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그만해.”
“헠헠! 대왕찡! 대왕찡의 사진만 보면 가슴이 마구 마구 설레! A컵이 D컵이 될 것 같은 느낌이야! 하지만 마음만 빵빵하지 실제로 가슴은 그다지 빵빵하지 않아! 하지만 현대왕은 짱짱!”
“하지 말라고 했다…?”
“대왕이 사진 보니까 갑자기 그곳도 시려! 으앙! 안 되겠어! 얼른 가서 자….”
“야 이 미친놈아! 너 거기서 더하면 진짜 거기 잘라버릴 줄 알아!”
“예압.”
남고딩이 흥분해서 씩씩거렸다. 이윽고 고딩도 지지 않고 현대왕의 캐릭터를 찾기 시작했다. 현대왕의 캐릭터는 다크템플러였다. 그 다크템플러의 비콘으로 들어간 고딩은 곧 생성된 다크템플러를 막 돌리면서 소리쳤다.
“아! 난 현대왕! 남고딩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어쩔 수 없는 등신이야!”
“흠.”
“남고딩을 떠올릴 때마다 변태가 되어버리는 바보 버러지 등신!”
“흠흠.”
“…왜 반박을 안 해?”
“엣헴, 맞는 말에 뭣 하러 토를 달겠소.”
“…….”
진짜 키보드 워리어는 상대와 말싸움을 벌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공감을 하면서 게이처럼 행동한다. 그럼 상대 역시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을 내지 않고 현대왕은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더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지. 난 남고딩을 생각하면서 오른손을 놀리기도 한다오. 우람한 그것을 열심히 오른손으로 놀리면서 헠헠! 남고딩! 소리치며 그녀의 얼굴에 나의 씨앗을 있는 힘껏 분출하는 꿈을….”
“이런 미친놈아!”
남고딩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현대왕의 솔직함에 채팅창의 시청자들은 폭소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걱정하는 여자 시청자들도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저거 성폭행 아닌 가….]
“아무리 상상 속이라지만 너 같은 짐승에게 그런 짓을 당한다니… 그것만으로도 굴욕이야!”
“어헛? 본래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며 남자들은 다 그런 행동을 하는 법이야. 네 학교에 같은 학과 동기있지? 그 중에 분명 무리에 잘 속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애들이 있을 거야. 그런 침침한 애들조차도 너를 생각하며 그 짓을 할 수 있다는 거지!”
남고딩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현대왕은 마치 남자들만이 아는 진실을 세상에 전파한 사람처럼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어떠십니까 여러분? 세상은 원래 이렇게 쓰디쓴 맛이 나는 곳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계속해서 살고 싶습니까? 그럼 모두 비타 500을 먹고 드라군 춤을 춥시다!”
“뭔 뜬금포래… 그리고 드라군 춤이 뭔데?”
“허허, 츤고딩. 아직도 드라군 춤이 뭔지 모르나? 갈 길이 멀었군.”
“그러니까! 뭔데 대체?”
“내 화사한 어휘력으로 굳이 표현을 한다면 이런 거지. 천장을 볼 수 있게 바르게 누운 자세에서 두 손을 뒤로 뻗어 바닥을 바치고 두 발도 바치고 허리를 일으키는 거지.”
남고딩은 곰곰이 상상해보았다.
“그래서?”
“거기서 열심히 골반을 튕기는 거야. 아래에서 위로 열심히! 그것이 바로 드라군 춤이지.”
“…….”
“아마 언젠간 내가 너를 향해 그 춤을 출 지도 몰라. 그리고 너는 그 춤을 통해 진한 쾌락을 느끼겠지.”
“어떻게 그게 진한 쾌락을 줄 수 있는 건데?”
“그게 보통 춤이 아니거든. 왜냐하면 그건 섹….”
“야! 닥쳐!”
이 이상은 방송 불가다. 전체 이용가 방송이기 때문에 성인 단어가 언급되면 방송국에서 제제를 가하는 것이다. 아무리 요즘 어린애들이 알 거 다 알고 볼 거 다 본다지만 성 발언은 접어둬야 했다.
“조흔 태클이다.”
현대왕도 자기가 방송 규정에 어긋나는 발언을 한 거라 실감했는지 남고딩의 태클을 반가워했다. 역시 그녀만큼 적절하게 태클을 해주는 비제이도 드물었다. 남고딩은 살짝 찌푸린 인상으로 마우스를 달칵달칵 거리며 다크템플러를 클릭했다.
“아무튼, 이제부터 뭐 어쩔 건데? 이걸로 무슨 가족놀이를 하자고?”
“너와 나의 사랑 이야기를 하는 거야.”
“…닥치고, 저건 뭐야?"
고딩은 지도에 있는 맵 한 곳을 지정하며 가리켰다. 팀으로 지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남고딩이 가리키는 지도의 칸이 현대왕에게도 보였다.
“뭐긴 뭐야. 신혼집이지.”
“마을이잖아 마을! 이 거지야!”
“알면서 왜 물은 거요? 허허. 괜히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말을 건 것 같군.”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얼굴로 고딩은 ‘후우….’ 한숨을 쉬었다. 현대왕은 두 번 헛기침을 하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지도에 보이는 마을은 우리가 생활할 마을이야. 유즈맵 제작자가 만든 스토리상으로 우리는 떠돌이 여행자고 마을에 들려 마을을 침략하려는 나쁜 몬스터들을 처단하는 이야기래.”
“그럼 저 노란 색으로 비추는 녀석들이 몬스터들이겠네?”
지도에 노란색으로 표시된 것들은 몬스터들이었다. 종족은 저그였고 마을의 외곽 정문으로 저글링 한두 마리가 몇 분 간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마을의 NPC인 하얀색 마린이 보초를 맡아 죽여가고 있었고 말이다. 현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시.”
