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게임 방송을 하다(4)>
“어째서 나는 기회를 놓쳤는가 으아아아아.”
3일 정도 지난 뒤였다. 민국은 대학교 수업 과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눕기를 반복했다.
일순간 들이닥친 강렬한 식욕으로 말미암아 동정 탈출의 기회를 버렸다는 게 자기도 황당했다. 애초에 생각해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첫 경험을 꿈꾸는 남자들이라면 다들 미친 듯이 꿈꿀 그 이상향을 눈앞에서 두고도 다른 것을 탐하다니 말이었다.
‘음모야! 여기엔 분명 음모가 있어!’
장난으로 말한 건지 진심으로 말한 건지는 몰라도 그것엔 진짜 음모가 있었다.
“…일단 오늘은 방송이나 합시다.”
충격으로 말미암아 벌써 3일간 방송을 하지도 않았다. 매사에 성실하던 민국이 이토록 방송을 하지 않게 된 건 시상식 이후부터겠지. 민국은 컴퓨터에 접속하여 현재 방송 중인 친구 비제이 목록을 확인해 보았다.
민국의 동정 탈피를 도와주려던 하나뿐인 여자 친구, 남고딩이 이미 방송 중에 있었다. 민국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늘 어떤 컨텐츠를 이용하여 방송을 할까 폴더함을 뒤적였다.
‘마인 크래프트, 롤, 월드 오브 탱크, 디아블로.’
별의별 잡다한 게임이 존재했지만 걔 중에 맘에 드는 건 썩 없었다. 민국은 오늘 역시 합동방송으로 진행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합동방송에서 맞는 게임이 있어야겠지? 저번 쿠왁 때처럼 말로만 하는 것도 슬슬 질릴 타이밍이었다.
‘스타크래프트.’
민국의 눈에 딱 뜨인 것은 바로 그 게임이었다.
‘이거다.’
스타크래프트는 우리나라 온 게임넷에서 약 10년 이상 리그를 펼쳤던 엄청난 게임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게임이라 할 수 있었고, 이제 그 뒤를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이 이어가고 있었다.
스타크래프트는 프로토스, 태란, 저그라는 세 종족으로 이루어져 유닛을 생산하고 적과 싸우는 전략 시물레이션 게임이었는데, 단순히 대전만 하는 게 아니라 각자 맵을 만들어 게임을 하는 방식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 진행할 게임은 그 스타크래프트에서 제작된 게임으로, 일명 유즈맵을 하나 할 생각이었다. 그것은 바로….
‘BJ 가족 놀이!’
파뿌리 TV 계에서 유명한 비제이들의 역할을 맡아 가족 놀이를 하는 유즈맵이었다. 작년 민국이 생일 선물을 맞이했을 때 한 시청자가 직접 제작해서 주었던 유즈맵이었는데, 민국은 ‘오글거립니다 님이나 가지세요.’하고 쿨하게 내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때 시청자는 어찌 나한테 그럴 수 있냐며 울며불며 민국의 안티팬으로 변모했던 기억이….
‘음, 역시 난 멋져.’
민국은 오늘 이 유즈맵으로 방송 비제이와 한 바탕 거하게 놀아볼 계획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방송을 시작했다. 현대왕으로 변모하는 지금, 그에겐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오프닝 음악을 틀었고 시청자들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대왕!]
[어디 갔다 이제 옴? 요즘 여친님 만나서 그런 가 방송이 뜸해지네.]
[생수! 생수!]
오랜만에 입성한 현대왕의 방송에서 시청자들은 채팅으로 열렬히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민국은 마조히스트의 성향을 띄우며 비난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전율했다.
“앙, 더해줘.”
민국은 순식간에 칠백 명으로 뛰어넘는 방송 인원을 보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현대왕입니다.”
* *
[현대왕은 개뿔. 귀신 처녀막 따는 소리하네. 방송이나 다시 성실히 해라!]
