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스폰서로 가는 길>
“흠흠, 어디 한 번 가볼까.”
다음 날 공교로운 오전 시간. 민국은 네 여자를 살리기 위한 효율적인 행위를 아침부터 시도한 뒤 후들후들거리는 정강이에 체력보충을 하기 위해 식사를 하였다. 그 후 회사로 향하기 위해 간만에 멋지게 옷을 차려입었다.
안 그래도 외모와 더불어 겉에서 드러나는 아우라가 평범한 옷을 입어도 빛을 나게 했지만 오늘은 태양보다 더 뜨겁고 찬란하게 보여야만 했다. 다름 아닌 오늘은….
‘스폰서!’
그러하다. 오늘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스폰서의 날! 물론 민국이 스폰서를 한두 번 등록했던 건 아니었다.
이전에 파뿌리TV 방송을 하면서 몇 번 스폰을 받은 적이 있었고 상당한 액수로 직장인들보다도 훨씬 여유로운 자금 만끽을 누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스폰은 앞으로 2년여간 계약할 스폰으로서, 한 가지의 제품이 아닌 그 회사 자체를 광고하는 스폰이 될 예정이었다. 고로 받는 액수도 더 클 테고 홍보도 더 철저하게 해야겠지.
‘요즘 비제이라는 일이 단순히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시기니까.’
그렇다. 요즘 비제이를 통해서 방송을 버는 경우가 정말이지 많아지고 있었다.
물론 예전에도 달풍선을 통해 많은 수입을 끌어 모으던 일명 달창x도 존재했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조금 좋아 보이는 이미지의 절차로 버는 수입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령 스폰서라던가 유튜버라던가…. 하위권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직 그 분야에 빡빡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랫동안 노력해서 승승장구로 상위권을 차지한 사람들에겐 정말이지 크나큰 돈이 되는 연관성의 분야들이었다.
‘나도 한 번 유튜버나 해볼까?’
마치 TV 속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맛드러지게 피아노를 치는 모습에 반해서 ‘나도 피아니스트가 되어야지!’하는 어린애다운 발언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민국은 그동안 쌓아올린 비제이로서의 커리어가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있을 수 없었다. 비록 요즘은 파뿌리 TV 3,4위를 하고 있는 민국이었고 1위권은 밀린 지 오래였지만 게이버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명성이 전파됨과 더불어 많은 팬들을 끌어 모았으니까.
‘오히려 요즘이 전보다 더 사람이 많아졌지.’
방송하는 성실도의 횟수는 부쩍 줄어들었으나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아마 현대왕의 다소 막장스러운 컨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전에 현대왕의 몰카 굴욕, 츤고딩 논란, 츤고딩에게 사과한답시고 펼쳤던 슈퍼 먹방 등등…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욕과 더불어 안 좋은 인상을 심을 수 있는 방송들로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 인지도가 높아졌기 때문도 있었다. 팬층은 그대로되 궁금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겠지.
“자, 어디 보자.”
민국은 적어두었던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스폰서에 관련된 내용은 아니었고,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에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루트를 적어두듯 끄적여둔 어느 내용의 종이었다.
“은별이랑 예나는 밤에 내 집 쪽으로 온다고 했고, 서라랑 유이 씨는 지금 보러 가야 하나?”
일단 서라는 지금 학교에 있을 것이다. 고로 지금 서라의 집에 가봤자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재 학교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잠시 인사 차원이랍시고 교내에 들려서 내용물을 주는 게 현명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목숨이 달린 거니까.’
비록 조건 자체가 형편없고 다소 변태스럽다 할지 언 정 목숨이 걸린 문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서민국이었다. 사고가 있었을 때 어떤 모습을 취했는지 만일 제3자의 인물이 그를 보았다면 정말이지 크게 놀랐을 것이다.
‘그러면 일단 서라에게 들렸다가 유이 씨의 집에 가서 약을 주고, 밤에 은별이랑 예나를 만나면 되겠네.’
비록 스폰서 정식 계약도 밤에 잡혀 있는지라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흑마법사가 말하길 12시 정각으로 내일이 되었다고 해서 막 바로 즉사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어느 정도는 인간의 신체적 힘으로 버틸 수 있다고 얘기하였다.
‘술 마시는 건 자제해야겠구만.’
