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가슴을 만지면 자연스레 가슴이 커진다. 그것은 가슴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는 여자들도 익히 들어온 정보였다. 또한 그 정보를 토대로 실행을 해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은별은 설사 골반이 크고 몸매가 남들보다 뛰어나다 한들, 가슴에 대한 콤플렉스는 변할 수 없다고 포기한 상태였다.
실로 신기한 일이었다. 정작 은별의 어머니는 일반 여자들보다 큰 편에 속하는데, 그 딸에 속하는 은별은 유전을 이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슴만은 커지지가 않다니!
'혹시 돌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던 엄마 말이 사실인 걸까?'
오죽하면 사춘기 시절인 중학생 때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허나 은별은 이제 포기하고 가슴이 굳이 여자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명색에 남자친구라는 놈이 자꾸 아스팔트 껌딱지라고 놀리고 있으니, 진짜 죽여패다 못해 삼계탕처럼 삶아버리고 싶었다.
"날 믿어봐유!"
그런 포기 속에서 막연히 살아가고 있던 은별. 그녀에게 가슴 성장의 마지막 희망을 건 제안을 걸어온 사람은 바로 서라였다. 허공에 두 손을 주물럭 거리며 다가오는 서라는 마치 민국의 여성판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만일 진짜로 커진다면?'
진짜로 은별이가 자기 손으로 가슴을 만졌기 때문에 커지지 않은 것이고, 타인의 손을 통해서 커질 수 있다면? 실로 그러하다면 은별은 아까운 기회를 놓치고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은별이 잠시 서라에게 가슴을 맡긴다고 해서 물질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손해보는 일은 없었다. 아니, 가슴에 대한 일말의 수치심과 묘한 느낌(?)에 대한 손해는 있겠지만, 그걸 결단코 손해라고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야! 그렇다 한들 커질 리가 없잖아!!'
두 갈래의 선택지를 앞에 두고 은별이는 크게 갈등하고 있었다. 그런 갈등 속에서 서라는 마냥 가슴을 주물럭거릴 기회만 탐하고 있었다. 서라의 모습이 새삼 변태스러워 문득 욱해버린 은별이었지만, 생각은 이미 한 쪽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 번…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원래 20대 초. 도전을 무서워해선 안 되는 나이다. 은별은 굳게 마음을 다지고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한 번 만지게 해줄게."
"요시!"
"하지만, 정말 내가 만져도 커지지 않던 가슴이 타인이 만진다고 해서 커질 거라고 난 생각하지 않아. 그래도… 조금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것뿐이야."
"솔직한 모습이 맘에 드네여! 합격!"
확실히 서라는 사람을 진솔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은별은 나이도 자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한 걸음씩 계속 밀려나는 것 같아 빈정이 상했다. 그래도 어찌하겠소냐, 일단 서라 말을 믿어볼 수밖에.
"그래서, 내가 누울까?"
"저기 침대에 누워주셈여!"
"그래. …가슴 만진다고 해놓고 다른 짓하는 건 아니지? 만일 그랬다간 진짜 혼낼 거야?"
"비록 제가 제2의 현대왕이라 불리긴 하지만서도! 정말 현대왕 같은 짓은 하지 않으니까 걱정마셈!"
은별이 다시 한 번 '믿는다?'라고 대답하고는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두 팔에 침대를 대고 눕는 은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수영복만 골라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고자 연락한 건데, 졸지에 가슴 수술(?)하는 목적이 되어버렸다.
은별은 바른 자세로 누워서 천장을 보았고, 차마 서라의 손길을 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 결국엔 눈을 찔끔 감았다.
"그럼 갈게여?"
"…그래."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 대체 이 심정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이성도 아니고 단순 동성인데! 그렇다고 해서 은별이가 양성애자인 것도 아닌데 말이었다! 혹시 자신의 진짜 정체성은 따로 있던 것이고 그 정체성이 현재 환경을 기점으로 밝혀지는 것은 아닐까? 잡다한 상념들이 머릿속을 스치는 가운데 서라의 손길이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을 은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얍!"
"…앗!"
이윽고 침대에 안착하여 은별의 가슴으로 손길을 향하던 서라. 거침없이 양손을 내뻗어 보자기 상태로 은별의 가슴에 댄다.
"야, 야하시다능!"
"시, 시끄… 웃."
"헤헤. 그럼 더 해볼게여."