“아, 저 한 때 귀신 처녀막 진짜로 딴 적 있습니다. 귀신이 마지막에 내 처녀 책임져! 하면서 저의 어깨에 기대더군요. 저는 그런 귀신을 쿨하게 무시하며 담배를 한 모금 피었습니다. 크아~ 그날의 기억이 자꾸 저를 아련하게 하는군요.”
[현대왕님…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셨어요 ㅠㅠ. 3일이나 늦으셨네….]
“그녀의 구멍 속에 잠시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뭐?]
[응?]
[?!]
“…라고 하고 싶은데 씨부럴!”
심상치 않은 발언에 의아해하는 시청자들을 뒤로하고, 현대왕은 아쉬운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몸서리치며 발버둥치는 모습이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ㅅㅂ]
“엣헴, 일이 있다 보면 다~ 늦어지는 법! 원래 여자 친구가 있으면 인생이 피곤해지는 법입니다. 여러분도 크리스마스 때 함께 할 여자 친구… 아 미안합니다. 니들은 솔로죠?”
[ㅅㅂ….]
[ㅠㅠ….]
현대왕은 ‘흠흠’하고 목청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오늘은 제게 사연이 있는 게임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들려드릴까요?”
[필요 없어! ㅅㅅ]
“여러분이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한 번 얘기를 해드리지요.”
현대왕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예전에 친척 집에 내려갔을 때 친척 누나랑 친하게 지낸 적이 있습니다. 저보다 딱 한 살 많은 누나였죠. 어릴 때부터 서로 알몸을 보고 목욕을 했던 지라 거리낌이 없던 사이입니다.”
[헐.]
[요시!]
본래 ‘누나’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남자들은 하나같이 야한 이야기를 떠올리는 법. 그건 누나에 대한 환상이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외동아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한 중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땔까요? 남들보다 늦은 시기에 도쿄핫을 접한 저는 슬슬 야동에 눈을 뜨고 있었죠. 여자에 대한 성에도 눈이 트여 여자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친척 누나가 그때부터 조금 날라리처럼 다녔는지 시골에 내려왔을 때도 야한 핫팬츠를 입고 있더군요. 그 기다란 각선미가 얼마나 야해 보이던지….”
[오옹….]
[ㅎㅎ]
“저는 꼴릿하는 느낌을 받았죠. 하지만 참기 위해서 견뎠습니다! 본래 사나이라면 이성을 잃지 않고 견뎌야 할 때도 있는 법! 그래서 완강히 고집을 부리고 있는데 갑자기 저를 바라보는 친척 누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지더군요. 그리고 뜸을 들이던 누나가 저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야, 이리로 와봐.
“저는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오랜만에 보는 친척 누나가 간만에 같이 목욕 안 할래? 라고 하더군요! 이런 세상만사 아니 좋을 수가! 전 처음으로 부처님과 하나님에게 감사를 하였고 주절먹을 위해 슬슬 자신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들어와.
“이윽고 먼저 들어간 친척 누나가 옷을 다 벗었는지 저에게 그렇게 말을 하더군요. 저는 불끈불끈 솟아오르려는 욕정을 참으면서 화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주작 한 마리가 있더군요. 네, 오늘은 흑역사가 있는 그분의 주작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해보려고 합니다.”
[잌]
“날아오르라! 주작이여!”
현대왕은 시청자들이 보지도 못하는데 두 손을 펄럭였다. 마치 한 마리의 고귀한 새처럼 손짓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이윽고 침착함을 되찾은 현대왕이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여러분, 스타크래프트가 대충 무슨 게임인지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1990년대에 출시된 이 게임은 한 때 우리나라 게임의 한 획을 그은 게임으로서 온 게임넷에서 리그를 통해 열렬히 방송되기도 했지요.”
스타크래프트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게임에 전무한 노인들도, 여자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그 이름. 전략 시물레이션으로 세 종족을 골라 전쟁을 벌이는 게임.
