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출렁 출렁! 덜컹 덜컹! 출렁 출렁!
“…….”
바캉스로 여행을 출발하길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이따금씩 도로를 달릴 때면 나타나는 방지턱은 차 내부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호기심이 단순히 차에 탔을 때 방지턱을 넘어가면 어떤 느낌인가? 같은 단순하고도 진부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진부하다면 진부할 수 있지만…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 누구든 흥미를 느낄 일이랄까?
“…….”
유이는 졸지에 네 사람의 시선을 집중해서 받고 있었다. 벨트를 매서 두드러진 가슴은 방지턱을 넘어갈 때마다 따로 출렁출렁거리기 바빴다. 그것이 마치 모래성을 무너뜨릴 듯 덮치는 강력한 방파제와 맞먹는 느낌이라 은별은 묘한 질투심이 느껴졌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클 수가 있지?’
물론 일본 AV라던가, 서양 야동에서는 저런 류가 가끔씩 튀어나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보기는 드물었고, 무엇보다 동양인 중에서 저런 몸매가 나온다는 게 기가 막힐 정도였다. 은별도 나름 운동을 해서 몸매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는데… 저 막대먹은 슴가가, 막대먹은 슴가가!
“은별언니의 성격이 탱탱볼에 가깝다면 강간찡 가슴은 슈퍼 탱탱볼에 가깝네여!”
“…시끄럽거든?”
서라의 괜한 소리에도 으르렁거리는 은별이었다. 이윽고 백미러를 통해서 흘긋 흘긋 곁눈질하는 서민국이 보였다. 이것을 놓치지 않은 은별이 핍박하듯 민국을 갈구었다.
“그만 보고 운전에나 집중할래?”
“엇흠 엇흠!”
민국은 조금 오바스럽게 기침을 하면서 다시 핸들 쪽에 집중했다. 이윽고 유이의 가슴에 저도 모르게 초점을 보내던 예나는… 방금 전 서라가 언급한 대사 중 하나의 단어에 조금 당황한 듯 입가를 가리면서 눈을 크게 떴다.
“서, 서라 씨? 가, 강… 그런 단어는 함부로 쓰시면 안돼요.”
“넹? 강간이영?”
“그그그 그래요.”
몹시도 부끄러워하는 눈길로 민국의 눈치를 살피는 예나였다. 하지만 민국은 그 눈길을 느끼고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것처럼 운전에만 열중하였다. 이윽고 예나의 고개가 자연스레 차에 타 있는 세 여자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예쁘시구나….’
예나는 그래도 자신 역시 예쁜 편에 속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국의 근처에 있는 여자들은 정말이지 예나가 주눅이 들 정도로 각기 다른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보이는 비쥬얼 또한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이번에 초면으로 뵙게 된 서라와 최유이는 정말이지… 지금껏 상대했던 은별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 주눅이 들게 만들었다.
이내 무력해지는 자기를 느꼈는지 ‘핫’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예나였다.
‘아니야… 이 정도로 기죽으면 안 돼!’
예나의 친구가 말하길, 남자란 결국 여자에 사족을 못 쓰는 동물이라 했다. 그리고 예나에게도 사족을 못 쓰게 할 만한 조건이 달려 있다고 몇 번이고 조언했었다. 예나는 그 조언을 토대로 삼아서 다시금 기운을 내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
“우와아….”
그나저나 서라는 계속해서 앞좌석에서 몸을 돌려서 유이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유이의 출렁이는 가슴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이는 계속해서 자신의 상복부에 시선이 집중되자 조금 난처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쳐다….”
“진짜 크시다….”
“그만….”
“정말 크시네여!”
“쳐다….”
“큼큼! 짱큼!”
“…….”
“벨트가 부럽기는 처음임!”
서라가 장난스런 얼굴로 ‘따봉!’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유이는 순간 부들부들 떨렸지만 참을 따름이었다. 이윽고 서라가 옆에 있던 은별을 바라보았다. …이내 원치 않게 서라의 시선이 은별의 상복부로 떨어지고, 은별은 시선을 느꼈는지 ‘응? …뭘봐!’하면서 자기 가슴을 두 팔로 가렸다.
“형.”
“왜 그러냐.”
이윽고 서라가 얼굴을 돌려 민국을 바라보았다. 핸들을 붙잡고 있는 민국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토닥이는 서라였다.
“화이팅.”
