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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91화 (91/369)

91화

"은별아 밖에 무슨 일 있니?"

"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부엌에 있던 어머니의 부름에 은별은 사색을 하면서 소리쳤다.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간 은별은 다행이(?) 고장나지 않고 안전하게 움직이는 딜도를 붙잡았다. 위이이이잉.

"……."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다르게 색다르게 리듬을 타는 딜도였다. 은별은 그것의 작동 스위치를 중지시킨 뒤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현관문을 닫고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은별이의 땀에 젖은 모습에 은별이 어머니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머, 왜 그렇게 몸이 젖었니? 운동이라도 했어?"

"아… 응 그냥 좀."

에둘러서 얘기한 다음 2층으로 다시 올라가는 은별이었다. 끼이익, 쿵! 이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은별. 은별의 방 중심부의 바닥에 앉아있던 서라는 그런 그녀를 보고는 짐짓 해맑게 웃으며 뒷머릴 긁적였다.

"헤헷."

"……."

은별은 웃고 있는 서라를 보다가 주머니 속의 딜도를 꺼내 …구석진 박스 상자 안에 넣은 다음 말했다.

"또 이런 짓하면 그땐 서민국으로 만들어버릴 거야."

"히익! 누, 누균 그런 걸 언니찡이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겠나여!"

"테, 테스트용이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실험 도구는 과학부 연구실 속에 잠잠히 두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거늘!"

서라의 말에 은별은 '하아….'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건 네 말이 맞아."

"헤헤. 그리고 그 정도 사이즈로는 민국이 온니쨩의 우람한 것을 담기에는 역부족일 테니 더 큰 걸 구매하세여!"

"……."

민망한거야 어쩌겠는가. 이제 와서 변명해봤자 더 구질구질해질 테고. 은별은 여기서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괜찮은 수영복은 찾았어?"

"후루룩. 으음~ 아직 찾고 있으니 기다려주셈여."

은별이가 가져온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한 자리에 고루 모은 수영복들을 일일히 확인해보는 서라였다. 한 손에는 주스를, 한 손에는 수영복을. 고르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마치 진짜 패션니스트가 옷을 고르는 모습 같았다.

"이건 어때여?"

"그건… 너무 야하지 않아?"

"하지만 온니데스까는 야한 걸 좋아하는데여."

"…그렇다고 나까지 수영복을 야하게 입을 필요는 없잖아?"

서라가 들어 보인 옷은 T팬티 위주의 수영복이었다. 이윽고 서라가 조금 추궁하듯이 물었다.

"그럼 이건 왜 사셨음여?"

"……."

서라의 눈을 마주하던 은별이 얼굴을 조금 상기시키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름하여 시선 피하기.

"그, 그냥 자기 만족이야."

"자기 만족 딜do!"

"…맞을래?"

아무리 같은 여자라도 정도가 지나친 장난은 용납하지 못한다! 서라는 다시금 주스를 마시면서 수영복을 고르기 시작했다. 은별은 집중하면서 옷을 고르는 서라의 모습에 그제야 한숨 놓고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어떤 게 나에게 어울릴 것 같아?"

"의으음! 이거 어떠십니깡?"

이윽고 또 다른 수영복을 찾아 보인 서라가 그것을 은별이 몸 근처에 갖다대면서 보여주었다. 직원을 통해 처음에 구매했던 바로 그 수영복이었다. 은별은 그 수영복을 바라보다가 눈을 가늘게 만들었다.

"좋긴 한데, 막상 구매하고 입어 보니 그것도 은근 노출이 많았거든."

"입어보셨어여?"

"응."

"어디 노출이 많던가여?"

"……배?"

두루뭉술한 대답에 서라는 '의잉'하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수영복을 내려놓더니 은별이에게로 다가와 기습적으로 배를 만진다. 갑작스런 서라의 손길에 은별이 크게 당황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앗…! 뭐, 뭐하는 거야?!"

"오옷! 말랑말랑하지 않고 탄탄하시네여. 마치 후라이팬으로 잘 구워낸 고기처럼 육즙이 느껴지는 촉감이에여!"

"…사람 배를 음식처럼 표현하지 말고 얼른 손 때!"

