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111화 (111/369)

111화

<게임 방송을 하다(5)>

"흐아아아아암~~~~ 하나님의 넓은 아량으로 죽지 못해 살고 계신 여러분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들 지내셨는지요? 폭우가 몰아치고 하물며 졸음운전하는 양반들도 가득하신 이 나라에 모두가 무사히 살아계신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현대왕은 진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현대왕입니다."

바캉스를 끝내고 돌아온 지 이틀쯤 지났을까. 그동안의 이런 저런 사건들을 끝내고 간만에 방송에 접속한 현대왕이었다. 당연지사 시청자들의 채팅창 분노는 열렬했다.

[너무 늦게 오는 거 아니야?]

[이 ㅅㄲ 가면 갈 수록 방송 날로 먹네 뭐하길래 5일 동안이나 안 들어왔냐?]

[와 현대왕이다 꺄아꺄아!]

"내 방에서 그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벙어리를 먹이는 현대왕이었다. 물론 현대왕이 벙어리를 먹인 시청자는 [와 현대왕이다 꺄아꺄아!]소리를 지른 시청자였다. 채팅창의 몇몇 사람들이 어이가 없어서 [ㅋㅋㅋㅋ]웃음을 짓고, 현대왕은 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아니 뭐 일정 스케줄이 있었어요. 여러분은 일정 없으십니까? 아, 댁들은 백수지 깔깔깔."

[부들부들…]

[뭐래?]

"아이고, 어쨌든 요즘 들어 큰일입니다. 안 그래도 탄탄하던 내 장딴지가 약해지고 있어. 몇 주 동안 이 짓을 반복하면 큰 일날지도 모르겠는데?"

[이 짓?]

[무슨 소리지? ㅋㅋ]

"뭐 그걸 알려고 해 변태들아. 여러분이 그렇게 p2p를 사용해서 하도 요상한 하드 야동만 보고 그러다 보니 사람이 음란해지는 거예요. 저처럼 순결을 가지고 임하시는 성실한 비제이가 됩시다. 예? 세상에 나보다 성실하고 성숙한 남자가 어디 있겠어!"

[지랄한다]

"넌 맞는 말했으니까 퀵뷰 줄게."

진짜로 퀵뷰를 주는 현대왕이었고, 웃는 사람들과 [오오!]하면서 욕을 했던 시청자를 따라 똑같이 욕을 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현대왕은 그러거나 말거나 깔쌈하게 무시해준 뒤 마우스를 놀렸다.

"자, 오늘 할 게임은."

현대왕은 간만에 솔로 게임을 하자고 결정했다. 늘 멀티 온라인 위주의 게임을 해왔던 그로서 때로는 참신한 것도 필요했다.

"WWE 레슬링 게임입니다!"

[허얼]

[미친 개노잼]

"후후, 실망하는 인간들이 있어서 말하는데 그건 레슬링의 재미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법한 소리야."

현대왕은 돌연 과거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 제가 예전에 학창시절 때 말입니다. 막 중학교 때 있잖아요? 그때 WWE 레슬링이 엄청 대세였습니다. 유명한 선수로 현재도 활동 중인 존시나를 비롯해 대단한 선수들이 무지 많았어요. 막 숀마이클스에 트리플H도 있고 그랬습니다."

[오올]

"그때 저는 트리플H가 쓰는 피니쉬(필살기)! 페디그리를 엄청 동경했지요. 아아, 가랑이 사이에 상대방 머리를 끼우고 상대방의 두 팔을 뒤로 당겨서 붙잡은 다음에 그대로 무릎을 꿇으면서 떨어지는 기술이었죠. 맞으면 홍콩이 아니라 천국에 가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후훗."

트리플H라는 선수는 1969년 7월 27일 경에 태어난 인물로 프로레슬링 선수이자 영화배우였다.

"그리고 그때 저는 한창 불티나는 레슬링을 보면서 '아! 저건 실전이구나!' 했습니다! 순수했던 저는 그게 실제 싸움인 줄 알았던 거죠! 실은 꾸며낸 건데 수박!"

