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
물론 민국의 말처럼 충격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따지고 보면 민국을 제외한 여자 네 명은 모조리 죽음을 경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나는 혼수상태에 빠져 숨이 멎기 직전,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과 죽어 있던 일행 전원의 모습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었다. 괜찮다는 건 어디까지나 현재가 괜찮다는 것이지 결코 그때의 충격이 괜찮아진 것은 아니었다.
예나는 돌연 떠오른 악몽 같은 경험에 잊으려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민국의 눈길을 느끼고 신중하게 눈을 떠 보이면서 입을 열었다.
"은별 씨랑은… 어때?"
"……."
"잘해줘? 좋은 여자 친구니까…."
말미가 소심하게 흐려지는 건 별 수 없었다. 사실 말은 짐짓 즐겁게 하려고 노고했지만, 아직은 민국을 향한 이성적 호감이 남아 있었다. 애초에 사랑이란 감정은 사람으로서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고, 지울 수 있다고 해서 지울 수 있는 감정도 아니었다. 민국은 살짝 안쓰러움을 갖고 입을 열었다.
"예나야."
"둘 사이를 방해하는 거 같아서 좀 미안하네…. 나중에 다시 올까?"
민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지금 네 입장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잖아."
"……."
"무엇보다 이제 그 뭐시라냐… 그런 걸 필요로 하는 몸이 되었고 말이야."
은별이 앞에서는 노골적으로 단어를 발음하는 민국이었지만, 차마 소꿉친구 시절부터 쭈욱 컨셉을 유지해왔던 예나 앞에서는 쉽사리 얘기하지 못하는 민국이었다. 이것도 민국 딴에선 문제라면 문제였다. 제3자가 볼 때는 여자친구인 은별이보다 예나에게 더 상냥하게 대해주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미안……."
"사과 안 해도 돼."
예나가 소심하게 사과를 했고 민국이 반응했다. 민국에게 차인 이후로 그녀는 그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민국도 몸소 느끼고 있는 처지인지라, 이런 상황이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윽고 예나가 말했다.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다. 어색함과는 다른, 묘한 민망함이 돌연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걸… 그러니까… 그그그그, 그걸 바바바받아야 할…."
"아, 그래. 준비할게."
민국이 거실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향하려 했다. 그러다가 돌연 주춤거렸다. 한 가지 문제가 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불과 몇 분 전, 민국은 은별이에게 좋은 행위(?)를 받았었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오늘 하루치를 거의 다 쏟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쾌락과는 다른 한 가지 문제를 가져온다. 바로….
'어떡하지? 지금 이 상태에서는 안 나올 것 같은데!'
여성부가 말하길, 남자는 야동을 보고 나서 현자 타임을 갖게 되면 '아, 저거 한 번 실제로 실험해봐야지.'하고 밖으로 나가서 여자를 덮친다고 한다. 허나 그건 정말이지 잘못된 상식! 남자 한 번 제대로 만나본 적 없는 여자나 할 수 있는 착각이었다.
실제로 남자란 자위 행위를 하고 나서 현자 타임을 맞이하게 되면 여자를 돌 같이 보게 되는, 일종의 슈퍼 이성적인 동물이 되는 게 철칙이었다. 그리고 현재 민국은 그런 이성적인 동물이 되어 성기가 다른 의미로 돌이 되어 있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아, 아니야! 그건 아니고, 어, 저기 말이지."
"……?"
만일 예나가 여자 친구였다면 '빨아라!'하면서 명령했겠지만, 그런 사이도 아니었다. 민국은 컴퓨터로 향해서 야동 파일이라도 받아야 하나 고심했다. 허나 그때 진동 칫솔로 이를 전부 닦은 은별이 화장실을 나왔다.
"은별아. 잠시 나 좀 따라와줄래?"
"뭔데 그래?"
텁텁했던 입안도 상쾌해졌겠다, 편안히 화장실을 나왔던 은별은 대뜸 민국의 심상치 않은 부름에 반응했다. 민국은 잠시 턱짓으로 자기 방을 가리키면서 사인을 보냈다. 눈썰미가 워낙 좋던 은별은 그 싸인에 눈을 가늘게 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들어가면 되지?"