얼굴을 상기시키면서 인상을 조금씩 찌푸리는 은별이의 얼굴이 여간 볼 만했는지 서라가 해맑게 웃음 지었다. 이래봬도 서라는 마사지에 걸맞는 손을 갖고 있었다.
예쁜 손톱과 손가락에, 아이처럼 작디 작은 주먹! 그리고 젊은 여자답게 부드러운 피부! 그 네 가지가 혼합하여 진행된 마사지는 뭐라고 할까, 성인인 은별이에게 참을 수 없는 야릇함을 가져다 주었다.
"으읏? 읏!"
"헠헠, 좋아여 아주 좋아여."
"자… 잠깐!"
이윽고 가슴 마사지를 받던 은별이 기어코 참지 못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졸지에 흐름이 끊어진 서라는 양손을 회수한 다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딜도 같은 촉감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왜 그러세여!"
"…너 그냥 자기 만족으로 이러는 거지? 애초에 이런 거 가지고 커질 리가 없잖아?"
은별이가 추궁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라는 그 말에 '노노!'하면서 고개를 완강하게 저었다.
"나님은 언니찡이 진심으로 커졌으면 해서 그러는 거예여!"
"……."
"나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으니깡! 언니찡을 이해해서 그러는 거라구여!"
양손으로 엑스자를 만들면서 고개를 젓는 서라의 눈은 진실됐다. 그 진실함을 두 눈으로 마주한 은별은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게 되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살짝 내린 채로 고개를 숙인 은별의 모습은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껴안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할 정도였다.
"자자, 누우세여! 누워여! 다시 해드릴게여 언니찡!"
"그래… 설마 내가 나보다 어린 애한테 위로를 받게 되다니…."
"헤헤헤 가슴 선배로서의 조언이지여!"
한 대 콱 때리려다가 참는 은별이었다. 이윽고 다시금 시작되는 가슴 마사지였다.
"앗…! 으…읏!"
묘한 신음이 터져나온다. 서라는 은별이의 가슴의 봉긋한 겉면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유들유들한 서라의 피부 손길이 가슴의 밑부분을 스쳐 지났고, 그건 모기에 물린 것처럼 노골적인 간지러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 간지러움이 끝나가는가 싶으면 또 예사롭지 않은 서라의 손가락이 은별의 가슴 옆면을 꾹 짓눌렀다. 그 짓눌림이 은근 고통스러우면서도, 배려하는 친절함이 섞여 묘한 쾌감을 안겨왔다.
"으…읍… 으읍…."
침대에 누운 채로 서라에게 마사지를 받는 은별은, 눈을 찔끔 강하게 감은 채로 입술을 앙 다물었다. 아랫입술을 윗 치아로 깨물고 침대에서 꿈틀꿈틀 좌우로 지렁이처럼 이따금씩 움직이는 은별이의 모습. 만일 천장에서 이를 본다면 누군가는 욕정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앗…."
"여긴 어때여?"
"…아, 아파…."
"아픈 것 말고 없어염?"
꾹꾹. 은별은 다문 아랫입술을 더 세게 깨물면서 '하으읏!'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프…지만…."
"……."
"좋……."
더 이상 말은 없었고, 다시 신음을 하면서 꿈틀대는 은별이었지만 서라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씨익 미소 지은 서라가 입을 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여. 으흐흐."
"……."
"강하게 갈게여!"
"…하앙!"
이번엔 가슴의 중심부를 노리는 서라였다. 노골적으로 중심부의 중요 부위를 손가락으로 스쳐 가면서, 봉긋한 가슴의 겉면을 주물럭거리는 손길. 살살 쥐었다가 빠르게 펴고, 강하게 쥐었다가 느리게 펴고.
"앗! 으으응… 아윽! 아앙!"
"쉿! 아래층에 들릴 수도 있음! 조용히 해여!"
"하앗… 조, 조용히 하라고 해두… 하읏!"
옆에 있는 이불로 고개를 돌리는 은별이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 이불을 붙잡은 은별이 입술 쪽에 앙 다물었다. '으으읍!'하고 찾아오는 쾌락에 다리를 엑스자로 만든 다음 폈다가 굽히길 반복한다. 이불에 스며드는 은별이의 침은 서서히 짙어지고 있었다.
"여기군…. 은별 언니찡의 공략 부위가…."
"하아, 하아…."
