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안되나요~ 나를 사랑하면~~~.”
캠프파이어가 치루어지고 있는 현장. 그 현장에는 모닥불에 타닥타닥 타고 있는 장작나무와 더불어 동그란 원판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여러 여자들이 있었다. 각 숙박소에서 머물고 있던 일행들이 한 대로 모여서 놀자판을 벌이고 있는 것. 그리고 걔 중에는 민국의 일행에 속하는 예나와 유이도 있었다.
예나는 노래의 향기에 취해 음을 읊조리는 남자를 뒤로하고 다가오는 민국을 돌아보았다.
“샤라라라라~.”
“왔어 민국아?”
“응.”
“예나 누나찡! 들어봐여 들어봐여! 글쎄 민국횽이!”
“이 녀석!”
“웁! 우우웁!”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하하.”
“웁웁!”
민국은 떠들려는 강서라의 입을 손으로 다물게 만들었다. 서라는 바둥바둥거리면서 양손으로 민국의 입을 붙잡고 때내려고 했다.
서라가 지금 이 순간 말하려는 게 무엇이겠는가? 단 하나, 방금 전 거실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언급하려는 것이다. 비록 서라는 민국이 은별을 보고 부카게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생각은 틀린 것이었지만… 그래도 만일 이런 이야기가 예나에게 들린다면 민국의 본질을 모르는 예나로서는 큰 상심을 할 것이다.
‘내가 아는 민국이는 그런 애일 리가 없어.’
‘같은 일은 벌어져선 안 된다!’
민국은 여전히 발버둥치고 있는 서라의 귓전에 얼굴을 들이밀며 속닥였다.“초코비 어떤가?”
“웁! 내가 어린애로 보이세여?!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네여! 초코칩으로 해주시져!”
“그래 알았다 이놈아. 초코칩으로 해줄 테니 비밀로 해.”
초코칩에 대해서 언급할 때마다 안 좋은 기억이 사르르르 들 뿐이다. 그러나 이미 관계를 한 번 어색하게나마라도 맺어봤으니 그 기억이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뀔 듯 싶었다. 이윽고 서라가 ‘ㅇㅋ!’하듯 손을 원형으로 만들면서 눈을 찡긋거렸다.
민국은 ‘녀석….’하면서 손을 땠다. 사실 이건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때 굉장히 변태스럽고 민망스러운 일이었다.
- 자고 있는 여자 친구를 보면서 딸을 친다 -현재 서라는 이런 식으로 민국의 행위를 추측하고 있었는데, 이건 민국이가 그나마 잘 생겼고 워낙 똘끼가 충만한 남자였기 때문에 납득하고 넘어가는 것이지… 일반 남자였다면 정말이지 범죄자로 낙인찍혀도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헤헤.”
서라가 계획대로 초코칩을 얻었다는 듯 해맑게 웃음 짓는다. 하지만 서라의 속내도 사실은 좀 달랐다. 그녀는 거실에서 바닥의 이상한 액체를 보았을 때 조금은 당황했었다.
‘이, 이게 뭐시여? 설마 시방 내가 말로만 듣던 그것을 본 겨?’
냄새도 안 맡은 것 같지만 이미 맡았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비릿한 냄새. 그러나 뭔지 모르게 이성의 감각을 일깨우는 듯한 야한 냄새였다. 서라는 대번에 그것이 정액임을 알았고, 동시에 민망했지만 자연스러운 자신의 천연적인 긍정적임에 상황을 어색하지 않게 넘어갈 수 있던 것이다.
“오우, 유이 씨는 왜 담요를 입으셨어요? 아 밤이 되니까 쌀쌀해서 그런가.”
“…….”
원판 나무 의자에 앉으면서 은근슬쩍 건네는 민국의 말이었다. 허나 민국의 그 물음 속에 숨겨져 있는 본질은 딱 하나였다. 그 본질을 이해한 유이였기 때문에 그녀는 침묵하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여행을 온 다른 여자 여행객들이 민국의 등장에 ‘어멋’하면서 소리쳤다.
“저 남자 되게 잘 생겼다.”
“와아… 같은 일행인가? 정말 멋지네.”
여자 여행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민국에게로 향했다. 모두들 한 시도 눈을 때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유이와 예나는 입을 다물었다. 흘긋하고 민국을 곁눈질하는 유이였다.
“…….”
확실히 쑥맥에 가까운 유이조차도 민국을 보고 있으면 잘 생겼다는 표현이 쉽게 튀어나올 정도였다. 물론 그 잘 생김이 변태력으로 지워지는 경우가 즐비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예나는 민국이 여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음에 조금 불안해하고 있었다.