그리고 예나와 잠시 흘긋 눈을 마주쳤다가 안방으로 향하는 은별이었다. 그런 은별의 뒤를 따르던 민국이 가만히 앉아있는 예나에게 말했다.
"미안 예나야. 잠시 동안 여기에 좀 있어줘. 부탁할게."
"아… 응."
예나가 조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 딴에서도 인간인지라 이상한 생각들이 잔뜩 들 수밖에 없었다.
'뭐하려는 걸까. 왜 은별 씨랑 같이 방에 들어가는….'
그리고 말미를 흐림과 더불어 야릿한 생각이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예나는 눈을 크게 뜨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붉어진 얼굴의 그녀는 눈초점이 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무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해도 둘 사이를 내가 방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굳건히 닫힌 안방에 자꾸만 고개가 돌아가는 예나였다. 안에서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리라 생각하며 절대 훔쳐보지 않고 기다리는 예나였다.
"무슨 일인데?"
거실에 예나가 있는 것을 알았고, 민국이 중대한 건으로 얘기를 하려는 걸 알았기에 은별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민국은 '잠시만'하면서 방금 전 사정을 했던 침대 근처의 바닥을 엎드려 뒤져 보았다.
"역시 죽었어…."
"응?"
"우리 새끼들이 죽었어 은별아!"
은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게 무슨 강아지 짖는 소리야? …설마 너."
"그래! 너와 내가 합심해서 만들어낸 정액들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
은별은 이 뭐 병하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민국은 바닥을 더듬어보았다.
아까 전 은별이가 입에서 쏟아냈던 하얀 액체들이 이미 공기와 맞물려 진득진득한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사실상 하얀 게 아닌 투명한 액체로 변모되어 있었고 말이다.
흑마법사가 말하길, 사정한 정액을 통에 넣어두고 보관하는 게 아닌 이상 네 여자의 생명을 보충하는 필요 조건의 액체로는 부족하다고 들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얼핏 알겠는데."
은별이 팔짱을 꼈다. 돌아가는 상황상 민국이 왜 그렇게 바닥에 쏟아진 정액 중 살아 있는 정액을 찾으려고 하는지 납득이 갔다. 이내 조금 작아지는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그… 다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은별도 역시 여자였던 지라 남자의 신체에 대해서는 확실히 몰랐다. 고로 그런 식으로 질문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엎드려서 주변을 찾던 민국은 그 음성에 몸을 들더니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대뜸 두 어깨에 양손을 올리며 이리 말하는 것이었다.
"다시 해줄 수 있어?"
"…장난해? 나보고 그 이상한 행위를 또 해달라고?"
"그렇소다만."
은별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굳이 내가 돕지 않더라도 알아서 할 수 있는 거잖아. …예를 들면 네 손으로라던가."
"아니, 이 여자야! 너의 음란한 입으로 그 많은 양을 방출한 지 몇 십분도 안 됐는데 어떻게 쉽게 살아나겠나!"
"내, 내가 남자가 아닌데 어떻게 알아 바보야! 그리고 음란한 입이라고 하지마!"
그만 크게 소리를 내버린 두 사람이었다. 은별이 먼저 거실의 예나를 떠올리고는 목소리를 다시 줄였다.
"…정 그러면 이번 한번만 야동 보는 거 허락해줄게. 나도 상황에 휩쓸려서 네 그것들 통에 담으라고 말하는 거 까먹었으니까…."
"싫다!"
"어째서?!"
"큰 돈을 만진 사람이 작은 돈에 연연할 리 없잖아? 난 너의 입술을 통해 야동보다 더 귀한 존재를 맞보고 말았다!"
"바, 바보 아니야?! 변태충… 죽어버려라."
비록 두 차례 행위를 시도했다지만 은별이 딴에선 여전히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십분 전, 오전에 행한 그 행위도 부끄러워 죽을 판인데 그걸 지금 여기서 또 하라고? 심지어 거실에는 예나가 있지 않나?
'거실에 예나가 없다면 몰라도 지금 여기선 아니야!'
사실 하라면 더 해줄 수 있겠지만 서도? 거실에 예나가 있었으니 그런 명분 하에 은별은 강하게 거부했다. 결국 민국은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지갑에서 지폐 3만원을 꺼내는 민국이었다.
"돈 줄게!"