서라의 더듬거리는 변태적 손길을 재빨리 밀어내고 완강하게 자기 배를 두 손으로 감싸는 은별이었다. 서라는 아쉽다는 얼굴로 '우웅….'하면서 말을 이었다.

"왜 은별 아찌는 그 뛰어난 배를 숨기고 노출을 금하시려는 거져?"

"……."

마치 귀여운 강아지가 애교를 부리듯이 묻는 서라의 물음에, 은별은 잠시 뜸을 들이면서 대답을 삼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눈을 올리면서 벽면을 바라본다. 눈은 벽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회상 속의 서민국 같았다.

"…그냥."

"……."

"조금 불안하니까…."

머뭇거리면서 답하는 은별은 늘 보던 그녀처럼 확신에 찬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를 '흐으음!'하면서 지켜보던 서라가 물었다.

"혹시 불안하셈여? 민국 형이 다른 데를 볼까봐?"

"……."

은별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서라를 바라보았다. 서라는 그런 은별이와 눈을 마주치자 베시시 웃음 짓는 얼굴이었다.

…다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알고 있다. 서라는 그런 아이였다.

남들이 느끼는 감정, 단점, 장점, 그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채고 어쩔 땐 자기 자신이 모르는 걸 그 누구보다도 빨리 캐치하는 타입이었다. 은별은 서라의 물음을 통해서 그녀가 보통 비범한 게 아님을 깨달았다.

"확실히 민국 아찌가 많은 여자들에게 이리저리 꼬리치곤 하져! 근데 괜찮을 거예여! 그 중에 선택한 게 은별 누나잖아여!"

"언니라고 부르라 했지? …그리고… 날 선택했다고 해서…."

뒤이어 나온 은별이의 목소리는 조금 외로워 보였다. 도통 드러내지 않던 그녀의 약한 내면이었을 지도 모른다.

"언제고 내 옆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야…."

"……."

"내가 늘 곁에 있을 보장도 없고…."

언제 예기치 못한 갈등이 도래할 지 모른다. 그리고 그 갈등이 낳을 결과가 마냥 행복할 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불행이 초래하면 그 끝은 대개 안 좋곤 했으니까. 서라는 은별의 그런 어두운 모습을 보게 되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흐으음!'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에 잡고 있던 수영복은 내팽개치고 자신만만하게 일어난 서라의 언동에 은별은 상념에서 꺠어나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뭐하는 거야?"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는 자! 들어랏!"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구세주가 지켜보는 전 세계의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처럼, 서라는 중2병스러운 모습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한 쪽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고개를 내리 숙였다가 번쩍 들어 올리면서!

"내 포르디포우스의 맹세에 명하오니 그대는!"

"……."

"그 어떤 미래가 찾아와도 굴하지 않는 강렬한 신념을 갖고 있을 터이니! 그 신념은 곧 그대의 힘! 그대의 결실! 오오! 나무아비타불!"

이윽고 외침이 끝난 뒤였다. 자리에 폭삭 앉은 서라가 중2병을 끝내고 말을 이었다.

"주문이 걸렸으니 이제 헤어지지 않음."

"……."

"신의 버프예여. 이 버프에 걸린 이상 연인 사이의 고리는 절대 끊어지지 않져!"

그 말에 은별은 한참동안 흐리멍텅한 얼굴로 서라를 바라보았다. 서라의 베시시 웃는 얼굴은 참으로 아기자기하기 그지 없었다. 이윽고 한참동안 그런 서라를 쳐다보던 은별은 저도 모르게 오금이 지리는 걸 느꼈다. 두 팔로 양 어깨를 잡고 강하게 정색하면서 주저앉은 채로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은별이었다.

"그게 뭐야? 진짜 오글거려…."

"나닛?! 신성한 나님의 주문을 그런 식으로 치부하다닛!"

서라는 마치 신성함에 치욕이 묻은 것마냥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색하며 오금저려하던 은별도, 얼마지 않아 희미하게 미소 지은 얼굴로 서라에게 손을 뻗었다. 서라는 급작스런 그녀의 손길에 '읭?'하다가 머리를 쓰다듬받게 되었다. 은별은 어느 덧 감정이 조금 가라앉아졌는지 맑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고마워. 덕분에 좀 마음이 편해지는 거 같아."