왠지 호감을 갖는 몇몇 여성들이 민국에게 들러붙을 것 같았다. 그 예상대로, 몇몇의 여자들이 민국에게 물음을 건네기 시작했다.
“거기 잘 생긴 남자, 이름이 뭐예요?”
“서민국이라고 합니다. 예쁜 누님.”
“어멋! 누님이래. 꺄하하! 몇 살이야?”
위트 있는 민국의 음성에 좋아라 하는 모습이었다. 민국도 확실히 비제이를 하는 사람답게 상당히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했다. 그때 저벅저벅 어디선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대화를 나누던 민국은 고개를 돌려 발걸음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왔어?”
“…….”
민국의 물음에 은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 사건에 대해서 눈치를 보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아직 흑마법사의 약이 가진 효능으로 은별이 민국에게 생각으로 물었다.
‘서라는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잠자는 네 얼굴에 부카게 한 줄 알아.’
‘…그래서 뭐라고 했어?’
‘초코칩주고 입 다물게 했습니다.’
은별이 안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민국이 웃으면서 옆에 비어 있는 원판 나무를 톡톡 두드렸다.
‘이리 와서 앉아.’
‘웃지마 잘 생긴 게. 아니… 그게 아니고!’
역시 생각을 읽힌다는 건 참으로 민망한 일이었다.
‘으, 부끄러.’
‘훗. 나는 너의 핫팬츠에 다시 한 번 성욕이 몰아닥치는구나.’
“…….”
“은별 누님 오셨세여? 얼굴은 괜찮으세여?”
“…얼굴이 뭐가?”
“핫! 초코칩 때문에 말 못해여 아잉~”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 은별이에게 부비적거리는 서라였다. 몇몇 남자들은 서라의 그런 애교떠는 모습에 ‘와 귀엽다.’하면서 눈을 못 땠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급작스레 등장한 또 다른 한 미모의 여인, 강은별의 등장에 놀라는 남자들도 여럿이었다.
“거기 아리따운 아가씨 분! 그 남자분이랑 무슨 사이세요?”
“아….”
“제 여자 친구입니다.”
기타를 들고 있는 남자의 질문에 은별이가 머뭇거리던 찰나였다. 민국이 곧잘 대답했고 은별이의 고개가 민국에게로 돌아갔다. 민국은 씨익 웃으면서 은별이에게 생각을 전달했다.
‘그만 오해하고 슬퍼해. 너 좋아하는 거 맞으니까.’
“오해할 짓이나 하지 말지….”
‘꺄~ 행복해!’
“아니, 그게 아니구우!”
진솔한 생각이 민국에게 전달되자마자 발버둥치는 은별이었다. 가만히 있다가 느닷없이 발을 동동 굴리는 은별의 행동거지에 초면인 몇몇 사람들이 눈을 껌뻑거렸다.
금세 시선을 느끼고 은별이 창피해진 얼굴로 행동을 멈추었다. 이윽고 민국이 피식 웃으며 은별을 바라보자, 은별은 차마 참을 수 없다는 듯 근처의 담요를 끌고와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
예나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여자의 직감이란 것이 무서울 수밖에 없는 게, 예나는 현재의 두 사람을 보는 순간 두 사람에게 무언가 큰 징조가 있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현재 자신이 상상하는 그런 일일 런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아닐 거야. 아마도. 정신차리자 한예나.’
한예나가 정신을 바짝 차리는 가운데, 캠프파이어의 중심에 있는 기타를 들고 있는 남자가 말했다.
“자, 그럼 새로운 분이 오셨으니 한 번 노래나 요청해볼까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꺄! 노래래! 노래!”
“여자 친구 있는 게 좀 아쉽지만 그래도 노래 듣고 싶어 젊은 오빠~!”
초면인 여자들이 민국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민국이 ‘음.’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그럼 한 곡 부를게요.”
“꺄아~.”
“뭐 부르실래요?”
기타를 든 남자의 물음에 민국이 곧장 대답했다.
“내 사랑 내 곁에?”
“으아~ 내 사랑 내곁에래~.”
“부러워 꺄아아.”
여자들이 질투 어린 시선으로 민국의 옆에 앉아있는 은별을 바라보았고, 민국은 씩 웃었다. 은별의 또 다른 옆자리에 앉아있던 서라도 두 손을 얼굴에 갖다대며 소리쳤다. 몽크의 절규 같은 표정이었다.
“형이 미쳤다아!”
“…….”
