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바캉스에서 생긴 일(메인 파트)>
“그러니까 지금 네가 하는 말이 바다에 가자 이 말이냐?”
“그래. 4박 5일로 잡을 테니까 아는 사람들 전부 모으라는 소리지.”
때는 점심. 민국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1층에서 예나를 기다리던 때였다. 그는 갑작스런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바로 스트레스를 풀자는 의미에서 4박 5일의 바캉스를 떠나자는 제안. 민국은 전화를 건 상대를 떠올렸다. 인터넷 남자 비제이, 민국과 그나마 동성으로서 친근한 친구. 쿠왁이었다.
본명은 김민철.
‘이 녀석이 이런 제안을 쉽게 할 놈이 아닌데.’
김민철도 민국이를 따라 워낙 짠돌이에 가까운 놈이었기 때문에, 부질없이 돈이 새어나가는 곳에는 절대 돈을 쓰지 않았다. 약삭빠른 민국은 그의 숨겨진 본 목적을 추궁했다.
“내가 코난 경력 5년차로서 직감하건데 네가 단순히 즐기자는 차원에서 바캉스를 가자고 제안할 놈이 아니거든.”
“너 지금까지 날 그렇게밖에 안 봤냐? 실망이다.”
“바캉스에 서라는 제외한다.”
“야 잠깐만. 실망 안할게.”
‘역시.’
본 목적을 금방 알아낸 민국이었다. 결국엔 서라가 목적이었나? 민철은 아직도 서라를 향한 애정을 포기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얘 진짜 어쩌려고 이러는 거냐.’
서라는 이미 민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민국에게 확실히 표명한 뒤였다. 서라도 줄곧 그를 피해다닐 정도면, 민철도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직감했을 터였다. 하지만 민철은 열 번 떨어질 나무도 열 한 번 올라가면 바나나를 캘 수 있다는 생각에서 계속해서 덤비는 모양이었다.
“다시 말해주는 바지만 서라는 너 안 좋아해. 걔가 동성을 사랑할 수 있는 타입도 아니고.”
“굳이 대시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다. 그냥 같이 가고 싶어서.”
“몸이 멀어야 마음도 멀어지는 법.”
민국은 완전히 서라를 향한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거절을 하려고 했다. 그때 민철이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바캉스 금액 전원 내가 지불.”
“…….”
“은별 씨가 수영복을 입고 너에게 달려드는 걸 보고 싶지 않냐?”
민국은 가슴이 덜커덩했다. 저도 모르게 상상의 나라로 빠져드는 민국이었다. 은별이가… 은별이가 수영복을 입고 달려든다니!
“와, 빈유의 참맛을 볼 수 있긴 하겠네.”
“그렇지? 어떠냐. 끌리지 않아?”
“하지만 서라의 입장도 물어봐야지. 만일 안 된다고 하면 거절한다.”
“그래. 그건 하는 수 없지.”
“그리고 만일 서라가 못 간다고 하면 은별이랑 나만 가게 바캉스 전액 지불해줘.”
“멍청아 그게 말이 되냐?”
이윽고 김민철과의 통화를 마친 민국이었다. 민국은 곧장 서라에게 통화를 걸어보았다. 뚜루루루…. 잠시 후 통화를 받는 서라였다.
“네 안녕하세여 파일로리 본부장입니다.”
“…이 새끼야 내 파일로리 돌려놔.”
“호갱님이 부탁하신 의견은 파일로리 홈페이지 책임부에 의견을 묻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뚝하고 통화를 끊는 서라였다. 민국은 다시금 연락을 시도했다.
“엇 형! 무슨 일임?”
“…제발 부탁이니까 파일로리 좀 돌려줘.”
굽신거리는 민국이었다. 서라는 ‘ㅋ.’하면서 실소를 머금다가 말을 이었다.
“이미 오늘 아침에 비밀번호 다시 바꿔놓았음! 확인해보셈!”
“어 그래? 잠만 끊지마.”
이윽고 민국이 서라와 통화를 하는 상태에서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들어갔다. 그리고 파일로리에 접속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확인해보자, 쉽게 로그인되었다.
“데헷!”
“…….”
이윽고 다운로드 받은 항목들을 확인해보는 민국이었다. 다행히 민국이 받았던 항목들은 무사히 존재하였다. 집에 돌아가서 재다운로드 받아 은별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꽁꽁 숨겨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안 보던 사이에 어쩐지 다운로드 받은 파일이 많이 는 것 같구나.”
