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니코니코니!>
“니코니코니! 아나따와 하트에 니코니코니!”
…….
“움~다메다메다메~ 니코니는~ 민나노꺼야!”
요즘 한창 대세 중인 니코니코니.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에서 시작된 그 영상은 움짤로 변경되어 많은 사이트에 퍼지고 있었다. 페이스북, 네이버, 웹툰, 각종 유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그 움짤을 패러디하는 영상들이 하나둘씩 등장했고 많은 눈 테러 피해자가 속출했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니코니코니에 대해 설명해주자면… 두 손을 머리 양옆에 두고 토끼처럼 좌우로 머리를 끄덕끄덕해주며 ‘니코니코니!’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대사의 뜻은 한국어로 하면 이러하다.
“싱글벙글! 당신의 하트에 싱글벙글! 움~ 안 돼 안돼요~ 싱글벙글은~ 모두의 꺼야!”
남녀노소 모두가 따라하는 니코니코니! 사람들의 가슴을 좋은 의미로 불태우기 위해 시작된 그 대사는 한창 한국의 언론(?) 이슈로 거듭나고 있었다.
“형님! 이거 보세여! 니코니코니!”
민국은 식사 겸 만나자고 제안한 서라를 따라 서라가 사는 지역으로 갔다. 그리고 전철 출구에 도착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서라의 니코니코니 빔을 맞게 되었다.
“아나따와 하트에 니코니코니!”
“윽! 모에하다! 나도 질 수는 없지! 니코니코니!”
“우엑!”
민국도 지지 않고 니코니코니를 따라하자 서라가 진심으로 토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입가에 묻은 침을 소매로 닦으면서 서라가 중얼거렸다.
“난데요… 내 니코니코니를 받아치다니요…. 정말 노답이시네여 형!”
하지만 민국의 반격은 끝나지 않았다. 두 손을 입가 쪽에 가져다대며 어깨를 씰룩인다.
“우우웅~ 니코니코니가 뭐예여? 난 그런 거 잘 몰라여~.”
“내 친구가 매운 거 먹으면 저러던데.”
“…….”
“올 때 떡볶이 드셨어요?”
진심으로 정색하면서 하는 말에 민국은 굉장히 머쓱해졌다. 이윽고 ‘흠흠’하고 헛기침을 두 번 마친 민국이 진지해진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노답인 나와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으면 그건 너도 곧 노답이라는 소리 아니냐?”
“어멋! 어떻게 매번 그렇게 맞는 소리만 하시져? 모기에게 물린 가랑이 사이가 간지럽네여 데헷!”
서라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해맑게 웃음 지었다. 민국은 그런 서라를 내려다보다가 씩 웃음 짓고는 걸음을 옮겼다. 서라가 그 뒤를 따랐다.
“그건 그렇고 쿠왁은 어때?”
“우와, 말도 마셈. 소오름이 무진장 돋음! 막 남고딩에게 스토커짓하는 서민국 보는 거 같음.”
“남고딩이 좋아하겠구만. 서민국 같이 잘난 애가 스토커 짓도 해주니까.”
“쿠왁이랑 동급인데여?”
서라의 말에 곧장 해드락을 시전하려는 민국이었다. 서라는 바로 ‘항복!’하고 손을 들어서 해드락을 당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그분 정말 남자 좋아하시나 봄.”
“글세. 내가 보기엔 그냥 널 좋아하는 거 같은데. 너 예쁘잖아?”
“우왓! 그런 부끄러운 소리를 너무 쉽게 하시는 거 아니에여? 저 부끄러워여….”
“밥이나 먹자.”
이틀이나 지난 지금, 쿠왁은 아직도 계속해서 서라에게 적극적인 대시를 펼치고 있었다. 어제는 방송 도중에 스카이 라이프로 연락까지 왔다고 한다. 민국은 가면 갈수록 독해지는 쿠왁의 대시에 혀를 내둘렀다.
“역시 내 친구답네.”
“끼리끼리 논다는 게 뭔지 이제 저 알 거 같아여.”
김밥천국에 자리 잡고 앉은 두 사람. 오늘도 조용한 이 식당 안에서 한 끼 식사를 마감한 뒤, 각자 집으로 헤어질 계획이었다. 이윽고 서라가 물었다.
“그나저나 형 츤고딩님이랑은 어떻게 됐음?”
“어? 내가 얘기해주지 않았냐?”
서라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민국은 그제야 ‘아….’하고 탄성하며 말하지 않았단 사실을 깨우쳤다. 사건들을 수습하기에 바빴던 나날들을 보내다 보니 가까운 지인들에게 어떻게 되었는지 결과를 말해주지 않은 것이다.
“다시 사귀게 됐어.”
“…….”
“다행이지?”
서라가 잠시 쓴 미소를 지으려다가 간신히 참고는 웃으며 말했다.
“요카타~.”
하지만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는 걸까? 그 자문에 대해서 서라는 마음속으로도 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진심을 숨기고 행동하는 서라의 모습에 민국은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만 지으면서 식사를 챙길 따름이었다.
