 가서 부자가 되겠군 음하하.’

쑈를 하던 끝에 마침내 역에 도착한 민국은 곧장 개찰구를 내려가 휴대폰을 켰다.

‘여기서 어떻게 오라고 하더라.’

일단 처음 가는 길이다 보니 조금 해맬 수밖에 없었다. 유이에게 전화를 해서 나오라고 할까 싶었지만 오늘은 그냥 혼자서 찾아보기로 했다. 아직 스폰서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있는 상태였으니까.

‘이쪽이다.’

골목길을 가로질러 시장 바닥이 나오면 그쪽으로 향하고, 전봇대가 나오면 모퉁이를 돌아….

“흠!”

민국은 소리쳤다.

“길을 잃었군!”

아주 멋진 소리였다.

“이렇게 된 이상 비장의 수를 쓰는 수밖에!”

민국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연락했다. 뚜루루루루.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고, 민국은 입을 열었다.

“유이 씨.”

“여보…….”

“뭐라구요? 여보라구요? 지금 저랑 결혼하고 싶단 뜻입니까? 아니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여자 친구가 있는데 여보라구요? 이 여자가 증말! 내 아무리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있는 여자 버리고 결혼할 그런 막무가내 같은 남자는 아니야!”

뚝하고 전화를 끊는 민국이었다. 그리고 다시 건다. 뚜루루루루.

“…….”

“길 잃었어요 도와주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사정사정하는 민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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