"헤헤 딜DO!"

"…그건 하지 말아줄래 좀?!"

잊혀질까 싶으면 다시금 떠오르게 되는 방금 전의 추억에 은별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서라는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은별의 기복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좋아했다.

실은 자기도 민국에게 호감이 있었건만… 그것을 용케도 드러내지 않는 건 둘의 사랑이 설마나 진실되었는지 알기 때문이리라. 고작 자신의 마음 때문에 두 사람이 깨지는 걸 서라는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수영복은 이거로 하시져!"

"…그래. 보다 보니까 나쁘지는 않네. 하지만…."

"읭? 하지만?"

은별은 조금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이야기하였다.

"그 옷에 다른 문제가 하나 있어…."

"읭? 어떤거여?"

"…이거."

은별답지 않을 정도로 소심한 가리킴이었다. 이윽고 은별의 검지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자신의 가슴이었다.

서라는 자신이 추천한 수영복과 은별의 가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납득했다는 듯 '아~'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 탄성에 은별은 마냥 '…….'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자존심에 쪼매 스크레치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윽고 서라가 얘기했다.

"하지만 님은 뿅의 초고수!"

"…뿅이라고 다 되는 건 아니거든?! 어디서든 한계는 존재해!"

왠지 감명 받는 대사를 들었다는 듯 진심으로 '헉!'하고 손에 쥔 수영복을 떨어뜨린 서라였다.

"설마 뿅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가슴이 존재한단 말인감…."

"…너 알게 모르게 사람 치욕적이게 만드는 능력이 있구나?"

"사실 그게 제 페시브 스킬이져!"

허나 의문이었다. 아무리 가슴이 작다 한들 뿅만 이용하면 보기 좋게는 만들 수 있을 텐데? 대체 얼마나 작으면?

"혹시 진짜 아스팔트세여?"

"아니거든?! 그건 민국이 헛소리로 지은 소리지 진짜는 아니거든?!"

"흠~ 제가 보기에도 크게 아스팔트 같지는 않은데여?"

아마 민국이 하도 아스팔트 껌딱지라고 놀려대니까, 자신의 가슴에 대해서 더 콤플렉스로 생각하게 되는 단점이 생겼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서민국이 참으로 못된 놈은 분명했다.

"무엇보다 저기 움직일 때마다 옷에 스리슬쩍 보이는 꼭지점 같은 게…."

"그만해 변태야…."

그러하다. 실제로 가슴이 작다 한들 진짜 공기(?)는 아니었다. 은별도 여자로서 어필할 정도의 크기는 되었던 것이다.

"으아닛!"

"…왜 그래?"

이윽고 서라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 소리쳤고, 은별은 그런 서라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서라가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소리쳤다.

"뿅 말고 가슴을 키우는 또 다른 방법이 생각났어염!"

"…뭐?"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로 물음을 던지는 은별이었다.

"그게 뭔데?"

"만지는거예여 으흐흐."

"……."

허공에서 마치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는 것처럼 두 손을 움직이는 서라였다. 그 음흉해 보이는 손길에 은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 거 가지고 진짜 커질 리가 없잖아. 무엇보다 난 이미 성장기가 끝난 상태라구."

"해보지 않으면 몰라여!"

"해봐도 똑같거든?"

"읭?"

"…아니, …그래! 만져봤어! 하지만 커지지 않았어!"

어차피 성인용품도 들켰고 자기 본심도 들킨 마당에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콤플렉스에도 진솔해지자고 마음을 다잡은 은별이었다.

물론 그건 제3자가 보기에 자포자기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윽고 잔뜩 붉어진 얼굴로 소리치는 은별에 서라는 은별이 자신의 가슴을 조물딱거리는 망상을 취해보았다. 그러다가 완강히 고개를 젓고는 소리쳤다.

"이의 있소!"

"뭔 소리야?!"

"그건 은별찡이 직접 자기 가슴을 만진거지 타인이 만진 건 아니잖아여? 실제로 인터넷에서 보길 자신이 만지는 것보다 타인이 만지는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했어U!"

"……."

"내가 도와드릴 테니 해봐U! 아스팔트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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