“…무슨 파이팅이라는 거야? 맞을래?!”
“그나저나 예나찡은 조금 되시네여!”
“네 네?”
예나는 토끼처럼 눈을 껌뻑이면서 서라를 쳐다보았다. 서라는 이미 예나의 전신을 스캔했는지 마찬가지로 따봉!하듯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대놓고 차별하듯 놀리는 서라의 행동에 ‘으으으’하고 화가 난 은별이 소리쳤다.
“그래도 여기서 골반은 내가 제일 크거든?!”
그러면서 의자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나 자기 골반 쪽을 보여주는 은별이었다. 당연지사 서라와 유이, 예나의 고개가 은별에게로 돌아갔다. 서라가 눈을 크게 뜨면서 감탄했다.
“오오옹! 진짜 그러넹! 아기 잘 낳겠음!”
반대로 예나는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듯 하면서 얼굴을 붉히고 소리쳤다.
“어, 어떻게 그런 변태 같은 짓을!”
“…….”
유이는 가만히 있었고, 민국은 백미러로 그것을 훔쳐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뿌듯해했다. 서라는 그런 은별을 보면서 해맑게 웃음 짓고는 말했다.
“헤헤헤, 역시 은별 언니찡은 놀리는 맛이 있어염!”
“…참나.”
은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다시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면서 창가를 보았다. 그래도 골반에 대해선 아무도 뭐라 못하니 내심 뿌듯한 그녀였다.
“…….”
그렇게 한 시간쯤이 지났을까. 슬슬 다들 피로가 쏟아지는지 눈을 감는 모습이었다. 민국은 백미러로 다시 한 번 뒷좌석을 살폈다.
‘다들 여행 준비하느라 지쳤는지 골아 떯어졌네.’
은별의 고개는 차창 쪽으로 되어 있었고, 예나는 자고 있는 유이의 어깨에 기대어 잠에 들어 있었다. 민국은 입이 심심한지 또다시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 먹는 서라를 보면서 한 마디하였다.
“이놈아 과자 그만 먹어, 그러다가 이빨 상할라.”
“지금 행님이 제 건강한 치아도 걱정해주는 거예여? 어멋, 치아가 님이랑 사귀자고 할 듯!”
민국은 다시 핸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을 이었다.
“너무 억지로 일어나 있을 필요 없어. 괜히 나랑 말 상대 해주려고 깨어 있는 거 아니까.”
그 말에 그냥 잠자코 오독오독 과자나 씹던 서라였다. 이윽고 서라가 봉지에 있던 과자 하나를 꺼내 민국의 입가에 억지로 넣었다. 민국은 그런 서라를 흘긋 다시 쳐다보았다. 서라는 여전히 정면만 쳐다보면서 막연히 과자만 먹기에 바빴다.
‘자식.’
민국은 피식 웃음 지으면서 다시 정면을 쳐다볼 따름이었다.
*
바캉스의 주요지, 바다 근처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총 세 시간 동안 차를 운전하느라 민국은 조금 몸이 피곤해졌지만, 그래도 이제부터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으흐흐흐흐흐.’
민국은 음흉한 웃음을 숨기느라 고생했다.
‘바캉스에 오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바다에 오면 무슨 일이 있는가!’
그것도 오로지 여자들만 데리고 오면! 일단 그녀들이 수영복 입은 모습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여자들과 알콩달콩 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시샘도 받게 되는 것이다.
‘우와! 난 한 여자랑만 노는데 저 녀석은 네 여자랑 놀고 있어! 게다가 미인이야!’
‘뭐? 오빠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어? 헤어져!’
“흐흐흐흐흐. 아이구 침 나오네.”
“뭐하는 거야?”
“어이구 은별느님. 나오셨습니까.”
가장 먼저 차에서 깨어난 것은 은별이었다. 은별을 따라 잠에 들었던 뒷좌석의 두 여자는 이제 막 깨고 뒤척이는 모습이었다. 민국은 바로 코앞에 있는 모래사장과 더불어 햇볕이 땡땡한 바다가 있음에 눈 위를 손으로 가리면서 말했다.
“어때? 아릅답지 않소 낭자?”
“…옆에 예나가 없으니까 태도가 원래대로 돌아오네?”
“왜? 이게 불만이야?”
그 말에 은별이 팔짱을 끼면서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몰라.”
