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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117화 (117/369)

117화

예나의 등장으로 어쩔 수 없이 민국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게 된 은별. 그에 반면 안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예나는 마냥 거실에 앉아 죽치고 있을 따름이었다.

“…….”

이따금 몇 번 큰소리가 오고긴 했지만 지금은 잠잠하다. 큰소리로 들렸던 대사들도 정확히 무엇을 주제로 논의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예나도 촉이 예리한 편에 속했기 때문에 대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떠오르기도 했다.

‘난 상관없는 거니까….’

예나는 그리 생각하면서 안방에서 어떤 일이 있던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것이 예나와 은별의 차이였다.

은별은 사이 이전에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부터 보는 타입이었지만, 예나는 그전에 사이를 분명하게 하고 그 사이에 따라 행동하는 타입이었다. 이미 민국에게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받았던 예나로서 그녀는 안방에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서웠다. 또다시 무대 위에 있던 민국의 그 눈빛을 맞보게 될까봐.

“…….”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예나는 몸이 더워지는 걸 느꼈다. 그녀답지 않게 야시시한 생각을 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어쩌면 오늘 처음으로 맛보아야 하는 정액의 맛 때문일지도 몰랐다. 예나는 심장 박동수가 서서히 높아지는 걸 느끼고는 자기 가슴 중심부에 손을 얹었다. 진정하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물을 마셔야 할 것 같아.’

예나가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향하려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안방을 돌아보았다. 비록 소소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타인의 집이었기 때문에 예나는 최대한의 예의는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예의를 갖추는 그녀였지만 말이다. 이윽고 예나가 천천히 안방으로 다가가더니, 안방문을 향해 손등을 올렸다.

몇 번 노크질을 할까 망설이던 그녀가 이윽고 노크를 했다. 똑똑.

“어, 으억, 어 예나야… 왜?”

“아… 미, 미안…. 내가 방해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사과하면서 방해됐냐고 묻는 예나였다. 여기서도 충분히 그녀가 얼마나 자신감이 하락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민국은 새어나오려는 신음을 안간힘으로 참으면서 말했다.

“어, 으어어, 아니야. 괜찮아.”

“응… 뭐 문제 있는 건 아니지…?”

“으이, 그래. 근데 왜?”

자꾸만 방에서 요상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고, 예나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지만 이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며 물었다.

“물 좀 마시려고…. 괜찮을까?”

“어, 그, 그래. 그러도록 해. 으억.”

질문하고 나니 순간적으로 자기가 바보 같았다. 마치 어린애가 부모에게 허락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예나는 자신의 바보 같음에 더더욱 하락하는 자신감을 느끼면서, 한 편으로는 안방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자꾸만 궁금증이 돋아나는 걸 느꼈다.

“…….”

그러자 여자의 촉으로서 말미암아, 안에서 무엇이 벌어질지 어렴풋이 짐작하는 예나였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그것을 지우려고 눈을 강하게 감았다. 잠시 후 심장 박동수가 가라앉았을 때 그녀는 정수기로 다가가 차가운 냉수를 하나 뜨는 모습이었다. 손에 든 냉수 한 모금 담는 예나.

“…….”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그맣게 숨을 쉬고는 남은 내용물의 물잔을 들고 거실로 돌아올 찰나였다.

“아아?”

순간적으로 발을 삐끗해버리는 예나였다. 그 와중에도 물을 쏟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물잔을 잡는 그녀. 하지만 머리부터 아래로 넘어질 것 같자 예나는 가장 근처에 있는 것 아무거나 붙잡으려고 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안방문의 손잡이를 붙잡게 되었다.

허나 순간 무너진 중심으로 말미암아 붙잡은 손잡이 역시 열리는 쪽으로 기울였고, 예나는 그 상태에서 옆으로 쓰러지게 되었다. 콰당! 끼이익!

“…….”

그리고 그렇게 당긴 안방문은 음란으로 가는 타락문이었다. 다가오는 통증에 쓰라린 표정을 짓던 예나가 천천히 엎드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자연스레 고개는 위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엇.”

“…….”

“가, 간다!”

마침 민국은 절정에 도달한 상태라서 이성이 없는 상태였다. 때문에 예나가 실수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들 그것에 신경을 쓸 여력도 정신도 없었다.

