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로리로리 팝! 팝팝팝!"
바캉스에 가기로 계획을 한 뒤 며칠이 흘렀을까. 서라는 부모님이 둘 다 외출한 주말 집에서 혼자 신명나게 수영복을 입어보고 있었다. 역시 외모에서 빛이 나기 때문인지 무엇을 입어도 잘 살렸다. 괜히 패완얼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유이느님에게 가슴이 딸린다는 게 부들부들하지만!'
서라는 자신의 두 가슴을 양손으로 한 번 주물럭 거려 보았다. 확실히 요즘 학생들이 발육이 좋다지만 서라는 더 월등한 편이었다. 잘록한 허리에 큰 골반, 적당히 큰 가슴! 심지어 영계라는 장점까지 갖고 있으니 이보다 뛰어난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날아오르라 주작이여~ 환상의 날개~ 날아오르라~."
신명나게 콧소리를 섞어서 노래를 부르며 상황을 즐기던 서라였다. 그런 그녀에게 전화 한 통이 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웅.
"읭?"
서라는 급작스레 온 연락에 책상의 휴대전화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의외의 인물이 자신에게 연락했음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뜰 뿐 받지는 않았다. 그러고 있기를 어연 수 초, 얼마지 않아 전화가 꺼질 세라 서라가 정신을 차리고 부리나케 달려나가 받았다.
"…혼또니 츤츤데스요?"
"츤츤거리지 말아줄래?"
전화를 건 상대는 정말이지 예상 밖의 상대였다. 강은별이었던 것이다!
'으으… 이런 방법까진 쓰기 싫었는데….'
전화를 건 은별은 정말이지 마지막 수단을 쓴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수영복 세 벌 정도가 들려 있었다. 서라가 다시 한 번 물었다.
"혼또니 김치워리어데스요?"
"김치로 싸대기 맞는 소리하지 말고 전화 좀 똑바로 받아줬으면 해."
"넵."
실제로 눈앞에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서라는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았다. 기존에 서라는 은별이에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남자인 척 행동한 적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 때문에 결정한 행동이었으나, 민국과 단 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된 셈이라 여자친구인 은별이에게 여러모로 상처로 다가왔을 것이었다. 그것을 참고 받아준 은별이에게 서라는 여러모로 좋게 좋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세여 변태 남친님?"
"…그 말은 차마 부정할 수가 없네. 혹시 시간 있어?"
"타, 타임이요?"
서라가 조금 당황하는 목소리로 시계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오, 오늘은 시간이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고 간만 이리저리 볼 듯한 그런 느낌이 심히 드는데 저는 거기서 판단을 못하겠고 어 음…"
"…있는데 없다고 하는 거지?"
"히이익!"
역시 직감의 여왕! 강은별이라고 생각하는 서라였다. 이윽고 전화통으로 은별이의 한숨이 푹하고 들려왔다.
"하아, 저기… 나도 개인적으로 이런 부탁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
서라는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미 어느 사람들이 바캉스에 참여하는지는 민국의 메시지로 전원 확인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은별이에게 연락이 왔으니… 설마 바캉스에 참가하지 말라는 의사는 아닐까? 서라의 속내를 알아내고 말이다!
"…어쨌든 너도 여자잖아. 그치?"
"호, 혼또니 여자지요! 달리지 않았다는 건 제 몸도 아는 바니까여!"
"그래, 그래서 그러는데 혹시."
머뭇거리던 은별이었다. 아무래도 방송으로만 대화를 나누던 비제이에게 이런 부탁을 선뜻 하는 것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슬슬 서라도 '?'를 얼굴에 새기고 다음 말을 기다리는 가운데, 은별이가 부탁을 해왔다.
"내 집에 와서 수영복 좀 골라줄 수 있어?"
"읭?"
"…이게 쉽지가 않아서 그래! 정말이라구!"
서라는 이 무슨 짜빠구리 같은 말인가 싶었다. 이윽고 서라가 더듬거리면서 물었다.
"호, 혼또니 내가 도와줘도 되는 건가염? 그, 그런 일도 있었는뎀?"
"그래, 도와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런 일이라니, 무슨 일?"
"어, 음… 4, 4P일!"
서라가 용기내어 소리쳤다. 그렇다. 4P사건. 비록 민국이도 의도한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못 볼 꼴을 보였다. 그런 일이 있는 와중에 바캉스에 이렇게 맘대로 가도 되는 것인가 서라는 한 편으론 의문을 가졌었다. 허나 은별은 그 말에 '아….'하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건 애초에 우리가 의도한 일이 아니었잖아. 서민국도 그렇고."