유이는 여전히 말없이 이를 지켜보았고, 예나는 좀 더 심각해진 얼굴로 둘의 사이를 바라보았다. 이미 진전될 대로 진전된 민국과 은별의 사이. 정작 첫 관계는 조루로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한 몸이 되었던 둘에게는 지금 이 순간 그 무엇이 와도 믿음을 갈라놓을 수 없었다. 민국을 지켜보던 은별이 생각했다.
‘너 노래 불러본 적 없잖아?’
‘사실 네 곁에서 불러본 적 없는 거지 나 잘 불러.’
“…허세 부리긴.”
‘기대된다 꺄아꺄아!’
말과 생각이 다른 은별이었다. 다시금 은별이 담요에 얼굴을 푹 가리자니 미소 지은 민국이 기타를 든 남자를 보았다.
그것이 시작 신호임을 알고 기타를 든 남자가 반주를 슬슬 치기 시작했다. 민국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그 반주에 맞춰서 노래 부를 타이밍을 기다렸다.
밤하늘, 캠프파이어의 뜨거움이 가득한 그곳에서 민국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민국이 부를 첫 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마디가 마침내 민국의 입에서 발음되는 순간….
“…….”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담백한 목소리가 기타의 반주에 섞여 울려퍼졌다. 고요히 하늘로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는 망연히 지켜보던 유이와, 민국의 노래를 처음 듣는 예나와, 기타의 반주에 어깨를 으쓱으쓱거리던 서라마저 집중시키게 만들었다.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그리고 그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는 순간, 또박또박해진 발음은 마치 옆에 있는 누군가를 의미하는 것 같아 은별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예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지켜보는 유이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 그 자체였다. 서라는 민국이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를 줄 몰랐다는 듯 또다시 몽크의 절규처럼 놀라는 얼굴을 지었다. 반대로 민국이 초면인 여자들은 하나같이 하트를 뿅뿅 달고 민국을 쳐다보았다.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간만에 진지한 민국의 모습을 보니, 민국의 본질을 아는 구면의 여자들로선 신선한 광경이었다.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그렇게 노래가 끝난 뒤였다. 민국은 은별을 쳐다보았고, 생각으로 자신의 진심을 말했다.
‘사랑해.’
“…….”
그리고 그 생각이 은별에게 전달되는 순간, 은별은 잽싸게 담요로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허나 민국의 노래가 끝난 것만 알고 있는 일반 사람들은 그저 민국의 위트 있는 노래에 박수를 치며 함성할 뿐이었다.
“꺄아아아! 너무 멋져! 진짜 잘 부른다!”
“와…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노래도 잘 부르네… 없는 게 뭐야?”
“하하, 고맙습니다.”
예의 바르게 웃음 지으며 고개를 까닥이는 민국의 모습에, 은별은 여전히 담요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녀는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울지 않을 거야! 아무것도 생각 안할 거야! 감동 먹었다고 말 안할 거야!’
‘이미 다 말했는데?’
‘시끄러워 이 바보야! 부끄러워!’
서로의 진심이 닿는 순간이었다. 민국은 담요에 얼굴을 파묻은 은별을 보며 생각했다.
‘귀엽네.’
‘…바보.’
‘먹고 싶다.’
‘…죽여버릴까?’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이 오가는 와중에, 기타를 든 남자가 박수를 짝짝 치고는 서라에게 물었다.
“자, 심사위원 씨. 이번 노래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엇흠 엇흠! 이번 노래는 말이지요~.”
서라는 현재 이 캠프파이어에서 상대방의 노래를 듣고 심사를 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장난이었고 활기를 띄우는 역할이었다. 서라는 민국의 노래에 대해 평가하기 시작했다.
“노래는 잘 불렀지만 위트가 부족해요! 엣헴엣헴! 공기반 소리반 법칙을 모르다니 콜록콜록! 요즘 대세는 박진영입니데스!”
“하하핫~.”
서라의 귀여움에 웃는 사람들. 이윽고 서라가 때가 됐다는 듯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참에 나님이 한 번 노래를 보여 드리져! 진정한 박진영이란 무엇인가!”
“오오! 그럼 박진영 노래를 부르실 것인가요?”
“노노! 제 18번 곡은 다른 겁니닷!”
서라는 엑스자를 그리더니 이내 자신의 18번 곡을 언급했다.
“우리는 모두 친구!”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퓰 야도란 피존투 또가스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맞아)옛날 추억 속 만화의 노래를 부르는 서라의 목소리가 하늘로 울려 퍼졌고, 즐거운 캠프파이어가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