“엇. 근데 형 그러면 내가 형이랑 지금 만나는 거 그분은 아심?”
“당연히 모르지.”
“헐! 그럼 지금 형이랑 나랑 ‘자~ 이리 줘봐 내가 잘라줄게~’, ‘아잉 그럴 필요 없어 자기야~.’하는 걸 모른다는 거임?”
“당연하지. 네가 여자인 걸 이미 밝혀버렸는데 너랑 놀고 있단 걸 얘기하면 어떻게 되겠냐. 안 그래도 은별이 질투 많은 애인데.”
“흐잉… 그래도 불안한디요….”
“괜찮아. 어차피 오늘 만나기로 약속 잡은 이유는 놀려는 게 아니라 쿠왁 때문이잖아.”
서라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별이가 모른다는 게 괜히 불안했지만, 놀려고 만난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서라가 하도 쿠왁에 관련된 이야기로 안달을 내길래 민국이 상담 겸 만나러 온 것이었다.
“민국 스님 어떻게 하면 쿠왁느님을 쫓아낼 수 있을 까여?”
“흠, 일단 만나는 건 절대 안 되고. 그 자식이 영 좋은 놈도 아닐뿐더러 왠지 너랑 그 놈이 이어지면 네토라레 되는 기분이니까.”
민국이 지나가듯이 중얼거리는 말에 서라가 한 가지 신경이 쓰였는지 눈을 껌뻑였다.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네토라레?”
“그래. 네토라레.”
“형이 왜 그걸 신경 씀?”
서라는 혹시나 설마 하는 기분이 들었다. 민국이 설명했다.
“에휴… 서라야, 너랑 그 녀석이 이어지면 말이지…. 나 말고도 분명 화를 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거야.”
“……?”
“예를 들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3000명 정도 된다고 치자. 그 3천명이 나 같이 잘나고 뛰어난 놈이 너와 은별이를 정복시켜서 하렘왕이 되는 걸 보고 싶겠지, 다른 사내놈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여자 가로채는 걸 보고 싶어 하겠어? 이건 네토라레와 같은 이치야.”
“여보세여? 은별느님? 지금 민국 아씨가 로리인 저를 하렘왕 계획에 포함시키려고….”
“스톱!”
휴대전화를 들어 어디론가 연락하는 서라의 모습에 민국이 경악하면서 빼앗으려 들었다. 하지만 액정을 보자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음에 민국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서라는 ‘헤헤’하면서 웃음 지었다.
“어쨌든 서민국이라든가 주인공이라든가 그런 놈들은 괜찮지만 쿠왁 그 애만은 안 된다.”
“쿠왁님이 생각 외로 여자가 많은 가봄?”
“아냐 걔 동정이야.”
“읭?”
“동정은 동정으로서 남겨야해. 그것이 인생의 진리지.”
‘형도 남겠네여.’하고 중얼거리는 서라였다.
“어쨌든 이제 밥도 먹었겠다 집에 가자. 쿠왁 그놈은 내가 한 번 더 얘기 좀 해볼게.”
“땡큐 베리마치 감사여.”
서라가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민국은 그런 서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서라는 이번엔 아무런 드립도 치지 않고 그런 민국의 손길을 얌전히 받았다. 이따금씩 그 손길을 받고 있노라면 마치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과 닮아서 묘한 정감이 들었다.
“자, 됐다. 그럼 담에 보자.”
“이응이응!”
하지만 묘한 정감이라는 게, 절대 가족 같아서의 정감은 아닐 것이었다. 필시 다른 것이겠지. 그렇게 서라는 혼잣말로 생각했다. 돌아서서 전철역으로 돌아가는 서민국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히.
* *
또르르르르르 철컥.
“여보세요 낭자. 지금 어디서 뭐하고 계시오?”
“허이구… 요즘 왜 이렇게 사극풍의 말씀을 하고 그러세요? 유별스럽게.”
“퉁퉁대는 게 여전히 탱탱볼과 닮아서 마음에 드는구려. 하지만 그대의 얼굴은 탱탱볼이 아닌 맑은 달과 같지.”
“…….”
“아, 달에 크레이터 있지.”
“내 피부 곱거든요?! 내 나이 또래 애들 중에서도 가장 피부 곱고 좋은 편인데 무슨 소리야?!”
“허허. 그렇게 열 낼 필요 없소 낭자. 그건 그렇고 뭐하시오?”
조금 진정한 은별이가 대답했다.
“컴퓨터하고 있어. 왜.”
“야동 보시오?”
“미쳤어? 난 그런 저질스러운 거 안 보거든?”
“BL은 보면서.”
“…….”
‘끊는다.’하고 끊으려 하는 은별이었다. 민국이 ‘잠깐 잠깐!’하면서 붙잡았다.
“아니 여자가 왜 이렇게 앞서가? 진도도 이렇게 앞서가면 좋으려만.”
“흥. 누구 좋으라고 진도를 앞서가요? 민국이 좋으라고?”
“아니지. 하나가 되는 것은 서로가 좋으라고 하는 것이지. 나는 넣는 쾌감 넌 뚫리는 쾌감!”