“오늘 제가 이 스타크래프트를 이용해서 아주 기가 막힌 컨텐츠를 알아냈어요. 알고 싶습니까? 궁금해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시청자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역시 이런 개그는 현대왕인 그에게 걸맞는 개그가 아니었다. 야유를 무시하며 현대왕은 스카이 라이프에 접속해 보았다. 역시나 방송 중인 남고딩은 스카이 라이프에도 접속해 있었다.
‘서라는 아직 안 들어왔네.’
방송 전 전화를 해보니 오늘은 부모님과 식사가 있어 늦게 들어온다고 얘기한 서라였다. 현대왕은 ‘그렇다면!’하면서 음흉한 웃음을 씨익 짓고는 하나뿐인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연락했다. 뚜루루루루…. 머지않아 그의 여자친구인 남고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으헝헝.”
“시끄러워. 끊는다.”
방송 중이라 바쁘다며 전화를 바로 끊는 남고딩이었다. 현대왕은 묘한 분노감에 부들부들 떨다가 다시 통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
“여자보다 칙촉을 좋아하시는 우리 호갱님. 어쩐 일로 두 차례나 다시 전화를 하시나요?”
“전화 안 받고 튕기는 거 보소. 이 여자는 항상 밀당을 이런 식으로 합니다. 훗, 초보 때나 하던 짓을.”
“널 상대라 내가 왜 밀당을 해? 가서 칙촉이랑 해라.”
“치, 칙촉! 부들부들….”
남고딩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방송하느라 바쁜데 왜 자꾸 전화질이야?”
“엇흠. 다른 남자와 혹시라도 바람피울까 싶어 불안감에 전화를 건 것이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오 낭자.”
“…지랄.”
욕설을 내뱉는 고딩이었지만 결코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시청자들은 그런 둘 사이를 보면서 [으 염장!]하고 소리쳤다. 현대왕이 장난삼아 말을 이었다.
“내가 오늘 집에 가는데 어떤 여자가 나한테 번호 좀 알려달라고 고백을 하더라. 네 생각나서 안 받았어.”
“그래? 안타깝네. 난 어떤 남자가 정문 앞에서 나 기다리면서 고백하길래 받아줬는데?”
“그렇군. 권태기가 오면 잠시 다른 남자에게 한 눈 팔 수도 있지. 난 착한 남자니까 이해해주겠어.”
“네가 착한 남자면 전 세계 착한 남자들은 다 얼어 죽을걸?”
“진심으로 얼어 죽길 바랍니다.”
남고딩이 ‘칙촉이나 좋아하는 게….’하면서 궁시렁거렸다. 이윽고 현대왕이 제안했다.
“낭자. 우리 오붓한 애인 사이로서 시청자들에게 염장을 저질러주는 건 어떱니까? 고로 같이 방송하자.”
“무슨 방송.”
“스타크래프트.”
“…그 재미없는 걸 하자고?”
스타크래프트는 남고딩이 별로 좋아하는 게임이 아니었다. 특히 여자들 대부분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허나, 현대왕은 딱 잘라 말했다.
“전쟁을 하자는 게 아니라 유즈맵하자고.”
“무슨 유즈맵인데?”
“옷 벗기기.”
“변태놈아!”
“엇흠, 왜 고운 선비의 마음을 가지려고 하시오? 본능에 의존하는 사람이 되시오.”
“너 같이 오로지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칙촉남은 되고 싶지 않아.”
“허허허, 음탕한 여인 같으니.”
다시 화제를 돌려.
“여튼 스타크래프트 들어와.”
“잠깐! 아직 난 한다고 하지 않았거든?”
“응? 난 들었는데.”
“듣긴 뭘 들어?”
“으힝힝! 현대왕이랑 같이 게임한다! 너무 기뻐 아이시떼루! 라고 소리쳤잖아 방금?”
남고딩은 ‘하아….’하고 한 번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너 마약했구나?”