그리고 길을 거닐던 민국이었다. 돌연 예나가 어제 은별이의 앞에서 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민국은 걷다가 돌연 여러 가지의 감정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예나가 그런 식으로 행동할 줄은 정말 몰랐는데 말이야.’
민국도 예나가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있다는 걸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 감정의 연을 끊고 싶어도 죽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이 필요조건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같이 있을 때 눈도 안 마주치고 피하려고 했던 예나니까. 그런 그녀가 무슨 바람으로, 어떤 깨달음으로 민국에게 정식으로 고백을 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민국은 그게 꽤나 꿈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소꿉친구 아이의 방에서 일어난 일avi 같은 동인지가 생겨날 수도 있다!’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그런 망상을 펼친다는 게 다소 나쁜 놈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들 그런 생각을 한 번쯤은 충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30%쯤 진심으로 하렘을 꿈꾸지 못하는 자신에 아쉬움을 토로하던 민국 딴에선 희망을 본 것 같아 좋을 수밖에 없었지만. 뭐 그런 망상의 나래를 펼치며 전철에 탑승했던 민국은 주변 여자들로부터 많은 시선과 호감을 받게 되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는 민국은 대한민국에서 천하제일로 잘 생겼다는 연예인과도 붙을 정도였으니까.
‘후후후후, 기다리고 있어라 강서라. 너네 학교에 가서 북한에서 내려온 너의 친오빠인 척 행세해주지.’
참고로 서라의 학교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마 서라 딴에서도 무지 당황할 것이다. 어떻게든 하겠다는 민국의 예고가 있긴 했지만 설마 그 예고가 의미하는 게 이런 거일 거라곤 생각조차 못하고 있을 테니까.
- 다음 역은 ……입니다.
마침내 서라의 학교가 있는 역에 도착한 민국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많은 여성들의 고개가 들렸다.
민국은 어느 틈에 여성들의 시선들을 한 몸에 받고 있단 사실을 깨닫고는 일단 전철 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역에서 내리기 위해 자신의 옆으로 졸졸 다가온 한 여자를 보았다. 자기보다 머리 크기 몇 개는 더 되는 민국의 시선이 집중되자 흠칫하면서 놀라고는 얼굴을 붉히는 여자였다.
“찡긋.”
“…….”
민국은 무슨 드라마에서 나오는 황태자처럼 한 쪽 눈을 찡긋거렸고, 그것을 코앞에서 보게 된 여자는 곧 얼떨떨해진 표정으로 넋을 놓고 말았다. 이윽고 전철문이 열리고 그곳으로 발을 내디뎌 먼저 밖으로 나가는 민국이었다.
‘음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속으로 미친 듯이 좋아하는 민국이었다. 사실 잘 생긴 놈은 지가 잘 생겼단 걸 알고 있다. 예쁜 여자도 지가 예쁘단 걸 알고 있다. 다만 겸손하게 굴면서 이미지 메이킹까지 하는 머리를 쓰고 있을 뿐… 실제로는 다들 속으로 웃음을 뿜다 못해 터트리고 있을 것이었다.
‘드디어 왔구만.’
이윽고 서라가 다니는 학교에 도착한 민국이었다. 두둥! 쌀쌀한 가을의 날씨에 맞게 발목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코트를 입고, 민국은 폼나게 주머니 쪽에 손을 넣었다. 남녀공학답게 남녀의 소리가 시끌시끌하게 들려오고 있었고 민국은 교문을 들어가 서서히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
“뭐지? 저 남자?”
“…헉.”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남학생들, 오목의자에 앉아서 그늘 쪽에서 시끄럽게 대화를 하던 여학생들. 태반의 시선이 언덕을 걸어 교내 쪽으로 다가오는 민국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걔 중에는 발치의 축구공을 차려다가 삐끗해서 자리에 넘어지는 남학생도 있었고,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 뚝뚝뚝 치마에 흐르고 있는 것을 모르는 여학생도 있었다.
‘후후훗.’
민국은 자뻑을 하면서 멋들어지게 길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이 하나같이 얼굴이 붉어져서는 민국의 뒤를 슬그머니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지? 뭐야? 우리 학교에 새로온 선생님인가?”
“어맛! 방금 이쪽 쳐다봤어! 어떡해 어떡해!”
아주 좋아죽겠다는 듯 날뛰는 여학생들. 민국은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운동장에 턱!하고 선 다음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하면 될 것을 굳이 한 손으로 폼나게 전화번호를 입력해서는 귀에 갖다댔다.