"내가 창녀야?!"
순간 울컥해서 '병신 새끼!'라고 소리칠 뻔한 은별이었다. 확실히 이런 수법은 결코 올바른 건 아니었다. 이윽고 '미안'하면서 곧장 사과한 민국이 지폐를 지갑 속에 넣으며 부탁했다.
"제발 한 번만 해주면 안 되오 낭자? 으헝헝, 어찌하여 더 큰 쾌락에 빠진 나를 짐착처럼 버리려고 하는 것이오."
"누가 버린대? 그냥 몇 시간 뒤에 다시 하면 되잖아!"
"자고로 남자의 그것은 날마다 컨디션이 달라서 일찍 부활하는 때도 있지만 하루가 지나도 부활하지 않는 때가 있어. 느낌으로 보아 짐작컨데 오늘은 바로 그 후자에 속하는 날이야!"
"…내가 보기엔 그저 한 번 더 해줬으면 하는 맘에 그러는 거로밖에 안 보이는데."
실은 그러했다. 그러나 민국이 이렇게 애절하게 부탁하고 있으니 은별 딴에서도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까 전 그 행위를 하다가 민국의 거침없는 플레이에 괴로워했던 것도 있고, 은별은 조금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필요한 거라면….'
야동보다 더한 쾌락을 맛보았다, 라는 멘트가 은근히 마음에 거슬렸다. 은별 딴에선 단단하고도 말랑말랑한 것을 물고 있던 것뿐인지라 그게 기분이 좋은 건진 모르겠으나, 민국이 그토록 조아라 했던 것을 보면 또 해줘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나랑 서라… 유이 씨도 살기 위해서는!'
이로써 명분이 생겼다. 은별은 그 명분을 토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의지를 비췄다.
"알았어, 해줄게."
"아싸!"
"…너무 들떠서 어린애 같이 좋아하지마. 그리고 거칠게 하지도 말고. 느낌 오면 바로 말해."
그리고 안방문이 닫혀 있는지 재차 확인하고 침대 쪽으로 가서 앉으라 말하는 은별이었다. 민국은 기다렸다는 듯 침대에 재차 앉았다.
사실상 그런 큰 쾌락을 맛보았는데 몇 십분 안으로 다시금 사정할 수 있을까? 이윽고 은별이 민국의 가랑이 사이가 보이는 쪽으로 다시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쩐지 데자뷰를 보는 거 같은 광경이었다.
'…내가 왜 이런 처지가 됐지.'
처량함이 순간 밀려왔지만, 일단 남자친구이기도 하고 기분 좋았다고 하니까… 그리고 명분도 있었으니까… 일단 은별은 다시금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민국은 아까보다 부드럽게 바지를 벗기는 은별을 보면서 말했다.
"으음, 서서히 노련해지는군. 아주 좋아."
"어린아이를 조련하는 변태 남자처럼 말하지 말아주실래요? 아저씨?"
그리고 조금 망설여지는 손길로 팬티까지 붙잡아 내리는 은별이었다. 그러자 이상한 냄새가 민국의 그것을 기점으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은별은 '읍!'하면서 순간 고개를 멀리 빼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너 안 씻었지…?"
"그러고 보니 그랬네."
"…빨리 가서 씻고 와. 이렇게 냄새나는 걸 어떻게 물라고 하는 거야?"
그때 바깥으로 나온 민국의 물건이 꿈틀꿈틀 거리면서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민국이 말했다.
"훗, 이래서는 화장실도 못 가겠군."
"……."
완전히 커진 것은 아니었지만 어중간하게 커진 그 모습에 은별이 홍조가 동반된 얼굴로 노려보았다.
“알아서 잘만 커지네….”
“은별이 네가 보고 있으니까 이렇게 커지는 거야.”
“야동에서 나올 법한 멘트 치지 말아주실래요 치한남아?”
그리고 손으로 그 우직한 것을 붙잡는 은별이었다. 민국은 갑작스런 손길에 ‘윽’하고 고개를 다시금 쳐들며 가볍게 신음했다. 아까 전보다 좀 더 잡기 쉬워진 그녀의 손길이었다.
‘왠지… 익숙해지는 거 같네….’
그렇게 은별은 한 번 더 민국의 정액 분출(?)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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