“…좋댄다 아주!”
튕기는 맛이 제대로다. 민국은 말을 이었다.
“오늘 시간 되면 밤에 나와. 얼굴이나 봅세.”
“됐어. 나 오늘은 집에서 그냥 쉬고 싶거든. 밤에 멀리 나가기도 귀찮고.”
“어허, 누가 멀리 나오라고 했나? 내가 집 근처까지 갈 테니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뭐어…?”
은별은 얘가 웬일인가 싶었다. 늘 자기 중요할 때만 집에 찾아오는 놈이었으니까. 전화 통화를 끊고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것도 잠시, 은별은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애인이라고 대우가 달라진 거야? 그렇지?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거겠지…?”
실로 혼란스럽게 하는 민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주변엔 여러 여자들이 하도 꼬여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후! 그놈의 여자들이나 정리하면 좋으련만….”
마우스를 짚고 다시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은별이었다.
“그나저나… 이건 뭐지? …니코니코니?”
그녀가 보고 있는 페이스북에서는 막 요즘 유행 중인 니코니코니의 영상이 등록돼 있었다. 은별은 호기심삼아 그것을 클릭해 보았다.
“니코니코니! 아나따와 하트에 니코니코니!”
“…….”
“움~ 다메다메다메! 니코니는~ 밍나노거야!”
15초짜리 영상이 끝난 직후 은별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할 말을 잃었다기 보단 뭐랄까…. 파격적인 충격을 가져왔다.
“이, 이게 뭐야…!”
애니메이션에는 영 적응력이 없던 은별로서 당연한 행동이었다.(야애니 제외?)
“뭐 이런 게… 이런 게 그렇게 인기가 많단 말이야?”
페이스북을 뒤적거려 보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니코니코니를 패러디한 영상이 있었다. 은별은 크게 할 말을 잃고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닭살이 돋았는지 팔을 만지면서 은별이가 중얼거렸다.
“으… 싫어. 이런 게 뭐가 좋다고 으으….”
그리고 컴퓨터를 끄고 곧장 옷을 갈아입는 은별이었다. 비록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테지만, 은별은 최대한 예쁘게 보이려고 열심히 치장했다. 다른 남자도 아니고 애인인 서민국이었으니까.
“…….”
그렇게 이십 여분간의 치장이 끝나고 화장에 돌입하려던 때였을까. 거울을 보던 은별은 문득 페이스북에서 봤던 영상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니코니코니~.’
“…….”
정말이지 닭살 돋고 오그라드는 행위였다. 하지만 돌연 그것이 그렇게 인기를 갖는 이유가 무엇인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그 의문은 더해지고 더해져, 은별이로 하여금 니코니코니를 직접 따라하게끔 만들었다. 영상 속의 소녀가 했던 것처럼 머리 옆에 손을 들며, 그 손으로도 귀여운 제스쳐를 취하며, 조금은 어색하지만 최대한 앙증맞게 고개를 까닥까닥 흔들며.
“…니코니코니?”
역시 오그라들고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은별은 저도 모르게 빠져가는 자신을 느꼈다.
“니코니코니… 니코니코… 니코니코니~ 아나따와 하트에~.”
그리고 빠져버린 자신은 머지않아 수능 수석을 노리는 학생처럼 니코니코니에 열연하기 시작했다.
“니코니코니~ 아나따와 하트에 니코니코니~ 움! 다메다메다메~ 니코니는~ 민나요 거예요~!”
거울을 보며 열연하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은별은 ‘히힛….’하고 해맑게 웃었다.
“좋아, 다시 한 번!”
“…….”
“니코니코니~ 아나따와 하트에 니코니코니~.”
“…….”
“움~ 다메다메다메~ 니코니는~.”
“…….”
“민나노…….”
니코니를 열연하던 은별이었다. 돌연 뒤에서 느껴지는 요상한 기척에 은별은 순간적으로 언동을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거울을 보던 것도 잠시 스르륵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본다.
“앗….”
“…….”
어느 덧 집에 도착해 있던 민국이 그녀의 방 문 앞에 서 있었다. …저택 문도 열려 있었고 마침 은별이 어머니가 정원에서 빨래를 널고 있어 인사하고 은별이 방으로 올라온 참이었다.
은별은 그가 올라온 줄도 모르고 니코니를 열연하고 있던 것이고 말이다. 얼마지 않아 무지하게 붉어진 얼굴로 은별이가 말을 더듬으며 소리쳤다.
“그, 그…러러, 니…까아…! 이건…!!”
“…….”
가만히 지켜보던 민국이었다. 곧 ‘풋’하고 웃음 짓는 민국. 그 웃음에 몹시 당황한 은별이가 눈을 동그랗게 하고 쳐다보자, 민국이 진심으로 웃기다는 듯이 말하였다.
“너도 어.쩔.수.없.는 오타쿠~♥”
“…….”
그리고 계단을 후다닥 내려가는 민국의 모습에 은별은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로 ‘@*(!*(&(*!#’하고 포효했다.
니코니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