“헤헤 내가 좀 썼지여! 아주 볼만했지여!”
“헛, 버스에서 어머니가 자는 사이에 딸에게 격렬한 테크닉을 벌이다 라니, 네 취향이 이런 거였냐?”
“어, 어멋! 어떻게 남에 성적 취향을 확인할 수 있는 거져? 부끄러워서 토마토가 될 거 같네여!”
서라는 진심으로 조금 부끄러운 듯 그리 소리쳤다. 아무래도 비밀번호를 바꾸기 전 다운로드 항목을 삭제하는 걸 잊은 모양이었다. 민국은 음흉하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후후후후, 너의 성적 취향은 대충 알았다. 나중에 널 공략할 때 유용하게 써먹히겠군.”
“히, 히익! 소인은 포켓몬이 아닙니다요!”
어쨌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너 혹시 바캉스 갈 생각 없냐?”
“윙? 바캉스? 어디로 말입니까여?”
“바캉스하면 어디겠냐. 당연히 바다지. 물론 해외로 가는 건 아니니까 큰 기대는 품지 마라.”
“와! 재밌겠는데여? 꼭 가고 싶…!”
“근데 주최자가 김민철이다.”
”진 않네여…!“
곧잘 말이 바뀌는 서라였다. 민국은 방금 전 서라가 했던 것처럼 ‘ㅋ.’하고 조소를 머금었다. 이윽고 민국이 말을 이었다.
“역시 민철이가 주최하는 곳에 가는 건 좀 그러려나.”
“그, 그렇지여. 아무래도 그렇지여! 그와 함께 동행하는 건 내 항문이 위험하지여!”
“쩝. 뭐 나도 개인적으로 그리 생각한다. 근데 너도 바캉스 자체는 생각이 있냐?”
민국의 물음에 서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생각은 있음. 근데 이 몸이 원하는 건 항문의 위협을 받지 않는 평화로운 바캉스임.”
“흠. 바캉스라.”
민철을 통해 갑작스레 떠오른 바캉스였지만 한 번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민철의 금액 전액 지불로 공짜로 가는 바캉스 여행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럼 내가 따로 주최해서 진행해볼까?”
“우와!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임!”
“하하하! 민철이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군!”
아마 민철이를 빼고 바캉스를 가겠다며, 아이디어 지불에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했다간 민철이는 부리나케 화를 낼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민국은 이 사실을 민철에게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이윽고 서라와 통화를 끊은 민국은 민철이에게 이렇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야, 역시 안 된단다. 그냥 관두자.’
‘아… 그러냐.’
민국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곧장 반응이 오는 민철이었다. 민국은 어쩌다 네가 조연을 맡게 되어서 이런 참담한 일을 겪게 되었을까 진정한 슬픔에 또르르르 눈물을 흘렸다.
‘다음 생에는 주연급은 아니되 조연에서도 비중을 차지하는 놈이 되길.’
결과적으로는 지금이랑 다를 게 없다. 정말 쓸모없는 소원을 빈 후 민국은 다음 상대로 은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 한참 동안 통화음이 울린 다음에서야 은별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 민국이 아버지인데 생사에 숨겨진 비밀을 하나 알려주겠네. 사실 너와 민국이는 피가 이어진 남매야.”
“어머, 그래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전개네요.”
“음 그렇지.”
“보통은 드라마에선 남매임에도 불구하고 결혼하던데 저는 극 현실주의자라서요! 헤어질게요.”
“어헛! 이 여자가 헤어진단 말을 그리 함부로 쓰는 거 아니야!”
헛기침을 하고는 민국이 본래 목소리로 물었다.
“뭐하시오 내 아내여.”
“언제 결혼을 했다고 벌써부터 아내 타령이야? 식당에서 밥 먹고 있어.”
“그럼 식당에서 밥 먹는 와중에 나에게 그런 신성한 드립을 쳤단 말이오? 허허 과연 비제이의 피가 흐르는 여자로군.”
“아무튼 왜 전화했는데?”
민국은 본론을 언급했다.
“혹시 바캉스 생각 있어?”
“음? 바캉스?”
“그래. 바캉스. 한 번 이참에 사람들 꾸려서 바다에 놀러나 가볼까 하거든.”
그 말에 은별은 잠시 동안 뜸을 들이다가 ‘음.’하고는 도도하게 말했다.