[ㅋㅋㅋㅋ]

"때는 중학교 2학년경. 어떤 놈이 절 만만하게 보았는지 시비를 거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죠. 난 그 누구든 이길 수 있는 피니쉬가 있다. 날 상대하고 싶다면 그걸 맞을 각오를 해라 라고요. 그랬더니 먼저 선빵을 때리더군요?"

[다짜고짜 왠 싸움 얘기?]

"전 그래서 무지막지하게 화가 났습니다! 결국엔 슈벌 열받아서 페디그리를 쓰기 위해 녀석에게 달려들었죠. 그리고 녀석의 얼굴을 어떻게든 다리 사이에 끼우려고 하는데!"

퍽!

"그게 뜻대로 되지가 않는 겁니다! 계속 얼굴을 맞았죠! 저는 너무 열받아 어떻게든 힘으로 다리 사이에 녀석의 얼굴을 끼웠습니다. 그리고 양팔을 당겨서 올리려고 했는데!"

안 올라가요!

"그렇다고 점프해서 그대로 내려찍으려 하니 이런 슈방… 녀석이 제 두 다리를 붙잡고 넘어뜨렸어요. 그리고 전 거시기를 맞고 첫 맞짱의 쓰디쓴 패배를 맞이하게 되었죠. 그날 밤 저는 눈물로 이불을 적셨습니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전 며칠이 지나서야 레슬링이 짜맞추는 연극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분노로 파르르르 떨게 되었고 결국엔 각오를 다지게 되었죠. 트리플H! 널 용서하지 않겠다!"

[어째섴ㅋㅋㅋ]

"야, 님들 잘 생각을 해봐. 꼭 실전처럼 행동해서 순진한 중학생을 홀리더니 그 피니쉬를 그대로 써보려고 하니까 주먹 계속 맞고 져버린 거야. 팬이로서 얼마나 배신감이 심하게 들었겠어! 안 그러냐?"

현대왕은 분노의 의지를 다진 목소리로 말했다.

"고로 오늘 저는 트리플H를 팹니다. 그러기 위해 레슬링을 할 예정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팬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겠다 트리플H!"

솔로 게임인 WWE 레슬링, RAW에 접속하는 현대왕이었다. RAW는 파일로리나 옼디스크에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게임으로 누구든지 한 번 해보길 추천하는 게임이다.

포인트로 구한다고 하면 아마 100p에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윽고 RAW에 접속한 현대왕은 캐릭터 고르는 화면이 나오자마자 자신의 캐릭터를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숀마이클스를 해주지. 큭큭, 친구와 싸운다는 게 얼마나 쓰디쓴 고통인지 느끼게 해주마 트리플H…."

[미쳤어 ㅎㅎ]

[누가 저 놈 좀 말려줘요]

"닥쳐! 지금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모세의 기적뿐이다!"

숀마이클스는 실제로 트리플H와 함께 레슬링RAW에서 팀을 맺었던 인물이었다. 피니쉬(필살기)로는 발을 들어 상대방의 턱을 일직선으로 가격해버리는 기술이었다.

이윽고 숀마이클스를 고른 현대왕은 적으로 트리플H를 골랐다. 잠시 후 시작 준비 중이란 표시가 뜨고, 현대왕은 살기등등한 미소를 지으면서 '큭큭'거렸다.

이윽고 사각의 링으로 된 레슬링 넓은 무대가 등장하였고, 어설픈 그래픽으로 맞춤된 관객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좌측에는 현대왕이 조종하는 캐릭터 숀마이클스. 우측에는 컴퓨터 PC인 트리플H가 등장했다. 3,2,1 카운트와 함께 게임이 시작되었고 숀마이클스인 현대왕은 가볍게 주위를 맴돌면서 소리쳤다.

"크크 어떠냐 트리플H! 너의 친구 숀마이클스… 그가 지금 바로 내 손에 있다! 넌 하나뿐인 이 전우이자 친구를 때릴 수 있겠냐!"

퍽!

{우오오오오오!}

게임 내에서 함성이 쏟아진다. 시청자들은 [ㅋㅋㅋㅋㅋㅋㅋㅋ] 하고 웃었다. 현대왕은.

