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가랏 꼬부기! 물대포옹!"
첨벙 첨벙!
"으윽! 이리도 강렬한 물대포가 세상 천지에 존재했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받아라 에네르기파!"
"끼야으악!"
서라와 민국은 첨벙첨벙거리며 서로에게 물을 날리고 있었다. 바다에서 놀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예나는 좋은 의미로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가렸다.
'민국이에게 저런 면도 있구나.'
에네르기파라니. 예나는 민국이 만화도 한 권 접하지 않은 남자인 줄 알았다. 또한 자기보다 어린 애와 놀 때 저토록 즐겁게 놀아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허나 민국의 본래 성격을 알고 있는 은별은 영 시원찮은 눈빛으로 그 둘에게 다가갔다. 물론 그녀의 손에는 놀랍게도 원형의 물놀이 튜브가 있었다.
"둘이서만 놀 거야? …꺄악!"
"어엇."
심드렁한 목소리로 투덜거리면서 다가가던 은별이었다. 그만 민국이가 있는 바다의 바닥 높이를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가, 바닷속에 첨벙하고 빠지고 마는 은별이었다.
이를 본 민국이 잽싸게 손을 뻗어 은별을 구해주었다. '푸하!'하고 물속에서 나온 은별이 머리카락을 흔들어 물결을 털었다.
이내 민국이 물었다.
"괜찮아?"
"……."
예나에게 들리지도 않을 거리. 이미지 메이킹을 하려고 부드럽게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진심으로 걱정하여 묻는 듯한 그 물음에 은별은 조금 붉어진 얼굴로 '응.'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에 민국을 툭하고 밀어내서 멀어졌다가 다시금….
"꺄아악!"
"야 이, 기다려봐. 여기 튜브 잡아."
"으으으…."
바다 물결에 서서히 멀어지는 튜브를 붙잡아 은별이에게 다시금 갔다 준 민국. 그제야 은별이 그 원형 튜브를 허리에 낀 다음에 안정된 얼굴을 지었다. 서라가 이를 보고는 물었다.
"서, 설마 츤고딩찡 수영 못하셈여?!"
"그래… 해본 적 없어."
은별은 먹은 물을 조금씩 토해내듯 대답했다. 서라는 어릴 때 어린이 스포츠단에 다니면서 수영을 교육 받은 적이 있었다. 때문에 오랜 시절이 흘러도 익숙하게 헤엄을 칠 수 있던 것이다. 민국도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상태였고, 애초에 키가 컸기 때문에 은별이 들어온 깊이에서 조금도 물을 마시지 않았다.
"내 곁에 계속 달라 붙어 있으시오 낭자. 기왕이면 가슴까지 밀착해도 좋아."
"죽을래?"
"후후,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욕을 하다니."
민국은 은근슬쩍 은별을 붙잡고 있던 손을 땠다. 허리에 튜브를 두르고 있어 안전할 거라 생각했지만, 급작스레 밀려온 파도에 당황한 은별이 물결에 휩쓸려갈 듯하자 '바보야!'소리치면서 허겁지겁 민국의 팔을 양팔로 붙잡고 기댔다.
"…장난치면 진짜 혼낼 거야!"
"후후."
"빨리 붙잡아줘!"
울상을 지은 은별의 처절한 외침이었고, 민국은 '알았어.'하면서 은별의 어깨를 붙잡고 자신에게 붙게끔 하였다. 서라는 커플에게서나 볼 수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우왕굿!'하면서 열렬히 환호해주었다. 그것을 근처에서 막연히 지켜보던 예나.
"……."
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예나는 자신이 소품으로 가져왔던 물놀이 공을 꺼내왔다. 그리고 그것을 바다의 세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소리쳤다.
"저기… 공놀이 하지 않을래?"
"오옷, 물놀이 공이네여! 형님! 한 판 뜨실까여?"
