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현대왕은 BGM을 틀었다. 그 BGM은 잘못된 만남이었다.
{나 너를 믿었던 만큼 내 친구도 믿었기에~}
[???]
속사정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채팅창에 물음표를 새길 뿐이었다. 현대왕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스카이 라이프 채팅창을 보았다. 쿠왁은 진심으로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내가 진짜로 게이인가 아닌가 고민 많이 했다. 근데 확신했어. 난 양성애자였던 모양이다.]
[글세, 내가 보기에 넌 그냥 등신 같은데]
현대왕은 질문했다.
[여튼 그 말 트루냐?]
진짜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 진짜다. 내 마음을 이제 알 것 같아. 난 콩딲지… 강서라 씨를 좋아한다!]
‘오메나.’
현대왕은 방송인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채팅을 이어갔다.
[야 이 미친놈아 생각을 다시 해봐. 고작 하루 생각해놓고 자기 정체성을 찾았느니 뭐니 그게 말이 되냐? 애초에 그냥 콩딲지가 예뻐서 그런 거 아냐?]
[인정하지]
[이 미친놈이 쉽게 인정하는 거 보소.]
역시 현대왕 친구였다.
[강서라… 이름도 여자 같고 얼굴도 얼마나 여자다워. 하지만 실제 성별은 남자지. 게다가 목소리는 남성틱해서 묘한 중후한 감을 가져와. 난 아무래도 그 분위기에 반한 것 같다.]
‘이럴 수가, 세상에 나보다 더한 병신이 있었다니.’
현대왕은 묘한 위기감을 실감했다.
[그런고로 서라 씨 좀 네가 어떻게든 설득 해줘라]
[사귀게끔 도와달라는 거냐]
[그래]
‘흐음’하고 현대왕은 뜸을 들였다. 시청자들은 ‘무슨 일이지?’, ‘왜 갑자기 말이 없어?’하면서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대왕은 현재 쿠왁과 하는 이야기가 더 중요했기에 그와의 채팅에 집중했다.
[치킨 사줄게]
그의 제안에 돌연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생겨났다. 현대왕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크윽….’하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못해준다. 애초에 서라가 널 마음에 들어 할 이유도 없고 걘 이성애자야. 널 좋아할 리도 없을뿐더러 아무리 오덕후에 똘끼 충만한 그 아이라도 네 고백엔 적응 못할 거다. 그리고…]
현대왕은 채팅을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라에게 접근하고 싶다면 나를 쓰러뜨리고 가라!]
[어째서냐?]
[간단하지. 잘 생각해봐. 난 서라랑 합동방송을 제일 많이 하고 그 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녀석이야. 네가 만일 서라에게 접근하고 싶다면 나를 먼저 포섭해서 도움을 받는 게 좋겠지.]
[흐음… 틀린 말이 아니로군]
[그래. 만일 네가 날 쓰러뜨리고 간다면 난 너를 도와주기로 하지. 하지만 네가 만일 지게 된다면.]
[지게 된다면?]
[치킨 내놔]
아까 전 치킨의 유혹에 미련을 못 버린 현대왕이었다. 쿠왁은 곧장 수긍했다.
[좋아. 그럼 뭐로 널 쓰러뜨리지?]
현대왕은 스카이 라이프 채팅으로 쿠왁과 함께 진행할 컨텐츠에 대해 언급했다. 물론 두 사람이 비밀리에 진행하는 내기였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 내기의 본질에 대해선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점차 시청자들이 나가기 시작한 상황에서 현대왕이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오래들 기다리셨습니다. 이 정도 시간이면 다들 마약도 하셨겠고 다음 컨텐츠를 진행하기로 하죠.”
[뭘 하길래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대요?]
[컨텐츠라도 준비했나?]
“후후후, 예상대로입니다 여러분. 역시 제 팬들답게 하나같이 죽음의 사신 코난만 모여 있군요.”
그리고 현대왕은 컨텐츠에 대해 설명했다.
“오늘 진행할 컨텐츠는 쿠왁과 함께 합니다. 단 시간 질의응답 게임입니다.”
[??]
“이건 저랑 쿠왁이 직접 개발한 게임인데요. 개발했다고 해봤자 어차피 실제로 있는 게임입니다. 자, 이 게임에선 질문자와 답을 맞히는 자가 있습니다.
질문자는 넌센스든 어느 것에 관련된 거든 상관없이 총 다섯 개의 질문을 내야 합니다. 답을 맞히는 그 질문 중 한 개라도 맞히면 게임에서 승리하는 게 됩니다.
참 쉽죠?”
[뭐여 그냥 문제 맞히기 게임이잖아. 뭐 이거 가지고 오바를 떨어 ㅉㅉㅉ]
“니 얼굴이 오바다 자식아.”
벙어리를 먹이는 현대왕! 역시 싸가지 하나는 일품이었다.