반면 민국의 하물을 입속에 담고 있던 은별은 정신이 몽롱해지되 그래도 어느 정도는 유지했기 때문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예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허나 예나의 급작스런 등장으로 말미암아 은별 역시도 순간 얼떨떨해질 수밖에 없었다.

“웁… 푸왁!”

“…….”

“…내가 입에 싸지 말라 했지 바보야!”

시원하게 사정해버리자 멍하니 입안에 액체들을 담고 있던 은별이 뒤늦게 깨닫고 그것을 뱉어냈다. 은별은 옷깃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민국의 허벅지를 툭 때렸고, 두 번째 현자타임에 도달했던 민국은 극도로 몰려오던 피로심도 잠시, 꼭 채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걸 재차 깨닫고는 침대에서 내려갔다.

“아기씨들이 죽지 않게 어서 주워 담자!”

“…….”

현자타임이 다가온 사람답게 확실히 민국의 목소리는 다시금 침착해졌다. 은별은 사과 한 마디 없이 바닥의 액체들만 병으로 쓸어담고 있는 민국을 보았다. 그러다가 재차 예나의 인기척을 깨닫고는 그대로 굳어버리는 은별이었다.

“…….”

콕콕. 이윽고 은별이 말없이 민국의 등을 찌르기 시작했다. 막 액체들을 주워담고 있던 민국은 그녀의 반복되는 콕콕 찌름에 무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은별이 안방문의 예나를 가리키는 손가락에, 민국의 고개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돌아갔다.

“어.”

“…….”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리는 민국이었다. 예나는 이 순간 크나큰 패닉에 빠졌다.

좋아하는 이성이 다른 여자와 그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도 나름대로 충격이라면 충격이겠지만, 그보다 더한 사실이 있다면 예나는 아직 야동이라는 것도 쉽사리 접하지 않은 만큼 의외로 순진무구한 타입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방금 전의 실사로 본 장면은 예나에게 여러모로 크나큰 충격을 가지고 왔다.

“…….”

병으로 액체를 모조리 담은 민국은 뚜껑만 닫으면 되는 상태였다. 잠시 사고회로가 굳어버렸던 민국이 그것을 허겁지겁 닫고는 예나에게 건네려고 하면서 소리쳤다.

“예나야!”

“……!”

움찔! 민국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예나에게 허연 액체가 담긴 투명한 병을 건네려고 하자, 예나는 왈칵 겁에 질린 얼굴로 뒤로 조금 물러났다. 그 모습은 실로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민국으로서도 꽤나 당황하게 만들었다.

“…….”

“…….”

민국과 예나, 은별, 3인 모두 정적에 휩싸였다.

* *

“미안해 예나야.”

“아니…야.”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셋 다 어느 정도 이성을 차리고 현재의 상황에 충실하고 있었다.

예나는 다시 거실로 돌아왔고, 그것은 나머지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은별은 얼굴이 잔뜩 붉어져서는 옷깃으로 얼굴이라도 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존심이 강인했던 그녀로서는 방금 전의 그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었다는 게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어, 저기 이거.”

“…….”

“한 방울만 마시면 돼.”

천천히 투명한 병을 건네는 민국이었다. 그곳에는 은별의 입으로 말미암아 진한 쾌락을 맞본 결과물이 많이도 담겨 있었다. 두 번째 사정임에도 상당했던 것이다.

“고, 고마….”

“…….”

“…….”

예나는 민국의 손아귀에 쥐어진 그 병을 받으려다가 말다가를 반복하였다. 머리로는 빨리 잡으라고 명령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손이 따라주지 않았다. 아마 아까 전에 어떻게 이 액체가 만들어지는지를 보아서 그럴 지도 몰랐다.

‘심지어 내 침까지 섞여 있을 텐데!’

은별은 더욱 홍당무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결국에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창피함을 피하려고 들었다.

“고마워….”

마침내 그 투명한 액체를 손에 쥐는 예나였다. 손에 쥔 액체병이 떨어지지 않게 두 손으로 쥐면서 예나는 그것을 자기 품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내려다보는 그녀의 모양새에서는 상당히 꺼림칙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 입장에서 그것은 마치 짐승이 배변을 본 그것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

손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민국이 말했다.

“어, 음. 그 행위에 대한 건 예나 네가 오해할 거 같아서 말하는데.”