"……."
"심지어 서로가 그렇게 술에 크게 취한 상태였고, 누가 왔어도 말리지는 못했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그런 일 가지고 대수롭고 시끄럽게 군다면 좋지 못하다고 봐."
"……."
"뭐… 심기에 거슬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말미에 그렇게 덧붙이는 은별이었지만, 그래도 4P 사건에 대해선 이해를 하는 모양이었다. 인정이 많은 그녀답게 포옹력도 넓어서일까? 하지만 서라는 휴대전화를 든 채로 가만히 손만 바들바들 떨 따름이었다. 서라의 대답이 없자 이상하게 여기던 은별이 '왜 말이 없어?'하고 물음을 던지자, 그제야 서라가 소리쳤다.
"무, 문보살이닷!!!!"
"…뭐어?!"
"문보살의 뒤를 잇는 강보살님! 당신은 무제한 까방권을 얻었습니닷! 바람 피우고 남친 싸대기 때려도 사람들이 박수쳐줄 거예요!"
"그게 무슨 서민국 같은 소리야?!"
"강보살 만세! 이 순간의 존경심을 결코 잊지 않고 내 당신의 팬이 되겠슴다 헠헠!"
"……."
은별은 개처럼 헠헠거리는 서라의 숨소리에 휴대전화를 잠시 동안 멀리했다. 바캉스에 참여하는 사람 중 그나마 친근하게 굴 사람이 서라밖에 없어 연락한 것이었는데, 어쩐지 이거 문제를 더 벌인 느낌이었다.
*
끼이익. 은별이가 사는 동네에 서라가 도착한 뒤였다. 서라는 은별이의 저택을 보고는 '우와아~'하면서 감탄했다. 그리 큰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사는 중산층에 속하는 저택이었다. 서라 역시 적당한 집에서 사는 편이었으나 은별 정도는 아니었다. 이윽고 은별이가 마당을 걸어나와 대문을 열었다.
"…들어와."
"옷! 이타다키마스!"
뜬금없이 잘 먹겠단 소리를 하면서 대문으로 들어오는 서라였다. 이윽고 대문을 닫은 은별은 마당을 둘러보는 서라를 흘긋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확실히… 애가 패션 센스가 있어.'
조금 분한 감이 있지만 서라는 나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자기 자신의 패션을 잘 꾸릴 줄 아는 아이였다. 은별도 패션에선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저번 4P 사건 때 식당에서 보면서 확신했다.
'얘는… 패션 보는 눈이 있는 거야!'
"근데 정말로 저한테 맡겨도 되시겠나염 누나찡?"
"…누나가 아니라 언니라고 불러. 실제로 볼 때는 그게 덜 어색하니까."
"이이잉! 언니찡은 어색어색하다능!"
두 손을 가슴 근처에 두고 도리도리 몸을 좌우로 틀면서 애교를 부리는 그 모습에 은별은 '하아….'하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서나 방송에서나 행동이 똑같구나…?"
"헤헤, 민국 형이랑 비슷하져."
"그래도 걔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런 짓 안해."
그리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은별이었다. 이윽고 서라도 따라 들어서자 테이블에서 식기를 옮기고 있던 은별 어머니가 '어머?'하면서 나오는 게 보였다.
"누구니? 친구?"
"아는 동생이에요. 인사해 우리 어머니야."
"아… 안녕하세요."
서라는 은별을 대할 때하고는 다르게 꽤나 정돈된 모습으로 인사했다. 그 모습에 은별 어머니가 해바라기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잘 놀고 가렴. 누가 은별이랑 아는 사이 아니랄까봐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
"헤헤…."
주인의 손길에 좋아하는 강아지마냥 웃음을 보이던 서라였다. 이윽고 은별이 그런 서라를 과묵히 보다가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서라도 그제야 은별이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냥 막장스러운 건 아니구나? 너."
"엣헴! 이래봬도 저도 치킨과 피자 중 하나를 고르라 할 때 피자를 시킬 줄 아는 사람이거든여!"
"…보통은 치킨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거로 아는데."
"하지만 그리 되면 피자가 불쌍하잖아여? 저라도 이해해줘야져 데헷!"
"……."
이윽고 은별이의 방 앞에 도착한 뒤였다. 은별은 방문을 선뜻 열어 내부를 보여주었다. 비춰진 은별이의 방 내부에 서라는 저도 모르게 '우와아!'하면서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세상에 뭐 이런 더러운 집이!"