"……."

잠시 침묵했다. 애초에 팬으로서의 분노든 열망이든 얼어죽을 소리고, 어디까지나 현대왕이 상대하는 트리플H는 게임 속 트리플H였다. 퍽!

{우오오오오!}

"이, 이런 여친 갈비뼈 때려서 나가게 한 쉐끼!"

현대왕은 거칠게 손을 놀리면서 키보드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트리플 H의 연속 크로스라인과 더불어 정면전 펀치가 시작되었다. 현대왕은 숀마이클스를 뒤로 물린 다음에 가볍게 발차기를 했다. 퍽!

"어떠냐 고추차기!"

하지만 역시 게임이라 그런지 그런 거엔 데미지가 없었다.

"말도 안 돼. 남자의 상징이 게임 속에선 이리 쉽게도 무너진단 말인가. 빌어먹을 게임."

게임의 현실에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현대왕이었다. 이윽고 트리플H의 발차기가 시작되었다. 퍽! 한 대 맞자마자 누워버리는 숀마이클스였다.

"헐 미친놈아! 그거 한 대 맞고 쓰러지면 어떡해?"

당황하는 현대왕. 일으키려고 하지만 그때였다. 선빵과 더불어 여러 콤보로 벌써 피니쉬를 쓸 수 있게 된 트리플H. 정신이 없는 숀마이클스를 일으켜서 바로 피니쉬인 페디그리를 써버렸다. 쿠웅!

{우오오오오오!}

숀마이클스가 해롱해롱거리는 모습에 트리플H가 탭을 요구했고, 카운트가 진행되었다. 3! 2! 1!

{삥삥!}

게임이 끝났단 알림과 승자 트리플H가 두 손을 들면서 승리의 포즈를 취했고, 숀마이클스는 헤롱헤롱거리며 일어나는가 싶더니 곧 무릎을 꿇고 좌절하였다. 그 좌절하는 모습이 마치 현대왕의 현재 모습과도 같았다. 시청자들은 현대왕의 답 없는 컨트롤에 웃음 지었다.

[진짜 게임 못한다 ㅋㅋㅋㅋㅋ]

[어떻게 1분만에 지냐 ㅋㅋㅋ]

[역시 현대왕 ㅅㄱ]

시청자들의 비아냥 소리에 현대왕은 잠시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후훗'하고는 말을 잇는 것이었다.

"여러분, 이건 모두 추진력을 얻기 위한 싸움일 뿐입니다. 내가 아는 소설가가 항상 독자들 이상한 전개로 의아하게 만들다가 수습할 때 통수쳐버리거든요. 그런 일종의 추진력을 저도 준비하고 있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못 믿고 비아냥거리는 시청자들의 모습에 현대왕은 안 되겠다 생각한 듯 다시 캐릭터를 고르기 시작했다.

"좋다. 당신들, 내가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지 보여주지. 나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알아듣겠냐 엉?"

그리고 숀마이클스와 트리플H를 고르더니, 이윽고 다른 창에서 또 무언가를 고르는 현대왕이었다. 아까 전에는 선택하지 않았던 그 창을 돌연 선택해서 또 다른 캐릭터를 고르고 있자 시청자들은 [엉?ㅋㅋㅋ]하면서 의아함을 가졌다. 이내 그것을 알아본 시청자 한 명이 소리쳤다.

[슈벌 2대1하는 거 보소ㅋㅋㅋ]

"닥쳐 싸움이란 이기면 그만이다."

현실적인 답안이었다.

"각오해라 트리플H… 내 숀마이클스의 복수를 다시 해주마!"

실제로 둘은 매우 친한 사이인데, 게임에 쓸데없이 감정이입하는 현대왕이었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현대왕은 2대1 태그팀으로 자신이 2, 트리플H가 1에 속했다. 현대왕이 PC로 도움을 받을 캐릭터는 존시나라는 캐릭터였다.

"야 싸워 존시나. 싸워 인마."