"후후, 2대1인데 괜찮겠느냐? 내 옆에는 나와 한 몸이 된 은별이가 있지."
"이상한 소리하지마 변태야…."
"어헛, 자꾸 이럼 놓을 거다?"
"…놓지마 변태야!"
처절하게 붙잡고 늘어지는 은별이었다. 그녀의 가슴이 졸지에 민국의 옆구리에 닿는 것도 모르고. 결국 이로써 팀은 예나와 서라, 민국과 은별로 나뉘어 2대2 매치로 진행되었다.
"와라 서라야!"
민국이 소리치면서 언제든지 맞은편에서 받을 준비를 하였다. 예나에게서 공을 받은 서라가 선제 공격을 준비하면서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이 공싸움에서 내 아버지는 숨을 거두셨음! 난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피구를 할 거얌!"
그리고 눈을 번뜩 뜬 서라는 공을 그대로 위로 날렸다. 세 사람이 하늘에 떠오른 공을 일제히 올려다보는 가운데, 서라는 스윙을 치기 위해 한 손을 높이 올렸다.
"흐읍!"
이윽고 서라가 혼신을 다하는 얼굴로 내려오는 공을 향해 스윙을 쳤다. 퍽!
"으업!"
물론 그것은 헛스윙이었다. 자기가 올렸다가 내려오는 공을 곧이곧대로 얼굴에 맞아버린 서라. 그 모습에 세 명 모두 일제히 폭소를 터트리는 모습이었다.
"꺄하하하하~."
"……."
웃으면서 재미 있게 노닥거리는 네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유이는 끌어 모은 무릎만 더 세게 끌어모을 따름이었다. 사실상 생각해보면 저 네 사람과 친근하게 지낼 사이는 아니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낼 수 있다 한들 그럴 이유와 명분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늘 혼자 다녔고, 혼자 다니는 게 그 누구보다 편했던 유이 입장에서 외로움은 자신의 고독이 아닌 하나뿐인 친구였다.
"푸하하하핫!"
그렇게 즐겁게 10분간 공놀이를 하던 민국 일행이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마냥 민국의 허리만 붙잡고 있던 은별. 은별은 민국이 움직일 때마다 적게 나마 물을 마시며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이게 뭐야!'
일단 계획대로 오후 시간부터 바다 놀이를 시작했지만, 은별이 펼쳤던 상상의 나래처럼 진행되지는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은별은 수영을 워낙 못했으니까. 그건 어릴 때 있던 한 가지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했고, 애초에 수영 자체를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아, 은별아. 잠깐 서라에게 가 있을래?"
"…왜? 뭐하려고? 또 장난치게?"
"아니 화장실 갔다 오게."
"……."
"오줌 마려워. 아니면 입에다 쌀까?"
"미친놈!"
그리고 서라의 도움을 받아 민국에게서 떨어진 은별이었다. 민국은 은별이가 무사히 서라 곁으로 간 것을 확인하고는 후다닥 바다에서 나와 근처 공동 화장실로 향했다. 사람이 북적했기 때문에 워낙 사람들이 사용을 많이 해서 그런지 공동 화장실의 냄새는 영 좋지 못했다.
"후, 좋아."
볼 일을 시원하게 마치고 나온 민국이었다. 이제 오프닝도 끝났겠다, 제대로 진탕 놀아볼까 결심을 다지는 그였다. 허나 바다로 향하던 민국은 순간 양산 돗자리 아래에 외롭게 앉아 있는 유이가 보였다.
"……."
유이는 기왕 온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수영복이 맞지 않자 마냥 구경만 하는 처지였다. 민국은 홀로 떨어진 그 처지가 영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흐음, 그렇군. 그 방법이 있었지.'
지금의 유이 입장에선 이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허나 멀리서 지켜보는 민국 입장에선 그녀의 등이 씁쓸하기 그지 없어 보였다. 고로 민국은 그녀를 바닷속으로 끌어들일 것이었다. 어떻게? 바로 이렇게."