"…더럽게 하고 싶어서 더럽게 한 거 아니거든?! 그냥 옷 좀 계속 골라보다가 그랬어."
"이 수영복 설마 다 구매하신 거임여?"
어느새 방 안으로 들어간 서라가 방바닥에 자르륵 깔린 수영복을 확인하면서 물었다. 은별이 조금 수치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예전 것도 몇 개 있지만."
"왕, 집이 부자세여?"
"그건 아니고. 내가 방송 일하면서 번 돈 조금만 쓴 거야."
여자 비제이들은 원래 얼굴을 안 보여도 남자 비제이보다 더 돈을 많이 버는 법이다. 굳이 스폰이 아니더라도 시청자들이 알아서 달풍선을 선물하곤 하였으니까. 이윽고 팔짱을 끼면서 은별이 방바닥을 뒤적거리는 서라에게 물었다.
"자, 어떤 게 나한테 어울릴 것 같아?"
"흠~ 그러니까 혼또니, 이 중에 어울리는 수영복을 찾아줘라? 이건가염?"
"응."
은별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하자 서라는 주저앉듯이 자리에 앉은 다음 몸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턱에 손을 브이자로 얹으면서 은별이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우선 골반은 민국 온니쨩이 좋아할 만큼 큰데 비해 가슴이 평평하네여. 마치 아스팔트 껌딱지 같아여."
"……."
부들부들.
"하지만! 그 아스팔트를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무기가 여자에겐 존재하져! 그건 바로…!"
"거하게 말할 필요 없거든? 뿅인 거 알아."
"이럴 수가! 역시 뿅 고수다운 말이로군여!"
슬슬 열불이 뻗친 은별이 소리쳤다.
"어쨌든! 그런 건 됐으니까! 나한테 어울리는 게 뭔지나 알려달라구!"
"흠~ 공기컵에게 어울리는 수영복이라~."
자신감 있게 주변 바닥부터 장롱까지 뒤적이던 강서라였다. 이윽고 '헛!'하면서 놀라는 표정으로 뭔가를 들어 보이는 강서라였다.
"이거 어때여!"
"…그거 속옷이거든? 장롱은 왜 뒤져?"
"앗, 그럼 이건 뜨거운 날에 입으면 좋겠네여. 헤헤."
"……."
은별은 서라가 자신을 돕기 위해 수영복을 찾는 동안 무언가 도움이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받는 게 있으면 줘야 하는 게 철칙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인생 신조였다.
"…뭐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오렌지 주스나 커피 있거든."
"오렌지 주스 주세여!"
"그래.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은별이가 계단을 내려간 찰나였다. 서라는 일단 은별이가 구매한 수영복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골라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있는 모든 수영복들을 한 자리로 끌어 모으는데.
"읭?"
돌연 침대 아래에 있는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꽤나 화사한 겉모습에 서라는 혹시 화사한 수영복인가 싶어 그쪽으로 손을 넣어 보았다.
'너무 차게 주면 배 아프겠지.'
이윽고 은별이가 적당한 온도로 오렌지 주스를 가지고 방에 도착했다. 방문을 열며 그녀가 말했다.
"주스 가져왔…."
위이이이잉.
"……."
그 찰나였다. 차마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면 기가 막히달까…. 서라는 한 손에 붙들려 있는 그 기계를 작동시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진동하듯이 돌아가는 그 기계는 마치 펌프질의 그것과 비슷해서, 참으로 음란하기 그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찰나에 문을 연 은별은 마치 중요한 것을 발각 당한 사람마냥 몸이 경직되듯 굳어버렸다.
"어엇… 엇, 어엇…."
"……."
"이, 이건 말이죠 언니찡."
이윽고 서라가 손에 들려 있던 딜…을 어찌 할 지 모르고 잠시 동안 머뭇거리던 찰나였다. 이내 서라의 눈에 열려 있는 은별이의 방 창문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이것만 없으면 어색함이 사라지겠다는 생각 하에, 서라의 몸이 머리보다 빨리 움직였다.
"호얍!"
창문으로 딜…을 투척!
"엇! 이때 이런 드립 사용하면 재밌을 듯!"
그리고 번개처럼 무언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는지 박수를 딱 치면서 소리치는 서라였다.
"어! 딜도! 망가!"
마당으로 떨어진 그것이 고장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은별은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져서는 소리치면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보야…! 그걸 왜 밖에 던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