“자, 그럼 출제자는 저고 답을 맞히는 사람은 쿠왁입니다.”
“예. 저는 답을 맞히는 사람입니다.”
“그럼 출제자인 저는 앞으로 5분 동안 문제를 준비해둘 테니 쿠왁은 마음의 준비를 해두면 되겠습니다. 무사히 다 맞히길 바라면 기도문이라도 써서 하나님께 제출이라도 해라.”
아마 쿠왁은 진심으로 이 문제들 중 한 개라도 맞히려고 들 것이다. 그는 어떻게든 서라와 접근하고 싶은 모양이었으니까. 하지만 현대왕은 결코 그러도록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문제도 아주 어렵게 만들 생각이었다.
‘왜 쿠왁이 애인을 사귀려는 걸 반대하냐고?’
우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쿠왁의 행동 때문도 있었지만, 현대왕은 동생을 아끼는 마음으로서 강서라를 그에게 내주고 싶은 맘이 없었다! 마치 애지중지 키운 포켓몬스터가 애인을 사귀고 아기를 배서 데려오는 듯한 충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결혼 반댈세!’
현대왕은 필사적으로 문제를 만들었다. 그 누구도 못 맞출 문제들을 말이었다!
“자, 쿠왁 저장된 무기는 충분한가?”
“그래 충분하다.”
그리고…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사랑스러운 히로인 중 한 명을 네토라레 당하지 않기 위해 승부를 벌여야 할 때가!
“자 그럼 시작하지.”
“그래. 덤벼라.”
공격을 준비하는 현대왕. 반대로 방어를 준비하는 쿠왁. 이 둘의 결전이 이제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시청자들은 급작스러운 컨텐츠 준비와 더불어 급작스러운 전개에 조금 혼란스러워했지만 한 편으론 현대왕이 얼마나 병신 같은 문제를 제출했을까 매우 흥미롭게 관람하는 모습들이었다.
이윽고 현대왕과 쿠왁의 이어져 있는 머나먼 모니터 전선들의 전기가 서로 치닿는 순간이 찾아오고, 현대왕은 그것을 타이밍으로 입을 열어 문제를 제출했다.
“네가 여자친구가 없는 이유는?”
“나도 몰라 개자식아.”
“땡! 틀렸음!”
첫 번째 문제부터 비범한 질문이었다. 쿠왁은 순식간에 틀리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를 본 시청자 한 명이 ‘오오오!’하면서 현대왕의 질문에 관련하여 해석을 하기 시작했다.
[침묵 속에서 갑자기 터지는 질문! 분명 넌센스 위주로 생각하고 있었을 쿠왁의 생각을 꿰뚫어봤다는 듯이 판단하여 쿠왁에 관련된 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쿠왁의 심기 및 감정을 흐트러뜨리고 답을 틀리는 요인을 만들어냈겠지!]
[오옹오오오!]
[과연 현대왕이다!]
“내가 여자 친구가 없는 이유가 뭔데?”
“난들아냐?”
“…….”
“두 번째다! 내가 가위바위보를 할 때 무엇을 먼저 낼까! 10초 주지!”
“헛!”
현대왕의 두 번째 문제에 쿠왁이 빠른 사고회로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분명 녀석이라면 바위를 낼 거다. 왜냐면 남자는 달려 있는 덜렁이 때문에라도 바위를 내는 게 사나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오히려 그런 내 생각을 읽어버렸다면 어떻게 되지? 그렇다면 오히려 녀석은 바위 다음에 두 번째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위를 낼 수도 있다. 가위는 싸울 때 눈을 찌르는데 효능적이라 아주 중요한 무기가 된다고 생각할 테지. 그럼 녀석이 낼 건 가위다! 가위야!’
아니!
‘다시 잘 생각해보자! 오히려 녀석은 내가 이런 식으로 가위를 생각했을 거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럼 보인가? 아니! 그것 역시 아니다! 보는 녀석이 가장 아끼는 주 무기! 그런 무기를 쉽게 낼 수 있을 정도로 현대왕 저 녀석은 평범한 놈이 아니지, 보통 또라이가 아니야! 그렇다면 녀석은 내가 주먹을 낸다는 생각을 읽고 주먹을 안 낼 거라는 생각을 읽은 다음 가위를 낼 거란 생각을 읽고 가위를 안 낼 거란 생각을 읽은 다음 보를 낼 거란 생각을 읽고 보를 안 낼 거란 생각을 읽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10초가 됐다.
“주먹!”
“총이다! 빵!”
“왜!”
“가위 바위 보는 맞짱에서 총을 이길 수 없지!”
그리 말하고는‘룰 브레이커….’하면서 씨익 웃는 현대왕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세 번째 문제다!”
“……!”
점점 몰입하는 쿠왁이었다.
“이도경 , 티아라. 누가 더 국민호감인가!”
“……! 그나마 티아라!”