"가슴의 제왕느님."
"……."
신명나게 놀고 있는 서라와 은별(물론 은별은 서라에게 붙잡혀서 농락 당하는 상태), 예나를 뒤로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유이에게로 다가간 민국이었다. 유이의 고개가 느리적 민국에게로 돌아갔다. 민국은 씩 웃으면서 물었다.
"거기에만 계속 있으면 안 심심합니까?"
유이가 민국을 빤히 올려다보다가 대답했다.
"괜찮아요……."
"괜찮지가 않을 텐데? 후후, 수영복이 안 맞아서 어쩌시려나?"
"……."
민국의 도발은 능수능란했다.
"수영복을 입고 싶은데 가슴이 너무 커서 들어가지 않는다니! 역시 유이 씨의 가슴은 지상 최고입니다! 가슴 사이에 무언가를 껴서 빙빙 돌리고 싶은!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성드립이 그만."
"……."
예나랑 멀리 떨어져 있자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 민국. 당연지사 유이는 민국의 그런 드립들에 슬슬 사디스트 기질이 번뜩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국은 이에도 지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유이 씨의 가슴조차도 단점은 있었군요. 수영복이 안 맞는다라! 그 풍만한 가슴으로 인해 수영복이 방해를 받는다니, 유이 씨의 멘탈은 고작 그 정도였군요!"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
"깔깔깔! 큰 슴가를 보고 싶었는데 안타깝습니다 유이 씨!"
대놓고 비아냥거리고는 후다닥 바닷속으로 달려가는 민국이었다. 하얀 셔츠를 입었으니 바다 속에는 선뜻 들어오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안전지대로 뛰어간 것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바다로 들어간 상태에서 멀리 있는 유이를 보고는 양팔을 들어 두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조차도 일종의 조롱에 가깝자, 유이는 슬슬 빡치는 자신을 느꼈다.
'…….'
어떤 면에선 민국의 계략에 응해주는 게 될 지도 모른다. 수영복을 입어서 자신이 원하는 그 몸매를 봄으로서, 별의별 추잡한 망상을 다 하려는 걸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름 사나이 같은 자존심이 있는 유이로서는, 민국의 그런 발언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
이윽고 양산 아래에서 일어난 유이였다. 벌떡 일어난 그녀는 다시금 숙박하는 숙박소로 향해서 수영복을 꺼냈다.
"……."
그리고 입고 있는 현재의 옷들을 전부 벗어버리고, 다시금 입기 시작하는 유이였다.
*
"파이놀 돈슨더 캐쉬 마영전!"
피잉! 돌직구로 날아가는 서라의 공! 민국은 정면에 있는 예나가 그것을 맞게 될 위험에 처하자 재빨리 앞을 가로막아주는 모습이었다. 펑! 서라의 공에 등을 맞은 민국이 따끔한 아픔을 참으면서 예나를 바라보았다.
예나는 서라의 재빠른 공을 차마 볼 여력이 없어서 눈을 찔끔 감고 있었다. 그러다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생기자 눈을 스르르 뜨면서 민국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
예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어지는 찰나였다. 그녀가 '아, 으, 응.'하면서 부끄럽게 고개를 내리 숙이고 대답하는 가운데, 이를 보는 은별이 서라의 허리를 붙잡으면서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뭐해 한 번더 공격해!"
"크윽! 아직 me의 마나가 부족해 필살 오븐 넷마블을 사용할 수가 없어여!"
어느새 팀을 바꿔서 또다시 공놀이를 하고 있던 민국 일행이었다. 한창 즐겁게 놀면서 유이의 존재감을 잊고 있던 그때, 척.
"……."
어디선가 강렬한 존재감이 등장했다. 모래사장에 등장한 그 존재감은 놀고 있던 커플을 비롯해 수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일제히 돌아가게 만들었다. 동시에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저도 모르게 본능적인 코피를 흘릴 정도였다.