“그래! 바로 너라는 마약! 난 너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무, 무슨 헛소리야!”
도발을 하려던 고딩이 되레 당해버렸다. 더욱 웃긴 것은 현대왕의 그런 멘트 하나 하나에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느끼는 자신이었다. 현대왕은 곧장 스타크레프트를 키고 방송 화면에 게임을 드리웠다. 고딩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내두르며 스타크래프트에 접속했다.
“접속했소?”
“진즉에 했어.”
“허허, 역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랑 하고 싶어서 진즉에 스타크래프트를 깔아두었군.”
“예전에 깔아놓고 삭제하기 귀찮아서 내버려뒀던 거거든?”
스타크래프트 립버전, 대국민이 사용하는 피쉬 서버에 접속한 두 사람이었다. 현대왕은 간만에 들어가는지라 다시 아이디를 생성해야 했다. 어떤 아이디로 만들까 고민하던 현대왕은 이렇게 결정했다.
‘18cm.'
rkd111이라는 평범한 아이디로 로그인한 남고딩은 현대왕의 아이디를 확인하는 순간 화악 얼굴이 붉어지는 걸 참았다. 이윽고 남고딩이 같은 채널에 접속 중인 현대왕에게 질문했다.
rkd111 : 뭐할 거야.
18cm : 아… 내 닉네임처럼 될 것 같아!!
rkd111 : …닥쳐
18cm : 일단 친추하고 따라서 들어와봐. 비번은 스카이 라이프 채팅으로 보내줌.
rkd111 : 어
시청자들이 따라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현대왕은 폭풍으로 몰아치는 시청자들의 귓속말을 진즉에 차단했다. 그리고 비번을 걸고 방에 접속했다. 이윽고 스카이 라이프 채팅창으로 비번을 확인한 고딩이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하고자 하는 유즈맵을 확인하는 순간 말을 잃었다.
“가족 놀이?”
“그래. 평범한 가족 놀이가 아니지.”
“그래, BJ 가족 놀이네. 이게 뭐야, 나도 나와?”
현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저글링으로 나와.”
“…왠지 안 어울리네.”
뜸을 들이던 남고딩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 둘이서 이걸 하자고?”
“왜? 설마 설레나?”
“단 둘이하면 재미없을 것 같으니까 그러는 거잖아 이 멍충아!”
5초간의 카운트 끝에 게임에 접속했고, 64x64의 작은 맵이 등장했다. 딱 여섯 명 정도가 함께 하기에 괜찮은 맵이었다.
“캐릭터 고를 수 있네.”
남고딩의 말이었고 현대왕은 후다닥 비콘과 함께 고를 수 있게 나열된 캐릭터들 중 저글링을 선택했다. 바로 Bj 남고딩이었다. 그리고 현대왕은 BJ 남고딩에 빙의된 것처럼 저글링을 제자리에서 원형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앙! 현대왕이 보고 싶어 부끄부끄! 너무 보고 싶어 부끄부끄!”
남고딩은 집에 있는 아령을 들고 그의 집까지 찾아가 던져버릴까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계속해서 관심 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개연성 문제 같은 경우는 제가 워낙 불친절하게 글을 쓰는 타입이다 보니 노력해도 그런 성향이 글에 드문드문 나오곤 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볼 떄 '아, 이거 뭔가 어거지다.'싶은 경우도 많고...
뒤늦게서야 어거지 같던 부분들이 하나 하나 풀려나가는 식이 많습니다.
이게 소설 쓸 때 제 버릇이더라구요.
다만 현대왕은 막장계 코믹 소설로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보니 그냥 적당한 선의 개연성을 유지하고, 막장스러운 스토리로 진행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든 간에 늘 제 글에 도움을 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H씬은 꼭 나오니까 아쉬워하지 마시구요.
아! 그리고 쿠폰 주시는 분 및 후원 쿠폰 주시는 분들도 감사드려요.
진즉에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