“아니야… 굳이 그런 건 얘기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두 사람의 일이니깐….”

곧장 가로채면서 이해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예나였다. 은별은 그런 예나의 목소리에 잠자코 그녀를 쳐다보았다. 예나는 두 사람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애를 쓰면서 눈을 강하게 감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볼게…!”

“아! 한 방울만 마셔야 할 거야 이제 더 이상 힘이 없어서!”

말하다가 멈추는 민국이었고, 그의 대사에서 의미를 정확히 확인한 예나가 깨달은 듯 탄성을 짓더니 천천히 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럼…”

“…….”

“…….”

“여기서…?”

당황하는 예나였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민국이었다. 민국 딴에서도 맘이 편할 리 없었다. 은별이와 하는 행위를 소꿉친구이자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예나에게 보여주었고, 심지어 은별이의 침이 섞인 액체를 예나가 마셔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마셔야 하니까.’

민국은 사실상 진지했다. 그는 하루에 한 시간씩 여자의 가슴을 만져야 사는 몸이었다.

흑마법사가 이따금씩 보조 마법으로 배려를 해주거나, 아니면 은별이의 도움을 받아 아직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 어떤 고통을 느끼면서 죽어가게 되는지 민국은 곧잘 알고 있었다. 필시 민국과 맞먹는 고통을 느낄 것이고, 그것은 곱게 죽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차원이라 볼 수 있었다.

…모두를 살려야 한다. 그 마음가짐을 가지고 흑마법사에게 비굴하게 구걸하듯 애원했던 민국이었다.

그 기회가 주어졌는데 어이없게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원치 않겠지만 여기서 마시고 가줘.”

“…….”

고작 한 방울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냥 물방울 하나를 혀에 툭하고 댄 다음에 입속으로 꿀꺽 삼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 물방울에 비해 약간 비릿한 맛이 난다는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겠다. 예나는 민국의 결실이 가득한 눈빛에 한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민국이가 이렇게 진지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야.’

예나의 생각이었다. 그가 이토록 진지한 표정으로 예나에게 부탁을 할 정도라면, 나름대로 배태랑(?)으로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조언이라 할 수 있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휴우, 고마워.”

“으응 아니야. 근데… 그럼 은별 씨는 이미 마신 거죠…?”

예나의 조심스레 묻는 물음이었다. 은별은 돌연 타겟팅이 자신에게로 돌아가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붉어진 얼굴로 예나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을 더듬었다.

“그, 그, 그, 그, 그.”

“…….”

“그래요! …난 이미 마셨으니까 빨리 마시세요!”

화통을 치듯 하는 말에 예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이건 목숨이 걸린 문제였다. 이러고저러고 있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럼….”

“…….”

“…….”

이윽고 예나가 마음을 다짐한 얼굴로 병을 열었다. 그러자 야리꾸리한 냄새가 콧속으로 강하게 팍하고 스며들어왔다.

‘……!’

마치 신세계를 맛보는 듯한 이상한 냄새에 예나는 순간적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이런 냄새는… 살면서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아니… 밤꽃 냄새랑 조금은 비슷해.’

또한 어쩐지 머리를 조금 아프게 했다.

“혹시… 수저 없을까?”

“아, 수저로 떠서 마시게?”

“으응….”

왠지 그게 더 고역일 것 같지만 민국은 일단 그녀가 원하는 데로 부엌으로 후다닥 달려가서 수저를 가져왔다. 작은 스푼형태의 수저였다.

이윽고 그 수저로 얼굴 가까이 가져온 병의 액체를 뜨려는 찰나였다. 부들부들…. 결심한 것과는 다르게 손이 떨리는 예나였다.

어떤 맛일까… 혹시나 속이 쓰리거나 구역질이 나진 않을까… 냄새만으로도 이리 머리가 어지러운데… 하는 잡다한 생각들이 들면서 말이었다. 그리고 그 찰나였다. 똑똑똑.

“오빠! 찌찌파팅!"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강서라의 외침에 긴장하고 있던 예나는 그만 들고 있던 병을 위로 던지고 말았다. 근데 하필이면 던져버린 곳이 자기 얼굴인지라!

“꺄아아아아아아아아…! 푸헙!”

그대로 열린 입과 더불어 코, 눈에 정액 한 사발이 들어가 버리는 예나였다. 이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민국과 은별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말이다.

“예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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