뒤로 완전히 물러나서 자신을 쳐다보는 트리플H에게서 멀어지는 현대왕이었다. 이윽고 숀마이클스를 링 바깥에 옮겨두고 상황을 지켜보자니, 트리플H의 표적이 존시나로 바뀌었다. 퍼억! 트리플H의 선빵과 함께 두 PC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좋아! 싸워 싸워! 그러다 지치면 내가 들어가서 탭만 쳐주마!"

[현졸렬…]

[ㅉㅉㅉㅉ]

"으헤헤헤헤, 다 됐구만! 그래 그래! 거의 다 됐어!"

이윽고 존시나가 트리플H를 주먹으로 때려서 쓰러뜨린 타이밍이었다. 현대왕이 '좋아!'하면서 숀마이클스로 링에 다시 올라왔다. 그러자…. 퍼억!

"……."

트리플H가 잡으려는 존시나를 피하면서 빠르게 일어나더니 반격으로 존시나를 쓰러뜨렸다. 트리플H의 표적이 다시 숀마이클스로 바뀌었다.

"야, 잠깐 잠깐. 타임. 세상엔 말로 해도 되는 일이란 게 있어."

그리고 곧장 숀마이클스를 다시 링밖으로 내보내는 현대왕이었다. 숀마이클스를 표적으로 노리던 트리플H는 역시 PC 지능의 한계답기 쓰러져 있는 존시나에게로 타겟을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싸우는 두 PC.

"어이구! 잘 싸우네 우리 아이들 우쭈쭈쭈."

신명나게 구경하던 현대왕이었다. 한 1분쯤 지났을까. 주먹을 정답게 나누던 끝에 트리플H의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았다. 현대왕은 이때다 싶어서 링으로 들어와 트리플H를 공격했다.

"옛다 이놈아!"

퍼억! 발차기 한 대를 맞자 바로 쓰러져버리는 트리플H였다. 체력이 어지간히 단 상태였다. 존시나는 이제 막 일어나기 시작했고 현대왕은 숀마이클스를 조종하면서 흥분의 도가니였다.

"일어나라 흐흐흐, 동인지에 영혼까지 판 놈아."

그렇게 애꿎은 트리플H를 모욕하며 현대왕은 숀마이클스로 궁극기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퍼억!

"이 미친 놈이?"

궁극기를 쓰려던 숀마이클스가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존시나의 타겟지점이 순간적으로 같은 팀인 숀마이클스로 바뀐 것이었다. 때때로 이리 잘못 일어나는 현상이 있었다. 부들부들 떨던 현대왕은 숀마이클스를 일으키자마자 트리플H를 구타하는 존시나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퍼억!

"분열이다 이 자식아! 나의 지혜로운 발차기를 받아라!"

퍽퍽퍽! 넘어져 있는 존시나를 발로 막 밟고 있자니, 어느 순간 존시나가 빠르게 일어나 숀마이클스에게 크로스라인을 해온다. 콰앙! 팔꿈치에 턱을 맞고 쓰러져 버리는 숀마이클스!

"이뤈!"

일어나기 위해 조작키를 막 누르는 찰나였다. 쓰러져 있던 트리플H가 일어나는 순간 존시나에게 주먹으로 일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퍼억! 존시나는 허망하게 쓰러지고 말았고, 트리플H는 탭을 치기 시작했다. 현대왕의 일어나려는 조작키가 더욱 빨라졌다.

{3!}

{2!}

{1!}

{우오오오오오!}

"……."

또다시 승자 트리플H. 이번엔 숀마이클스만이 아니라 존시나까지 머리를 붙잡고 무릎을 꿇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패배자의 모습에서 떠오르는 2대1의 승자, PC의 지능으로 승리한 트리플H는 두 팔을 펼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웃음바다와 더불어 진짜 게임을 못한다는 소리가 채팅창에 판을 치는 가운데, 현대왕은 '흠흠!'하면서 레슬링 게임을 끈 뒤 입을 열었다.

“내분이 이래서 위험한 겁니다. 항상 비극을 만들죠. 저는 여러분에게 이 교훈을 알려주고자 레슬링을 컨텐츠로 선택한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뻥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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