“생각은 있어. 하지만 대학교 수업도 있고 길게는 못 있을 거 같은데?”
“그러하군. 그러면 한 2박 3일이 적당하겠구만. 주말까지 포함해서.”
“…잠깐, 대체 일정을 어떻게 잡게?”
민국은 대충 자신이 생각한 일정을 말해주었다. 이제 막 결정한 일정이었지만 형식은 이러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차를 타고 바닷가로 향해서, 미리 2박 3일 동안 계약해둔 집에서 재미나게 놀다가 월요일 아침 일찍 돌아오는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돌아오자마자 수업이라도 하라고? 피곤할 텐데?”
“정 피곤함으로 다크서클이 생겨 외모에 지장이 생기는 게 불안하다면 교수님에게 애교라도 부려서 빠져보는 게 어떻겠는가?”
“싫거든? 난 출석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여인이에요.”
하지만 민국이 어설프게 세운 계획도 나름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도 민국과 처음으로 바캉스를 떠나보는 것이었으니까 말이었다.
“그래도 한 번 생각은 해볼게. 나쁘진 않은 제안이니까.”
“오오.”
“그리고 금액은 개개인으로 지불하는 거 맞지?”
“개개인으로 지불하는 건 아닙니다.”
은별이 ‘응?’하면서 추궁하듯 물어왔다.
“설마 너 혼자 지불하겠다는 거야?”
“그렇지. 내가 주최하는 건데.”
“…장난해? 몇 명이 갈지 모르지만 한 두 명만 가도 비용이 좀 나올 텐데 전액 지불이라니! 너희 집에 그렇게 돈이 많아?”
“엣헴, 석유왕자와 친구가 되면 못할 것도 없소. 아직 그런 친구가 내 주위에 없지만.”
“됐으니까 개개인씩 내는 거로 해. 어차피 비제이들끼리 갈 거지? 인기 있는 비제이들이면 어차피 돈이야 적당히 있을 테니까 따로따로 내게 하고.”
“오오오오, 은별양. 지금 내 자금 걱정을 해주는 건가? 여자들은 결혼할 남자의 돈을 걱정해준다던데!”
“…평등한 게 좋으니까 그러는 거야 바보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은별은 민국이 전액을 지불하는 게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까지 무리를 하면서 바캉스를 갈 필요가 없던 것이다.
은별 또한 비제이를 통해 번 돈이 일반 직장인들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많았다. 애초에 상위 1%에 드는 유명 비제이들이다.
말이 한 달 300이지 그 이상을 버는 건 기본이었다. 이윽고 은별과의 통화가 끊긴 뒤였다.
민국은 은별이의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상냥함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때, 옆에 등장한 누군가가 은근슬쩍 입을 열었다.
“방금 그 전화 은별 씨야?”
“…….”
만면에 웃음을 담고 있던 민국의 안색이 조금 굳었다. 이윽고 그 안색 그대로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는 민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민국이 기다리던 예나는 어느새 그의 옆에 도착해서 전화 통화하는 걸 듣고 있었다. 이윽고 민국이 잠시 당황하는 눈빛을 취하는가 싶더니 말을 이었다.
“아! 어, 어어. 그, 그렇지.”
이렇게 심하게 당황하는 것도 예나에게나 가능한 일이리라. 예나는 그런 민국을 잠시 동안 쳐다보다가 이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조곤한 목소리로 슬쩍 입을 여는 예나였다.
“바캉스라고 했지…?”
“…….”
“단 둘이 가는 거야…?”
여자 친구와 단 둘이 가냐는 질문에 민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모르지만 일단은 단체로 가는 거야. 하지만 개개인이 금액 지불하고 가는 거로 바뀌어서 사람들에게 참여할 의사가 있냐고 한 번씩 물어봐야 할 거 같아.”
“그렇구나. 그럼 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은별 씨랑 단 둘이 가게 되는 거야?”
예나의 질문에 민국은 잠시 동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엇? 정말 그렇게 되네?’
어쩜 이거 기회 아닌가? 2박 3일의 단 둘만의 바캉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민국은 이참에 나머지 비제이들은 참여 안한다고 거짓말을 친 뒤 은별과 단 둘이 갈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렇게 되겠지?”
“…….”
침묵하던 예나가 이윽고 결심을 다진 눈동자로 질문했다.
“나도 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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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메인 스토리 1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