민국은 그런 은별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당차게 그녀 앞으로 다가가더니 냅다 허리를 손으로 감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얼굴을 가까이 하는 민국이었다. 급작스레 민국의 힘에 끌려가 얼굴을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하게 된 은별은 눈을 휘둥그레 뜨게 되었다.
민국은 다소 느끼하지만 한 편으론 진지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나?”
“…….”
“후후, 여기에 우리 단 둘만 있었으면 너와 나는 이미 사이다와 물처럼 융합되었겠지!”
“…….”
퍽! 하고 민국의 정강이를 차버리는 은별이었다. 민국은 전에 맞았던 곳을 또 맞아 ‘아이고야.’하면서 발을 동동 뛰었다. 은별이 새침하게 몸을 돌리면서 말을 이었다.
“기름이랑 물인지라 융합되기는커녕 서로 밀려났겠네요!”
그리고 트렁크로 향하면서 짐부터 꺼내는 은별이었다. 일단 숙박할 집으로 향해서 짐들을 전부 내려놓고 수영복을 입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라는 어디 있어?”
뭔가 비어 있다고 느끼던 은별이 물었다.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지.”
“……?”
“오줌 싸러 감.”
“…….”
노골적인 말에 할 말을 잃는 은별이었다. 이윽고 예나가 눈을 비비면서 모자를 쓰고 차 밖으로 나왔다. 민국이 이를 보고 사뭇 상냥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잘 잤어 예나야?”
“아 응…. 미안해 민국아. 너 운전하는데 나는 잠만 자고….”
“아니야 괜찮아. 일단 저기 화장실 있는게 가서 세수라도 하고 와.”
“응, 아냐. 나도 짐 같이 옮길게.”
그리고 트렁크의 짐을 정리하는 은별에게로 향하는 예나였다. 은별은 예나가 옆에 오자 ‘칫’하고 혀만 찰 따름이었다.
예나 역시 절대 기세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단호히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똑똑. 민국은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차 안에 있는 유이를 보았다.
유이는 졸린 눈을 깜빡깜빡이더니 이내 민국을 쳐다보았다. 민국은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길 기다렸다는 듯 자기 가슴 밑쪽에 두 손을 올리더니 마치 얹힌 무언가를 으쓱으쓱대는 것처럼 행동했다.
“…….”
덕분에 유이는 순식간에 졸음이 달아났다.
“어디야? 저기야”
“응. 저기.”
“…좋은데로 잡았네? 돈 많이 나가지 않았어?”
“엇흠. 그대와의 이틀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죠.”
“아무것도 안 해줄 거거든?”
“호오~ 해주라고 한 적이 없는데 무엇을 안 해준다는 걸까? 설마 그렇고 그런 짓을….”
“시, 시끄러!”
선두로 먼저 짐을 옮기는 은별과 민국의 대화였다. 숙박집은 민국이 잡았다. 어차피 가자고 제안한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외에 개인적으로 구매하거나 챙겨야 할 비용은 스스로 부담이었다.
“…넓네.”
“넓지?”
“그래, 좋은데 구했어.”
방은 화장실까지 합해서 총 네 개였고 거실은 매우 넓었다. TV랑 전화기, 서랍 도구 같은 기본적인 건 준비되어 있었고 바다가 보이는 넓은 창문이 있었다. 이내 민국이 거실 안으로 짐을 들고 와서 ‘후우’하고 내려놓을 때였다. 왠지 피로해 보이는 민국의 모습에 은별이 조금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었다.
“많이 힘들어?”
“오, 지금 위로해주시는거요 마님?”
“…그냥 초췌해보이길래 물어본 거거든?!”
그리고 똑같이 짐을 내려놓고 민국을 바라보던 은별이었다. 흘긋 흘긋 민국을 쳐다봤다 말다 반복하던 은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마라도 해줄까?”
그 말에 민국이 ‘오’하면서 말했다.
“벌써 그 정도 진도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니, 역시 음탕한 애인이여.”
“무슨 소리하는 거야? 안마해준다니까.”
“좋아. 내 바지를 벗고 준비하도록 하지.”
“바지는 왜 벗어 멍충아!”
그렇게 개그스러운 장난은 뒤로하고, 민국은 은별의 머리에 손을 톡 올렸다. 은별은 뭔가 싶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민국이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차부터 주차시키고 와야지.”
“…….”
“그리고 난 안마보다 오일 안마가 더 좋네!”
“…그냥 꺼져!”
후다닥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민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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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는 100화가 다가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