"우와… 뭐야 저 여자…."
"대박이다. 어디서 저런 색끈한 몸매가…."
"헉. 미치겠어. 헉."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공놀이를 하고 있던 민국 일행도 자연스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민국은 본능적으로 눈을 크게 하고 말았다.
'저것은!'
그렇다! 민국의 도발에 결국 참다 못해 응해버린 유이! 그녀가 기어코 푸르른 수영복을 입고 모래사장에 나타난 것이다! 부스럭 부스럭. 한 걸음을 내딜 때마다 근처에 지나가던 남자들은 코피를 줄줄, 아니면 쓰러지는 모습까지 보였다. …꽉 끼다 못해 출렁이는 그 풍만한 가슴은! 언제든지 수영복을 비집고 터질 듯이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허, 허억. 세상에 저런 마그네슘 같은 가슴이 존재하다닝!"
서라가 진심으로 놀라면서 잡고 있던 공을 떨어뜨렸고, 은별과 예나는 침묵하면서 지켜보았다. 이윽고 유이가 파도결이 치는 바닷물에 발목까지 발을 댔을 찰나였다. 첨벙.
"……."
당면에 있는 민국에게 한 번 보라는 듯 사내다운 무표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유이. 예전의 그녀였다면 전혀 불가능했을 인상을 선보이며, 이제 슬슬 복수의 낭만을 꿈꾸려던 찰나였다. 파직.
"!"
"!"
"!"
"!"
"!"
"!"
어디선가 볼성사납게 들려온 소음에 유이를 비롯한 민국 일행의 눈빛이 놀람으로 바뀌었다. 근처에서 지켜보던 수많은 남녀 커플, 남자들도 놀라는 모습이었다.
유이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자신의 수영복 등 뒤의 지퍼를 보였다. 유이의 풍만함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지퍼가 서서히 내려가면서 그녀의 등을 보이고 있었다.
"……"
"……."
"……."
"……."
"……."
꿀꺽. 많은 사내들이 침을 삼키며 지켜보는 가운데, 민국도 마치 천만관객 돌파한 영화의 카타르시스가 진행되는 명장면을 보듯 몰입하는 표정이었다.
"……."
이윽고 유이가 그런 민국의 얼굴을 흘긋 보더니 서서히 손을 뒤로 돌려 지퍼를 잡는 모습이었다.
"……."
양손으로 지퍼를 잡고, 다시금 그것을 올리려고 노력한다.
'…크.'
하지만 아무리 지퍼를 위로 올리려고 해보아도,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 가슴은 결국 유이 그녀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란 말인가! 허나 그 순간이었다. 모래사장의 수많은 남자들이 그런 유이를 지켜보면서, 겉으로는 응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했다.
'힘내!"
'넌 할 수 있어!'
'유 캔 두! 아이 캔 두!'
'…제발! 지퍼가 끊어지면 수영복 못 입는 거잖아! 그럼 저 몸매도 못 보잖아!'
수많은 남자들의 선한 소망(?)이 하나가 되는 순간, 유이는 땀을 흘리면서도, 팔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면서도! 지퍼를 위로 당기는데 최선을 다했다.
"으으으…."
"……."
"……!"
이윽고 유이가 젖먹던 힘을 다해 지퍼를 위로 당겼다. 드르르륵! 완전히 지퍼를 위로 당겼고, 지퍼가 더 이상은 내려오지 않고 손이 떨어졌음에도 무사한 모습에, 남자들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다래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유이는 마치 거대한 적과 싸운 듯이 땀을 흘리면서 거칠게 숨결을 내뱉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풍만한 가슴은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흡!"
그리고 그 순간! 유이는 전쟁의 승리자가 된 것처럼 한 쪽 팔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남자들 모두 기어코 참지 못하고 '오오오오!'하면서 똑같이 한 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