꽤 지쳤는지 땀을 뻘뻘 흘리는 은별이었다.
"이, 이제 그만…."
"안 돼…. 이제 시작이야… 흐흐 전 아직 가버리지도 못했다구여!"
"…하읏! 아, 안…돼으응!"
뭐가 가버리지 못했다는 건지 서라의 말에 의문이 생기는 은별이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가슴을 지압받으면서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느낌이었다. 여자의 급소 중에 하나인 가슴을 지압하는 것으로 세게 쥘 때마다 고통스럽긴 했지만, 그 고통 속에서 찾아오는 일종의 쾌락은 은별이로 하여금 이불을 못 살게 굴게 만들고, 다리를 자꾸만 바둥바둥 떨게 만들었다.
'이, 이대로면…….'
은별은 미치겠는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제지해야 하는데… 말려야 하는데… 지금 자기 자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이 손길 없이는 못 살게 되어버려-!'
왜 말리지 못하는가! 마치 동인지 속의 아헤가오처럼 변모하는 자신에 은별은 수치스러워하면서도 몸을 통제하지 못했다. 이제 신음조차 제멋대로 나와버린다.
"너무… 으, 아응… 아흣… 흐앙… …강…해!"
"헠헠 멈출 수가 없엉!"
"아, 안 돼앵~!"
서라도 어느 덧 마사지사의 마사지 정신을 본받아 이성을 잃고 가슴 주물럭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다. 서서히 빨라지고 강해지는 서라의 지압은 은별이의 허리를 이제 활처럼 곡선으로 휘게 만들었다. 흠뻑 땀에 젖어버린 은별이의 셔츠와 핫팬츠…. 서라가 그런 그녀를 보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헠… 가여? 헉헉 갈 거예여?!"
"으, 으으읏!"
"이 앙칼진 년! 헠헠! 그, 그럼 나둣…!"
'이쿠욧!'하고 소리치면서 아주 강하게 가슴을 붙잡는 서라였다. 은별은 순간적으로 찾아온 제일 강한 압박에 이불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신음했다.
"아으으으으으으으으으응!"
곡선으로 휘어진 허리가 이제 완전히 침대에서 떨어질 정도였다. 서라에게 마사지를 받은 가슴은 휘어진 허리 때문인지 완전히 봉긋해져 있었다.
작디 작은 그녀의 가슴조차 입고 있는 셔츠를 뚫어버릴 것 같았다. 풀썩! 이윽고 한참동안 허리가 들린 상태로 누워 있던 은별. 머지않아 그녀의 허리가 침대에 다시 붙으면서 은별은 완전히 범해져버린 여인처럼 변모하고 말았다.
몸엔 땀 방울방울이 맺혀 있었으며, 고개는 옆으로 돌아가 있었고, 이불은 엉망진창으로….
"……."
"헠 헠."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마사지를 했던 서라는 얼굴과 손에 땀방울을 거칠게 맺히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입고 있는 옷들도 땀으로 흠뻑 젖어서, 지금 당장 벗고 샤워라도 해야 할 기세였다. 이윽고 은별이가 누워 있는 옆에 풀썩하고 눕는 서라였다. 은별이의 배에 손을 갖다대면서 서라가 향긋한 음성으로 말했다.
"좋았어여…."
"……."
어디까지나 가슴의 촉감이 좋았음을 밝히는 표현이었지만, 다소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다는 점은 양해해야 할 것이었다. 은별은 지칠대로 지친 얼굴로 순간 피로가 쏟아지는 걸 느끼게 되었다.
가슴 마사지라 한들 결국엔 마사지였고, 보다 거친 테크닉의 마사지가 진행되었다 보니 결국엔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 해소 및 피로가 찾아왔다.
'수영복… 골라야 하는데….'
은별은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피로를 막지 못했고, 결국엔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옆에 있던 서라 역시 마사지에 초집중해버린 탓에 피곤했는지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
똑똑똑.
"잘 놀고 있니?"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은별이 어머니가 위층으로 올라와서 잘 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에 노크를 하였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의아함을 느낀 어머니는 문을 열고 안을 확인해 보았다.
"어머?"
그리고 깜짝 놀라면서 입가에 손을 대는 모습이었다. 이내 흐뭇한 미소를 피우면서 방을 나가는 어머니였지만 말이다.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서라와 은별, 마치 절친한 자매와도 같아 흐뭇한 분위기를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