“좋아, 그럼 시작해. 우리 사이는 뭐로 할 거야? 그냥 떠돌이 여행자?”
“여자들에게 너무나도 인기가 많은 현대왕과 그런 나를 사랑하는 여인의….”
“닥치고 그냥 떠돌이 여행자로 해.”
“예압.”
어차피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눈요기 방송이었다. 보통 때 남고딩은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으로 가족놀이를 하면서 놀진 않았다. 현대왕이라면 몰라도….
“…그럼 시작한다.”
“요시 그란도 시즌.”
연기톤을 하기 위해 남고딩이 목소리를 다듬고 준비했다. 이윽고 그녀가 먼저 아무것도 없는 허팔한 대지에 다크템플러를 움직이면서 가족놀이의 운을 띄었다.
“봐봐! 저기 마을이 있어!”
“그래, 근데 대왕아. 너 남자잖아. 왜 여자처럼 말을 해?”
“아, 그렇지….”
돌이켜보니 남고딩이 고른 캐릭터는 현대왕이었다. 씨불롬의 현대왕… 이라고 속내로 중얼거리며 고딩은 남자처럼 굵직한 톤을 내기 시작했다.
“고딩아, 그런데 너는 왜 남자처럼 말을 해? 넌 여자잖아?”
“무슨 소리야? 난 원래 남자였어.”
“…네가?”
“응응! 난 남자였어! 나도 내가 남자인 걸 어제 뒤늦게 알았어! 몸은 여자지만 마음은 여자를 사랑하는 게이였던 거야! 난 나 자신이 너무 좋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다! 아! 가슴만 제외하고!”
“그래… 너 나중에 집에 가서 보자.”
고딩은 진짜 아령을 들고 현대왕의 집에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일단 이 방송을 끝내고. 어쨌든 간에 두 사람은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저글링 남고딩과 다크템플러 현대왕. 두 사람은 마을이라 글씨가 적힌 서플라이 디팟을 둘러보다가 운을 띄었다.
“여기 마을은 최첨단 과학 시설로 이루어져 있나봐.”
“…배경은 중세 시대 풍이거든?”
“뭐 어떤가. 유즈맵인데.”
“어쩌자는 거야 이 거지야?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고딩의 말을 곧잘 씹어 보인 현대왕은 저글링을 움직여 정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달려드는 저글링 무리의 습격을 받고 있는 마린이 보였다. 현대왕이 놀란 것처럼 소리치며 다크템플러에게 다가갔다.
“잘 생긴 대왕아! 큰 일 났어! 마을을 침략해온 남고딩 때가 엄청 많아!”
“…뭐?”
그러고 보니 현대왕이 선택한 저글링은 영웅 저글링이었다. 마을을 습격 중인 저글링들은 일반 저글링이었다. 하지만 겉이 똑같이 생겼다 보니 착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고딩은 제작자가 대체 무슨 까닭으로 자신을 저글링으로 지정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거지같다고 느꼈다. 현대왕이 지정된 저글링을 원형으로 돌리면서 설레발치듯 소리쳤다.
“빨리! 빨리 구해야 해! 마을 보초가 위험해! 후장이 따먹혀서 죽을 지도 몰라!”
“왜 하필 후장이 따먹혀서 죽는데…? 아무튼 알겠어, 빨리 가보자.”
그리고 남고딩도 다크템플러를 이동시켜 현대왕을 따라갔다. 마을 외곽 정문 앞에서 저글링들과 무참히 싸우는 마린 두 명이 보였다. 남고딩이 놀란 것처럼 소리쳤다.
“어머! 아니… 우왓!”
그만 여자처럼 감탄사를 내버린 츤고딩이었다. 현대왕이 옆에서 다시 부추겼다.
“빨리 구해야해! 구하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하고 말아!”
“지구가 무슨 상관인진 모르지만 얼른 구하러 가자!”
어색한 연기톤으로 남고딩은 마린을 구하기 위해 선두로 달려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막 보초 마린을 구하기 위해 싸움에 참여했을 때 정작 부추긴 현대왕은 뒤에서 따라오지 않았다. 고딩이 보다 못해 한 마디 했다.
“현대… 아니 남고딩! 뭐해? 빨리 와야지!”
“엉. 글쎄.”
저글링 무리가 그새 고딩을 감쌌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마을 정문을 지키는 마린 두 마리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요상함을 감지한 고딩이 마린을 클릭해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방어 255… 체력은 9999… 하지만 그런 마린을 때리는 저글링의 공격력은 1. 참고로 현재 남고딩의 캐릭터는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아 방어력이 0이었고 체력은 100이었다.
“야….”
“어흠흠!”
“야! 현대왕!”
“남고딩입니다 엣헴. 욕을 하시려면 남고딩을 욕하시지요.”
그런 대화가 오가는 동안 고딩의 다크템플러는 체력이 점차 바닥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고딩은 속았다는 생각에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얼른 다크템플러가 죽길 바랐다. 어차피 가족놀이니까 다시 살아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 끄아악.
이윽고 죽는 소리와 함께 다크템플러가 사라졌다. 남고딩은 지도 여느 곳곳을 둘러보면서 다크템플러가 부활할 자리를 찾아보았다.
“뭐야?”
그런데 이상했다.
“이거 부활 안 해?”
현대왕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엉.”
“장난해? 부활도 안 하는 가족놀이가 어디 있어?!”
부활하면 바로 다크템플러로 현대왕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복수도 못하게 부활이 아예 안 된다니…. 현대왕이 그 까닭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제작자가 유즈맵 트리거를 잘 못한대.”
“…….”
“그래서 그런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