“누군가에게 전화하나봐!”
“누구지? 누굴까!”
혹시나 바람처럼 나타난 치렁치렁한 코트의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고, 그 여자 친구가 이 교내에서 활동하고 있다면 정의의 이름으로 기어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여학생들이었다. 이윽고 그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으물으물, 사랑합니다 고객님 근데 누구세염?”
“서라야 어디냐?”
“음냐음냐, 님 마음속이여!”
서라의 말에 민국이 피식 웃으면서 코끝을 스윽 만졌다.
“나 지금 네 학교 운동장이야 나와.”
“헐?”
전화기 너머로 ‘꺄악꺄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서라는 그게 농담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헐! 형님 드디어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서 미를 칠 단계가 되셨나여! 어떻게 피아노도 배우지 않은 분이 그런 잔재주를 배울 수가 있죠!”
“원래 음악에 미치면 현실에서도 미치는 법이지. 모자르트 베토벤도 나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미친 거다.”
“음악계의 천재들에게 못하는 소리가 없네여! 일단 서둘러 갈게여!”
그리고 후다닥 점심 먹던 것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끄며 식당을 나가는 서라였다. 민국은 ‘후훗 녀석.’하면서 폼나게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서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슬그머니 그의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기….”
“…….”
고개를 돌리는 민국이었다. 눈을 마주치자 흠칫하고 놀라면서 한 걸음 물러나는 여학생. 딱 봐도 교내에서는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얼굴의 아이였다. 하지만 민국과 마주하자 무슨 신을 본 것마냥 팔을 떨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쥐고 있는 종이를 민국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사인… 해주시면 안될까요… 오빠?”
“…….”
민국은 그 말에 그 종이와 사인팬을 잡으면서 웃음 지었다.
“나는 연예인이 아닌데?”
{펑!}
그 눈웃음을 정면에서 맞본 여학생! 심지어 목소리까지 일부러 느끼하게 흉내내어 말하자 그녀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인 모양이었다. 큐피트의 화살에 가슴을 정확히 적중 당한 그녀가 소리쳤다.“이미 저에겐 연예인이에요 오빠!
”“하하하, 이런.”
“오빠!”
왜 한 사람이 반발을 시작하면 그 사람을 기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 현상과 마찬가지로 한 여학생이 민국에게 다가가자 수많은 여학생들이 민국에게로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민국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쌓이고 말았다.
“에고에고 이러면 안 되는데.”
민국은 좋아 죽겠으면서도 아닌 척하느라 고생했다. 여학생들이 내미는 사인 종이에 일일이 사인을 적어주면서 말이었다.
“오빠! 사랑해요!”
“처음 볼 때부터 오빠는 제 운명이었어요! 저의 사랑을 받아주세요!”
“일부다처제도 상관없어요! 오빠!”
‘일부다처제도 상관없다는 여자는 좋네.’
“형! 사랑해요! 항문도 드릴게요!”
‘…어떤 새끼야?’
그런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운동장에 등장한 서라는 여자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서라를 보고는 ‘허억’하면서 말했다.
“기어코 악의 뿌리가 우리 학교까지 침범하다닝….”
민국의 본색을 알고 있는 그녀로선 그의 웃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몸소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필살기를 쓰겠어여!’
서라는 중간 단계도 없이 곧장 필살기를 쓰기로 했다. 그 필살기는 바로 여성의 눈물! 서라는 안구건조증이 생기면 몇 번 사용하던 안약을 들었다.
흑마법사를 통해 새로운 몸으로 부활한 뒤 아예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버릇이 되어 항상 갖고 다니는 서라였다. 이윽고 그녀가 그것을 자신의 촉촉한 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준비 완료라능.”
언제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면서 서라는 일부러 자신의 교복까지 헝끄러뜨렸다. 그리고는 벌써부터 ‘흑흑’하고 우는 연기를 하면서 휘청휘청 민국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많은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던 민국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진짜 쓸데없이 처절한 그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흑흑! 오빠!”
“…….”
“나한테 그렇게 심한 짓을 하고는… 어떻게 다른 여자들이랑 이러고 있을 수 있어요?!”
‘망했다.’
민국은 한 가지 간과하고 말았다.
"이 뱃속에… 당신의 아이까지도 있는데…!"
민국과는 다르게 서라는 현실에서도 똑같이 피아노에서 건반 미를 치는 여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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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가 늦은 점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