“땡! 답은 , 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쿠왁은 ‘크윽!’하면서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현대왕의 머리를 도무지 쉽게 읽어낼 수가 없던 것이다.
“네 번째 문제다! 사실 나는 전생을 볼 수 있다! 왜냐면 내 전생은 아주 화려한 궁전에서!”
“왕비?”
“땡! 카펫으로 깔려 있었다!”
벌써 다섯 번째 문제였다. 이젠 단 한 번밖에 남지 않은 마지막 기회! 서서히 분위기는 뜩워지고 있었고, 현대왕은 입을 열었다.
“자… 마지막 문제다…. …크큭, 용케도 여기까지 올라왔군.”
“…….”
쿠왁은 꿀꺽 침을 삼키고 모니터를 경계하듯 쳐다봤다. 이윽고 현대왕이 소리쳤다.
“친구가 내 얼굴을 보고 뭐라고 했을까!”
“잘 생겼다!”
움찔!
“틀렸어! 답은 죽었다이다!”
“그게 말이 된다고 보냐? 너 같이 잘 생긴 애가 잘 생겼단 소리를 듣지 친구가 죽어버린다고?”
‘이럴 수가, 틀린 말이 아니라서 감히 부정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사실 그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현대왕은 절대로 쿠왁에게 서라를 소개시켜줄 마음이 없었다. 고로 지금은 그의 순발력이 필요한 상황…!
“너 잘 생긴 놈을 보면 마냥 잘 생겼다고만 하는 줄 아냐?”
“그런 거로 아는데.”
“아니지! 잘 생긴 걸 보고 ‘헠 쒸발 너무 잘 생겨서 심장이 죽고 싶대.’하면서 죽게 되는 놈들도 있어.”
쿠왁은 ‘허억’하면서 패배의 충격에 사로잡혔다. 현대왕은 악마처럼 악랄하게 웃어 보이다가 말했다.
“저 병신 같은 질문들을 예상하지도 못하다니.”
“자, 어서 치킨을 내놔라.”
“…….”
스카이 라이프로 자기 주소지를 채팅창으로 적는 현대왕이었다. 동시에 이 말도 적었다.
[그리고 콩딱지도 포기해]
[그건 왜냐?]
“?”
현대왕은 이 놈이 왜 이러나 하면서 글을 써재꼈다.
[내가 이기면 콩딱지에게 접근하는 것도 관둔다고 했잖아.]
[언제 그랬냐. 채팅창 올려봐.]
현대왕은 설마 싶어서 스카이 라이프 채팅창을 올려보았다. 그리고는 곧 할 말을 잃었다.
‘치킨의 유혹에 넘어가서 다른 건 신경을 못 썼구나!’
고로 치킨은 사주되 쿠왁은 콩딱찌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원래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을 텐데!
[아무튼 상담해줘서 고맙다. 네가 정 도와주지 않는다면 하는 수 없지. 내 힘으로 스스로 해볼 수밖에.]
[어… 야 이 머슴 같은 놈아]
[이제 와서 도와준다고 해도 거절한다. 오히려 이런 건 남에 도움을 받지 않고 내 스스로 해결할 일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지금 서라 씨 방송 안 들어왔지? 내일이나 들어오면 얘기해야겠네.]
[엇…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
[고맙다 현대왕! 치킨은 바로 배달 보내마!]
그리고 스카이 라이프를 뚝 끊는 쿠왁이었다. 현대왕의 시청자들은 갑자기 쿠왁이 스카이 라이프 방에서 나가자 무슨 벌써 끝났냐며 심드렁해했다. 하지만 현대왕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거 야단났네….’
일단 치킨이 오면 먹자고 생각했다.
* *
위이이이잉. 바람을 거칠게 찢어 재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범한 의자에는 누군가가 다리를 꼬고 비범하게 앉아 있었다. 한 쪽 손은 의자 받침대에 대고 턱을 괴면서, 심드렁한 얼굴로 자신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은 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사천왕 중 한 명이 당했다고?”
“…네! 정보가 사실이라면 맞습니다…!”
“우리 사천왕을 대적할 수 있는 요주의 인물이란 셈인가?”
“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엄청난 녀석임은 분명합니다…! 그분께서도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나셨으니 말입니다.”
그 정보를 들은 의자의 존재가 비웃음을 그렸다.
“실로 재미 있군. 그 녀석조차도 포기한 놈이라….”
“…….”
“여봐라.”
“예!”
의자에 앉아있는 존재의 옆에 있던 또 다른 존재가 호명하는 소리에 재깍 달려왔다. 의자의 존재가 대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병사들을 준비해라. 출두를 준비하지.”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래.”
의자의 존재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고 있었다.
“밤이 되면 녀석의 본진을 습격한다.”
그의 입가엔 참을 수 없는 쾌락과, 증오의 피로 말미암아 서린 살기의 웃음이 담겨 있었다.
“오늘 밤, 재미있겠군.”